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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서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서

행크 윌리엄스(1923∼53)에 따르면 ‘Mother’s Best Flour’(어머니의 최고 밀가루란 뜻으로 윌리엄스가 진행한 라디오 쇼 제목)라야 “가장 맛있는 비스킷을 만들 수 있다”거나, 또 ‘On Top of Old Smokey(애팔래치아 산맥 지역의 전통 포크송)’라는 노래는 “할머니가 가르쳐 주신 대로” 애팔래치아 식으로 불러야 제 맛이 난다.

윌리엄스는 1951년 테네시주 내슈빌의 WSM 라디오에서 방송된, 자신이 고정 출연한 쇼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하지만 그 시절에 우연히 그의 쇼 채널을 맞춰보지 않은 이들은 미국 컨트리 음악의 대부 격인 그의 이런 주옥 같은 언행들을 맛보지도 못했을 뻔했다. 그러나 이젠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WSM 라디오의 한 직원이 1979년 방송국을 대청소하다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그 쇼의 녹음 디스크를 찾아내 보관해뒀기 때문이다. 그 디스크는 20년 동안 아세테이트 원판 그대로 보관됐다. 그러다가 일부 쇼가 해적판 싱글 앨범으로 유통되기 시작하자 드디어 윌리엄스 유산관리재단이 나섰다.

재단은 타임라이프 리코딩스와 함께 스물댓 개의 디스크를 편집했다. 디스크 하나에 두세 편의 쇼가 담겨 있었고 ‘새로운’ 윌리엄스의 노래가 143곡이나 됐다. 그 결과가 CD 3장짜리 박스로 나왔다. ‘행크 윌리엄스: 미발표 녹음집(Hank Williams: The Unreleased Recordings)’에는 54곡이 들어 있다.

미국 동북부 메인주에서 서부 캘리포니아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게와 트럭 휴게소에서 판매되며 온라인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행크 윌리엄스가 사후 5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생한 음성과 귀에 익은 음악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I’m So Lonesome I Could Cry’, ‘Cold, Cold Heart’, ‘Hey Good Lookin’ 같은 히트곡들의 미발표 녹음 외에도 발매용으로 녹음된 적이 없는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Cherokee Boogie’도 들을 수 있다.

녹음 상태가 매우 좋아 작은 소리까지 들린다. 당시 27세이던 윌리엄스가 자신의 밴드 드리프팅 카우보이스 멤버들이 곡조를 잘못 연주한다고 핀잔을 주거나 “똑같은 곡조를 바탕으로 너무 많은 곡을 만들다 보니 내가 지금 어떤 곡을 부르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이 녹음에서 정말 놀라운 것은 아버지의 수다와 웃음, 농담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싱어송라이터인 딸 제트 윌리엄스가 말했다. 제트는 윌리엄스의 유산을 이복 오빠 행크 윌리엄스 주니어와 함께 운영한다. “인간 행크 윌리엄스를 만날 수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달리 아버지는 자신의 쇼 실황 녹음이나 필름이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쇼 녹음에서는 아버지 자신이 왜 노래를 만들고 어떤 노래를 가장 좋아하는지 이야기한다. 또 아버지가 의자에서 일어설 때 신음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아 요통을 앓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 녹음 CD는 윌리엄스의 팬들에게 그를 더 잘 알 수 있게 하지만 특히 딸 제트에겐 인생의 대전환점이 됐다.

제트는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을 뿐더러 스무 살이 되도록 그가 자신의 아버지인 줄도 몰랐다. 제트는 행크 윌리엄스가 1953년 새해 첫날 29세의 나이로 사망한 지 닷새 뒤에 태어났다. 어머니 바비 제트는 윌리엄스과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바비는 행크의 어머니 릴리언 스톤에게 딸의 양육권을 넘기고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캘리포니아주로 이사했다.

스톤은 합법적으로 제트를 입양했지만 제트가 두 돌이 지난 뒤 숨을 거두었다. 아기의 양육 책임은 스톤의 딸이자 행크의 여동생인 아이린 윌리엄스에게 다시 넘겨졌다. 그러나 아이린은 ‘베이비 제트’(그 이후의 모든 법적 서류에 그렇게 불렸다)를 앨라배마 주정부의 보호시설에 보냈다.

그래서 제트는 자신의 가계를 새까맣게 모를 수밖에 없었다. 가족의 유산도 상속받을 수 없었다. 제트는 이 집 저 집을 떠돌아 다니며 보호를 받다가 1959년 자녀가 없는 듀프리 부부의 집에 입양됐다. 그들은 양녀에게 ‘캐시’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녀가 열네 살이 됐을 때 듀프리 부부는 양녀가 행크 윌리엄스의 핏줄일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1967년의 한 소송에서 자신들의 양녀의 전력과 비슷한 여자 아기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윌리엄스와 관련된 법적 공방이 많았지만 그 소송은 첫 번째 아내 오드리(행크 주니어의 어머니), 여동생 아이린, 그리고 에이커프 로즈 음반사 사이에 윌리엄스의 유산을 두고 벌인 싸움이었다.

그러나 듀프리 부부는 그런 사실을 양녀에게 알리지 않았다. 제트는 “부모에게 자신의 출생에 대해 한두 번 물었을 때 모른다는 답변을 듣고 더는 묻지 않았다”고 말한 뒤 이렇게 농담을 덧붙였다. “영화 ‘유어 치틴 하트(Your Cheatin’ Heart)’를 봤더니 ‘이 영화는 행크 윌리엄스의 실화다’라는 자막이 나왔다. 그런데 거기에 내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더라.”

