현대전의 새 영웅 무인비행기
현대전의 새 영웅 무인비행기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물리친 웰링턴 공작은 “전쟁에서 적의 동태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말했다. 테러범과 게릴라들을 상대하는 현대전은 복잡하고 다양한 성격을 띤다. 이런 전투에선 언덕 저편(또는 건물 내부)의 적정 파악이 새로운 중요성을 띠는 우선과제다. 바그다드에서 아파치 헬기 부대를 이끄는 스콧 윌리엄스 중령의 업무는 표적을 겨냥한 “서비스(servicing)”다. 헬파이어 미사일을 이용한 건물 폭파로부터 현지 경찰의 체포 지원까지 다양한 임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무엇보다 공격할 때와 공격하지 말아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최근 사드르 시티의 공중 정찰작전을 지휘한 윌리엄스 중령이 뉴스위크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그 작전에서 흔히 UAV (unmanned aerial vehicle)라고 불리는 무인비행기가 로켓 포좌(砲座)를 촬영해 현장 지휘관에게 그 이미지를 전송했다. 반군들이 이 지점에서 로켓포로 그린 존을 공격한 뒤 인근 아파트 건물로 숨었다. 윌리엄스와 동료 아파치 헬기 조종사들이 표적을 향해 접근했지만 도중에 기수를 돌렸다. 그 건물을 드나드는 어린이들이 UAV(일명 섀도)의 카메라에 포착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기에 적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윌리엄스는 말했다. “그들이 들락날락하면서 [미사일을] 설치하는 것을 봤다. 우리가 그 건물을 공격했으면 아마 그 작전에 참여했던 적군 너댓 명은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건물 안에 여자와 어린이들이 있을 가능성 때문에) 표적을 공격하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대신 아파치 헬기들은 로켓 포좌 지점과 그 주변에 있던 남성 서너 명을 제거했다. 이라크와 전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반란진압 작전에선 제거한 적군 숫자보다 민심의 확보가 더 중요하다. 이런 전쟁에서 미국이 항상 승리할 만한 기술적인 비책은 없다. 그러나 민간인들 사이에서 신출귀몰하는 반군과 술래잡기 게임을 할 때는 폭탄을 투하하기 전에 표적 위를 맴돌면서 카메라로 주의 깊게 관찰하는 일이 중요하다. 미군은 이를 “지속적 응시 능력” 또는 “깜빡이지 않는 눈”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능력을 갖춘 것은 무인비행기뿐이다. UAV는 이라크 전쟁의 ‘스마트 폭탄’이며 끝없이 밀고 밀리기를 반복하는 전쟁의 역사에서 최근래에 각광 받기 시작한 신무기다. 가가호호 수색하며 전투를 하는 미 육군 부대는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수백 대의 무인정찰기(레이번이라는 모델은 크기가 모형 항공기만 하다)를 이용한다. 척후병들은 수시로 무인정찰기를 띄워 전방을 살핀다. 지휘관들은 왕래가 잦은 도로 상공에 무인정찰기를 배치해 반군이 급조폭발물(IED)을 설치하는지 감시한다. 전에는 사병들이 험비 차량을 타고 나가 몇 시간씩 꼼짝 못하고 지켜봐야 했던 일이다. 미군은 또 최근에 땅을 파헤친 흔적이 있는지를 조사해 IED를 탐지할 수 있는 무인정찰기도 개발 중이다. 육군 무인정찰기는 지난 3월 한 달 동안 4만6450시간 이상을 비행했다. 최근의 사드르 시티 반군진압 작전 같은 복잡한 시가전에선 미군이 적진에 발을 들여놓을 필요도 없이 UAV가 선봉을 맡아 표적을 탐색하기도 했다. UAV는 1초에 몇 기가바이트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위성,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통신 채널들로 이뤄진 방대하고 보이지 않는 인프라의 예봉이다. 이런 조직망을 보유한 건 미군뿐이다. 무인비행기가 촬영한 이미지는 즉각 현장 부대의 노트북, 수km 거리의 지휘 본부, 그리고 (프레데터 같은 무인비행기의 경우) 멀리 독일이나 미국 네바다의 영상분석 전문가에게 전송된다. 때로는 윌리엄스 같은 아파치 헬기 조종사들이 직접 공격에 나서지만 반격이 미치지 않는 수천 마일 떨어진 안전한 곳의 미군이 포격과 폭격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 같은 무인전투 혁명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지만 이라크의 독특한 환경 때문에 갑자기 주목 받기 시작했다. 