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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이 대한민국 경제 망친다

사교육이 대한민국 경제 망친다

이명박 대통령이 ‘학원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사교육 문제를 이대로 놔뒀다간 대한민국 경제가 망가질 것이란 우려에서 나온 단호한 대책이다. 사교육은 우리 경제를 멍들게 하고 있다. 자녀 사교육에 허리가 휜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저축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어떤 가정의 전업주부는 자녀 학원비 마련을 위해 늦은 밤까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가정이 해체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갈등을 부추기는 사교육. 경제뿐 아니라 대한민국 미래를 좀먹고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사교육 문제를 심층 진단하고 나름의 대책을 마련했다.


#사례1. 평범한 아줌마 ‘청원경찰’ 되다

 
동작구 노량진에 사는 이정란(42)씨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결혼 직후 ‘살림’에만 신경 썼다. 남편 직업은 ‘문(門)’ 보수업체 사장. 월 소득은 예나 지금이나 250만원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저축도 열심이었고, 외식도 즐겼다. 게다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에 토끼 같은 두 딸까지….

그러나 이 가계는 지금 휘청거리고 있다. 사교육비 때문이다. 중학생인 두 딸은 현재 보습학원 종합반에 다닌다. 각각 월 70만원으로 총 140만원이 든다. 중3인 큰딸은 논술학원에도 보낸다. 수강료만 20만원이다. 초등학생인 막내아들도 누나들과 똑같이 보습학원 종합반을 다닌다. 여기에도 월 20만원이 든다.

학원비만 180만원, 교재비까지 포함하면 200만원에 육박한다. ‘차량지원’이 없는 값싼 학원을 보냈음에도 사교육비가 숨통을 조인다. 이씨 가족이 한 달 생활비로 쓸 돈은 50만원뿐. 그러나 기본적으로 나가는 돈이 너무 많다. 통신비(23만원)와 수도·전기·가스요금(10만원)은 기본 경비다. 매월 붓는 보험금 20만원도 부담이다. 내 집 마련을 위해 받은 대출 이자(20만원)도 내야 한다.
이것만 해도 100만원에 달한다. 완전 ‘마이너스’ 가계부다.

그래서 남편은 눈만 마주치면 “학원 보내지 마라”며 호통을 쳤다. ‘사교육비를 줄이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씨는 “사교육비를 늘리면 늘렸지 줄일 생각은 전혀 없다”며 “돈이나 더 벌어오라”고 마음에도 없는 핀잔을 줬다. 그렇다고 남편 수입이 갑자기 늘어날 수는 없는 일.

이씨는 결국 지난 7월 ○○우체국 ‘청원경찰’(계약직)에 지원했고, 뜻하지 않게 채용됐다. “가정부라도 할 생각이었어요. 계약직 청원경찰을 뽑는다기에 무작정 지원했는데 잘됐지 뭡니까.”근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월급은 110만원 정도다. 엉덩이를 붙일 틈 없이 바쁘지만 한편으론 뿌듯하다.

“그동안 버스 타고 학원 가는 아이들을 보면 복장이 터질 정도였어요. 직장생활이 생각보다 만만찮지만 그래도 참을 만해요. 이제는 아이들을 좋은 학원에 보낼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러다가 또 ‘마이너스 가계부’가 되면 어떡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인형 눈이라도 붙여야죠. 부업은 이제 기본입니다. 애들 학원 보내는 게 먼저라니까요.”


#사례2. 가난한 강남 아줌마의 한탄

 
박복진(44)씨는 ‘강남’ 아줌마다. 그것도 사교육의 ‘메카’라는 대치동에 산다. 친구들은 종종 “8학군에 살아서 좋겠다”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박씨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신통치 않은 남편 벌이 탓에 강남에서 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출판사에 다니는 박씨 남편의 월급은 280만원 정도. “애들 학원비로 쓰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그렇다고 경기가 좋아져 출판업이 호황을 누리길 기대할 수도 없고….”

박씨에겐 두 아들이 있다. 고1인 큰아이는 주 6시간에 40만원인 수학 단과반을 다닌다. 영어는 과외를 한다. 이는 더욱 비싸다. 주 4시간에 45만원이다. 시간당 10만원이 날아가는 셈이다. 입시학원 단과반과 과외를 받는 중3 막내에게 들어가는 돈도 60만원 선이다. 합쳐서 145만원, 교재비까지 감안하면 160만원에 이른다.

