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공포에 가을 축제 취소 소동
신종플루 공포에 가을 축제 취소 소동
중견 트로트 가수인 현당씨는 요즘 분통이 터진다. 지역축제, 각종 행사로 수첩에 빼곡히 적혀 있던 9∼10월 스케줄이 8월 말부터 하나 둘씩 취소되더니 벌써 20개 가까이 무산됐다.
그는 “1년에 가장 바쁜 철인 9~10월이 가수들에게는 겨우내 먹고살 거리를 만드는 때인데 신종플루 때문에 겨울 나기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당씨는 “지난해 이맘때 수입에 비하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며 “정부는 왜 사람들 모이는 지하철이나 공연장은 그대로 두고 야외에서 펼쳐지는 지역축제를 취소하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나마 중견가수인 현당씨는 좀 나은 편이다. 무명의 행사 전문 가수들은 아예 노래 부를 무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겨울에 가수들 중 신용불량자가 많이 나오게 생겼다”고 한탄했다.
이처럼 지역 축제 및 행사의 취소, 연기, 축소는 가수들의 수입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수들에게 행사는 소중한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예능프로그램, 가요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보다 행사 무대에 올라 버는 수입이 더 많다.
일부 가수는 예능프로그램, 가요프로그램 출연도 행사를 위해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가수들의 이런 고충은 멕시코에서 시작된 신종플루 영향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
행사 대행사 피해 심각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9월 이후 연말까지 계획된 949개 행사 중 취소나 연기된 게 286개에 이른다. 행사를 축소한 123개까지 포함하면 43%의 행사가 신종플루의 영향을 받고 있다. 지역 축제 취소로 가수 외에도 다양한 직업이 이미 신종플루의 타격을 받고 있다. 우선 가장 밀접한 분야는 이벤트 회사와 여행사다.
이벤트 업계는 봄, 가을 중 5월과 10월이 행사가 가장 많은데 이번 신종플루로 10월 행사의 대부분이 취소되거나 취소를 고려하고 있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며 이에 따른 심각한 경영압박으로 회사 존폐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이벤트회사 대표는 “신종플루가 유행하자 행정안전부에서 지역축제를 취소하라는 공문을 내렸다가 뒤늦게 취소하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계획됐던 행사에 차질이 생겼고, 사람들도 모이지 않게 됐다”고 비판했다. 행안부는 지난 3일 신종플루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연인원 1000인 이상, 2일 이상 지역축제 및 행사’에 대해 취소하거나 연기할 것을 지시했다가 철회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축제 및 행사를 전면 취소해야 한다면 프로야구, 축구 등 모든 스포츠 행사도 최소해야 하는 거 아닌가? 행안부의 섣부른 정책시행으로 수천 명의 종사자가 피해를 떠안게 됐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신종플루로 취소 혹은 축소되는 행사 규모에 지자체, 정부 및 일반기업을 포함하면 최소 2000억원에서 4000억원이 될 듯하고, 이 산업에 관련된 종사자를 포함하면 적지 않은 피해를 예상하고 있다.
실제 신종플루로 8월부터 취소가 확정된 축제예산만 672억원이라는 한 업체의 조사결과도 있다. 이 금액은 축제 예산만 따진 것일 뿐 이에 파급되는 부대비용이나 경제적 효과는 배제한 것이다. 또 지역의 대형 축제만 집계한 결과라 실제 피해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신종플루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과 달리 해외에서는 축제나 야외 행사를 취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도 이를 두고 “관광업을 산업으로 보지 않는 시각 때문”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국관광공사 해외지사 12곳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종플루로 대규모 행사를 취소한 경우는 지난 5월 미국 LA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멕시코 전통축제 외에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을 수학여행 줄줄이 취소
하나투어는 또 해외여행 예약이 크게 줄어 태국 푸껫, 홍콩, 대만 등 대부분의 동남아 노선과 일본 일부 노선의 전세기 운항에 불참한다는 방침을 해당 항공사에 통보했다.
또 다른 대형 여행사인 모두투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예약률이 지난해에 비해 50% 선을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투어 한옥민 전무는 “예년에는 10월 여행 예약자가 하루에 1000~2000명은 들어왔는데 지금은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했다.