바그다드 함락 이후 처음 몇 년간만 해도 무인정찰기는 신기한 장난감이나 전쟁터의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특수작전부대의 우선순위 높은 작전에 동원되기도 했지만 전쟁의 필수장비로 간주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지휘관과 보병들 사이에서 상당히 쓸모 있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골목길 안을 들여다보고 공격을 준비하는 적군들을 볼 수 있다”고 제3전투강습대대의 지휘관인 폴 V 마논 중령이 말했다. 마논은 아파치 공격 헬기를 띄우기 전 정찰과 표적 관련 정보의 대부분을 무인비행기에서 얻는다. 지난 2개월 사이 올린 전과의 90%가 UAV의 도움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급증하는 수요에 비해 UAV가 턱없이 부족하자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애가 탔다. 지난 5월 말 앨라배마의 맥스웰 공군기지로 날아가는 동안 게이츠는 준비된 연설문에 다음 단락을 끼워 넣었다. “나는 몇 달 전부터 전투 현장에 더 많은 정보·감시·정찰 자원을 투입하려 씨름해 왔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존 관행만 고집해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게이츠는 이른바 ‘미래전쟁병(Next-War-itis)’을 날카롭게 공격했다. 눈앞의 실재적이고 까다로운 전쟁에 대처하기보다 미래의 ‘큰 전쟁(적성국가를 상대로 전차 대 전차, 함정 대 함정으로 벌이는 대규모의 첨단기술 전쟁)’에 대비하는 국방부 기성체제의 성향을 꼬집은 말이다. 현지 지휘관들이 UAV를 빨리 보내달라고 아우성치자 게이츠는 최근 정찰기 관련 예산의 2억4000만 달러 증액을 승인했다. 거기에는 민간업체를 동원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상공에 카메라와 기타 센서를 별도 장착한 경비행기를 띄우는 응급처방도 포함됐다. UAV 개발 역사는 전장에서의 절박한 요구와 조급해진 민간인 지도자의 압박에 완고한 장성들의 버티기가 평행선을 달리는 양상이 수십년 동안 반복됐다. 무인비행기는 항상 군부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생아 취급을 받았다. 사람이 비행기를 조종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던 것이다(어떤 군대에서든 직접 전투를 해봐야 발전이 있다. 공군의 경우엔 조종사들이 앞서간다). UAV의 역사는 흥미로운 우여곡절이 많았으며 종종 군산복합체와 전혀 무관한 엉뚱한 인물이 혁신을 가져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캘리포니아 남부의 한 공장에서 시작된다. 1944년 라디오플레인의 반 누이스 공장에서 메릴린 먼로가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됐지만 가장 중요한 발견은 그녀가 아니었다. LA 인근의 그 공장에서 일하던 어린 노마 진 도허티(메릴린 먼로의 본명)는 육군 잡지 양크의 사진기자 눈에 띄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라디오플레인이 실질적으로 전쟁에 공헌한 것은 무선 신호로 조종할 수 있는 무인비행기였다. 원래 무인비행기는 비행기 공격연습 표적으로 사용됐다. 1950년대 전략공군사령부(미국 최초의 핵공격 부대)의 창설자 커티스 르메이 대장은 소련 방공포대의 공격으로부터 B-52 폭격기를 보호하기 위한 공중 미끼로 무인비행기를 이용했다. 그 후 1960년을 전후해 노만 사카모토라는 젊은 일본계 미국인 엔지니어가 반짝이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실용화를 추진했다. 무인비행기의 코에 카메라를 달아 공중 정찰과 첩보활동에 사용한다는 구상이었다(무인비행기의 ‘대부’라고도 불리는 사카모토가 2차대전 초 2년 동안 애리조나주에 있는 일본인 포로수용소에서 가족과 함께 보냈다는 사실은 UAV 역사의 많은 아이러니 중 하나다). 당초 미군 당국은 UAV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때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해 유인 U-2 정찰기 한 대가 쿠바 상공에서 소련제 대공 미사일 공격을 받아 격추되면서 양 초강대국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사카모토의 회사 라이언-텔레다인이 갑자기 미 국방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파이어비라는 무인비행기 주문이 그의 회사에 쇄도했다. 