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공제 임금체계 ‘개혁’ 시급
연공제 임금체계 ‘개혁’ 시급
국내 대기업의 대표적인 임금체계는 연공급제다. 근속 연수가 늘면 임금이 증가하는 호봉제라는 것이다. 연공급제에서 임금은 생산성과 무관하게 오른다. 이 때문에 성과 우수자에게 동기부여하기가 곤란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으로 장기 근속자를 조기 퇴직시키려는 유인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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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급제에서는 상위 직급으로 승진하지 않는 한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직능급제에서는 승진하지 않더라도 개인의 직무능력만 향상되면 임금이 오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직능급제에서는 승진 체계와 별도로 운영되는 직능자격 등급체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 직급에서도 능력 고과 결과 더 높은 등급을 받은 근로자가 더 높은 임금을 받게 된다.
직능급제, 연공급제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이 경우 일정 근속 연수에 도달했을 때 승진하지 못하면 퇴직 압력을 받는 연공급제와 달리 직능급제에서는 과장급에서 정년을 맞는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직능급제는 사무·관리·서비스직보다는 기업별 특수한 숙련이 필요한 생산직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직능급제는 성과주의 임금체계와 구별돼야 한다.
성과급제는 개인의 실적에 대한 결과 중심적 평가다. 반면 직능급제는 개인이 보유한 기술자격이나 숙련등급 등에 대한 ‘속인적(屬人的) 평가’라는 점에서 연공급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일본은 외형상으로는 연공급제처럼 보이지만 1970년대 이후 근속기간이 동일해도 직무능력에 차이가 있을 경우 보수를 차등 지급하는 직능급제가 지배적인 임금체계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일부에선 1980년대 이후 직무능력 평가의 선별기능이 약화하면서 일본의 임금체계가 연공제로 복귀했다는 시각도 있다. 직능급제가 연공급제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투명한 평가기준이 필요하다. 우선, 평가 결과의 이유를 해당 근로자에게 구체적으로 고지해 직무능력 평가 시 인사권자의 주관적 편견이 개입될 소지를 줄여야 한다.
아울러 인사권자가 고도의 평가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충분한 평가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평가 방식은 객관적인 실기테스트 중심의 시험을 통해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인 교양 지식을 묻는 것이 아니라, 생산 공정에서 필요한 기업특수적 기술을 묻고, 생산 현상에서 OJT(On-the-Job Training)를 통해 전수되어온 기술을 매뉴얼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직능급제의 동기 유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직능 향상을 전제로 생산직 근로자에게 관리직을 개방할 필요가 있다. 생산직과 관리직을 분리하는 체계는 학생들이 대학 교육으로 몰리는 과잉 학력 현상의 한 요인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 이후 실업계 교육이 대학 교육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변하면서 침체일로에 빠진 것도 대학에 가야만 하급 관리자라도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 도요타는 생산직으로 입사해 임원까지 승진한 예가 다수인 반면 국내 완성차 제조업체의 한 사업장의 경우 생산직 출신의 최고 승진자는 차장급 1명에 불과하다(2005년 기준). 이런 환경에서는 정부가 아무리 실업계 교육을 살리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도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생산직-관리직 분리형 숙련 형성 체제를 통합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실업계 고교 졸업 후 생산기능직으로 입사해도 내부 노동시장에서 얼마든지 관리직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기업의 인사관리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이것이 개인의 숙련도에 따라 보수를 차등 지급하는 직능급제의 도입 취지에도 부합하는 개혁 방향이다.
직무급제로 ‘중고령층 고용률 증가’
서비스산업과 사무직종에 대해서는 직무급제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분야는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두루 사용될 수 있는 일반적 숙련도가 요구되므로 기업의 전체적인 업무에 대한 통합적 지식을 요구하기보다는 담당 직무에 대한 전문성을 중시하는 직무급제가 적합하다.
담당 직무의 가치와 난이도를 기준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급제를 도입하면 고용 형태상의 차이를 이유로 발생한 비정규직 차별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또한 정규직도 내부 노동시장의 벽을 넘어 동일 직무 내에서 기업 간 노동 이동이 촉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직무급제가 확산되면 근로자는 중·고령화에 따른 고용 불안의 우려 없이 해당 직무의 전문가로서 정년에 구애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면서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 인력을 고용하는 장점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직무급제 도입에 의해 정규직·비정규직 간 이중임체계가 단일임금 체계로 변화할 경우 구직·고용 형태를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단일임금 체계가 이중임금 체계에 비해 고용률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었다.
