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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미완의 동북아 트라이앵글

강화, 미완의 동북아 트라이앵글

강화도 일대 군사분계선·비무장지대(DMZ)·민통선. 아무 움직임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직은 미약한 기대지만 대한민국의 뉴프런티어로 부상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DMZ는 살아 있었네’ 2탄이다.

1. 강화의 논: 강화도와 인근 교동도에서는 양질의 미곡이 풍부하게 생산된다. 특히 민통선 안쪽에서는 기계화를 통해 소수의 농민들이 많은 양의 쌀을 생산한다.ⓒ이상엽

강화도 북쪽 해안가는 철책선이 길게 이어진 최전방이자 군인들도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남방한계선이다. 우리 취재진 일행은 서북단 끝의 해안 경계를 맡은 해병대의 한 초소를 찾았다. 거기서 만난, 이제 갓 스무 살이 넘었을까 싶은 초병의 얼굴에는 청년의 패기와 더불어 소년의 어린 티가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어려 보이는 얼굴의 두 볼에도 오랜 시간 서해의 바닷바람에 시달린 상흔은 역력했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원생 제자들보다도 한참이나 어릴 그의 하루하루와, 그가 온몸으로 감당해야 할 북녘의 화포와, 그가 지켜야 할 등 뒤의 힘없는 백성들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풍경과 삶들이 강화도 북쪽 해안 철책선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초병이 서 있는 지점은 왼쪽으로 약간 멀리 희미하게 교동도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조금 더 멀리 희미하게 북녘 땅이 펼쳐진 지점이다. 초소 앞 바다에는 안개가 끼어 있다.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지독한 안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확하게 앞을 볼 수도 없을 정도의 희미한 안개가 초병의 시계를 희롱하고 있었다.

서해를 바로 앞에 두고 한가롭게 벼가 자라는 강화도의 평범한 들판을 바로 뒤에 둔 채, 초소의 해병대 초병은 그렇게 거기에 서 있었다. 한 시간만 서 있으면 평범한 사람도 철학자가 될 듯한 지점에서 말없이 경계근무를 서는 초병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경계 근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병사들이 생활하는 병영생활관은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국방부는 금년도 추가경정예산 4000억원의 상당부분을 병영생활관 개선사업에 사용하기로 했다.



물 위에 세워진, 보이지 않는 장벽 앞에서

여러 명이 한 침상에서 생활하는 구식 생활관을 병사들이 각자의 개인침대에서 생활하는 신형 생활관으로 바꾸는 개선작업이다. 주로 침대에서 자라 온 신세대 병사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군인과 배려, 과거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던 조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병사들의 사물함에는 그리운 사람들의 사진과 함께 몇 권의 책이 꽂혀 있다.

가까이 가서 책 제목들을 보니 ‘해커스토리’ 같은 일반서적도 간간이 있었지만 대부분이 한자능력검정시험, 컴퓨터활용능력 1급 기본서 등 자격시험 대비용 서적들이다. 그리고 몇몇 병사의 사물함에는 아내의 화장대에서 본 듯한 핸드크림과 선블록(자외선 차단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병사와 시험 대비용 서적, 그리고 선블록의 오묘한 조화가 인상적이다.

우리 취재진은 김포반도와 강화도를 시작으로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역에 대한 탐방을 시작했다. 시작부터가 나에게는 조그만 충격이었다. 이른 아침에 방문한 김포반도의 한강하구에서 나는 처음으로 서울의 마포나루를 떠난 배가 한강을 이용해 서해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파주 오두산 전망대 부근에서 남쪽에서 올라온 한강과 북쪽에서 내려온 임진강이 만난다.

여기서부터의 한강을 할아버지 조(祖)자를 써서 조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 합수지역 이후부터 서해까지가 한강하구 중립지역이다. 일종의 물 위의 비무장지대인 셈이다. 강폭은 1.3∼1.8㎞ 정도 되는데, 남한과 북한은 각각의 하안으로부터 100m 지역까지만 관할한다. 그리고 가운데 지역은 물고기와 철새 이외에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하는 지역이다.

