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평야에 서서 생각하다 전쟁과 평화를…
철원평야에 서서 생각하다 전쟁과 평화를…
DMZ의 철새와 고라니 : 남북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철새와 철책선 사이에서 동서로만 움직일 수 있는 고라니가 함께 물을 마시고 있다. 평화전망대에서 본 DMZ 풍경이다. ⓒ이상엽 |
황순원 선생의 단편소설 『학』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이번 민통선 기행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찾아서 읽어 봤다. 새롭게 발견한 사실은 이 작품이 쓰인 것이 1953년 1월이라는 점이다. 아직 한국전쟁이 진행되던 때였다.
이 소설은 한 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한 두 친구인 성삼과 덕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삼팔선이 그어지면서 헤어진 두 친구는 국군이 삼팔선을 넘어 진격했을 때 다시 만난다. 성삼은 국군을 따라온 치안대원이고, 덕재는 농민동맹 부위원장이다. 성삼이 덕재를 호송하는 길이 소설의 줄거리를 이룬다.
소설의 시작에서 볼 수 있듯이 황순원 선생은 삼팔선에 인접한 한 마을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썼다. 이 소설을 다시 찾아본 이유는 소설 제목인 ‘학’에 있다. 민통선 기행 세 번째로 선택한 철원은 소설 속 공간과 매우 유사하다. 해방 후에는 북한에 속했지만, 한국전쟁 이후에는 적잖은 지역이 남한에 귀속됐다.
게다가 철원에는 세계적인 두루미(학) 도래지뿐만 아니라 학저수지라는 제법 유명한 저수지가 있기도 하다. 철원으로 가는 길은 동부간선도로를 택했다. 성수대교에서 길을 틀어 중랑천을 따라 나가다 수락산 아래서 아침을 먹었다. 소풍이라도 가듯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오늘 찾아가는 철원에 대한 이야기들을 꺼냈다.
본래의 철원은 비무장지대 안에 있고 신철원(갈말읍) 또는 원철원(동송읍)은 사실 철원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왔고, 한여름 한탄강 래프팅이 괜찮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의정부를 지나 3번 국도를 따라가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노동당사 앞에 도착했다. 노동당사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이곳을 서너 번 찾았다.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노동당사 건물 안에 직접 들어갈 수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밖에서 구경만 할 수 있게 했다. 건물이 낡은 만큼 보존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으리라. 노동당사는 다중적 의미를 가진 공간이다. 역사적으로 이 건물은 해방 후 북한에 의해 건축된 말 그대로 철원군 노동당 당사였다.
당시 북한 노동당은 이 건물을 거점으로 철원은 물론 김화, 평강, 그리고 포천까지 정치와 행정을 관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노동당사는 한국방송공사의 열린음악회, 서태지와 아이들의 뮤직 비디오로도 소개됐듯이 분단의 상징이자 평화에의 염원을 나타내는 공간이다.
건물의 골격만 앙상하게 남은 노동당사는 전쟁의 참혹함을 증거하고, 그것이 폐허인 만큼 그 폐허 속에서 일궈야 할 새로운 평화에의 희망을 일깨운다.
궁예의 도전과 좌절
철원의 풍경에는 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어떤 쓸쓸함, 고적함, 아쉬움, 소설 『학』의 첫 문장에서 황순원 선생이 말한 고즈넉함이 담겨 있다. 노동당사에서 시작해 월정리역에 이르는, 지금은 허허벌판이 된 구철원 지역을 지날 때 이런 느낌들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분위기 탓인지 일행 중 그 누구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으며 농산물검사소, 얼음창고, 제2금융조합 등 흔적만을 겨우 남긴 건물 풍경을 담담히 구경했다. 다소 무거운 침묵 속에 철원 평화전망대에 올랐다. 무성한 여름을 느끼게 하는 비무장지대 안 낙타고지 옆에 옛 태봉국의 도성지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철원 하면 떠오르는 후삼국 시대의 궁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궁예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문제적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역사의 기록은 언제나 승자 편이다.
