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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무리한 M&A가 부메랑으로

대우건설 무리한 M&A가 부메랑으로

▎2009년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열린 금호아시아나 그룹 경영정상화 관련 기자회견에서 김영기 산업은행 수석부행장과 오남수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전략본부 사장, 채권단 관계자들이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09년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열린 금호아시아나 그룹 경영정상화 관련 기자회견에서 김영기 산업은행 수석부행장과 오남수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전략본부 사장, 채권단 관계자들이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06년 6월 9일 오전 8시. 서울 신문로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 18층의 박삼구 당시 회장 집무실에 오남수 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 등 그룹 수뇌부가 모였다. 대우건설 입찰마감을 앞두고 최종 인수가격을 결정하는 마지막 회의였다. 박 회장이 직접 쓴 가격은 1주당 2만7270원.

당시 대우건설 주가가 1만4000원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2배 가까운 가격이다. 게다가 자산관리공사가 보유한 대우건설 지분 72.1%를 모두 인수하겠다고 제안해 총 인수대금은 6조6700억원에 달했다.

이 중 3조5000억원은 재무적 투자자(FI)를 끌어들여 해결했다. 3년 후 대우건설 주가가 3만1500원을 넘지 못할 경우 FI가 보유한 대우건설 지분 39.6%를 이 가격에 되사주겠다는 풋백옵션을 내건 것이다.

이렇게 대우건설을 품게 된 금호는 재계서열 11위에서 8위로 뛰어올랐고 이듬해 대우건설을 앞세워 대한통운마저 인수하면서 박 회장은 M&A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금호가 두 회사를 너무 비싸게 샀다”며 “언젠가 금호에 부메랑으로 날아올 수 있다”고 우려했고, 3년 뒤 이는 결국 현실로 나타났다.



1. 그룹 축소 불가피


-대우건설·금호생명 産銀에, 금호산업·타이어도 대주주 변경대우건설을 인수한 지 3년6개월 뒤인 2009년 12월 30일. 4조원에 달하는 대우건설 풋백옵션 부담을 해결하지 못한 금호는 채권단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금호는 주력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해 워크아웃(기업구조 개선작업)을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두 회사에 대해서는 채무재조정과 함께 출자전환이 이뤄지면서 대주주가 채권단으로 바뀔 전망이다.

금호의 금융권 부채는 약 16조원으로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등에 대해 출자전환을 진행할 경우 그 규모는 2조~3조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우건설과 금호생명도 산업은행에 되팔기로 결정하면서 그룹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대우건설은 산업은행 사모펀드(PEF)가 50%+ 1주를, 금호생명은 산업은행과 칸서스자산운용이 경영권을 공동으로 인수하기로 했다. 산은은 대우건설을 주당 1만8000원에 매입키로 하고 금호와 내년 1월 중 본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박삼구 명예회장을 비롯한 대주주 보유 주식과 자산 등 약 3000억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 경영부실에 따른 책임을 지기로 했다. 다만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은 자구노력을 전제로 채권단 협의를 통해 자율협약을 추진키로 했다. 최장 5년간 채무상환을 유예 받고 자체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정상화를 추진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2. 화학·항공 체제로 외형 유지

-향후 5년 내에 경영 정상화 숙제
금호는 채권단과의 극적 합의를 통해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지만 앞날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일단 유동성 위기란 급한 불은 껐지만 그룹 외형의 축소는 불가피하다.

우선 금호산업과 타이어에 대한 출자전환으로 소유권은 채권단 손에 넘어가고 채권단이 파견하는 자금관리인의 통제를 받는다. 다만 채권단은 이 두 회사에 대한 지배구조가 바뀌지만 실제 경영은 향후 3년간 금호에 위임할 것이라고 밝혀 경영시스템에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대우건설과 금호생명도 산은이 인수하면서 그룹에서 완전히 분리된다. 금호렌터카도 KT-MBK파트너스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자체 정상화를 추진키로 한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도 일단 3년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됐고, 추가로 2년간의 말미를 얻었지만 이 기간에 정상화에 실패하면 경영권을 내놔야 한다.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을 내놓는 것은 총수 일가가 경영권을 모두 잃게 된다는 의미다.
▎2009년 7월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이 그룹 본사에서 경영 퇴진을 밝히는 긴급기자회견을 마친 후 나오는 모습.

▎2009년 7월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이 그룹 본사에서 경영 퇴진을 밝히는 긴급기자회견을 마친 후 나오는 모습.


3. 주력계열사 수익창출 능력 건재

-재기 가능성 여전, 문제는 전략적 선택
다행스러운 점은 금호의 주력 계열사들이 대우건설 인수로 인한 과다 부채로 일시적 위기에 빠졌을 뿐 기본적인 수익창출 능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해당 업종에서 국내 1, 2위를 차지하는 기업이 많고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해 자구노력 정도에 따라 조기 정상화도 가능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지난해 시공능력 13위였던 금호산업은 건설·고속부문에서 양호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호타이어도 해외법인의 정상화와 함께 수익 창출력이 회복되고 있다. 최근 미국계의 한 사모펀드(PEF)는 금호타이어에 대한 지분 투자도 검토했을 정도다. 다만 노사안정이 변수로 남아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2008년 4분기부터 1년간 적자를 냈지만 2009년 4분기엔 150억원 이상의 흑자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산업, 금호타이어에 대한 지분법 평가손실이 짐으로 남지만 금호폴리켐, 금호P&B 등 자회사들의 수익성이 높아 실적 개선의 여지가 충분한 상태다.

대한통운도 국내 물류업계 1위 업체로서의 경쟁력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금호 관계자는 “워크아웃 신청에도 불구하고 회사 가치와 경영시스템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협약 체결로 한숨을 돌린 금호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금호석유화학 5750억원, 아시아나항공 5850억원, 대한통운 2080억원 등 올해 1분기 상환이 돌아오는 단기차입금부터 해결해야 한다. 석유화학은 자회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자본잠식에 따른 지분법 평가손실이 예상돼 재무구조가 극도로 악화될 수 있다.

최근 주요 계열사의 장·단기 신용등급이 하락한 상태에서 보유자산의 매각과 인력감축은 물론 추가적인 계열사 매각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비록 채무상환을 유예 받더라도 자력으로 수익을 창출해 생존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4. 강도 높은 구조조정 예고

-박 회장 “겸허한 자세로 위기 극복”
금호가 성공적인 자구계획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금호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 박 회장은 워크아웃 신청 후 임원회의에서 “겸허한 자세로 위기를 극복하자”고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그는 “내부적으로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외부적으로는 획기적인 수익을 창출해 그룹의 경영 정상화를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금호 고위 관계자도 “그룹이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금호 안팎에서는 올해 조직의 대대적인 축소와 비용 절감, 업무 프로세스 개선 등을 통한 생산성 향상 등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에서는 1970년대 오일쇼크와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했던 금호가 이번 벼랑 끝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 다시 한번 회생 신화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채권단도 회사 경영이 정상화될 경우 박 회장 등 오너 일가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이나 바이백(buy-back) 옵션 등을 통해 경영권을 되돌려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금호가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는 마지막으로 주어진 이번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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