학생시절에 지리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아니다. 내가 대학입시를 위해 치렀던 학력고사에서도 가장 많은 문제를 틀린 과목이 지리였기는 하다. 그래도 한강의 마지막 부분을 수로로 통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내가 무식한 탓일까 아니면 무관심한 탓일까? 어쩌면 분단과 비무장지대 그리고 민통선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그렇게 멀어져 있었나 보다.

한강하구의 전류리 포구에서 들려주는 황복 이야기는 또 한 번 이른 아침 방문자의 가슴을 적셔 온다. 황복은 바다에서 자라다가 강으로 올라오는 물고기인데 그 맛이 좋다 하여 복 중에서도 으뜸 중의 하나로 친단다. 서해에서 자란 황복이 조강하구, 즉 한강하구를 따라 올라오다가 어떤 녀석은 북쪽 임진강으로 올라가고 어떤 녀석은 남쪽 한강으로 내려온다.


2. 민통선 검문소: 젊은 해병대 대원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이 지역은 해병대 관할 지역으로, 소수의 해병대 병사들이 길게 이어진 해안선 일대와 섬과 섬으로 이어진 광대한 주변 지역 경계를 책임지고 있다.ⓒ이상엽

어떤 기준으로 황복이 갈 곳을 정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조강하구에서는 사람이 가진 선택의 자유가 황복이 가진 선택의 자유보다 작다는 사실만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한강하구에서의 부끄러움과 황복에 대한 부러움을 뒤로한 채 나는 다시 내 본연의 임무로 되돌아온다.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각각 2㎞ 이내 지역이 비무장지대며, 중앙의 휴전선으로부터 남쪽 2㎞ 지점에는 남방한계선이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남방한계선 뒤쪽으로 5∼20㎞ 떨어진 지역이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 지역이다.



민통선 둘러싼 관(官)과 군(軍)의 힘겨루기

이번 취재에서 나에게 주어진 기본 임무는 이들 비무장지대, 민통선지역의 경제를 돌아보고 이 지역 경제의 현재와 미래,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이 지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과 좌절과 희망을 알아보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비무장지대와 인근 지역은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지난 60여 년간 온갖 식물들이 자라고 죽고, 동물들이 드나들었지만 환경파괴의 최대 주범인 인간들의 접근이 제한되었던 곳이다. 당연히 세계가 인정하듯 자연생태계의 보고라고 할 만하다.

이 지역은 안보관광 활성화의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안보라는 것이 보고 즐기는 관광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고민이 필요하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가장 가 보고 싶어 하는 곳 중의 하나가 이곳이라는 점에서 국제관광자원의 잠재력은 충분하다. 이와 같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 지역은 태생적으로 내부적인 갈등이 내재되어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군이다.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군으로서는 모든 판단에서 최고 최대의 우선순위를 국가안보에 둘 수밖에 없다. 국가안보가 바로 군이 존재하는 단 하나의 절체절명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지역의 발전 책임을 맡고 있는 행정당국이나 일반 지역민들의 입장에서는 국가안보의 가치와 함께 지역발전도 함께 고려해야 할 중요한 가치다.

지역이라는 미세한 현미경으로 볼 때 국가안보와 지역발전은 전통적으로 갈등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지역주민들은 해당 지역 발전을 위해 미활용 군사시설을 활용하려는 욕구가 항상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대개 논의를 시작하기조차 쉽지 않은데, 바로 군과 지역민들이 생각하는 미활용 군사시설의 개념에서부터 천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지역민들의 눈으로는 1년에 한두 번 사용할까 말까 하는 군사시설은 미활용 군사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를 민간 차원에서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 그러나 군의 입장에서는 전쟁은 언제 발발할지 모르는 휴화산이며, 따라서 10년에 한 번 사용하더라도 군사적으로 중요한 시설이면 미활용 군사시설이 아니라 활용 군사시설이다.

그동안 민통선 지역에서는 이러한 갈등이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 이는 어느 일방의 탓이라고 보기 어려운, 우선순위와 가치의 차이에서 비롯된 난제다. 이러한 갈등이 어떻게 표출되고 해결되는가를 관찰하는 일 역시 이번 탐방에서 내가 맡아야 할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지역개발 차원을 떠나 국가 전체의 차원에서 비무장지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

국가 차원에서 볼 때 산악 중심의 동부지역으로부터 북한과 지리적, 문화적으로 가까운 중부지역, 그리고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강과 바다라는 특수상황까지 포함된 서부지역에 이르기까지, 통일 이전과 통일시기 그리고 통일 이후를 염두에 둔 장기적인 개발 및 보존 계획이 필요하다.