따라서 역사의 패자(敗者)인 궁예에 대한 기록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 것인가는 간단치 않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신라 시대를 넘어 고려 시대로 나아가는 데 주연인 왕건에게 가려진 조연이었지만 새로운 시대의 개막에서 중대한 역할을 떠맡았다는 점이다.
그의 미륵사상을 생각해 볼 때 궁예가 민중친화적인 정치가였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렇기에 그는 호족의 영향력이 큰 송악을 떠나 여기 철원으로 천도함으로써 자신이 주도하는 정치를 더욱 왕성하게 펼쳐 나가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감이 있으며, 그 역사적 진실이 어떠했는지 모르겠으나 통합의 정치에 결국 실패했던 것으로 보인다.
철원이 갖는 역사적 의의 중 하나는 서울과 경기 지역이 우리 역사에서 새로운 중심지로 다시 부상한 것을 상징한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백제가 한성을 떠나 웅진을 거쳐 사비로 천도한 이후 이 지역은 역사의 변방을 이뤘다. 신라의 진흥왕과 백제의 성왕 시절 한강 유역을 둘러싸고 삼국이 치열하게 전쟁을 벌인 지역이긴 했지만,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는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통일신라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서울과 경기 지역은 새로운 역사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궁예가 송악을 후고구려의 도읍으로 정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변화의 한 전환점을 이뤘다. 역사란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앞물은 언제나 뒷물에 밀려나는 법이다.
도피안사와 비로자나불상
통일신라 말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었던 최치원은 왕건이 일어났을 때 ‘계림은 누런 잎이요, 곡령은 푸른 솔이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여기서 계림은 경주고, 곡령은 송악이다. 누런 잎의 계림과 푸른 솔의 곡령은 신라의 쇠망과 고려의 흥기를 예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과연 최치원이 이런 편지를 보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이 말에는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돼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한 예감이었다. 이러한 예감이 담겨 있는 유물이 도피안사의 철조비로자나불상(국보 제63호)이다. 노동당사 바로 아래에 있는 도피안사는 865년(경문왕 5년) 도선국사가 향도 1500명과 함께 창건한 사찰이다.
도선국사는 교종에 맞선 선종의 대표적인 선사였으며, 귀족보다는 일반 백성에게 가까운 지식인이었다. 도피안사 대적광전에 안좌하고 있는 철조비로자나불상은 당시 지방 호족과 백성의 불교로서 선종의 특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불상은 다른 불상과 달리 다소 마른 모습과 인자한 미소를 갖고 있다.
기존 불상이 높은 곳에 위치한 참배 대상으로서의 의미가 컸다면, 이 불상은 참선하는 스님을 대하는 듯한 편안한 느낌을 안겨준다. 통일신라의 엄격한 골품제 사회가 무너지고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감케 하는 불상이라 할 수 있다.
한 걸음 물러서 볼 때 정치가든 예술가든 시대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대에 너무 뒤떨어질 경우 그 시대로부터 낙오되며, 시대를 너무 앞서갈 경우 시대와의 불화를 겪게 된다. 궁예는 우리 역사에서 시대를 너무 앞서간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말여초(羅末麗初)라는 시대적 조건에 더 적합한 이는 왕건이었을 것이며, 결국 왕건은 궁예를 디딤돌로 해서 고려 시대를 열었다. 시대와 인간에 대한 생각이 이렇다 하더라도 궁예에 대한 기억은 그가 마지막 웅지를 펼치고자 했던 이곳 철원에 대해 어떤 비장미를 느끼게 한다.
더욱이 그가 세운 태봉국 도성지는 지금 눈앞에 볼 수 있듯이 비무장지대 안에 폐허 그대로 남아 있다. 회색빛 하늘이 손에 잡힐 듯 낮게 내려앉은 흐린 날씨는 마음을 더욱 쓸쓸하고 고적하게 했다. 언젠가 저 태봉국 도성지가 발굴되면 궁예가 펼치고자 했던 미륵 세계의 일단을 엿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평화의 시간과 전쟁의 시간
철원평야를 가로질러 제2땅굴을 찾아갔다. 제2땅굴은 1975년 3월 두 번째로 발견한 땅굴로 제1땅굴과 비교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컸다. 하필이면 정기휴일이라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밖에서 보니 높이 2m 정도의 아치형을 이루고 있었다. 지난번 제1땅굴을 볼 때 느꼈듯이 우리 사회에 흐르는 두 개의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가 평화의 시간이라면, 다른 하나는 전쟁의 시간이다. 한편에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해 한반도 평화공존을 향해 흐르는 시간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의 크고 작은 도발과 핵 실험에서 볼 수 있듯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전쟁의 위험으로 흐르는 시간이 존재한다.
