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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쌍둥이 출산을 지켜보며…

여덟 쌍둥이 출산을 지켜보며…

20여 년 전 나는 동료 의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네 쌍둥이를 임신한 환자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키가 145㎝밖에 안 되는 그 임신부가 아이들을 건강하게 출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내 생각도 같았다. 그는 환자에게 인공유산을 하고 다시 임신을 시도하는 게 낫겠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7년 동안 노력한 끝에 가까스로 임신에 성공한 그 임신부는 네 쌍둥이 가운데 둘만 인공유산을 할 방법은 없는지 물었다. 그 동료 의사는 대답을 유보한 뒤 내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산과의사이자 의료유전학자인 나는 태아검사와 진단검사 개발이 전문이다. 난 그에게 “미국에선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환자의 생명(그리고 네 쌍둥이 모두의 생명)이 위태롭기 때문에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그 시술을 맡았다. 우리는 그것을 ‘선택적 유산(selective reduction)’이라고 명명했다. 그때 그 환자가 낳은 두 명의 쌍둥이는 이제 성인이 됐다.

최근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나디아 술레만이라는 여성이 시험관 아기 시술(IVF)로 여덟 쌍둥이를 낳아 세상이 떠들썩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도 믿기 어려웠지만 나중에 사연을 자세히 듣고 보니 사정은 더 기막혔다. 술레만은 한꺼번에 무려 여섯 개의 수정란을 이식 받았다(그리고 그중 두 개가 분열해 일란성 쌍둥이 두 쌍이 생겼다).

게다가 그녀에겐 이미 여섯 자녀가 있었다. 다산의 소지가 뚜렷했다는 말이다. 원칙적으로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전 세계에 이 시술로 자녀를 얻은 여성이 200만 명에 이른다. 미국에서는 지난 30년 동안 불임치료가 증가하면서 쌍둥이 출산율이 두 배 넘게 늘었다.

오랫동안 자녀를 기다리던 불임 부부들이 자녀를 얻는다는 사실은 기쁘고 축복 받을 일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신생아 사망이나 발달장애 등 장기적인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의사들은 가능한 한 다태(多胎)출산(한 번에 둘 이상의 태아를 임신해 낳는 일)을 피하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시험관 아기 시술은 1회 비용이 1만 달러가 넘기 때문에 의사들은 환자들을 이른 시일 안에 임신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미국 생식의학회와 보조생식기술협회의 지침엔 35세 미만 여성들의 경우 한 차례 시술에 이식되는 수정란의 수를 1~2개로 제한하도록 돼 있다.

미국에서 시험관 아기 시술 1회당 이식되는 수정란의 수는 평균 2.4개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통한 임신 중 3분의 1이 쌍둥이 임신이며, 세 쌍둥이 이상의 비율도 4.3%에 이른다. 게다가 35세 이후 여성의 경우 전반적인 임신율이 급감하는 탓에 다태임신 비율이 한층 더 높아진다.

일부 국가에서는 시험관 아기 시술 1회당 이식이 가능한 수정란의 수를 법으로 엄격하게 제한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생식의학은 환자의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낙태 반대’를 부르짖는 보수파에 정치적으로 이용돼 왔다. 불임치료 의사들이 정부의 개입을 피하려면 시술 관련 지침을 강화하고, 여덟 쌍둥이의 출산을 초래한 것과 같은 터무니없는 행동을 근절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때까지는 ‘선택적 유산’ 시술의 수요가 꾸준할 듯하다. 현재 미국에서 위험성이 높은 다태아의 ‘선택적 유산’을 시술하는 나 같은 의사는 극소수다. 보통 임신 3개월 정도 됐을 때 태아의 수를 관리 가능한 수준(대개 둘)으로 줄이는 방법이다. 나는 시술 하루 전에 환자들의 유전자를 검사해 태아들의 정보를 얻는다.

먼저 뚜렷하게 이상이 있는 태아는 시술대상 1순위다. 2순위는 이상 관련 징후(일례로 목 뒷부분이 두꺼우면 다운증후군 등의 이상이 의심된다)를 보이는 태아다. 그리고 모든 태아에게 별 다른 문제가 없으면 부모가 아들과 딸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느냐가 선택의 기준이 된다. ‘선택적 유산’은 부모로서는 괴로운 결정이다.

하지만 나를 찾는 부부들은 대개가 불임 문제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온 이들이다. 그들에게 ‘선택적 유산’은 그 과정에 가로놓인 또 하나의 장애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은 “네 쌍둥이를 임신한 여성이 그 아이들을 모두 잃을 확률이 25%인 반면, 태아 중 둘을 ‘선택적 유산’으로 제거할 경우 그 확률이 5% 정도로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마음을 결정하기가 훨씬 더 쉬워진다.

‘선택적 유산’은 또 조산이나 뇌성마비, 유전자 이상의 위험도 줄인다. 물론 논란의 여지도 많다. 여성이 유산을 원할 때는 (어떤 이유에서든) 자녀를 낳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하지만 ‘선택적 유산’을 택하는 여성들은 자녀를 간절히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다태)임신에 따른 위험부담이 큰 상황이라면 ‘선택적 유산’이 자녀를 가질 수 있는 최선의(또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낙태에 반대하는 이들에겐 통하지 않을 말이다. 하지만 불임으로 고통 받는 부부들이 ‘선택적 유산’으로 건강한 자녀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런 비난쯤은 달게 받겠다.

[필자는 뉴욕시 종합유전학연구소 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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