베트남전쟁 때는 1000대가 넘는 파이어비가 사진촬영이나 무선통신 방해 임무를 띠고 적진 상공을 비행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무인비행기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군대의 관료주의와 부처 이기주의에 밀려 창고에 처박히는 신세가 됐다. 냉전시대를 맞아 대륙간탄도탄(ICBM)이 B-52 폭격기를 대체하고 있었으며 공군 내에서도 무인비행기 구상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다. “사람이 직접 조종해야”하고 조종사들에게도 비행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육군은 UAV의 조달에서 벽에 부닥쳤다. 육군이 개발한 무인비행기는 새로운 기능과 장치를 너무 많이 달아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처음 설계단계부터 어긋난 아킬라는 수백t의 백업 장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착륙에 한 시간씩 걸렸다. 20여 시간이 지나면 추락하는 데다 제작비도 대당 300만 달러로 불어났다. 육군은 아킬라에 10억 달러를 쏟아부은 뒤 1987년 결국 폐기처분하고 말았다. 미국이 호들갑을 떨면서 허둥댈 동안 이스라엘은 재빨리 움직여 값싸고 튼튼한 무인비행기를 개발했다. 그 계기는 역시 전장에서의 절실한 요구였다. 이스라엘은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에서 이집트의 소련제 방공망에 당황했다. 이스라엘은 바다에 추락해 자국 해안으로 떠밀려 온 미국제 무인비행기의 설계를 모방하는 등의 방법으로 비밀리에 일급 무인비행기를 개발했다. 레이건 정부의 존 레만 해군장관과 해병대 사령관인 P X 켈리 대장이 이스라엘의 무인비행기 제작기술을 가장 먼저 확인했다. 레만은 1980년대 중반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직접 무인비행기를 조종해 봤고 켈리는 무인비행기가 상공을 선회하면서 자신의 여행 일정을 기록한 일종의 홈비디오를 선물받았다. 감명을 받은 레만은 규정을 어겨가며 이스라엘의 파이어니어라는 무인비행기를 입수했다. 이스라엘에선 함정들이 포격 목표물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 그것을 이용했다. 잔디 깎는 기계처럼 요란한 소음을 내는 파이어니어는 1991년 걸프전에서 큰 효과를 봤다. 당시 이라크 병사들은 파이어니어가 굉음을 내며 지나가면 곧이어 빗발치듯 쏟아지는 미사일 세례를 두려워하게 됐다. 파이어니어가 촬영한 한 사진에서는 이라크의 한 대대병력이 하늘을 향해 윗도리를 흔드는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무인비행기에 항복한 사상 최초의 부대인 셈이다. 1990년대 초 발칸반도에서 내전이 시작됐을 때 짐 울시 CIA(중앙정보국) 국장에게 한 가지 고민거리가 생겼다. 현지에 첩보요원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보스니아 현장 사진이 절실히 필요했던 그는 첩보용 무인비행기를 구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공군 측에 조회했다. “6년이란 세월과 5억 달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그는 돌이켰다. 그때 울시는 국방부 산하의 민간기구 국방고등연구사업국이 아베 카렘이라는 명석한 이스라엘인의 설계 기술을 토대로 운영하던 비밀 UAV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그는 수소문 끝에 캘리포니아주에서 카렘을 찾아냈다. 카렘은 앰버라는 암호명의 그 무인비행기가 1990년 예산지원이 중단된 뒤 지금은 분해된 채 캘리포니아주의 한 창고에 처박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을 다시 날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울시가 물었다. 카렘은 “여섯 달과 500만 달러”라고 대답했다고 그는 기억했다(실제 내용은 약간 더 복잡하지만 울시의 이야기가 기본적으로 사실과 다르지는 않다고 카렘은 말했다). 그렇게 해서 최소한의 기본만 갖춘 내트(각다귀)가 탄생했다. 울시는 내트가 촬영한 동영상에 크게 기뻐하며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는 자기 사무실의 TV로 전송하도록 했다. 