새삼 앨빈 토플러의 『전쟁과 반전쟁』을 떠올리게 됐다. 제목부터 인상적인 이 책에서 토플러는 탈냉전 시대의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추적한다. 그에 따르면, 탈냉전 이후 세계사회에서는 ‘탈근대, 근대, 전근대’라는 3대 세력 간의 문명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근대 지역이 농산물과 광산자원을 공급하고 근대 지역이 값싼 노동력으로 대량생산을 담당하고 있다면, 탈근대 지역은 이 두 지역을 통괄하는 지위를 수행한다.
요컨대 현재 인류는 근대의 균일성에서 탈근대의 불균형성으로 이행하는 극도의 불안정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탈근대를 낳고 있는 정보혁명, 반도체혁명, 통신혁명의 제3의 물결은 전쟁의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어 왔다. 정보혁명은 이중적으로 이용 가능한 과학기술, 즉 전쟁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민간기술을 폭발적으로 양산했으며, 최첨단 무기의 정밀도와 스피드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게 했다.
제2땅굴 : 1975년 발견된 땅굴로 1시간에 3만 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가 통과할 수 있는 규모다. ⓒ조우혜 |
정보사회에서의 평화 모색
이에 따라 전쟁은 과거 전선에서 대치하던 전투에서 비(非)전선형 전투로 바뀌었고, 성능이 우수한 무기는 교육수준이 높은 병사를 필요로 하게 했다. 예를 들어 하이테크로 무장한 다국적군에 이라크가 패배한 걸프전은 근대 군대가 탈근대 군대에 패배한 것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이런 점에서 미래의 전쟁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전근대, 근대, 탈근대로 나뉜 신세계 질서 속에서 행해지는 국가 간 지위확보 쟁탈전이라는 게 토플러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는 평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토플러는 정보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평화를 위한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한다.
먼저 세 지역으로 분화된 세계에서는 서로 다른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따라서 그 대응책도 지역과 단계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강구돼야 한다. 현재 국민국가의 역할이 크게 약화되고 초국가적 조직 및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점차 증가하는 점을 고려해, 이러한 새로운 글로벌 체제에 적합한 초국가적 평화형태를 개발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평화의 관건이 ‘힘’에 있다고 한다면 이 힘을 전쟁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이용해야 한다. 기존의 힘을 대표하던 군사력과 경제력에 대응해 새로운 힘으로서 지식과 정보의 영향력이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때, 이 지식과 정보의 전지구적 교환은 전쟁을 축소시키는 평화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토플러의 이러한 분석은 정보사회의 도래와 진전 속에서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45년에서 1992년까지 전쟁이 없었던 때는 단지 3주일뿐이며, 이를 두고 과연 전후(postwar)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토플러의 반문은 전쟁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에 경종을 울린다.
이러한 분석과 전망은 냉전의 종식을 평화 시대의 도래로 이해하려는 ‘역사종언론’ 또는 전지구적 경제체제의 등장으로 개별국가 간 상호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전쟁 발발 위험이 감소됐다는 ‘경제안보론’과는 정반대의 현실감 있는 견해다.
더욱이 우리 사회와 연관시켜볼 때 세계 어느 지역보다 세 가지 문명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미래의 최대 분쟁 지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 또한 경청해야 할 부분이다. 이 점에서 토플러의 『전쟁과 반전쟁』은 제1물결 전쟁의 군사사상인 손자의 『손자병법』이나 제2물결 전쟁의 군사사상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필적할 만한 저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보시대 아래서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생각하는 동안 어느새 토교저수지에 도착했다. 제방을 올라 저수지를 둘러봤다. 토교저수지는 철원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규모 인공저수지다. 제방에서 바라보는 저수지 풍경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민통선 안에 있는 탓에 고적함까지 더해 주는 이 저수지는 겨울철 철새들의 잠자리가 된다고 한다.
