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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오목벌(펀치볼)’에서 평화를 보다

양구 ‘오목벌(펀치볼)’에서 평화를 보다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타고 양구로 향했다. 오늘은 웬일인지 비무장지대를 기행할 때마다 내렸던 비는 오지 않고 대신 가는 길 내내 안개가 자욱했다. 경춘고속도로의 유일한 휴게소인 가평휴게소에서 아침식사로 우거지해장국을 먹었다. 개통된 지 얼마 안 된 고속도로 휴게소지만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을지전망대 부모를 따라 전망대를 찾은 어린아이가 철책 너머 DMZ와 북한 지역을 바라보고 있다. 이 아이가 몇 살쯤 돼야 통일이 가능할까? ⓒ조우혜

가평휴게소 주차장 한가운데에는 임시건물의 상점과 트럭을 개조한 상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에서 보아왔던 익숙한 풍경이다. 임시건물의 상점에서는 각종 생활용품을 판매하고 있었고, 트럭을 개조한 상점에서는 가요를 크게 틀어놓고 음악CD를 판매하고 있었다.

휴게소에서 세금을 내고 상가를 운영하는 사람과 주차장의 임시건물에서 세금을 내지 않고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이 버젓이 공존하는 한국 경제의 한 모습이다. 아침밥을 먹고 두 시간여를 달려 양구에 있는 2사단의 포병대대를 방문했다. 부대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최근 현대아산의 금강산관광이 중단되자, 많은 관광객이 안보관광으로 이 포병부대를 방문한다고 한다.

관광코스에는 을지전망대 관람, 부대 마술병의 마술쇼, 병영생활관 체험 및 군대 식사하기 등이 포함돼 있다. 포병부대에서 보여준 K-55라는 이름의 155㎜ 자주포는 위용이 대단해 보였다. 총 중량이 25t가량인 K-55는 최대 시속 56㎞로 한 번 주유로 서울에서 대구까지 갈 수 있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M27 잠망경, M18 신관렌치, M13 장약통, 야전식량 등이 장착돼 있었다. 소음이 심하기 때문에 청력보호구를 사용하라는 경고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실제로 포를 발사할 때 나는 소음 탓에 포병훈련장 근처의 닭이 죽거나 소가 유산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포병훈련장 부근의 축사에서는 평소에 음악을 아주 크게 틀어 놓아 동물들이 소음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포병훈련장 절대 부족


1. K-55 자주포 내부 성능이 뛰어난 장비지만 훈련장 부족으로 우리 군의 포병들은 충분한 훈련을 받지 못하고 있다. ⓒ조우혜
2. 가칠봉에서 본 해안분지 : 외국 종군기자의 작명을 받아들여 흔히 펀치볼이라 부르는 곳이다. 오목한 벌판이니 오목벌로 부르는 것은 어떨까? ⓒ조우혜
포를 발사할 때의 소음도 문제지만, 포병훈련장이 부족하다는 점은 더욱 문제였다. K-55의 최대 사거리는 24㎞에 달하지만, 국내에는 이 같은 사거리를 갖춘 포병훈련장이 없다. 군에서는 한때 몽골에 포병연습장을 만들거나 아예 인공섬을 만들어 포병훈련장으로 사용하는 논의까지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향후 국토가 개발되면 될수록, 소득 수준이 높아져 국민의 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강해질수록 군대용 연습 부지를 찾는 것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데 이번 비무장지대 기행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은 북한군의 장거리포가 서울을 직접 타격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응전으로 국군은 전투기와 포를 사용해 대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군이 장거리포를 발사하려는 시도가 포착되면 즉시 우리 전투기가 먼저 출격해 북한 포대를 무력화한다는 것이다. 만약 북한군의 장거리포가 발사되면 발사지점을 컴퓨터로 추적해 위치를 파악한 후 우리 포병이 대응사격을 실시한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는 순간 우리 국민의 목숨을 지켜주는 소중한 포들이다.