숫자로 본 사교육비
■ 규모
20조4000억원
(지하경제 포함하면 33조원)
- 초등학교
10조2000억
, 중학교
5조6000억
, 고등학교
4조2000억

- 공교육 1년 예산
31조원
과 맞먹어
- 명목 GDP의
3.6%
수준

■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
22만2000원

- 학생 2명이 있는 가계의 사교육비 월
44만4000원


■ 가구당 월 평균 지출액
64만4000원

- 가구 전체 소득 대비
19.2%

- 월 지출액 대비
25.6%


■ 사교육 참여시간 주당
7.8시간

- 초등학생 : 주당
7~10시간
(21시간 이상 비율 36%)
- 중학생 : 주당
11~15시간
(21시간 이상 비율 7.0%)
- 일반계 고등학생 : 주당
4~6시간
(21시간 이상 비율 2.6%)

■ 사교육 참여율
77.0%



가계당 사교육비 20만원 더 쓰면…
■ 임금
6%
상승하고→소비자 물가
1.86%
올라→민생경기 침체

■ 임금
6%
상승하고→생산자 물가
1.68%
오르고→수출 단가
0.47%
상승하면→수출 물량
0.75%
감소하고→기업 투자 및 생산 줄어→ 가계 소득 감소 및 실업률 증가
박씨 가계는 일찌감치 텅 비었다. 지난해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아 이자를 갚아 나가는 신세다. 경제적으로도 힘들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는 참기 어렵다. 특히 이질감이 심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어쩌다 동년배 엄마를 만나면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기 짝이 없다. 어떤 엄마는 ‘단과학원은 안 된다. 적어도 100만원짜리 종합반에 다녀야 한다’고 큰소리친다.

어떤 엄마는 “수백~수천만원에 달하는 ‘프리미엄 과외’를 시켰더니 성적이 올랐다”며 자랑한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부모의 빈곤한 경제력 탓에 아이들 성적이 떨어질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한편으론 두렵다. 박씨는 ‘부업’을 찾아볼 참이다.

‘강남 아줌마’ 따라가려면 어쩔 수 없다. 자칫 사교육비에 집착했다가 ‘가계 파산’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박씨에겐 ‘아이들 학원 보내는 게’ 먼저다. 부부의 ‘노후생활’보다는 아이들의 ‘미래’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경제가 과도한 사교육비에 흔들리고 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매고, 그래도 안 되면 ‘부업거리’를 찾아 헤맨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1012가구(자녀 수 1704명)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74%가 부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이제는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지옥’에 발을 들여놓아야 할 판이다. 일류대로 가는 코스로 인식되고 있는 국제중학교나 특수목적고에 들어가려면 어쩔 수 없다.

‘특목고에 들어가려면 늦어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사교육을 받으며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이제는 정설이 됐다. ‘가계부는 아예 쓸 수 없다’는 하소연이 가정마다 새어나올 정도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교육비 규모는 20조4000억원에 달한다. 공식 집계되지 않은 사교육비까지 포함하면 3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공교육 1년 예산 31조원과 엇비슷한 규모다. 국민총생산(명목 GDP) 901조1886억원의 3.6%에 해당한다. 학생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는 22만2000원이다.

초·중·고등학생 3명을 자녀로 둔 부모는 사교육비로만 월 66만6000원을 지출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금액은 어디까지나 ‘평균치’다. 실질적인 사교육비는 이를 크게 웃돌 것으로 보인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학생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는 20만~40만원에 달한다. 고등학생은 이보다 많은 40만~60만원으로 나타났다.

학원가는 늘 학생들로 붐빈다. 주당 8시간 정도를 이곳에서 보낸다. 높은 사교육비를 충당해야 하는 학부모들은 소비를 줄여야 한다.


