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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제로’에 도전

‘리스크 제로’에 도전

요즘 투자에서 가장 큰 변수는 인플레이션이다. 은행 정기예금에 돈을 넣어둬 봐야 물가 상승분을 빼면 사실상 손해다. 적어도 물가를 넘는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내는 금융상품은 없을까.
‘투자 리스크’로 골머리를 앓기는 부자들도 마찬가지다. 보통 월스트리트에선 ‘변동성’을 리스크라고 부른다. 그런데 고수들은 한걸음 더 나간다. 돈의 실제 가치를 따진다. 물가 상승에 따라 ‘구매력을 잃을 가능성’을 리스크의 핵심으로 정의하는 이유다. 요즘처럼 ‘인플레의 유령’이 투자시장을 배회할 땐 더욱 와 닿는 접근법이다. 물가 불안은 하반기에도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신의 영역이라는 ‘리스크 제로(0)’에 도전하는 똑똑한 금융상품은 없을까.

탈리오 법칙 = 리스크는 원래 ‘뱃심 있게 도전한다’는 이탈리아어에서 나왔다. 피하는 게 좋지만 때론 싸워서 이겨야 한다. 사실 역사가 그렇다. 일본인들은 17세기에 선물(先物) 거래로 생활비 인상에 대처했고, 2차 세계대전으로 슈퍼 인플레 늪에 빠진 독일은 중앙은행 독립성을 키워 화폐가치를 안정시켰다. 요즘 프라이빗뱅킹 창구에서 많이 권하는 ‘물가연동국채’도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나온 상품이다. 선진국에선 이미 출시됐지만 국내에선 지난해 3월에 선을 보였다. 쉽게 말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 법칙을 응용해 오히려 물가가 오를 때 원금을 불려주는 채권이다. 표면금리는 2.7%로 낮지만 물가가 오르면 일정한 상승분을 원금에 더해주기 때문에 원금이 늘어난다. 게다가 6개월에 한번 있는 이자지급 시점에 원금이 불어나 있다면 그만큼 이자도 더 챙길 수 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이 시뮬레이션을 했더니 물가가 한국은행의 관리 목표치 2.5~3.5%로만 상승해도 물가연동국채를 통해 연 7~9%가량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 특히 만기가 10년이어서 중도 이자에 대해선 분리과세가 가능하다. 만기 때 원금이 늘어난 부분에 대해선 전액 비과세된다. 물론 10년간 물가가 제자리걸음을 하면 별로 돈이 되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물가는 경제 성장과 더불어 꾸준히 오름세를 나타냈다.

‘금리 +α’안타 때리기 = 피델리티의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는 13년간 2700%의 기록적 수익률을 올렸지만 늘 “연 15% 수익률만 올려도 다행”이라고 역설했다. 욕심을 버리고 통장 이자의 두 배 수준인 수익률을 추구하면서 원금보전 성향도 강한 상품이 바로 주가연계증권(ELS)이다. 올 초부터 주가 하락기를 타고 신상품이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1조2000억원이던 발행액이 3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ELS의 구조는 알고 보면 간단하다. 예컨대 우리투자증권이 최근 판매한 ‘ELS 1972호’는 투자종목인 포스코와 KT의 주가가 가입 뒤 6개월·12개월, 18개월·24개월, 30개월 시점에 각각 10%, 15%, 20%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연 19%의 수익금으로 조기상환된다. 물론 원금 손실이 날 수도 있다. 만기 때까지 한 종목이라도 40% 넘게 하락하면 그렇다. 다시 말해 요즘처럼 주가가 박스권에서 일정하게 오르내릴 때 어울리는 상품이다. 최근에는 ELS에 투자한 1억원이 80만원으로 쪼그라들면서 소송을 낸 투자자에게 법원이 ‘금융회사와 투자자가 절반씩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투자자도 ELS의 구조와 중장기 시황을 꼼꼼히 따져보고 가입하라는 얘기다. 미래에셋증권은 ELS와 비슷하지만 투자 대상을 더 세분화한 파생결합증권(DLS)을 팔고 있다. 한국, 중국, 동유럽에 걸쳐 주식은 물론 요즘 몸값이 한창 뛰는 원자재를 포함해 부동산, 금리 등에도 돈을 넣어 위험을 잘게 쪼갰다. PB들이 물가연동국채와 더불어 많이 추천하는 상품은 ‘금융공학펀드’다. 선물·옵션 거래에서 써먹는 ‘델타 헤징’이라는 리스크 회피법을 통해 원금 방어력이 좋고, 최대 20% 수익을 낸다. 기본적으로 주가 상승기엔 주식에 적게 투자하고 하락기엔 많이 투자하는 구조다. 동부투신운용의 ‘델타’이름이 붙은 펀드들이 대표적이다. 최근 판매한 ‘델타-프라임 1단위 주식혼합형 16호’는 코스피200 지수가 40% 넘게 떨어지지 않으면 원금이 보장된다. 리스크는 줄이면서 일정한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에게 적합한 금융공학펀드는 절세의 매력까지 더했다. 원래 ELS는 채권에 많이 투자하므로 수익 모두에 대해 세금을 매긴다. 그러나 금융공학펀드는 세금이 없는 주식겮국걀?주로 투자한다.