그러나 평상시에 최대 사거리까지 발사해 본 경험이 별로 없는 포와 포병들이 우리의 목숨을 지켜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든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군부대 훈련장을 마련하는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사단 신병부대의 생활관은 이미 침대형으로 바뀌었지만, 우리가 방문한 포병부대의 생활관은 아직 구형 생활관이었다. 군대의 내무반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노란 장판이 어김없이 생활관 바닥에 깔려 있다.

1. 청정 양구 화천, 철원, 양구 지역은 저마다 최고의 청정지역임을 자랑한다. 각개 약진이 아니라 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가 필요해 보이는 곳들이기도 하다. ⓒ조우혜
2. 해안면 들판 고지대에 위치한 이 분지에서는 청정농산물이 생산된다. 안개 많은 고랭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들은 충분히 특산품이 될 만하다. ⓒ조우혜



양구의 절묘한 혼합과 조화

노란 장판 뒤쪽으로 병사들의 관물대가 자리 잡고 있고 각자의 군대생활 목표를 적어 놓았다. 토익 830점, 체력 키우기, 지방 0%로 전역하기, 한자급수 3급 획득 등의 목표가 적혀 있었다. 강화도의 해병대 생활관에서 보았던 목표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강화도에서 망망대해 서해를 바라보며 경계를 서는 해병대 병사나 양구에서 포병으로 근무하는 육군 병사에게나 제대 후 취업을 위한 영어점수와 자격증이 그들의 목표였다. 그러나 특이한 목표도 있었는데, 어떤 병사의 목표는 ‘키 크기’였다. 요즘 군대는 정말로 좋아져 키도 크게 해 주나 보다.

다음 방문지를 향해 이동하는 동안 양구의 모습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양구는 우리가 이제까지 보아왔던 민통선 지역의 고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민간인 마을과 군부대가 격리돼 있는 다른 고장과 달리 동네 곳곳에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일반인이 사는 주택들이 있었다.

양구 내에서 군인과 민간인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함께 혼합돼 살아가는 이웃이었다. 양구의 명물 박수근미술관의 문은 닫혀 있었다. 머릿속에 떠올린 박 화백의 투박한 화풍의 그림과 매우 현대적인 미술관의 외피는 묘한 조화를 이루는 듯했다. 양구의 혼합과 조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점심으로 먹은 비빔냉면도 맛이 특이했다. 질긴 함경도 냉면도 아니고 심심한 평양냉면도 아니다. 양쪽 지방 냉면의 맛과 멋이 있으면서, 거기에 강원도 막국수 맛이 절묘하게 가미돼 있다. 양구인의 생활모습도, 박수근미술관의 감동도, 그리고 냉면의 맛에서도 양구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어울리게 하는 묘한 마력을 지닌 마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오후에 방문한 양구군청에서는 ‘양구에 오시면 10년이 젊어집니다, 내가 살고 있는 양구로 주소지를 옮겨 옵시다’라는 현수막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양구군의 인구는 2008년 말 현재 2만1513명으로 전국 기초지자체 가운데 네 번째로 인구가 적다. 그러나 양구군에는 인구 수와 비슷하게 군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양구군은 인구 늘리기의 일환으로 부사관이나 군인 간부들이 전역 후 양구에서 거주하게 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양구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양구에서 근무하는 군인의 80%가 전역 후 양구 거주를 희망했다고 한다. 군청에서는 이러한 사실에 착안해 전역군인들에게 직업 알선, 융자금 알선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양구군은 군 전역이 군사시설보호구역이고 소양호와 파로호 일대는 상수원보호지역이다. 우리가 최근 차례로 방문한 철원, 화천, 양구는 모두 각자의 고유한 특성들이 있기도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공통점이 훨씬 더 많다. 대부분의 지역이 한국전쟁 중에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이다.

이 전투의 결과로 세 지역은 모두 한국전쟁 이후 실질적인 우리 국토로 편입됐다. 이 지역은 종전 후 60여 년간 민간인보다는 군인들이 무대의 주인공이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었고, 많은 부분이 민통선 지역으로 오랜 시간 문명과 격리돼 있었다.

