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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법으로 글로벌 브랜드 틈바구니 ‘뚫다’

정공법으로 글로벌 브랜드 틈바구니 ‘뚫다’

글로벌 브랜드와 일합을 겨룬 지 어느덧 11년. ‘토종’ 할리스커피가 만 10세가 됐다. 강산이 변한 만큼 할리스커피도 눈부시게 성장했다. 골리앗에게 맞선 다윗은 그야말로 일취월장이다. 할리스커피의 숨은 성공비결은 뭘까? 답은 간단하다. 토종 브랜드에 기대기보다는 맛과 서비스로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편법보단 정공법을 쓴 게 주효했다는 얘기다. 할리스에프앤비 정수연(50) 대표를 만나 10년의 우여곡절을 들어봤다.
▎할리스커피 10년史

▎할리스커피 10년史

외환위기가 한국경제를 휘감은 1998년 6월. 테이크아웃 커피시장에 토종 브랜드가 떴다. 이름 하여 할리스커피. 세계적 커피브랜드 스타벅스보다 1년여 빠른 국내 론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화려한 조명은 금세 꺼졌고, 침체의 늪은 갈수록 깊어졌다.

그럴 만도 했다. 브랜드 파워가 쉽게 생길 리 만무했다. 할리스커피의 론칭 이후 닻을 올린 글로벌 브랜드 스타벅스·커피빈의 아성은 생각보다 빠르게 구축됐다. 게다가 변변치 않은 자금력은 이들의 성장의지를 번번이 꺾었다.



“조명은 짧고, 침체는 깊었다”론칭일로부터 5년 후인 2003년, 멀티플렉스 업체 프리머스시네마가 26억원을 들여 할리스커피를 인수했지만 승자를 위한 축제는 열리지 않았다. 글로벌 브랜드가 장악한 테이크아웃 커피시장에서 힘을 쓰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오히려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가맹점 중 70%가량이 호흡기를 달아야 생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위기의 순간. 식음료 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정수연 대표가 전격 영입됐다. 2004년의 일이다. 정 대표는 두산 KFC의 최고 히트상품 중 하나인 트위스터를 론칭한 주인공. 식음료 업계 최초로 마일리지제도·온라인시스템을 도입한 이도 그다.

업계에서도, 두산그룹에서도 ‘잘나가던’ 정 대표가 할리스커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팀장 시절부터 두산그룹 계열사를 옮겨 다녔어요. 닭 장사(KFC 마케팅 팀장)도 해봤고, 술(OB맥주 마케팅 팀장)도 팔았죠. ㈜두산에선 전략기획업무까지 담당했습니다. 자리를 덥힐 틈도 없이 돌아다니는 신세였죠. 하지만 이런 경험 덕분에 새로운 목표를 위해 뛰는 게 익숙했어요. 할리스커피가 토종 브랜드라는 점도 매력적이었죠.”

미다스의 손이 언제나 대박을 거머쥐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쪽박을 찰 수도 있다. 정수연 대표도 예외일 순 없었다. 무엇보다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기회다 싶으면’ 실탄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대기업이 아니라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은 중소기업을 이끌어야 했다. 싸움을 벌여야 하는 대상도 한 수 아래가 아닌 글로벌 기업이었다. 얇은 막대기로 열 자의 창검과 겨뤄야 할 판이었던 셈이다.



“인터넷에서 해답을 찾다”정 대표로선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대표 취임 직후 대주주(에핑헴튼앤컴퍼니·창투사)를 찾아간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시간을 벌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1년만 시간을 달라. 실적개선이 더뎌도 참고 기다려 달라.” 대주주의 허락으로 ‘1년 시한’을 약속 받았지만 뾰족한 방도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2005년 봄. 그날도 정수연 대표는 밤을 꼬박 새웠다. 똘똘한 직원 2명과 아이디어 회의를 날이 새도록 했지만 별 소득이 없던 차에 무심코 보던 인터넷에서 해답을 찾았다. “인터넷 게시판에 흥미로운 글이 올라와 있었어요. ‘스타벅스 커피는 미국에서 로스팅(원두를 볶는 과정)해서 들어온다는데, 신선함에는 문제가 없습니까’라는 질문이었죠.

