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고상하면 공도 잘 맞을까
이름 고상하면 공도 잘 맞을까
![]() 하이트가 인수해 ‘클럽 700’에서 이름을 바꾼 ‘블루헤런’ 서 코스 4번 홀 |
서울, 남서울, 서서울, 뉴서울, 동서울(현 캐슬렉스)…. 서울이 들어가는 골프장은 이뿐만 아니다. 현대자동차에서 운영하는 경기도 남양주의 ‘해비치서울’에다 2월에 문을 연 ‘아난티클럽서울’까지 숱하게 많다. 경주에 있는 ‘우리CC(우리골프클럽)’에서 라운드 약속을 잡을 때도 조심해야 한다.
당일 아침 서둘러 백을 챙기고 내비게이션에 아무 생각 없이 ‘우리컨트리클럽(woori-cc.co.kr)’을 선택하면 황당할 것이다. 아마도 전남 장성의 6홀 미니 코스에 도착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도가 육지로 연결돼 있다면 ‘우리들컨트리클럽’에 도착해 있을지도 모른다.
골프장을 혼동했던 건 치매 탓은 아닐 테니 일단 안심하시라. 많은 골프장의 이름이 비슷하면서도 헷갈리게 돼 있는 데다 자주 바뀌기까지 한다. 요즘 골프장 이름은 지역 이름에서 따지 않는다.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외래어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 보니 비슷한 단어가 겹치기 일쑤라 헷갈릴 수밖에 없다.
현재 운영 중인 18홀 이상 골프장의 명칭을 보면 힐 또는 힐스가 붙는 곳이 18곳으로 가장 많다. 밸리(15개), 파인(11개), 레이크(10개)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골프장이 150개를 넘지 않던 2000년 이전까지는 지역 명칭에서 이름을 따온 코스가 많았지만, 회원권 가격이 급격히 오르던 2000년 이후부터는 코스 리노베이션과 클럽하우스 개축, 사업주 변동 등에 따라 골프장 이름이 많이 바뀌면서 비슷한 이름의 코스도 덩달아 늘어났다. 40여 개 코스가 이름을 바꿨고, 심지어 서너 번이나 이름을 바꾼 코스도 있다.
골프 코스 이름은 대체로 ▶골프장 소유주나 경영권의 변화 ▶코스 증설과 개축 등 시설 변화 ▶분위기 쇄신을 위한 변화 등에 따라 바뀐다. 이런 요인은 경제 상황, 접근성, 평판, 이미지 등과 더불어 회원권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먼저 예전 사업자가 부도를 내면서 경매에 넘어간 골프장을 회원들이 법인을 만들어 사들이거나 새 사업주가 인수하면서 이름을 바꾼 사례가 더러 있다.
경기도 광주의 ‘블루버드’는 1994년 개장 당시 ‘경기CC’였지만 2000년 시공사가 골프장을 경매에 넘겨 회원들이 인수하는 과정에서 2005년 ‘마스터즈’로 바뀌었다. 그러다 이듬해 ‘경기샹그릴라’로 바꾼 후 현재의 이름이 됐다. 경남 경주의 ‘경주신라’와 경북 칠곡의 ‘파미힐스’도 같은 사례다.
‘IMG내셔널’은 대주주가 바뀌면서 ‘미송→이글→엑스포→프레야충남’을 거쳐 현재 이름으로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사조산업은 조양상선이 갖고 있던 ‘동서울CC’를 경매에서 인수하면서 ‘캐슬렉스’로 바꿨고, 제주도에서 인수한 ‘파라다이스’를 ‘캐슬렉스제주’로 바꿨다.
‘뉴스프링빌2’는 동승레저가 2005년 ‘상주CC’를 인수하면서 바뀐 경우다. 창신섬유는 2001년 충북 충주의 ‘남강CC’를 인수해 ‘시그너스’로 바꿨다. 코스 리노베이션이나 홀 증설, 클럽하우스 개축 등에 따라 이름을 바꿀 때도 많다. 예전에 ‘청주CC’였던 ‘그랜드’는 9홀을 추가로 개장하면서 이름을 변경했다.
하이트는 2002년 ‘클럽700’을 인수한 뒤 코스를 개·보수해‘블루헤런’으로 바꿨다. 분위기 쇄신도 골프장 이름 변경의 주요 이유다. 기존 이름이 지역명을 써서 촌스럽다거나 너무 오래됐다는 등의 이유다. 86년 개장한 경기 이천의 ‘덕평’은 2006년 ‘덕평힐뷰’로 옷을 갈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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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파인’은 70년 개장 때 ‘용인’이었으나 84년 ‘양지’를 거쳐 지금 이름으로 바뀌었다. 90년대 들어 골프장들은 색다른 명칭에 주목했다. 이름을 바꿔 호평을 받은 대표적인 코스가 ‘안양베네스트’다.
