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마음 사로잡으며 날개 달았다
주부 마음 사로잡으며 날개 달았다
올 초 증권가에서는 밀폐용기 전문업체인 락앤락의 상장이 화제였다. 최근 상장으로 지분 54.53%(2726만 주)를 보유한 김준일(58) 회장이 7000억원에 달하는 주식 자산을 확보해 국내 20대 주식 부호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시가총액 1조원이 넘는 락앤락도 한때는 바가지와 같은 플라스틱 용기 등을 제조해 팔던 이름없는 중소기업이었다.
변신의 일등공신은 밀폐용기다. 1998년 락앤락은 사면결착형 밀폐용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뚜껑에 날개를 달아 김치 국물 한 방울 샐 틈 없이 만든 것이다.
그러나 락앤락의 전신인 하나코비는 브랜드도 없고 주력 상품도 없었다. 당시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 등에 계속 밀리던 상황에서 김 회장은 밀폐용기에서 신성장동력을 발견했다.
락앤락, 중국인의 러브마크가 되다“처음부터 국내 시장이 아닌 세계에서 통할 제품을 찾던 중 밀폐용기가 세계 어느 나라 주방에서도 필요한 제품이란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물론 이미 타파웨어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물이 많은 우리 음식을 담으면 언제나 줄줄 새는 등 문제점이 있었죠. 김치 국물 한 방울도 새지 않도록 뚜껑에 날개를 달아 밀폐성을 높였습니다.”
밀폐용기의 가능성에 대한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밀폐용기 시장은 4조원대에 이르고 있다. 현대인에게 밀폐용기는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냉장고에 다양한 식품을 오랫동안 저장해 놓고 먹는 습관 때문에 신선함과 맛을 유지해줄 수 있는 밀폐용기가 사랑받게 된 것이다.
밀폐용기는 대형 마트에서 한꺼번에 구매하는 습관이 있는 선진국에서 먼저 발달했다. 한 조사에서는 중진국 수준 이상의 일반 가정에서는 평균 30개의 밀폐용기를 쓴다고 한다. 경기 상황에 따라서도 밀폐용기의 판매량이 좌우되는데 미국에서는 경기침체 이후 외식 대신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밀폐용기가 더욱 인기를 끌었다.
향후에도 밀폐용기 시장은 안정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한 신흥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이며 주기적으로 교체수요가 발생하는데, 80%에 가까운 높은 재구매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락앤락의 날개 달린 밀폐용기는 먼저 까다로운 국내 소비자를 잡으며 국내 시장에서 단숨에 시장점유율 60%의 1등 상품이 됐다.
또 특허비용만 3억원을 들이고 출시도 늦춰가며 해외 시장에 공들인 결과 전 세계적으로는 현재 약 1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락앤락은 특히 중국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2004년 상하이에 법인을 설립한 이후 중국에만 50개의 직영점을 갖추고 1000억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다.
“밀폐용기는 보통 선진국에서 수요가 많지만 중국 시장에 먼저 뛰어든 것은 중국의 상류층을 겨냥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상류층만 해도 1000만 명입니다. 최고급 브랜드란 인지도를 구축해 놓으면 이제 중국 중산층에서도 우리 브랜드가 널리 사랑받게 될 것입니다.”
락앤락은 올해 중국 내 11개 지사를 17개로 늘리고 동남아시아와 인도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2013년까지 세계시장에서 17% 이상의 점유율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김 회장은 밀폐용기 시장에서의 성공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주방용품 전문업체로 나선다는 꿈을 갖고 있다.
밀폐용기를 잘 만들어 성공한 업체가 영역을 넓히는 것에 대한 우려의 눈길도 있지만 김 회장은 준비만 철저히 한다면 걱정 없다는 입장이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제품은 만들지 않는다는 생각을 넓혀 또 다른 히트 상품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앞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특별한 제품을 만듦으로써 전 세계에 지사를 둔 P&G와 같은 회사를 일구고 싶습니다.”