일부 군대사용시설을 제외하고는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있으며, 이에 따라 세 지역이 모두 자연환경을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세 지역 모두 인구 수와 재정자립도 면에서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세 지역의 인구를 모두 합쳐도 9만 명을 조금 넘는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서울 성북구에 있는데, 성북구 인구는 47만 명을 넘는다.


가칠봉 가는 길 가칠봉OP는 동부전선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풍력발전기와 태양열발전기, 그리고 특이하게도 수영장이 있다. ⓒ조우혜

성북구의 동 중에서 삼선동, 종암동, 석관동 3개 동을 합치면 인구가 10만 명이 넘는다. 삼선동 인구는 2만7000명인데, 이는 양구군이나 화천군 전체보다 많다.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전체적인 행정구역 논의와는 별개로 요즘 지자체별 행정구역 통합논의가 많이 전개되고 있다.

경기도의 하남과 성남, 충북의 청주와 청원이 통합논의를 하고 있다. 인접도시와 통합해 덩치를 키우고 시너지효과를 내기 위함이다. 필자는 철원, 화천, 양구 3개 행정구역을 통합해 이 지역을 대한민국 최고의 생명·생태벨트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지역은 각 지자체가 주장하듯이 천혜의 생태보고이고 한국에 존재하는 어쩌면 마지막 청정지역이다.

이러한 보고를 잘 보존하고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지자체가 개별적으로 약진하는 방법으로는 모두 패자가 될 가능성만 농후해 보인다. 군청 일정을 마친 우리는 다음 장소인 가칠봉OP로 출발했다. 지프를 타고 절벽 같은 비포장도로를 한동안 달려 해발 1242m 가칠봉OP에 도착했다.

가칠봉OP는 동부전선 중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또한 북한군과 가장 근접한 거리에 위치한다. 설명 장교는 가칠봉에서 12시 방향으로 김일성고지, 1시 방향으로 모택동고지, 3시 방향으로 스탈린고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최고의 생명·생태벨트 만들면…

고지 이름들이 특이해 다시 물어보니 모두 국군이 명명한 곳이라고 한다(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와 같은 고지 이름은 가칠봉 근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방 곳곳에 있었다). 가칠봉OP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병풍처럼 늘어선 절경에 환성을 자아내게 되지만, 이내 그 환성은 비무장지대와 분단된 조국이 주는 적막감과 무거움으로 인해 탄성이 되고 만다.

가칠봉OP의 남쪽을 보면 그 유명한 펀치볼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가운데는 넓은 평야가 동그랗게 자리를 잡고, 주위에는 마치 어린 동생을 보호하는 누나들의 손길처럼 높고 큰 산들이 평야를 감싸고 있다. 해안분지인 펀치볼을 직접 보기 위해 찾아오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면 위성영상지도서비스인 구글어스에서 양구의 가칠봉 지역을 검색하면 그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사실 구글어스에서 비무장지대 지역은 군사 보완상 희미하게 나오고 있다. 그런데 펀치볼만큼은 구글어스에서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마치 하느님이 한반도를 만들고 나서 마음이 흡족해 자신이 만들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국토의 정중앙에 동그랗고 커다란 도장을 찍은 것처럼 느껴진다.

전쟁과 관련해 펀치볼이 간직한 아픈 사연은 끝이 없지만 한 외국 종군기자가 처음으로 썼다는 이 명칭을 아직도 사용하는 것에 화가 난다. 펀치볼의 원래 발음은 펀치보울이지 펀치볼이 아니다. 펀치볼이라고 하면 마치 권투선수가 연습하는 도구를 가리키는 것처럼 들린다.

펀치볼의 뜻은 미군이 사용하는 화채그릇이라는데, 미국에서 몇 년을 공부했던 나도 미군의 화채그릇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펀치볼에 우리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펀치볼은 산으로 둘러싸인 오목한 평야지대다.