캐시 듀피리(제트 윌리엄스)는 21세 생일에 횡재를 만났다. 실은 횡재라기보다 행크의 어머니 릴리언이 ‘베이비 제트’ 앞으로 기탁한 많지 않은 신탁기금(약 2000달러)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캐시의 양부모는 딸에게 비밀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양어머니는 캐시에게 그 돈을 찾는 게 좋겠다고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가 행크의 딸인 것을 법적으로 증명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중병에 걸린 양아버지는 1980년 상속권을 찾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제트에게 입양 당시의 서류를 보여줬다. 그 뒤 제트는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며 부모의 행방을 백방으로 문의했지만 별반 소득이 없었다. 그러다가 1984년 제트는 조사 전문 변호사 키스 앳킨슨을 만났다. “그가 이 출생 전 양육권 계약서를 찾아냈다.

내 생부가 변호사를 시켜 내가 태어나기 3개월 전 작성한 것이다.” 제트는 어머니도 찾아보았지만 바비 제트는 1974년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생부와 생모가 서명한 계약서다. 골자는 생부인 행크 윌리엄스가 양육권을 가지며 모든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 서류를 보면서 이 행크 윌리엄스라는 사람이 내 아버지였으며 아버지가 나를 원했다는 사실도 알았다.”

앳킨슨은 1985년 7월 기자회견을 열고, 제트가 행크 윌리엄스의 잃어버린 딸이라는 증거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이복 오빠 행크 주니어의 변호사는 즉시 제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제트의 주장이 윌리엄스 유산관리재단의 사업 파트너들에게 계약상의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전부터 시작된 친부 확인 소송, 저작권 소송 등 각종 재판이 8년을 끌면서 과거 기록들이 속속 드러났다. 특히 윌리엄스 유산관리재단의 변호사들 사이에 오간 옛 편지들이 확실한 증거가 됐다. 제트는 이렇게 말했다. “그 편지들 중 하나에는 이런 말이 들어 있었다. ‘그 딸에게 유산의 일부를 주지 않아도 되는 게 확실한가?’ ‘그렇진 않다.

하지만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 그냥 덮어두면 그녀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침내 제트가 친부 확인 소송과 저작권 소송에서 승소했다. 그 뒤 앨라배마주 최고법원은 베이비 제트로만 알려진 여성이 상속권을 부당하게 빼앗겼다고 판결했다. 1989년 7월 제트는 공식적으로 행크 윌리엄스의 유산 가운데 절반을 상속하게 됐다.

제트는 이듬해 자신의 인생 여정을 담은 책 ‘에인트 너신 애즈 스위트 애즈 마이 베이비(Ain’t Nothin’ as Sweet as My Baby)’를 펴냈다. 현재 제트 윌리엄스는 전담 변호사 겸 매니저인 앳킨슨과 결혼해 내슈빌 근교에 산다. 거기서 제트는 작곡을 하고 가끔 음반을 낸다(이미 세 장을 발표했다). 또 아버지의 유산을 관리한다.

그녀는 이복 오빠 행크 주니어와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지내지만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행크 주니어는 인터뷰를 사절했다). 그러나 최근 두 사람은 함께 일했다. 물론 변호사를 통해서다. 두 사람은 윌리엄스의 ‘Mother’s Best Flour’ 라디오 쇼 녹음에 대한 판권을 두고 과거 전속 음반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겼다.

딸 제트에게는 아직도 행크 윌리엄스의 생애 중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옛 라디오 쇼와 전해지는 일화들이 몇몇 단서를 준다. “아버지의 팬들과 친구들이 나를 받아들여줘 너무 고맙다. 그들은 아버지가 어떤 음식과 색상을 좋아했는지 알려준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제트 윌리엄스라는 이름은 1985년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 하나씩을 따서 예명으로 지은 것이다.

또 제트는 드리프팅 카우보이스의 옛 멤버들과 함께 순회 공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버지의 실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신이 알았든 몰랐든 간에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저도 모르게 주저앉게 된다.” 제프는 ‘Mother’s Best Flour’ 라디오 쇼 녹음의 나머지 부분을 향후 3년 동안 별도의 CD로 발매할 계획이다.

그런 활동을 통해 아버지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행크 윌리엄스는 음악만큼이나 음주와 마약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방송국은 윌리엄스가 너무 술에 취해 방송을 못하게 되자 그를 내쫓았다. 또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사망 원인이 심장 마비가 아니라 약물 과잉 복용이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그의 라디오 쇼, 적어도 CD에 선별된 녹음을 들어보면 그의 정신이 아주 맑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밴드와 농담을 하거나 시청자에게 이야기할 때 윌리엄스는 ‘Move It On Over’ 또는 ‘Hey Good Lookin’’ 같은 곡을 부를 때처럼 쾌활하고 재치가 넘친다.

“사람들은 늘 내게 ‘아버지에게서 무엇을 얻기 바라나’라고 묻는다”고 제트는 말했다. “나는 무엇보다 그의 마음의 일부를 얻기 원한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내게 해준 것, 내가 들은 이야기, 아버지가 만든 음악, 그리고 이 녹음에서 들은 것으로 판단해 보면 아버지는 마음이 아주 크셨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그 일부라도 내가 가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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