1. 연륙교 공사현장: 강화와 교동을 연결하는 연륙교가 건설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북한 쪽과 연결되는 교량이 완성된다면 강화는 새로운 통일의 허브로 기능할 것이다.ⓒ이상엽

강화도는 우리가 방문하는 비무장지대 중에서도 특이한 지역으로 생태의 보고나 관광자원의 관점에서도 중요하지만, 군과 민의 갈등이 더욱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되는 지역이다. 이곳은 중동부지역과는 달리 일상생활에서 민통선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군과 민이 융합되어 살아가는 복합지역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벼농사를 짓는 논이나 작물을 경작하는 밭이 남방한계선을 표시하는 철책 바로 직전까지 펼쳐져 있는 경우가 많다. 요즘에는 민통선과 아주 가까운 지역에까지 일반인들이 주말 휴양소로 사용하는 펜션들이 들어서 있다.



강하면서 유연하다! 지역경제 기여하는 해병대

강화군과 해병대는 대화를 통해 우선순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문제들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지혜롭게 풀어나가고 있었다. 강화군과 이 지역을 관할하는 해병대는 주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관군협의회를 개최하고 있었다. 이 회의에 강화군에서는 군수와 부군수, 실·과장 이상의 간부들이, 그리고 해병대에서는 사단장과 주요 참모들이 참석하고 있었다.

관군협의회를 통한 성과도 일부 나타나고 있었다. 김포에서 강화대교를 건너 고려인삼센터에서 우회전해 길을 따라가면 월곶돈대 안에 연미정이라는 정자가 나온다. 이곳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해 그 모양이 제비꼬리 같다고 하여 연미라 불린다. 강화도를 설명하는 책자에 의하면 연미정은 고려시대 고종이 학생을 모아 놓고 면학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는 곳이다.

조선 인조 때 정묘호란 당시에는 청나라와 조선이 강화조약을 체결한 곳이기도 하다. 월곶돈대 가운데에 열댓 명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크기의 연미정이란 정자가 있다.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아름다워지고 안쪽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아름다워지는 아담한 정자다. 원래 이 연미정은 민통선 내에 위치해 일반인들이 출입하려면 총을 들고 서 있는 초병의 검문을 받아야 했다.

연미정을 강화도의 또 하나의 관광명소로 만들고 싶어 하던 강화군은 해병대와 협의를 통해 검문초소를 연미정 입구 뒤쪽으로 후퇴시켰다. 그리하여 일반인들이 아무런 검문이나 제지 없이 자유롭게 연미정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그 아름다움 속에서 들리는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민통선 지역에서 관군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한 한 사례라고 하겠다. 관의 적극성과 군의 유연성이 조화를 이룬 사례다. 연미정에서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조금 더 나아가면 은암자연과학박물관이 있고, 서쪽으로 더 나아가면 제적봉 위에 최근 개관한 평화전망대가 나온다. 큰 강의 강폭보다도 좁은 바다 건너 북녘의 들판과 산들과 마을까지가 코 밑에 바로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며, 초소에서 신분증만 제시하면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다.

이 전망대 역시 강화군과 해병대가 협의를 거쳐 함께 이룩한 사업의 결실이다. 군은 기존의 경계초소가 있던 산 정상을 강화군에 내주었고, 강화군은 여기에 관광시설인 전망대를 설치하면서 동시에 군이 사용할 별도의 전망시설을 함께 지어주었다. 한마디로 군에도 좋은 일이고 민간에도 좋은 일이 이루어진 셈이다.

강화도와 강화도의 서쪽에 위치한 교동도를 연결하는 교동연륙교의 건설 과정도 관군의 협력 사례라고 할 만하다. 건설비용이나 연결도로 등으로 판단할 때 강화도와 교동도를 연결하는 연륙교의 최적 위치는 강화도 북부의 민통선 지역을 통과하는 경로다. 그러나 해병대 입장에서 볼 때 이 지역은 민통선 내 지역으로 이곳에 연륙교를 건설할 경우 군의 작전수행에 애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지역이었다.