가칠봉에서 태양열발전기 앞에 선 필자. 우리 군의 녹색성장에 대한 관심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조우혜



펀치볼, 우리말로 바꿔야

그렇다면 오목한 지형의 벌판이라는 의미에서 ‘오목벌’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오목벌’이 향후 펀치볼의 본명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가칠봉에는 군이 녹색성장의 상징으로 삼는 풍력발전기와 태양광집열판이 있다. 이 상징성을 반영하듯 이미 이곳은 국방부 장·차관, 참모총장, 군사령관, 군단장 등 군 관계자와 지식경제부 장관, 환경부 차관 등 정부 인사들이 다녀갔다.

사실 가칠봉 풍력발전기에서 나오는 전기량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가칠봉OP 전력사용량의 70% 정도를 생산하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가칠봉 풍력발전기가 비록 미약한 시작이더라도 군이 녹색성장에 관심을 가지는 녹색군대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보도에 의하면 육군 55사단의 한 기동중대에서는 저탄소 녹색 야전부대 운영을 위해 ‘탄소 마일리지’ 제도를 지난 7월 초부터 시범운영 중이라고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32개 실천 항목을 정해 놓고 실천 정도에 따라 점수를 받거나 감점한다.

32개 항목에는 생활관에서 외출할 때 전기기구 끄기, 쓰레기 배출량 줄이기, 매점 이용 시 장바구니 사용하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점수를 많이 받으면 노래방 이용권, 외박 등 포상을 받는다고 한다. 육군은 이와 같은 마일리지 제도를 전군에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 요즘 국방부는 홀로 자기만의 영역을 추구하던 과거의 국방부와 사뭇 다른 면들을 보이고 있다. 국방부에서는 올해 초부터 ‘경제를 살려라’를 미션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국방 관련 예산의 조기집행, 미분양아파트의 군용관사 매입 등 정책을 실시했다.

올 7월에는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에 부응해 국방 녹색성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지구온난화 방지라는 일반적인 목적 이외에도 새로운 환경 규제에서 군이 선도적인 적용 대상이라는 점, 방산 장비와 물자에 저탄소 녹색개념의 추가 가능성 등 군의 특수한 요인을 고려한 결과이기도 하다.

국방부에서는 국방 녹색성장의 3대 목표로 ‘국방 자원의 고효율화’ ‘녹색 국방기술의 성장동력화’ ‘전 장병의 녹색 시민화’를 선정했다. 또한 10대 정책과제로 저탄소 에너지 절감형 국방운영, 녹색작전·훈련체계 구축, 녹색국방기술 개발, DMZ 녹색성장 관리 등을 제시했다.

한국 경제와 한국군이 지향하는 비전으로 녹색성장과 녹색군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개념이다. 그러나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국내외 상황을 고려할 때 현재 한국사회는 녹색의 반쪽만을 보고 있는 듯하다. 에너지절약 차원에서 녹색성장을 이야기할 수 있으나, 현재 우리에게 에너지절약보다 더욱 중요한 일은 에너지자원의 안정적인 확보다.

전 세계 국가들이 모두 저탄소 사회를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국가가 더욱 주력하는 것은 에너지자원 확보 전쟁에서의 승리다. 각국이 탄소배출량을 줄이려 하고 있지만, 향후 저탄소 탄소저감기술에서 뒤처지는 국가는 제품수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수 있다.

에너지 연비가 떨어지는 자동차에 대한 선진국의 수입규제는 곧 일반화할 것이고, 머지않아 탄소배출량이 많은 비행기는 유럽 영공을 통과하지 못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녹색군대 방향 잘 찾아야

현재 한국의 탄소저감기술은 선진국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탄소저감기술에 대한 대폭적인 투자가 필요하지만 정부의 재정여력은 점차 축소되고 있고, 민간은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주저하는 형국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탄소배출량을 규제하기 시작하면 이는 제품원가의 상승요인으로 작용해 한국 상품의 국제경쟁력 약화와 연결될 것이다.

