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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주기 ‘공포의 식중독’에 또 조바심

3년 주기 ‘공포의 식중독’에 또 조바심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 회원들이 직영급식을 요구하고 있다.

꼭 3년마다 터졌다. 일선 학교의 식중독 사태 말이다. 2003년 서울시 13개교에서 집단 식중독 사태가 발생했다. 2006년엔 수도권 지역 46개교에서 4000여 명이 훌쩍 넘는 학생이 식중독에 걸렸다. 문제는 위탁급식에 있었다. 2003년, 2006년 집단 식중독이 발생한 학교는 모두 위탁급식을 하고 있었다.

각종 자료에서도 이 급식체제의 위험성이 잘 드러난다. 교육과학기술부의 급식형태별 위생·안전등급 비교 자료를 보면, 위생상태가 미흡한 D등급 이하의 학교는 조사대상(8296곳) 중 직영 2%, 위탁 6%다. 2000~2007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학교 식중독 사고 통계에 따르면 직영·위탁급식의 식중독 발생건수는 각각 1.5건, 15.4건이다.

위탁급식의 식중독 발생 수가 직영보다 10배가량 많다. 주목할 점은 식중독 사고가 쳇바퀴 돌 듯 발생하고 있음에도 위탁이냐 직영이냐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3년, 2006년에도, 지금도 그렇다. 2003년 식중독 발생 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직영급식을 골자로 한 급식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2년 동안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급식법 개정을 서두르기보단 4대 개혁법안(사립학교법·과거사기본법·언론관계법·국가보안법)을 사이에 두고 여야가 줄다리기를 했다. 특히 급식법 개정안을 다뤄야 할 국회 교육위원회는 사학법 파동에 휘말린 채 공전을 거듭했다. 그러다 국회는 2006년 대형 식중독 사고가 또다시 터지자 부랴부랴 급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무려 2년간 계류 중이던 급식법 개정안이 집단 식중독 사고가 터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처리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것이나 다름없다. 그로부터 3년, 마의 6월이 왔다. 식중독이 우려되는 계절이다. 이번엔 3년마다 반복되는 식중독 사고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2006년 통과된 급식법 개정안에 따르면 2010년 1월까지 직영급식을 완료해야 한다. 전국 수치를 보면 달라진 게 제법 많다. 전국 학교의 직영화 비율은 90%를 넘는다. 초등학교와 특수학교 직영비율은 각각 99.9%, 99.3%에 이른다. 문제는 서울 지역 중·고등학교다. 전국 중학교의 직영 비율은 86%, 고등학교는 70%다.

그러나 서울 소재 중·고등학교의 직영 비율은 각각 18%, 12%에 불과하다. 서울 소재 중·고등학교만 유독 직영급식 전환에 소극적이라는 얘기다. 학교급식네트워크 이원영 정책실장은 “서울의 경우 내년 1월까지 직영급식 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의 예산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급식 직영 전환 보조예산 자료에 따르면 2007년 42억6000만원이 편성됐지만 21억7000만원만 집행됐다. 2008년엔 78억원 예산 가운데 36억원만 보조됐다.



위탁이냐 직영이냐 소모적 논쟁만…

편성된 예산의 절반가량만 집행된 셈이다. 그만큼 일선 학교에서 급식 직영화를 꾀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올해 예산은 전년비 27% 깎인 57억원이 편성됐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예산을 편성해도 (일선 학교에서) 수령하지 않는다”며 “올해 예산이 깎인 것도 그런 이유”라고 말했다.

대체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일선 학교장들이 직영급식 전환을 꺼리기 때문이다. 일선 학교장은 “직영급식이 도입되면 교직원이 교육에 전념할 수 없을 정도로 업무량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국가가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이현진 부장은 “급식형태는 학교 운영위원회의 결정 사항”이라며 “국가가 나서 직영을 강제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그럴듯한 명분일 뿐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급식이 직영화되면, 급식사고 발생 시 모든 책임을 학교가 져야 한다.

서울 중·고등학교가 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직영급식 도입을 차일피일 미룬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최근 발의한 ‘직영급식 개정안 반대법안’ 통과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또다시 대형 식중독 사고에 학생들이 노출될지 모른다.

이원영 정책실장은 “직영급식에 대해 학부모 80% 이상이 찬성하고 있다”며 “왜 서울 지역만 직영급식 전환에 예민한지 도통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운동본부 배옥병 상임대표도 “학생들의 건강한 급식을 위해 현행법 준수에 앞장서야 할 교육청과 학교장들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시민단체 9월 감사원 감사청구 계획

학교급식네트워크 등 시민단체가 학교급식 직영전환과 관련, 오는 9월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할 계획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실장은 “급식법 개정안에 따라 직영전환해야 함에도 서울시 교육감·중등교장회가 이를 외면하고 있다”며 “국민감사청구운동을 벌여 이들의 속내를 밝힐 계획” 이라고 말했다.

2006년 위탁이냐 직영이냐를 둘러싸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수천 명의 학생이 식중독에 걸렸다. 아쉽게도 이번에도 다를 게 없다. 서울 소재 중·고등학교는 직영급식 전환을 미룬 채 ‘직영급식 개정안 반대 법안’의 통과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만약 3년마다 찾아오는 공포 ‘식중독 사고’가 다시 터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다시 위탁·직영을 사이에 두고 갑론을박을 계속할 것인가? 잘못은 항상 어른이 하지만 뒷감당은 늘 학생의 몫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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