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erenade] 에스더의 또 다른 어머니들을 위해
[Seoul Serenade] 에스더의 또 다른 어머니들을 위해
지금부터 20여 년 전 공장 근로자로 일하던 경애(가명)는 휴가 나온 군인 수철(가명)을 만났다. 둘은 24세 동갑내기였다. 짧은 만남 뒤 경애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수철의 연락처를 몰랐고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도움을 청할 기관도, 그나마 저축해둔 돈도 바닥이 나자 달리 방도가 없었다. 갓난 딸을 입양시키기로 한 것이다.
생후 100일이 갓 넘은 경애의 딸은 태평양을 건너 우리 부부에게 왔고 그날부터 우리의 딸이 되었다. 당시 아내와 나는 한국 미혼모들의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에게는 쉽지 않은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입양을 결정하면서 마치 한 어린 생명을 고난의 미래로부터 구원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의 딸 에스더는 이제 20세다. 대학 3학년으로 심리학을 전공한다. 늘 아기 같았던 딸이 아름다운 성인으로 자라나 세상 밖으로 걸어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감격스러운 일이다. 나는 녹내장 전문 안과의사로 평생을 살아왔다. 녹내장은 시력을 영원히 상실할 수도 있는 병이다.
보람 있는 일이었지만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2005년 나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인 부모들의 입양을 돕기로 했다. 지역 내 다른 가족들과 함께 입양재단을 설립했다. 나는 사명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재단 활동을 알리는 데 열정을 쏟았다. 2006년 10월에는 재단 사회복지사들의 한국 방문에 동행했다.
그리고 그 여행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당시 대구의 한 미혼모 시설에서 젊은 여성과 아이들을 만났다. 미혼모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나이에 뱃속에 든 아이들의 양육을 포기하기로 한 상태였다. 갑자기 그녀들에게서 20년 전 에스더 생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에스더는 천진난만한 고아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그녀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에스더를 입양한 이래 항상 나를 괴롭혀 왔던 딜레마가 다시 뇌리를 스쳤다. 난 내 아이에게 생명을 준 여인의 존재를 한 번도 소리 내어 인정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에스더에겐 혈연으로 맺어져 있지만 아마 평생 만나지 못할 생모가 분명 있었다.
다른 환자들만 진료하다가 나의 약점(blind spot)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난 항상 입양을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한국 미혼모와 그들의 자녀가 처한 상황에는 무지했다. 또 입양 과정, 특히 국제입양이 생모와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했다.
한국 미혼모의 70%가 자신들의 아이를 포기한다. 미국에서 그 비율은 2%에 지나지 않는다. 이 엄청난 격차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를 키울 권리가 있지 않나? 하지만 내가 만난 한국의 미혼모들과 에스더의 생모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그런 권리를 갖지 못했다.
한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한국의 미혼모들과 그 자녀들을 어떻게 돕는 게 옳은 것일까? 미국인 입양부모인 내가 할 일이 있을까? 만약 한 미혼모가 자신의 아이를 직접 키우기로 결정한다면 어떻게 그녀의 자립을 도울 수 있을까? 또 그녀가 입양을 결정했다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만약 에스더가 지난주에 태어났다면 에스더와 에스더의 생모에게 최선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묻고 또 물었다. 50여 년 전 한국에서 국제입양은 전쟁 고아와 미국 군인들의 사생아를 포용하기 위한 적절한 대안이었다. 지금도 여러 이유로 국제입양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이며 민주국가인 한국이 왜 자국의 여성과 아이들을 더 돌보지 않는 걸까? 결혼제도에서 벗어나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한국 여성들은 사회와 가정에서 고립과 차별을 견뎌야 한다. 자녀 양육에 필요한 정부의 지원도 부실하다. 생부가 있더라도 미혼모 혼자서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와 출산과 양육이라는 큰 짐을 떠맡기 일쑤다.
반면 입양을 결정하면 자책감과 수치심으로 괴로워한다. 나는 에스더가 내 자식이 된 데 감사하지만, 어떤 여성이라도 가족과 사회, 정부의 외면을 받고 자신의 아이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은 가슴 아픈 일이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내가 우선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미혼모 문제를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한국 미혼모와 자녀들이 겪는 어려운 현실을 널리 알리고 활발한 토론(논쟁이라도 좋다)을 유도해서 한국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얼마전 서울의 미혼모 시설 애란원을 방문했다. 그곳의 미혼모들은 모두 직접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한 용감한 여성이었다.
그중 30대 미혼모 경숙 (가명)은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애란원에서 4살 된 아들을 키우고 있지만 밝은 모습이었다. “내 아들이니 내가 키울 거예요.” 한국의 모든 미혼모가 경숙처럼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필자 리처드 보아스 박사는 현재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Korean Unwed Mothers Support Network)란 단체를 만들어 미혼모 관련 연구와 재정후원을 하고 있다. 그의 영문 기고문을 우리 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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