특히 45세 이상 중·고령층 고용률이 20~30대에 비해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일임금 체계 도입이 날로 심각해지는 인구 고령화와 중·고령자 실업 문제에 의미 있는 대안임을 말해준다. 문제는, 기존 정규직 근로자는 직무급제 도입으로 임금이 삭감될 수 있고 연령 증가에 다른 교육비 등 생활비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연공급제 폐지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런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 평균 57세인 정년을 국민연금 수급을 받기 시작하는 60세로 연장하고 정규직 고용을 60세까지 보장하는 타협이 필요하다. 일본의 직무급제 도입 과정을 보더라도 제도 선택의 시기와 노사 간 신뢰가 제도 개혁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직능급제와 직무급제가 확산된 1970년대와 1990년대는 불황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성과 제고를 위해 임금 체계의 개혁 필요성에 대해 근로자들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다. 여기에 기업이 수익성 감소를 겪는 와중에도 기존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최우선함으로써 근로자들이 개혁을 수용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해고의 절차적 비용 경감해 줄 필요
국내 현행법 아래서는 내부 노동시장의 기득권자들이 반대할 경우 직무급제를 도입하기 어렵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가 없을 경우 재직 근로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취업 규칙을 변경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따라서 기업이 고용 유지를 전제로 근로 조건만을 단독으로 조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변경해지 제도를 법제화하되, 근로자가 소송을 통해 근로 조건 변경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다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고려해봄 직하다. 또한, 이런 제도가 남용되지 않도록 변경 해지의 절차에 노조나 근로자 대표와의 사전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는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을 구성하는 정규직, 특히 대기업 부문 정규직 근로자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민감한 이슈다. 당연히 정치적 실현 가능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경영계는 정리해고의 ‘긴박한 경영상 필요’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고용불안을 우려하는 노동계의 저항을 극복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1996년 노동법 파동을 감안하면 상당한 정치적 위험이 내포돼 있다. 고용안정에 대한 중산층 근로자의 이해관계가 크기 때문에 노동계가 정리해고 규제완화에 반대해 총파업을 결행할 경우 중산층이 노조의 파업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해고에 대한 절차적 제한을 기업 규모별로 유연화할 필요는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기업이 해고를 실행하기 전까지 사전 협의기관과 예고기간을 합해 적어도 80일이 소요된다. 이 중 해고 대상자에 대한 예고기간은 실직의 충격을 완화하고 재취업을 촉진하는 완충장치기 때문에 존치하되 근로자 대표와의 의무적 협의기간은 기업 규모별로 차등화해 중소기업이 부담하는 해고의 절차적 비용을 경감해 줄 필요가 있다..
“껍데기뿐인 직업훈련 제도 정비 시급” 직업능력 개발 훈련비용 지원제도의 허점과 보완책 그러나 2006년 조사에 따르면 1000명 이상 대기업은 피보험자의 121%가 직업능력 개발 훈련에 참여함으로써 중복 수혜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50인 미만 소기업의 경우 이 훈련에 참여한 근로자는 피보험자의 6.2%에 불과했다.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고,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 격차를 확대시키는 역효과가 있었다는 얘기다. 정부는 또한 2004년부터 ‘근로자 수강지원금제도’를 도입해, 정부가 인정하는 직업훈련기관에서 강좌를 수강하면 고용보험금을 환급해주고 있지만 2007년 수급자는 약 24만 명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한 전체 중소기업 근로자의 3.6%에 불과했다. 이렇듯 정부는 구직단계부터 근로자가 양질의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직업훈련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 직업훈련기관을 적극 활용해 구직자의 기능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전통 제조업 외에 고용 유발 효과가 큰 교육, 보건의료, 문화, 사업 서비스 등 지식 기반 서비스 산업에 필요한 전문 인력 양성 과정 설치도 필요하다. 또한 근로자 파견업체가 사용 업체의 니즈에 맞게 구직자들을 사전에 교육할 수 있도록 직업능력 개발 훈련 비용 지원대상을 파견업체로 확대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일과 직업훈련을 병행할 수 없어 포기하는 근로자들을 위한 인센티브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가령, 직업훈련기관 교육과정에 입학하려는 자발적 이직자의 경우 일정 기간 실업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도록 고용보험법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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