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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넘기려면 리스크부터 떠안아야

위기 넘기려면 리스크부터 떠안아야

이정조 사장은 “한국 경제는 이미 비상 상황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리스크를 떠안고서라도 신속하고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기를 해결할 기발한 아이디어나 결정이라면 시장 개입 비난이나 도덕적 해이 우려 등 리스크가 따르더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부동산 대책으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란 묘수를 내놨을 때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등 비난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 덕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같은 위기는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말이 아닌 신속한 행동으로 시장의 신뢰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부실 기업 예측 전문가로 ‘부도 박사’라고 불리는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사장의 주문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이미 빙하기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비상 상황이기 때문에 신속하고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속하고 과감한 행동의 전제는 이에 따른 리스크를 떠안는 것이다.

이 사장은 “우리는 지금 심각한 ‘리스크 함정’ 속에 빠져 있기 때문에 리스크를 피하긴 어렵다”고 강조했다. 리스크가 없는 묘수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리스크나 부작용은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침체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저런 리스크를 걱정해 우물쭈물하다간 자칫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시기라는 것이다.

이 사장은 무엇보다 “리스크 걱정 때문에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나 결정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지금과 같은 위기 국면에서 무조건 시장원리에 충실하라거나 도덕적 해이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사람은 한발 뒤로 물러나라고 말한다.

그는 예컨대 노무현 정부에서 부동산 대책으로 LTV와 DTI란 묘수를 내놨을 때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등 비난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그 두 가지 조치 덕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같은 타격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최악의 경기침체를 가정하고 시나리오를 짜서 움직여야 한다”고도 했다.

이 과정에서 때론 애국심을 강조하며 고통 분담과 동참을 호소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2500억 달러 규모의 ‘은행 부분 국유화’ 방안을 놓고 헨리 폴슨 장관과 9대 시중은행 회장이 첨예한 신경전을 벌였지만, 폴슨 장관이 애국심에 호소해 그들을 설득한 전례를 참고하라는 것이다.

이 사장은 1980년대 한양투자금융, 동아투자금융, 국민생명보험에서 일하던 시절 부도날 회사를 정확히 예측해 ‘걸어다니는 심사부’로 불렸다. 12년 4개월 동안 그가 돈을 꿔준 기업 가운데 부도가 난 회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외환위기 때는 GE코리아가 그에게 리스크 컨설팅을 받을 정도였다.

그는 출자전환, 소비자 파산 등 새로운 경제 문제를 앞서 제안하기도 했다. 95년에 리스크컨설팅코리아를 창업한 그는 연세대 경영연구소와 함께 ‘크레모아이’란 새로운 재무제표 분석 툴을 만들어 금융권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기존 회계 분석 방법과 달리 대차대조표를 영업과 영업 외 항목을 나눠 분석하는 등 새로운 잣대로 재무제표를 분석하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글로벌 경제의 유례없는 동반침체 위기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제 주체 모두 톱니바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에 따르면 정부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에 원화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해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외환위기를 겪어봐서인지 정부가 외환시장에서는 그런대로 대응하고 있지만, 국민의 체감지수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치는 원화 유동성 부족 문제에선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 금융회사와 금융회사, 금융회사와 기업 사이의 신뢰는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태다. 그러니 혼자 살아남으려고 돈을 풀지 않는 것이다.

이 사장은 해결책으로 ▶금리와 지급준비율을 내리고 ▶(중소기업 지원 실적을 토대로 한국은행이 은행에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총액한도대출을 확대하고 ▶예금 지급보장 한도를 한시적으로 2억 원 정도로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다(10월 9일에 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정부는 10월 19일에 3년간 은행의 모든 대외채무를 지급보증하고, 시중에 300억 달러를 직접 풀며, 기업은행에 1조 원의 현물을 출자해 중소기업 자금 지원이 늘어나도록 하는 등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예금 지급보장 한도는 현행대로 금융회사당 원리금 합계 5000만 원으로 유지했다). 그는 “은행의 후순위채권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채도 잘 팔리지 않아 은행마저 돈이 없어 쩔쩔매는 상황”이라며 “제도 금융권에 돈이 돌게 하지 않으면 금리가 올라가 결국 가계와 기업의 금융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럴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중소기업 등이 부도 위기에 몰릴 수 있고, 가계의 가처분소득도 줄어 내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돈 가뭄에다 환헤지 상품인 키코(KIKO)로 큰 손실까지 보면서 부도 직전에 몰린 많은 중소기업을 살릴 대책도 급하다는 주장이다. 이 사장은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신용보증기금이 중소기업이 빌리는 자금을 한시적으로 100% 보장하는 방안도 나름대로 유용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때 보증 책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며, 은행에 돈이 없는 상황에서는 보증서도 무용지물인 만큼 은행의 유동성부터 확충하라고 덧붙였다. 한국형 투자은행을 목표로 내세운 많은 금융회사가 적극 나서서 위기에 놓인 중소겵煞薩蓚汰?도우면 상부상조의 기회가 될 것이란 아이디어도 내놨다.

예컨대 돈줄이 마른 기업의 대출금을 전환사채(CB)로 바꿔주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또는 대출을 연장하면서 신주인수권부사채(BW)나 전환사채로 인수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방법도 있다. 위기를 넘기고 정상 궤도에 오르면 이자는 물론 주가 상승의 차익도 챙길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사장은 “금융회사가 동참할 유인책으로 미래의 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어떤 자산을 헐값에 사서 나중에 비싸게 되파는 벌처 펀드 유치도 고려해볼 만하다. 예를 들어 회생 가능한 기업에 투자할 때 세금을 깎아주는 식으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다. 대기업이 거래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대기업은 현금 유동성이 은행보다 좋은 데다 거래 기업의 경영 내용도 훤히 꿰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나설 경우 금융회사가 지원하는 것보다 효과가 클 수 있고, 금융회사의 지원까지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사장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이 지원을 받으려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할 각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투명한 회계는 기본이고 필요하다면 지분을 양보할 각오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극단적으로는 나중에 되찾는 조건으로 소유권을 내놓고 경영권을 보장받겠다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경제 주체 모두 ‘내가 손해 볼 수 있다’는 리스크를 떠안지 않으면 위기를 헤쳐나가기 어렵습니다.” 리스크 관리 전문가의 ‘입에 쓴’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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