2. 상추 농사: 민통선 안쪽 농민들의 일상은 한가롭다. 철조망으로 막혀 갯벌 농사는 불가능하지만 너른 들판은 농사짓기에 부족함이 없다.ⓒ조우혜



강화도 사람들의 꿈과 희망

당연히 해병대에서는 민통선보다 아래쪽에 연륙교를 건설할 것을 주장했으며, 강화군에서는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민통선 내를 통과하는 최단거리를 주장했다. 첨예하게 우선순위의 이해관계가 대립되던 이 사안은 결국 양측의 협의를 거쳐 민통선 내에 있는 최단거리로 연륙교를 건설하기로 결정되었다.

필자가 교동연륙교 건설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한창 기초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엄청난 크기와 길이의 H빔을 옮기느라 거대한 크레인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교동도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공자의 화상을 봉안한 교동향교가 있다. 기록에 의하면 1286년 고려 충렬왕 12년에 문성공 안향 선생이 원나라 유학에서 귀국하는 길에 교동도에 들러 지금의 향교 자리에 임시로 초막을 세우고 공자의 상을 봉안했다고 한다.

아마도 안향 선생은 교동도에서 배를 타고 강화도로, 다시 배를 타고 김포반도나 개성으로 향했을 것이다. 이제 교동대교가 연결되면 이 뱃길들은 북한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람과 자동차가 다니는 육로로 바뀌게 된다. 교동연륙교가 완성되면 김포반도에서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도로 들어온 관광객은 넓게 뚫린 시원한 도로와 다리를 건너 순식간에 교동도에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교동연륙교가 현재 위치에 만들어지기까지 자신의 역할과 우선순위에 충실하던 강화군청과 해병대의 대립이 있었으며, 이 과정에는 수많은 갈등과 협의가 있었음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교동도와 강화도를 연결하는 연륙교가 건설되듯이 언젠가는 강화도와 황해도를 연결하는 연륙교가 생길 날도 올 것이다.

이 연륙교가 민통선과 비무장지대를 건너서 만들어질지, 아니면 아예 민통선과 비무장지대의 개념이 없어진 상태에서 우리 땅을 연결하는 상황이 될지 궁금해진다. 아침 6시에 서울을 출발했는데 애기봉, 승천포, 제적봉 평화전망대, 인화보 그리고 교동연륙교 공사현장을 거쳐 강화군청을 방문했을 때 시계는 벌써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강화군청 앞에 서 있는 표지판의 ‘비타민 강화’라는 구호가 눈길을 끈다. 단어의 음률을 중시해 만든 구호겠지만, 필자에게는 한반도에 없어서는 안 될 비타민 같은 강화도가 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강화군청은 다른 군청과 달리 주차장이 2층으로 되어 있었고, 업무시간으로는 비교적 늦은 시간임에도 자동차를 주차할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군청에는 비상경제상황실이 운영되고 있었다. 부군수를 상황실장으로 하고, 그 아래 상황점검반, 기획재정반, 고용경제안정반, 복지지원반 등 4개 반이 설치되어 있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부실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의 여파가 하늘과 땅을 건너 강화도에까지 상륙해 있었다.

인천세계도시축전을 위해 강화도 각 지역을 점검하고 막 군청에 돌아온 문화관광과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강화도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는 강화도 행정수장을 강화유수라 했는데, 강화유수는 비변사(요즘으로 치면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하는 멤버였으며 충청, 전라, 경상의 3도 수군에 대한 통제사를 겸임하는 중요한 자리였단다.

강화도는 150기의 청동기시대 고인돌에서부터 고려시대 항몽 시절의 유적, 그리고 조선후기 병인양요·신미양요· 운양호사건 등 서구열강과의 격전지까지 문화재의 보고다. 실제 문화관광과장은 강화도가 신라 천년의 수도인 경주보다 문화재 밀집도가 높다는 점을 강조한다. 강화도는 고려시대에 이미 간척이 이루진 우리나라 최초의 간척사업지기도 하다.