그의 초대를 받아 개별적으로 그 동영상을 본 국회의원들은 탄성을 올렸다(내트를 열렬히 지지한 국회의원 중 한 명이 영화 ‘찰리 윌슨의 전쟁’에서 톰 행크스가 연기한 인물 찰리 윌슨이었다). 무인정찰기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1990년대 후반 내트는 사진을 촬영할 뿐 아니라 미사일도 발사할 수 있는 프레데터(포식자) 무인정찰기로 진화했다. 그나마도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CIA와 공군은 몇 년 동안 그 프로젝트의 통제권과 자금조달 문제를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이면서 은신 중인 테러범들을 프레데터로 공격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코소보 전쟁 중 유럽 주둔 미 공군 사령관을 지낸 존 점퍼 대장은 이 프로젝트의 아주 중요한 지지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초창기 프레데터에 GPS가 없다는 데 불같이 화를 냈다(점퍼 장군은 숲 속에 감춰진 한 세르비아군 전차의 정찰 사진을 보더니 “아주 좋은 전차군. 그런데 제길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라고 언성을 높였다고 한 동료가 회고했다). 점퍼는 2000년 미국에 귀국해 항공전투군단을 이끌면서 프레데터의 날개 밑에 무기를 장착하는 방안을 다시 추진했다. 거기에 매달 만큼 작은 미사일은 육군의 대전차 무기인 헬파이어뿐이었다. 그러나 그 미사일은 숲 위로 발사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탄도가 위로 뻗어나갔다. 그것을 아래쪽으로 향하도록 수정해야 했다. 그 뒤엔 탄두가 강력하지 않다는 문제도 드러났다(한번은 미사일로 한 벙커를 날려버린 뒤 그 안에서 알카에다 전사들이 비틀거리며 나오는 동영상을 본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그 이유를 따져물었다고 제임스 로치 당시 공군장관은 돌이켰다). 그 무기는 전차를 무력화하려는 용도였기 때문에 폭발이 좁은 범위에 집중됐다. 그래서 탄두에 ‘소매’를 씌워 폭발할 때 산산조각이 나면서 사방으로 날아가도록 개조했다. 이 신무기의 첫 번째 실전 목표물은 2003년 11월 5일 동료 다섯 명과 함께 SUV를 타고 이동 중이던 예멘의 알카에다 공작원이었다. 공격 후 동영상에서 폭발의 잔해 중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물체는 차량의 오일팬뿐이었다. 프레데터는 대다수 민간인에게 잘 알려진 UAV지만 무기를 장착한 것은 이것과 리퍼라는 더 신형의 무인비행기(헬파이어 미사일 4개와 500파운드 폭탄 두 개 장착)뿐이다. CIA와 공군이 이들 무인정찰기를 통제하며 이라크뿐 아니라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내 오지의 비중 있는 표적들(테러 지도자들)의 제거에 사용한다. 공군은 전투지역으로부터 1만3000km 이상 떨어진 네바다와 캘리포니아주의 공군 기지에서 프레데터(뿐만 아니라 높은 고도에서 한 전투지역을 감시하며 20시간 이상 상공에서 머물 수 있는 글로벌 호크스)를 조종한다. 그 임무는 경험 많은 전투기나 폭격기 조종사에게만 돌아간다. 이들 조종사의 삶은 영화 속에서처럼 다소 초현실적이다. 네바다 크리치 기지의 한 공군 조종사의 경우 아침에 교외 자택의 침대에서 일어나 자녀들을 학교에 태워다 준 뒤 부대에 출근해 프레데터로 테러범 하나를 제거하고 축구 연습장으로 가서 아이들을 차에 태워 귀가한 뒤 TV를 보면서 잠들 수 있다. 그것도 모두 하루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 중인 무인정찰기 약 1500대 중 대부분은 미군 사병들과 해병대원들이 조종하는 훨씬 더 작은 비행기다. 얼마 전 발라드 마을 부근의 한 전진 작전기지에 있는 건물 지붕에서 렌지 슈나이더(24) 병장이 레이븐 UAV를 띄우는 모습을 뉴스위크 기자가 지켜봤다. 레이븐은 대형 모형 비행기와 크기가 비슷하며 날개 길이가 90cm에 이른다(이 무인정찰기가 하늘 높이 비행하면 새로 오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전지로 작동되며 케블라와 스타이로폼을 소재로 만들었다. 무게가 2.3kg 미만이며 가격은 불과 3만5000달러로 프레데터 가격의 약 20분의 1이다. 어린이가 모형 비행기를 띄울 때처럼 손목을 한 번 까딱 하면 날아오른다. “누구든 날릴 수 있다. 나까지도”라며 슈나이더는 씩 웃어보였다. 2주 교육과정만 이수하면 레이븐의 기본 원리를 익힌다. 