그런데 이런 답변이 달려 있더라고요. ‘진공포장을 하기 때문에 6개월까진 신선함이 떨어지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누리꾼의 반응이었습니다. 열에 아홉은 ‘커피에 ㅋ자도 모르는 사람의 답변’ ‘반 년 된 커피가 어떻게 신선한가’라고 지적했죠.”

정 대표는 무릎을 쳤다.

경쟁자의 약점인 ‘신선도 논쟁’을 파고들면 승산이 있다고 직감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온 컨셉트가 ‘프레쉬(Fresh)’다. 로스팅한 커피를 빨리 팔자는 취지였다. 정 대표는 곧바로 커피 산지에서 원두를 직접 공급받을 수 있는 유통망을 열었다. 매장에선 1개월 내 볶은 원두커피만 사용토록 했다.

▎할리스커피의 꺾이지 않는 성장세

▎할리스커피의 꺾이지 않는 성장세

“2005년 프레쉬 컨셉트를 만든 후 ‘할리스커피가 맛있다’는 반응이 많아졌습니다. 컨셉트를 잘 정립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렇다고 정수연 대표의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엔 ‘어떻게 알릴지’가 문제였다. 한편에선 토종 브랜드라는 점을 십분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애국심에 호소하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쉬운 길을 왜 포기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는 단호했다.

“커피는 서구문화의 일부입니다. 소비자에게 토종 커피냐 아니냐는 중요한 선택기준이 될 수 없는 이유죠. 토종 브랜드에 기대는 것보다 토종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시키는 게 상책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옳은 지적이다. 식음료 업계에서 토종 브랜드에 무심코 기댔다간 오히려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애국심을 마케팅에 활용했다가 속절없이 몰락한 815콜라의 사례는 대표적이다. 정 대표는 “토종 브랜드의 장점은 애국심을 끌어내는 게 아니라 국내 소비자의 니즈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국내 시장에 웰빙 바람이 불면 누구보다 빠르게 웰빙제품을 론칭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할리스커피는 실제로 고구마라떼·고구마마끼야또(2005년), 이요떼 리뉴얼(2006년), 밤을 이용한 커피음료 마론 카페라떼·마론 카페모카(2006년) 등 트렌드 제품을 경쟁사보다 빨리 출시해 재미를 톡톡히 봤다.

“당시 직원을 거리로 내몰았습니다. 책상머리에 앉아 고민하지 말고, 현장에 나가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라고 했죠.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현장에선 늘 소비자의 니즈가 꿈틀대기 때문이죠.” 현장에서 토종 소비자의 기호를 꿰뚫었던 게 인기몰이의 원동력이 된 셈이다. 발품의 위력이다.

정 대표와 할리스커피가 넘어야 할 산은 또 있었다. 글로벌 브랜드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선 ‘가맹점’ 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했다. 곳간 사정이 넉넉지 않은 중소기업 할리스커피로선 절실한 문제였다. 본사가 100% 투자해야 하는 직영점보단 가맹점으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맹점이 활기를 띠어야 본사가 덩달아 춤을 추는 게 할리스커피의 구조이자 그들의 애환이다. 이 회사의 직영·가맹점 비율은 대략 1:9 수준이다. 정 대표로선 가맹점의 실적을 올릴 수 있는 특단의 묘수를 찾아야 했다. 그때 도입했던 제도가 가맹점 공개경쟁입찰이다.