저수지에서 한겨울 기러기 떼를 볼 수 있다면, 제방 아래서는 독수리들이 겨울을 보낸다고 한다. 이곳 철원평야가 생태의 보고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징표다. 토교저수지를 뒤에 두고 외동교로 한탄강을 건너 문혜리까지 와 한탄대교에서 바로 옆에 있는 승일교를 구경했다.
한탄강 중류 지점에 놓인 승일교는 그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다리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남북합작으로 완성된 다리라 하여 이승만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합쳤다는 주장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전쟁 당시 한탄강을 건너 북진 중 전사한 박승일 대령을 기리기 위해 명명했다는 주장이다.
강화에서 연천을 거쳐 여기 철원까지 오면서 비무장 지대 인접 지역을 다니며 느끼게 된 것 중 하나는 여전히 우리 한반도는 군사적 긴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평화공존을 위한 노력을 적잖이 기울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60년 전 굳어 버린 냉전의 빙벽은 여전히 쉽게 해빙되지 않는다.
일교에서 바라본 한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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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공존 없이는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자명한 데도 불구하고,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최근 핵실험을 포함해 북한의 강경 전략으로 인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런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전쟁의 상흔이 담긴 한탄강은 무심히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여름으로 치닫는 이 땅의 산하는 이렇게 아름다운데, 한반도의 봄은 대체 언제 올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점심을 먹은 후 철원군청에 들른 다음 우리는 김화로 향했다. 늦은 오후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성재산 관측소였다. 관측소에 서니 앞으로는 오성산이 보이고 옆으로는 군사분계선 바로 아래에 있는 통일촌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숙여 비무장지대 안을 내려다보니 거기에는 김화에서 평강으로 가는 5번 국도가 보였다. 한반도를 교차하는 국도 체계가 마련된 것은 일제시대였다. 5번 국도는 1번과 3번, 또는 7번 국도처럼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태백산맥 서쪽 사면에 놓인 5번 국도가 지나는 곳들이 주로 중소도시들이기 때문일 터다.
경상남도 마산에서 출발해 춘천과 화천을 거쳐 여기까지 온 5번 국도는 비무장지대를 관통해 북쪽으로 올라가 평안북도 자성군 중강진에 이른다고 한다. 흙길 5번 국도는 푸른 비무장지대 안에서 선명히 도드라져 보였다. 길이 저렇게 이어져 있는데 발길은 끊어졌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새삼 분단의 현실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5번 국도를 굽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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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우리의 생존이 걸린 실존적 기획이자, 우리의 미래를 좌우하는 현실적 목표다. 성재산에서 내려와 서울로 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모내기를 끝낸 지 제법 되는 논에는 푸름이 넘실거렸다. 백로인 듯한 두세 마리 새들이 눈에 들어왔다. 황순원 선생의 『학』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저만치서 성삼이가 홱 고개를 돌렸다.
‘어이, 왜 멍추같이 게 섰는 게야? 어서 학이나 몰아 오너라!’
그제서야 덕재도 무엇을 깨달은 듯 잡풀 새를 기기 시작했다. 때마침 단정학 두세 마리가 높푸른 가을하늘에 큰 날개를 펴고 유유히 날고 있었다.”소설의 마지막에서 성삼은 호송해 가던 덕재에게 학 사냥을 하자고 말한다. 황순원 선생 방식의 일종의 화해다. 이념을 넘어 동심으로 되돌아가 화해를 요청하는 마지막 대목은 더없이 순수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정작 방금 보고 온 성재산 관측소와 비무장지대의 현실이 떠나지 않았다. 관측소를 지키는 젊은 병사들의 눈빛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포천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길 내내 평화로 가는 도정은 여전히 멀고 험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됐다. 여전히 나는 이상주의자라기보다는 현실주의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 철원 취재 여행을 안내해 주신 6사단 김종열 중위, 3사단 박윤미 중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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