펀드가 피곤해야 주인이 편하다 = 한국투자증권 자산컨설팅부의 신긍호 부장은 “리스크 작은 상품을 골라달라”는 부탁에 주저 없이 KTB자산운용의 ‘액티브 자산배분 펀드’를 꼽았다. “일반 주식형 펀드는 투자자 돈의 90% 이상을 주식으로 채워요. 주가가 시원찮으면 수익률이 좋지 않을 수밖에요. KTB의 펀드는 시황에 따라 주식 비중을 50~80%로 탄력 있게 유지합니다. 조정기에 어울리는 ‘고객지향적’상품이지요.” 하나UBS운용이 파는 ‘뉴오토 시스템 펀드’도 비슷하다. 주가가 오르면 나눠서 팔고, 떨어지면 분할매수하는 ‘고점매도-저점매수’전법을 취한다. 여기선 기계가 피곤하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열심히 시장을 주시하면서 일을 수행한다. 연초 이후 수익률이 마이너스 1%대로 코스피의 하락률 6%보다 낫다. 아예 목표 수익률을 못박아 놓고 현금으로 챙기는 펀드도 있다. 대우증권의 ‘마스터랩 텐텐’은 날마다 10%씩 열흘간 한국과 홍콩 증시에 연계된 상장지수펀드(ETF)를 분할매수한다. 이후 목표수익률 10%에 도달하면 즉시 현금으로 자동전환된다.


헷갈리는 자원부국 펀드 따져보고 들자 올 들어 원자재가 풍부한 국가에 투자하는 펀드로 1조원 넘는 돈이 몰렸다. 러시아와 브라질 펀드로 대표되는 이른바 ‘자원부국 펀드’다. 인기도가 지난해 중국과 브릭스 펀드를 보는 듯하다. 수익률은 연초 이후 브라질 펀드들이 12~18%, 러시아 펀드들은 5% 안팎을 기록했다. 중동, 아프리카에 투자하는 일부 펀드도 5% 가까운 성적을 냈다. 중국과 인도 펀드가 평균 마이너스 20%대의 비참한 성적표를 거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프런티어 마켓’은 투자 지역을 깐깐하게 따져야 한다. 투자 지역이 천차만별이고, 이에 따라 수익률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컨대 고유가로 중동 증시가 주목받는데, 여기에 투자하는 상품은 피델리티의 EMEA(동유럽+중동+아프리카), 프랭클린의 MENA(중동+북아프리카), JP모건의 중동&아프리카 펀드가 있다. 그런데 EMEA만 해도 피델리티는 남아공 투자 비중이 크고, NH-CA와 미래에셋은 러시아에 많이 투자한다. 특히 중동의 정유산업은 국유화됐기 때문에 증시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작다. 따라서 EMEA 펀드들이 투자하는 비중도 미미하다. 이렇듯 헷갈리는 게 자원부국 펀드다. 창구 직원의 설명을 꼼꼼히 들은 뒤 투자 지역을 짚고서 돈을 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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