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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발전회사의 모델기업 만들겠다”

“세계 발전회사의 모델기업 만들겠다”

공기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양면적이다. 철밥통에 방만한 경영을 한다고 비난하고, 간혹(혹은 종종) 부패·비리 사건이 터지면 “당장 민영화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다.

민간기업은 빠르고 공기업은 느리다는 검증되지 않은 선입견도 만연한다. 반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은 공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밤 새워 공부한다.

남호기 한국남부발전 사장은 이 점을 답답해 하는 듯 보였다. 그는 “공기업을 두고 철밥통이라고 하는데 따져 보자”고 했다.

“한국남부발전을 예로 듭시다. 우리는 기술회사입니다. 축적된 기술이 노하우가 돼서 발전하는 회사죠. 그러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력이 오래 다녀야 합니다. 그런데 철밥통이라고 비난하면….”



취임 일성 “이제 다 바꾸자”남 사장은 “공기업이 느리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말했다. 그는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는 공기업이 오히려 민간보다 빠르다”며 “여러 민간기업과 일하면서 답답한 적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까지 했다. 남 사장은 “한두 가지 단점을 침소봉대하며 공기업의 많은 장점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남 사장의 이런 변론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청년들이 공기업을 원하는 것은 월급을 많이 주고 안정적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결국 공기업이 스스로 변화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편견의 벽’을 허무는 가장 빠른 길일지 모른다.

지난 10월 28일 취임 1주년을 맞은 남호기 사장의 선택은 바로 ‘가장 빠른 길’이었다. 그의 취임 일성은 “변화하자”였다. 생각을 바꾸고, 회사의 성장엔진을 바꾸고, 조직문화를 바꿔 가자는 것이다. 남 사장은 40년 한전맨이다. 누구보다 전력산업을 잘 이해하고 실전경험이 풍부하다.

그런 그가 세운 목표는 “세계 발전회사의 모델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정치인이건 경영자건 평가할 때는 무슨 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일을 했느냐에 주목해야 한다. 남 사장은 지난 1년 동안 파격적인 결정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3월 그런 일이 있었다. 당시 한국남부발전은 현대중공업, 효성과 풍력발전기 100기를 국산화하는 공동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외국기술에 의존하던 국내 풍력발전사업의 국산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였다. 쉽게 말하면 남부발전이 두 회사의 풍력발전기를 사주겠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남호기 사장이 주도했다.



>> 왜 그런 생각을 했습니까?“국내에 설치된 풍력발전기 200기 중 단 4대만 국산입니다. 풍력터빈의 경우 기술장벽이 높은데 우리 기업들이 이미 개발을 완료했습니다. 그런데 인증을 받지 못해 수출을 못하고 있었어요. 한마디로 돌려보니 제품에 하자가 없다는 평가가 필요했는데 그 역할을 남부발전이 하겠다는 겁니다.”



>> 역할 분담은 어떻게 됩니까?“3사가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우리도 지분 참여를 했습니다. 현대중공업과 효성이 발전기를 생산하고, 남부발전은 사업개발과 운용을 맡습니다. 곧 태백에서 착공에 들어갑니다.”



>> 취지는 좋습니다만, 기업 입장에서 대차대조표는 계산해 보셨는지요. “물론입니다. 풍력발전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한 시장입니다. 우리 기술을 확보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현재 칠레와 키르기스스탄에 풍력발전단지를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성사되면 우리 기술로 만든 풍력발전기가 해외로 나가는 겁니다.”

현재 남부발전은 제주도에 한경풍력, 성산풍력 등 총 33MW 규모 풍력단지를 운영하고 있고 2곳을 더 건설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현대시멘트의 단양 석회석 폐광산을 풍력발전단지로 건설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석탄이나 LNG로 전력을 만들고 한전에 공급하는 것이 기존 사업모델이었다면 풍력발전은 남부발전의 신성장 엔진인 셈이다.

이 회사는 새로운 성장모델을 찾아나가면서 기존 사업은 더욱 내실화하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시도하는 ‘저열량탄 발전단지 조성’이 좋은 예다.