68년 ‘안양CC’로 개장한 안양베네스트는 96년 세계적인 설계가 로버트 트렌트 존스 2세가 코스를 개·보수한 뒤 베스트(Best)에 네스트(Nest)를 합성한 베네스트(Benest)로 바꿨다.
그 후 ‘동래CC’를 ‘동래베네스트’로 바꾸고, 가평에 새로 지은 골프장을 ‘가평베네스트’로 이름 지었다. 여기에 지난해 9월 개장 40년을 맞아 에버랜드의 골프장 사업군인 ‘세븐힐스’까지 ‘안성베네스트’로 바꾸면서 네 개 골프장의 기업 이미지(CI)를 베네스트로 통합했다.
성원건설은 ‘익산CC’와 ‘홀인원밸리CC’를 인수한 뒤 자사의 아파트 브랜드인 ‘상떼빌’이 연상되는 ‘상떼힐’을 붙였다. 상떼(Sante)는 프랑스어로 ‘건강’이라는 뜻이다. 2007년 ‘춘천CC’에서 바뀐 ‘라데나’는 호수(Lake)와 정원(Garden)과 자연(Nature), 세 단어를 합성한 명칭으로 호반의 도시 춘천을 상징한다.
경기 안성의 ‘윈체스트GC’ 역시 승리(Win)에 도전(Challenge)의 최상급형을 붙여 만든 조어다. 제주의 ‘클럽나인브릿지’는 직역하면 9개의 다리가 있는 클럽이다. 그러나 이 골프장에는 돌다리가 8개밖에 없다. 나머지는 ‘골프장과 회원을 이어주는 마음의 다리’라는 게 작명 의도다. 제주의 ‘블랙스톤’은 완벽한 이상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는 ‘현자의 돌’에서 이름을 따왔다.
경기도 이천에 짓고 있는 계열 골프장 명칭도 ‘블랙스톤이천’으로 정했다. 힐스, 밸리, 파인, 레이크 못지않게 최고 또는 최상을 뜻하는 외래어도 많이 쓰인다. GS건설은 지난해 말 ‘강촌CC’를 ‘이상향’을 뜻하는 엘리시안을 넣어 ‘엘리시안강촌’으로 바꿨다. 제주에 있던 엘리시안은 자동으로 엘리시안제주로 바뀌었다. 고상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리스 신화 속 명칭을 곧잘 쓴다.
지난해 개장한 ‘소피아그린CC’는 그리스어로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를 따왔다. 제주의 ‘제피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가장 고요한 서풍의 신’에서 따왔다. 바람이 많은 제주도라지만 제피로스는 바람이 잔잔한 곳이란 점을 은근히 담고 있다. ‘마이다스밸리’는 손을 대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했던 미다스(Midas)에서 따왔다.
이 골프장은 홀마다 그리스 신화 속 신의 이름을 별칭으로 부르고 있다. 순수 우리말에서 따온 골프장도 있다. 91년 개장한 ‘한일CC’에서 바뀐 ‘솔모로CC’는 여주와 이천의 옛 지명으로 소나무를 뜻하는 솔과 무리 또는 모임을 뜻하는 모로를 합쳐 ‘소나무가 많은 곳’을 뜻한다. 2005년 대규모 코스 리노베이션을 마친 이듬해 이름을 바꾸었다.
현대자동차는 2001년 제주의 ‘다이너스티’를 인수한 뒤 ‘해비치제주’로 바꾸었고 ‘록인’을 인수한 뒤에는 ‘해비치서울’로 바꿔 2007년 개장했다. 해비치는 ‘해가 비치는 곳’이란 우리말이다. 2007년 27홀 규모의 퍼블릭으로 경기 여주에 개장한 ‘아리지’는 ‘아름다운 강이 흐르는 연못’이란 우리말이다. 남한강에서 골프장 용수를 끌어 쓴다고 아리지라고 붙였다.
90년대에는 숫자가 들어간 골프장이 유행하기도 했다. 92년 개장한 경기 여주의 ‘클럽700(현 블루헤런)’을 시초로 전남 화순의 ‘클럽900’, 경기 가평의 ‘클럽200(현 프리스틴밸리)’, 97년 개장한 경기 광주의 ‘강남300’ 등이다. 숫자는 회원 수를 뜻했는데, 회원 수가 적은 곳이 명문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유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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