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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Market View] 두 마리 토끼 쫓다 다 놓칠라!

[World Market View] 두 마리 토끼 쫓다 다 놓칠라!

이명박 대통령과 중소기업 대표들.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다. 오락가락하는 정부가 투자자들을 혼란케 한다. 미국 증시는 지난주 내내 GM·포드·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빅3’ 지원안의 성사 여부에 마음을 졸였다. 140억 달러 규모의 지원안이 주초 하원에서 무난히 통과됐지만 며칠 뒤 상원에서 거부됐고, 백악관은 부랴부랴 다른 돈줄을 통한 지원을 모색하고 나섰다.

행정부와 상·하원의 손발이 맞지 않고, 공화당과 민주당의 피아 구분도 불분명하다. 자동차 회사와 노조, 정치권의 ‘네 탓’ 공방도 한창이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뒤 석 달이 지났지만 위기를 극복하려는 결연한 의지보다는 거품의 후유증을 붙잡고 늘어지는 이기주의가 판친다.

오바마가 당선되기 전만 해도 지원에 부정적이던 백악관은 공화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원에 앞장서며 180도 태도를 바꾼 모습이다. 자동차 주가는 물론이고 금융주까지 우왕좌왕한다. 일관성 없는 모습은 그뿐만이 아니다.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표결 과정도 ‘빅3’ 지원안 못지않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월가에서는 아직도 ‘베어스턴스는 파산시키고 AIG는 구제한 기준이 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지원의 초점을 월스트리트에 둬야 할지,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에 둬야 할지에 대한 논란도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금융 당국은 은행에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라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러면서 기업과 가계에 돈을 풀라고 한다. 곳간을 채우면서 곡식을 풀라는 격이다. 앞뒤가 안 맞는 주문에 은행은 꿈쩍도 않는다. 한은이 유례없이 금리를 한꺼번에 1%포인트 내렸지만 시중은행은 대출을 줄이는 지점장들에게 가점을 주면서까지 돈줄을 조이고 있다. 정부 돈인 정책자금 대출마저도 일선 창구에서 거절당하기 일쑤다.


경기 부양도 말이 앞선다. 위기 탈출을 위해 33조원의 예산을 경기부양에 쓰겠다고 했지만 지난달 말까지 실제 집행된 것은 5조여원에 불과하다. 고유가 극복 대책(9조원), 감세(10조3000억원), 경제난국 극복 대책(14조원) 중 유가환급금 4조4000억원과 공공요금 안정을 위한 추경예산 1조원 등 5조4000억원 남짓만 집행됐다.

나머지는 대부분 즉각 돈을 풀 수 있는 추경예산이 아니라 내년 예산에 잡혀 있다. 더 혼란스러운 건 고용에 대한 태도다. 민간기업에 투자와 고용을 요구하면서 공기업과 정부 산하기관엔 사실상 인력 감축을 의미하는 ‘선진화’를 요구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 단체들을 만나 투자와 고용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LG그룹 등 많은 기업이 호응해 예정된 투자를 앞당기고 신입사원 채용을 늘리기로 했다. 최근엔 삼성 등 5대 그룹이 인위적 해고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오히려 채용문을 좁히는 데 앞장선다. 농협·한전 등 공기업과 정부투자기관은 회사당 많게는 2000명이 넘는 대규모 인력 감축을 진행 중이다.

‘연말까지 선진화 방안을 보고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기에 급급하다. 내년 국가 및 지방공무원 신규 채용도 올해보다 각각 1600명과 5200명 줄어든다.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된 건설사의 은행권 대주단 협약 가입도 헛갈리긴 마찬가지다. 정부가 ‘대주단은 상생부(相生簿)’라며 가입을 독촉하면서도 ‘(구조조정은) 금융권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모호한 태도를 보이니 건설사들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중소 조선회사 지원 제도라는 은행권의 ‘패스트 트랙’도 자금지원과 구조조정 중 어느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 분명치 않아 대상 회사들이 신청을 꺼리는 일이 빚어졌다. 정부가 앞장서서 없애야 할 불확실성을 오히려 증폭시킨 사례들이다.
위기는 불신에서 온다.

위기 극복의 첫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처방도 불신을 없애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계와 기업, 정부라는 3대 경제주체 중 지금 나설 수 있는 곳은 정부뿐이다. 기업은 금융위기의 후폭풍으로 닥친 실물경제 침체로 죽을 맛이고, 가계는 해고에 대한 위기감과 자산가치 하락으로 고통 받고 있다.

정부가 얼마나 자신 있게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현실성 있는 대책을 내놓느냐가 위기 탈출의 열쇠다. 이런 면에서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금융시장의 바닥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반등의 전제조건인 반성과 정리에 정부가 일관성 있게 나서는 시점까지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필자는 ‘중앙SUNDAY’에서 국제경제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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