밀폐용기에서 신성장동력을 찾은 기업은 락앤락뿐이 아니다. 최근 미국, 유럽 등 세계시장을 무대로 판매를 늘려 가고 있는 삼광유리도 유리 밀폐용기 ‘글라스락’이라는 효자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4조원 밀폐용기 시장을 잡아라
캔 제조 분야에서도 시장점유율 18%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B2B시장은 유리병에 대한 수요가 줄자 점차 성장성이 둔화돼 갔다. 황도환(60) 삼광유리 사장은 “고객이 업체를 바꿔버리면 시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항상 존재했다”며 “그러나 이제 글라스락을 통해 국내 소비자는 물론 해외 소비자에게도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기업 소비자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 대상의 유리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밀폐용기에 주목했습니다. 그간 유리가 무겁고 깨지기 쉽다는 인식이 강해 식기로 잘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유리는 친환경적이며 잘 씻기고 김치 국물도 물들지 않습니다. 또 삼광유리처럼 대형 용해로를 갖춘 업체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경쟁력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결국 2004년부터 3년간의 연구 끝에 유리 밀폐용기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황 사장의 말처럼 최근 밀폐용기 시장은 친환경적인 유리용기가 뜨고 있다. CJ오쇼핑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엔 친환경 트렌드가 대세며 냉장·냉동 전용, 혹은 겸용 등으로 세분화해 판매할 정도로 소비자의 니즈가 까다로워졌다”고 말했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바로 글라스락이다. 유리가 가진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강조해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시장을 파고들었다.
2007년 480억원, 2008년 580억원이던 글라스락 매출은 지난해 850억원이 됐다. 2006년 용기사업 84%, 생활용품 16%였던 사업구조는 용기 64%, 생활용품 36%로 변했다. 밀폐용기의 성공이 사업 구조에도 큰 변화를 가지고 온 것이다. 영업이익률의 경우 2005년 4.2%에서 2009년 10% 이상으로 높아졌다.
해외에서의 반응도 뜨겁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중동,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60개국에서 지금까지 1억 개 이상 판매된 글라스락이 가장 사랑받고 있는 곳은 미국이다. 2008년 북미 시장에 진출했다. 지난해 글라스락은 미주 지역에서만 1650만 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선진국에서 불고 있는 친환경 웰빙 트렌드를 잘 잡았다는 평가다.
브랜드 파워로 시장을 지켜라황 사장은 “보통 해외 대형 유통업체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수년이 걸리는데, 우리는 비교적 빨리 적극적인 호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미국 ‘마샤 스튜어트’로부터 마샤 스튜어트 컬렉션에 선정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마샤 스튜어트 컬렉션은 ‘살림의 여왕’이라는 별칭으로 미국 주부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마샤 스튜어트가 만든 주방용품 및 가구 전문 브랜드다.
미국 메이시백화점을 비롯한 850개 마샤 스튜어트 컬렉션 숍에서 9종의 유리 밀폐용기를 ‘마샤 스튜어트 글라스락’이라는 이름으로 판매 중이다. 올해부터는 미국 젊은 주부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인 ‘레이철 레이 컬렉션’에도 포함됐다. 레이철 레이는 30~40대 주부들에게 인기가 많은 요리 연구가다. “비비비(BBB), 컨테이너 스토어, 콜스 등 주요 대형 매장에도 입점됐다.
수출물량의 증가로 지금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인 삼광유리는 2010년 유리식기 공장을 논산으로 확장 이전할 계획이다. 지금의 2배에 해당하는 생산능력을 갖추게 될 전망이다. 황 사장은 “가장 잘할 수 있는 유리에서 차별화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밀폐용기가 삼광 계열사 전체에 효자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삼광유리의 모회사인 OCI의 계열사 이테크건설은 OCI의 태양광사업 플랜트를 수주했습니다. 또 다른 계열사 군장에너지는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해 산업용 증기를 제조합니다. 기본적으로 유리, 흙과 불로 만드는 기술에 강한 우리가 꿈꾸는 또 다른 분야죠. 글라스락으로 이룬 성공이 앞으로는 이쪽으로 전파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글라스락은 우리에게 소중한 첫걸음이자 밑거름이 됐습니다.”
이처럼 밀폐용기가 무명의 두 기업에 날개를 달아줬지만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밀폐용기 시장도 다소 진입장벽이 낮은 탓에 향후 중국 등의 거센 추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업체 모두 자신감을 내비쳤다. 시작부터 국내 시장만이 아닌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을 염두에 두고 가격경쟁력이 아닌 품질과 브랜드 파워로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락앤락 김준일 회장은 “잘나가는 음식점엔 대표 음식이 있는 법”이라며 브랜드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마케팅 인재 확보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역별 마케팅을 펼치기 위해 김 회장은 국내 사무실이 아닌 현지에 부지런히 출근하고 있다.
삼광유리는 글라스락의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할 수 있는 유리젖병 등의 제품 개발과 함께 BI, CI 작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등 브랜드 구축에 힘쓰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계속되면 그간 우리가 IT, 중공업 등에 비해 등한시했던 소비재 시장에서도 대한민국 1등 제품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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