부업거리 찾아 헤매는 주부들

사교육비 ‘거품’은 쉽게 빠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교육정책이 과열경쟁을 부추기고, 이에 따라 사교육비가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반계 고교 1493개 중 570개(38.2%)는 비평준화 지역에 있다. 여기에 특수목적고(95개)·영재고(1개)·자립형 사립고(6개)를 합치면 교육평준화는 그야말로 ‘유명무실’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기숙형 공립고(150개)·자율형 사립고(100개)가 설립될 예정이고, 영어몰입교육·국제중학교 정책까지 나왔다. 학생들의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박종대 CJ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제중학교 설립을 시작으로 정부의 교육개혁이 본격화하면서 사교육비 증가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라며 “인플레이션과 소비 위축에도 사교육비 지출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사교육비가 증가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긴다. 당장 소비가 위축되고 저축할 여력이 줄어든다. 김정호 박사(CJ전략기획팀 상무)는 “사교육비가 높아지면 경제 선순환의 고리가 끊겨 우리나라의 국제수지가 직·간접으로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이 같은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사교육비 때문에 수출이 중단되고, 교역이 끊기는 것도 아닌데, 국가경제까지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추론 아닌가?

김정호 박사는 “사교육비는 무형자산에 투자하는 것과 같다”며 “유형 산출물이 없기 때문에 악영향도 눈에 보이지 않기 쉽다”고 말했다. 유령에 홀린 것처럼 부지불식간에 국가경제가 침몰할 수 있다는 경고다. 이를테면 사교육비는 ‘유령’, 대한민국은 ‘유령’에 홀려 있다는 얘기다.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여기 월 소득 320만원, 저축률 2%, 월 평균 65만원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대한민국 평균 A씨 가계가 있다.

큰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사교육비 20만원을 더 지출해야 할 지경이다. 그런데 A씨는 줄일 수 있는 소비항목이 마땅치 않다. 주거비, 광열·수도비, 보건의료비, 교통·통신비 등 경직성 비용은 건드리기 힘들다. 교양·오락비, 음식숙박비(외식)는 줄일 수 있지만 그것조차 물가가 너무 올라 힘겹다. 그렇다면 A씨가 사교육비 20만원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소득을 늘리는 것뿐이다.

방법은 부업, 대출 등이 있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부업을 찾는 것도, 대출을 받는 것도 어렵다. 무리하게 대출 받았다간 가계 건전성이 무너질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임금상승 압력수치(욕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게 김 박사의 말이다. A씨 가계처럼 대한민국 평균 소득의 가구가 사교육비 20만원을 더 쓰려면, 임금 6%를 더 받아야 한다. 한국은행의 ‘물가파급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임금 6%가 상승하면 소비자물가는 1.86% 올라간다.

민생경기가 더욱 침체된다는 것이다. 생산자물가 또한 1.68% 오른다. 그렇다면 수출 단가가 0.47% 올라, 수출물량을 0.75% 떨어뜨린다. 수출물량 감소는 투자 및 생산 감소에 영향을 끼치고, 이는 소득 감소와 실업률 증가로 이어진다. 그야말로 ‘악순환’의 연속이다. 다시 말해 사교육비 증가가 보이지 않게 가계는 물론, 국가 경제까지 목을 조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교육비 늘면 ‘저축’도 줄어


이를 잘 보여주듯 학원가의 밤은 불야성을 이루고, 마트 매장엔 손님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사교육비 증가는 ‘저축률’도 떨어뜨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사교육비가 1% 증가하면 저축은 0.02~0.04% 하락한다. 사교육비를 생각 없이 늘렸다간 가계 금고가 바닥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노후 준비 등 미래 ‘삶의 질’도 훼손된다. 가뜩이나 조기퇴직 바람으로 노후대비용 종자돈을 마련하기 힘든데, 사교육에 집착했다간 말년이 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자녀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40대의 교육비 지출이 제일 높고, 가장 적극적으로 저축해야 할 30~40대의 과다한 교육비 부담으로 노후설계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교육비는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주요 경제지표도 영향을 받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학원비 등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마련하라”며 학원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천정부지로 솟고 있는 학원 수강료를 바로잡아 가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학원 수강료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급한 불은 끌 수 있어도, 사교육 문제를 야기하는 근본 원인은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강태중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근본적이면서도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섣불리 또는 정치적 과시의 수단으로 대책을 양산했다간 낭패를 볼 것이 뻔하다”고 강조했다.

박이선 참교육학부모회 부회장도 “국가가 교육에 대해 가져야 할 책무는 국민의 세금으로 누구나 보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돈이 있든 없든 능력껏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얘기다. 돈으로 아이의 장래를 만드는 시대. 언제까지 아이들을 부모 욕망의 제물로 삼을 것인가. 정부도 가정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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