지난해 모두투어가 10월에 해외로 보낸 승객만 5만 명에 달했는데 올해는 2만 명이 채 안 되는 상황이다. 특히 10월 추석 해외 여행객을 염두에 두고 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했던 여행사들이 줄줄이 항공편을 취소하는 등 여행, 항공 업계는 신종플루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 여행사의 고위임원은 “지금 여행업계는 쓰나미 상황”이라며 “이대로 가다간 얼마 안 가 여행사가 줄도산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른 여행사들도 다르지 않다. 국내 여행사의 기업팀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요즘 걸려오는 문의전화의 대부분이 신종플루가 없는 지역이 어디냐는 질문”이라며 “출국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어 일반 고객은 물론 기업체 단체 연수도 대부분 보류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반적으로 지난해에 비해 예약률이 50%대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라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신종플루는 항공사에도 치명적이다. 1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일본항공(JAL)은 오는 10월 25일부터 국제선 10개 노선과 국내선 6개 노선에 대해 모두 43편의 운휴 및 감편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한·일 노선에서는 인천~나리타, 인천~오사카 노선이 각각 기존 운항 규모에서 하루 1편씩 감편됐으며 주 7회 운항하던 인천~나고야 노선은 운휴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 중국국제항공은 인천~베이징 등 주요 노선을 기존대로 유지하는 대신 부산발과 대구발 항공편을 주 7회에서 각각 주 5회와 주 3회로 감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적 항공사들 역시 신종플루 등에 따른 항공수요 감소로 감편에 나서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인천~아사히카와 노선을 오는 10월 16일부터 25일까지 일시 운항 중단하고 11월 7일부터는 무기한 운휴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지난 8월 17일부터 이뤄진 대구~상하이 노선의 운항 중단도 한동안 계속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9월부터 전통적인 비수기에 들어가는 데다 올해는 신종플루 확산 등 악재가 겹쳐 예약이 무더기로 취소되고 있다”며 “아직 동계 스케줄을 내놓지 않은 항공사들의 조정이 끝나면 감편 노선은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표적 관광지인 제주도는 신종플루로 수학여행과 기업연수 등 단체손님은 줄어들고 신혼여행이나 골프관광은 느는 등 두 가지 다른 영향을 받고 있다. 우선 가을철 학생들의 수학여행이 대거 취소되면서 항공사는 물론 지역 숙박업체와 관광버스 업체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수도권 학생들의 제주 수학여행 예약취소 건수가 300여 건을 넘어선 데다 국내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나 축제가 취소 혹은 연기되면서 단체객들이 예약을 기피하거나 무더기로 예약을 물리고 있다. 교육청과 각급 학교들은 가을학기 수학여행을 취소하고 내년 봄으로 연기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어서 올가을 수학여행 영업은 사실상 파장 분위기다.
11일 제주도관광협회에 따르면 9월 들어 9일까지 제주를 방문한 수학여행단은 8000여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만여 명)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제주도의 N리조트 관계자는 “9월에 수학여행 단체예약을 받은 15건(4000여 명) 가운데 13건(3400여 명)이 취소됐다”며 “10월 이후 예약은 문의조차 없다”고 하소연했다. 경주도 수학여행객이 예년의 20%에 머무르는 등 국내 관광지도 타격이 극심하다.
다가오는 추석 최대 고비 될 듯기업체와 공공기관들도 연수를 비롯한 단체행사를 자제하는 상황이어서 제주행 항공기 예약 취소율은 앞으로 더욱 올라갈 전망이다. 이에 따라 9∼10월 비수기 제주노선을 수학여행단과 기업체 연수 등으로 수요를 채워온 항공사들은 초비상이 걸렸다. 수학여행단을 대거 유치하는 대한항공의 자회사 진에어 등은 속수무책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 10여 건의 수학여행단 예약취소가 접수됐다는 제주항공은 수학여행단 유치는 포기하고 일반승객 유치 쪽으로 영업 방향을 돌렸다. 또 이들과 연계된 58개 업체(1600여 대)로 구성된 제주 전세버스조합에서도 한숨 소리가 들린다. 반면 신종플루의 위험성으로 해외여행을 포기한 신혼부부와 골프여행객들 덕에 주말에는 방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특히 특급호텔과 골프장은 예약이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여행업계 관계자들은 “9월 중순 이후 국내 감염자가 잇따라 사망하면서 국내 관광도 급속도로 얼어 붙고 있다”며 긴장하고 있다. 놀이공원도 울상을 짓긴 마찬가지다. 9~10월은 비수기이기는 하지만 학생단체가 많은 시기다.
월~금요일은 주로 단체 탐방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서 수학여행과 소풍, 야외학습 등 단체 행사를 취소하고 있다. 롯데월드의 경우 지난해 9월 단체예약은 4500명이었는데 지금은 2000명 수준으로 줄었다. 서울랜드도 마찬가지다. 서울랜드 관계자는 “9~10월 학생단체가 입장객의 50% 이상을 차지하는데 신종플루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며 “방법이 없다”고 했다.
만약 중간고사가 끝나는 10월 중순에도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될 경우 큰 타격을 입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에버랜드도 “안전대책은 갖췄느냐는 등의 문의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아직 피해상황이 본격화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설인 극장, 쇼핑센터, 백화점 등도 신종플루의 영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아직 신종플루 때문에 고객이 줄어드는 기미는 없지만 추석 대목을 앞두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산후조리원, 보육원 등 여러 사람이 모이는 시설 대신 산후 도우미나 육아 도우미 등 가정에 와서 개인적으로 도와주는 쪽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
이미 전국의 많은 유치원과 초·중·고가 신종플루로 휴교한 상황에서 맞벌이 부부들은 자녀를 맡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종플루가 위세를 떨치면서 일부 산업은 이미 큰 피해를 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의 대이동이 시작되는 추석이 남아 있고,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시작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신종플루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으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신종플루는 사람에게도 위협적이지만 경제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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