강화도 부근의 석모도에서는 해명, 용궁, 영암 등 세 개의 온천이 발출되어 온천관광단지 조성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지정학적 여건상 강화도는 일조시간이 길고 밤낮의 기온차가 커 농업에 적합한 지역이기도 하다. 강화도 개발계획에는 강화도의 균형발전을 위해 경제자유구역 확대를 통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강화도 북부지역을 개발하고, 130㎞에 달하는 강화도 해안고속도로 건설 계획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강화도 지역개발에 대해서는 강화군청을 믿어보기로 했다. 다만, 강화군의 면적은 411㎢로 인천시 전체면적의 41%에 달하지만, 2009년도 기준 전체 예산 3176억원에 재정자립도 16.5%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강화도 지역에 대한 인천시 및 국가 차원의 개발 및 보전계획 수립이 필요할 것이다.




환황해경제권의 중심으로 태어난다

강화군청의 입장에서는 강화도 내부가 보이지만, 구글어스를 통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누구나 한반도의 정치, 경제의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강화도가 보인다. 예로부터 강화도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물류의 중심지였다. 고려시대에 강화도를 수도로 삼았거나, 조선시대에 왕이 강화도로 피난한 기록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 강화도가 오랜 기간 수도로서 기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강화도의 농산물 생산능력과 더불어 삼남지방에서 세곡선을 이용해 조세를 거두어 들이기에 수월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왕정의 최고 보물로 추정되는 조선왕조실록 및 조선왕실족보의 원본을 보관하던 곳이 강화도 정족산사고의 장사각이었다.

1236년에 설립된 대장도감에서 팔만대장경을 만들 때는 대장경목판을 실은 배가 거제도를 출발해 강화도 선원면에 있는 선원사 앞까지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1900년 우리나라 최초의 성공회 성당인 강화성당을 만들 때에는 백두산 원시림의 나무를 압록강을 이용, 강화도까지 운반해 사용하기도 했다.

이미 오랜 과거부터 강화도는 백두산과 거제도가 만나는 물류와 경제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지금부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강화도는 더욱 크고 번성한 환황해경제권의 중심으로 변모할 공산이 높다. 중국의 성장열차가 지칠 줄 모르고 달리면 달릴수록 한반도의 중심에서 중국과 근접한 강화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강화도는 환황해경제권의 중심지역임과 동시에 서울과 인천, 개성을 연결하는 트라이앵글의 중핵지역이다. 이 트라이앵글의 현재는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 그리고 민통선 지역으로 갈기갈기 찢겨 있고 상대방을 노려보는 총구들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숨죽이게 하고 있다. 아직은 적막, 갈등 그리고 그리움만이 존재하는 미완성 삼각지대일 뿐이다.



환희의 트라이앵글이 주는 무거운 숙제


고인돌: 하점면에 있는 잘생긴 고인돌이다. 선사시대부터 강화에 많은 주민과 권력화된 인물이 존재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강화에는 수많은 고인돌이 산재한다.ⓒ이상엽
한반도에 평화가 오고 황복이 누리는 정도의 자유를 평범한 국민도 누릴 수 있게 되는 날, 이 트라이앵글은 평화, 화합 그리고 환희의 삼각지대로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에는 강화도와 황해도 연백군, 개풍군 사이에 나들섬(인공섬)이 떠 있을 것이다.

이 나들섬을 중심으로 교동도와 황해도 연백군을 연결하는 연륙교, 강화도와 김포반도, 황해도 개풍군을 연결하는 연륙교 그리고 인천과 강화도를 연결하는 연륙교가 완공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강화도는 서울, 인천, 개성 트라이앵글을 숨 쉬게 하는 심장, 백두산 천지와 제주도의 백록담을 연결하는 한반도의 심장, 그리고 세계를 호령할 환황해경제권의 심장으로 거듭날 것이다.

강화도 비무장지대 탐방은 이렇게 끝났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적막, 갈등, 그리움의 트라이앵글을 평화, 화합 그리고 환희의 트라이앵글로 만들기 위해 나는, 우리는, 그리고 국가는 지금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무거운 숙제를 안겨준 하루였다.

새벽부터 밤까지 움직이느라 파김치가 된 육신은 당장 잠을 자라고 요구하지만, 고뇌에 빠진 정신과 마음은 긴 밤을 지새울 것 같다. 갑자기 내일 아침 학교강의를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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