“할리스커피 매장을 운영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겐 도면만 보여줬어요.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인테리어를 할지 구상하라고 했죠. 이런 방식으로 실속 있는 투자를 유인했습니다. 인테리어에 공연히 많은 비용을 투자해 수익구조가 악화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취지였죠. 그랬더니 가맹점의 수익률이 평균 30%가량 개선됐고, 할리스커피의 전체 매출도 증가하기 시작했죠.”

할리스커피의 이런 뼈를 깎는 노력은 알찬 열매를 맺고 있다. 2004년 39곳에 불과했던 매장은 200곳을 훌쩍 넘었다. 매장 수로는 스타벅스(올 9월 현재 301곳)에 이어 2위다.

매출도 매년 상승곡선을 그린다. 올 매출(공시 기준)은 2004년 38억원에서 690% 늘어난 3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가맹점까지 포함한 소비자 매출은 2004년 대비 10배 가량 증가한 871억원에 이를 것으로 잠정 집계된다.



사업다각화로 종합식음료 기업 꿈꿔

주목되는 것은 2008년 성적표(공시 기준)다.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서도 할리스커피의 각종 실적은 크게 개선됐다. 지난해 매출은 2007년 대비 46% 성장한 225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10억원에서 21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커피 원료 값 급등 탓에 매출원가가 113억원에서 156억원으로 크게 뛰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무랄 데 없는 성적표다. 정수연 대표는 “스타벅스를 위시한 글로벌 브랜드의 아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넘지 못할 산도 아니다”며 “매장 200곳을 돌파함으로써 이제 진검승부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아직 배고픈 모양이다. 지금이야말로 제2의 성장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전례 없는 불황도 그의 욕심 앞에선 한풀 꺾인다. 성장이 확실할 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지난해 3억원을 투자해 커피 로스팅 공장을 설립한 것이 단적인 예다.

올 초 완공된 187㎡ 규모의 이 공장에선 연 250t의 원두를 볶을 예정이다. 이를 통해 자체 레스피(원료 조합비율)를 확보한 것도 소득이다. 이젠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그것도 사시사철 똑같은 할리스만의 커피 맛을 구현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퉁짜’(쇠)가 아닌 ‘방짜’(질 좋은 합금) 생산이 가능한 셈이다.

할리스커피의 야심작 해외진출 계획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2007년엔 말레이시아에 진출했고, 지난해엔 미국 LA 매장을 개점했다. 중국·베트남에도 올 하반기 매장을 연다. 한 발 더 나아가 커피 원두의 본고장 페루에 진출한다. ‘커피 종주국을 공략하겠다’는 정 대표의 야심만만한 포부가 읽힌다.

더불어 사업다각화도 꾀하고 있다. 올 9월 고급 수제 버거 시장에 전격 진출한 것이다. 커피와 수제 버거를 묶어 팔겠다는 계산이다. 할리스커피가 이 버거의 컨셉트를 ‘프레쉬’로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 대표는 “할리스커피의 프랜차이즈 운영 노하우를 십분 활용하면 수제 버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우물 파는 게 좋을 텐데’라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도 그는 자신만만하다. “할리스커피는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다고 안주하면 안 됩니다. 성장할 수 있을 때 도전해야 합니다. 더욱이 할리스커피와 수제 버거의 컨셉트가 일치하고, 유통망도 함께 쓸 수 있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현재 13곳인 수제 버거 매장을 올해 안에 20여 개로 늘릴 방침입니다.”

할리스커피는 이처럼 눈부신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토종 브랜드에 기대기보단 실력으로 승부를 건 덕분이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편법을 피하고, 정공법을 택한 결과다.

할리스의 어원은 할리(Holly)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쓰이는 서양호랑가시나무를 뜻한다. 이 나무는 봄엔 꽃을, 겨울엔 빨간색 열매를 맺는다. 하얀색 향연이 펼쳐지는 ‘설원’에서 할리가 유독 돋보이는 까닭이다. 글로벌 브랜드와 냉혹한 경쟁을 펼치면서 성공적 진화를 거듭하는 할리스커피의 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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