모든 경제학적 원리가 그러하듯이 녹색성장과 녹색군대는 ‘공짜 점심’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제한된 자원을 녹색에 투자할 때, 이는 다른 분야의 투자 감소를 의미한다. 또한 녹색 투자는 다른 투자에 비해 수익이 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수익에 대한 불확실성도 큰 투자다.

녹색의 반쪽은 새로운 기회지만, 다른 반쪽은 커다란 위협이다. 녹색거품이 발생하지 않도록 효율적으로 투자를 집행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녹색이란 말은 파란색과 노란색의 중간색을 의미하지만, 철에서 부식한 녹의 색깔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느 녹색으로 갈지는 우리가 하기에 달려 있다.

가칠봉OP를 내려와 제4땅굴을 방문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땅굴 중에서 가장 최근인 1990년에 발견된 땅굴이다. 제4땅굴의 내부로 들어가서 조그만 열차 모양의 객차를 타고 북쪽으로 300m 정도 올라갈 수 있었다. 객차가 들어간 곳의 지표면은 비무장지대다. 땅 위로는 갈 수 없는 지역을 땅 밑으로는 갈 수 있는 셈이다.

땅굴 내부의 벽면에서는 물방울이 쉬지 않고 떨어지고,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내부 온도는 섭씨 1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열차가 시작하는 지점에는 KT, SKT 등 이동통신사들의 중계기가 경쟁하듯이 장치되어 있었다. 열차를 타고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땅굴의 벽면에서 ‘오직 혁명을 위하여’라는 글귀를 발견할 수 있다.

제4땅굴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백두회관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에는 펀치볼, 아니 오목벌을 가로질러 을지전망대를 방문했다. 을지전망대의 설명 장교는 앳된 모습의 김 중위였다. 전방을 방문하면서 계속 느끼는 일이지만 요즘 군인들은 대부분 앳된 모습에 안경을 낀 경우가 많다.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 늠름한 군인이라기보다는 귀여운 아들처럼 느껴지는 군인이 많다. 을지전망대에서도 다른 전망대와 같이 대형 PDP TV를 이용해 전방지형과 북한군의 실상을 보여준다. 김 중위는 어젯밤 꿈에 이 대형 TV를 떨어뜨리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너무나 놀라 아침 일찍 전망대에 뛰어와 보니, TV가 무사해 안도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준다.



한쪽은 황태구이 식사, 반대편은 영농작업 중

을지전망대 부근 지역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까지의 거리가 1㎞ 정도에 불과하다. 을지전망대 자리도 과거에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GP였으나, 북한군이 철책을 남쪽으로 추진하자 우리도 북쪽으로 철책을 추진하면서 지금처럼 비무장지대가 좁아졌다.

실제로 양측의 거리가 870m에 불과한 지점도 있다. 을지전망대에서 보이는 북쪽의 한 고지에는 84m에 이르는 철탑이 서 있다. 과거에는 북으로 오라는 북한군의 선전방송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전파를 차단하는 용도로 쓰인다.

땅에서는 철책이 사람의 통행을 가로막고 있고, 하늘에서는 철탑이 전파의 통행을 가로막고 있다. 다만, 북한 여군이 가끔씩 수영을 한다는 선녀폭포에서 내려온 물은 성내천을 따라 휴전선을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었다. 오후에 방문한 인제군청에서는 평화생명동산 건립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인제군은 설악산이 있는 지역이기 때문인지 이제까지 방문했던 다른 군청에 비해 비무장지대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어 보였다. 이날 점심은 비무장지대 기행 중에서 가장 밥다운 밥을 먹었다. 송희식당의 황태정식은 황태구이와 황태국 그리고 열두 가지 산나물로 구성돼 있다.

우윳빛을 내는 황태국도 인상적이었지만 각양각색의 산나물은 모두 별미였다. 갑자기 을지전망대에서 TV로 보았던 북한군의 모습이 떠오른다. 식량난 해결을 위해 영농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불과 몇 ㎞ 떨어진 지역의 한쪽에서는 열두 가지 반찬을 곁들여 국과 황태구이를 즐기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모자라 군인들이 영농작업을 하고 있다. 2009년 여름의 양구지역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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