>> 저열량탄에 주목한 이유가 있습니까?“삼척발전단지의 경우 국내 최초로 연료의 100%를 저열량탄을 쓰는 발전단지입니다. 규모로는 세계 최대죠. 고열량탄 사용과 비교하면 연간 약 1200억원의 연료 구매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보입니다.”



>>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국내에서는 왜 그동안 고열량탄만 썼나요?“국내에 36개 화력발전소가 있는데, 모두 고열량탄을 씁니다. 고열량탄 연소를 기준으로 설계됐기 때문에 저열량탄을 쓸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고열량탄 수급 여건이 악화되면 고가에 연료를 조달해야 하는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더욱이 향후 20년 이내에 고열량탄은 고갈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첨단 삼척발전단지 2015년 준공



>> 저열량탄 수급에는 어려움이 없습니까?
“저열량탄 기술 개발은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중국, 인도 등에서 이미 저열량탄을 쓰고 있어요. 우리 회사는 저열량탄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지난 6월 인도네시아, 8월에는 러시아 쪽과 삼척발전단지용 저열량탄을 공급받고 공동자원개발에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남호기 사장은 삼척발전단지 조성 계획을 노트북으로 보여주면 연방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신개념 발전단지를 만든다는 설렘이 읽혔다. 그는 “삼척시민의 99.7%가 건립에 찬성했다”고 자랑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삼척발전단지는 최첨단 설계공법을 총동원해 4000억원의 공사비를 절감하고, 연간 1700억원 정도 운영비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친환경에도 신경을 써 세계 최초로 상용급 건식 CCS(Carbon Capture & Storage) 설비를 설치한다. CCS란 석탄을 연소시킬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건식 흡수제로 회수해 저장하는 기술이다. 발전단지 조성에 찬성한 지역주민을 위한 배려도 발전소 설계에 녹여 넣었다.

발전소에 전망대를 설치해 관광객을 모으고, 지역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또 있다. 남 사장은 “발전단지의 굴뚝이 그날그날 날씨를 알려주는 등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맑은 날엔 파란색, 풍랑이 치면 붉은색 식으로 날씨에 따라 굴뚝 색깔을 바꿔 지역주민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안은 회사 직원이 낸 아이디어가 채택된 것이다. 남 사장은 “평소 임직원에게 아이디어를 많이 내라고 독려한다”고 했다. 그런 아이디어 중 하나가 지난 6월 해운업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남부발전과 SK해운의 파격적인 계약이었다.



“성장의 기초를 닦아놓겠다”



>> 15년간 장기 운송계약을 맺고 운임을 선지급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전례가 있던 계약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처음 한 것이죠. 인도네시아나 중국 등에서 도입하는 유연탄 1500만t을 15년 동안 SK해운이 수송하는 계약을 맺고 전체 운임(1억 달러)의 20%를 선박 구입대금으로 선지급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경우 해운사는 금융차입 없이 선박을 구매할 수 있어 수송원가를 줄이고, 결국 남부발전의 발전원가 절감으로 이어집니다. 윈윈이죠.”

남 사장은 “우리 임원이 제안한 아이디어였는데, 해운업계에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느냐며 대단히 고마워하더라”고 말했다. 직후 김쌍수 한국전력 사장은 한국남부발전의 상생 모델을 확산하는 데 동참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라는 공문을 다른 발전 자회사에 보냈다고 한다.

정체된, 그리고 앞으로 더욱 지체될 화력발전산업 성장을 감안할 때 남호기 사장의 행보는 주목 받기에 충분하다. 그는 “변화할 시기가 왔다”며 “에너지 위기라지만 변화할 수 있는 여건은 좋다”고 말했다. 앞서 밝혔지만 남호기 사장은 “세계 발전회사의 모델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30개 전략과제를 통해 생산성을 30% 올린다는 ‘선진화 3030 전략’이나 2020년까지 녹색성장 등 5대 분야에 1조4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계획은 이런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발걸음 중 하나다. 물론 3년 임기의 그가 모든 것을 이뤄낼 수는 없다. 다만, 남 사장은 한 가지 약속을 남겼다.

“취임할 때 변화하자고 외치면서 나를 감시하라, 솔선수범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한 가지 약속하죠. 한국남부발전이 세계 발전회사들이 모범으로 삼는 회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초를 확실히 닦아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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