크리스 허만(24) 병장은 바그다드 외곽 전진 작전기지 한 트레일러 안의 안락의자에 앉아 섀도(사출기로 발사해 하루 종일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대형 모델 중 하나)를 띄운다. 컴퓨터 조작반에 내장된 반구형의 대형 트랙볼이 조종장치다. “하긴 사막 한복판에서 에어컨에 쿠션 의자까지 있으니 이라크에선 호강하는 셈이다.” 일은 중요하지만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다는 얘기다. “우리는 서로 농담을 던진다”고 그가 뉴스위크 기자에게 말했다. “원숭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비행기는 혼자 힘으로 뜨고 내려앉는다.” 날씨가 나빠 섀도가 날지 못하는 날엔 허만과 동료들이 한자리에 모여 배틀필드 2나 콜 오브 듀티 4 또는 언더그라운드 게임을 한다. 이런 비디오게임에 비하면 섀도를 띄우는 일은 “초창기의 가정용 게임과 다소 비슷하다. 커서를 갖다 대고 클릭만 하면 되는 아주 기본적인 게임”이라고 허만은 말했다. 육군 사병들은 직접 포격을 하지는 않고 아파치 헬기나 F-16 전투기를 부른다. 그러나 슈나이더의 파트너인 팀 부시 병장은 이라크 반군이 무인비행기들을 무서워하게 됐다고 말한다. “하늘에서 굉음이 들리면 뭔지는 정확히 몰라도 ‘누군가 죽겠구나’ 하는 두려움을 갖는다”고 부시는 말했다. “그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건 뭐든지 내겐 기쁨이다.” 안타깝게도 100% 정확한 공중폭격은 없다. 무인비행기를 이용한 공격으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합쳐 민간인 수십 명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군 측은 최근 뉴스위크의 한 이라크 통신원에게 사드르 시티의 몇몇 장소를 보여주며 UAV의 오폭으로 여성과 어린이들이 사망한 곳이라고 주장했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부족 마을에선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프레데터를 가리켜 “계속 그러면 ‘윙윙이’ 보고 잡아가라고 할 거야”라며 겁을 준다고 알려졌다. 무엇보다 먼저 민심을 얻어야 하는 반란진압 작전에서 그것은 결코 이로울 게 없다. UAV가 주변 지역의 정찰을 맡아주는 덕택에 현지 병력이 더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이동하면서 험비 차량에서 내려 민간인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살상의 범위가 더 멀리까지 확대된 데다 자동화하는 추세다. 노스롭-그러만사는 해군으로부터 6억3500만 달러를 받고 무인 폭격기를 개발하는 중이다. 이 X47B는 F-14와 같은 크기지만 항공모함에서 이륙하도록 설계된다. 항모의 승강기에 들어갈 수 있도록 날개도 접힌다. 현 단계에선 무엇이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지를 보여주려는 의도의 ‘구상 증명’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그러나 내년에 시제품이 나올 예정이다. 군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네바다주의 팔걸이 의자에 편히 앉아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군인들은 여전히 적과 맞서야 하고(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누가 진짜 적인지 파악해야 하고)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으면서 민심을 얻으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그러나 UAV가 하늘에서 지켜보면 미군 병사들은 매복한 적들이 노리는 사냥감 오리 같은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젠 오히려 하늘에 뜬 ‘새’를 보고 반군들이 더 무서워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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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ROD NORDLAND, LENNOX SAMUELS and HUSSAM ALI in Baghdad, and RON MOREAU and SAMI YOUSAFZAI in Paki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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