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부실과 하나의 교훈
두 번의 부실과 하나의 교훈
소액 대출 부실의 여파가 저축은행들의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열풍을 낳았다. 저축은행들이 소액 대출 부실을 만회해줄 새로운 수익 창구를 부동산 PF에서 찾았다. 몇 년 동안 저축은행 업계는 호황이었다. 몇몇 선두 저축은행은 자산 규모가 수조원을 넘어섰다. 시중은행 뺨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개인 신용 대출처럼 과욕이 무분별을 불렀다. 저축은행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저축은행 영업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군집 현상이 심각하다는 데 있다”며 “돈이 된다 싶으면 너도 나도 들어가기 때문에 뻔한 부실 대출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부동산 말고는 먹을 게 없었다.금융위기가 불어닥치자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다. PF 부실이 불어났다. 2010년 6월 결산 결과, 105개 저축은행이 4726억원의 적자를 냈다. 저축은행들의 부실 PF 규모는 이자까지 4조원이 넘었다. 명품 가방 구매에 대출해줬던 실수를 부동산 PF에서는 두 배로 반복한 꼴이었다.
저축은행 관계자들은 “일단 급한 불은 껐다”고 입을 모은다. 부실 부동산 PF는 지난 6월 부랴부랴 캠코에 매각했다. 캠코는 부실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부동산 PF 채권 3조8000억원어치를 인수하기로 했다. 저축은행의 전체 PF 대출의 30%에 이른다. 덕분에 금융계의 해결사 캠코만 신이 났다. 은행권 부실 자산이 줄어들어서 역할이 끝난 게 아니냐는 시비도 사라졌다. 저축은행들 입장에선 좋을 것도 없었다. 부실 채권을 해소한 건 바람직했지만 금융감독 당국과의 양해각서에 발목을 잡혔다. 캠코에 PF를 매각한 저축은행은 1년 안에 BIS 자기자본비율을 8%로 맞춰야 한다. 게다가 저축은행들은 3년 뒤에 캠코가 사간 그 가격 그대로 부동산 PF를 다시 사들여야 한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그때까지도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어 있으면 시한폭탄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라고 말한다. 저축은행들은 발등의 불만 껐다 뿐이지 부실 대출을 완전히 청산한 것도 아니면서 BIS 비율 8%에 매인 꼴이다.
진짜 고민은 따로 있다. 또다시 저축은행들의 먹을거리가 떨어졌다. 외환위기 이후 저축은행들은 시중은행과 대부업체 사이에 샌드위치가 된 채로 영업을 해왔다. 시중은행들은 금융지주사로 재편되면서 공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그때까진 거들떠도 안 보던 저신용 소액 대출에도 눈독을 들였다”며 “저축은행은 아무래도 후순위 금융기관이라 시중은행들의 공격 영업을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대부업체들은 한술 더 떴다. 거미줄처럼 전국적으로 지점망을 넓혀갔다. 저축은행 입장에선 부동산 PF가 유일한 해법이었다. 시중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유지해서 정기예금자들을 끌어 모으자면 그만한 수익원이 필요했다.
저축은행이 손을 댔던 부동산 PF는 엄밀히 말하자면 PF가 아니었다. 부동산 개발을 시작하려면 토지부터 매입해야 한다. 하지만 토지를 매입하는 단계에선 건설 인허가도 나기 전이라 사업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그만큼 위험하단 뜻이다. 시중은행들은 부동산 PF에 손을 대더라도 인허가가 떨어진 상태에서 건설 자금을 충당하는 본 PF에만 참여한다. 저축은행에는 잘 돌아오지 않는 몫이다. 대신 저축은행은 브릿지론을 했다. 부족한 토지매입 자금을 빌려줘서 사업자가 건축 인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대출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엄밀히 부동산 PF도 아닌 브릿지론이라 애초부터 부실 우려가 컸었다”며 “본 PF는 해보지도 못하고 불량 채권이 되고 만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고수익 고위험인 브릿지론을 포기한 지금 저축은행들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당장은 유가증권 투자나 중소기업 대출 같은 고유업무에 집중하고 있지만 수익률은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아직은 저축은행들에 뼈를 깎는 감량 경영을 요구하고 있지만 결국 어떻게 살을 찌우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부산저축은행은 계열사인 중앙부산저축은행을 매각하기로 했다. 부산저축은행은 부동산 PF에 크게 손을 댔던 대표적인 저축은행이다. 올해 상반기에 1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면서 맨 먼저 경고등이 켜졌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한 몇몇 저축은행은 공적 자금을 투입한 이후에도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한편에선 이스타항공을 거느리고 있는 KIC그룹이 예쓰저축은행을 15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일본종합금융그룹 오릭스도 푸른2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저축은행 업계에선 하반기부턴 저축은행들의 크고 작은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이 이어질 걸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저축은행 업계는 항시 구조조정을 해왔다”며 “저축은행의 수익성이 떨어진 만큼 작은 저축은행들을 중심으로 업계 재편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저축은행들의 금리가 오히려 시중은행보다 낮은 금리 역전 현상도 불거지고 있다. 4.5%대 금리를 제공하는 현대스위스와 제일저축은행도 있지만 대다수 저축은행의 금리는 현재 4%를 가까스로 넘는다. 지방 저축은행 가운데에는 4%에도 못 미치는 곳도 있다. 반면에 시중은행들은 4% 초중반대의 금리를 내세운 공격적인 예금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4.6% 금리를 보장하는 정기예금을 내놓았다. 우리은행과 SC제일은행도 4.2% 금리의 정기예금 상품을 출시했다. 이젠 저축은행들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1년 만기 정기예금 시장까지 시중은행들이 공략해 들어오는 형국이다.
구조조정과 다음 먹을거리하지만 저축은행 관계자는 “이런 금리 역전 현상은 일시적인 상황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저축은행은 6월 결산을 한다. 연말 결산을 하는 시중은행과 시간차를 둬서 금리를 조절하기 위해서다. 결산을 앞두면 은행들은 금리를 낮추게 마련이다. 실제로 저축은행들의 금리는 매년 여름에 바닥을 쳤다가 하반기에 서서히 오르고 연말 무렵 꼭지를 찍는 흐름을 보인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올해는 부동산 PF 부실 때문에 시장이 안 좋아 보이긴 하지만 금리 변동 패턴만큼은 예년과 다를 게 없다”며 “가을로 접어들면서 저축은행들의 금리가 오르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저축은행에 대한 시장의 불안은 여전하다. 일상적인 금리 상승을 두고도 시장에선 부실한 저축은행들의 꿍꿍이로 의심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부동산 PF에 손을 대지 않았던 저축은행들도 상당수 있다”며 “저축은행 영업의 80%는 가계나 기업 대출인 만큼 전체 저축은행이 부실화됐다고 단정하는 건 옳지 못하다”고 말한다. 한편으로 저축은행들은 CSS(신용평점제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다시 대규모 대출 사업에서 개인 신용 대출로 눈길을 되돌린 셈이다.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CSS를 활용해서 개인의 신용도를 엄밀하게 가늠하고 대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저축은행들은 이제 욕심을 버리고 정공법 경영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두 번의 저축은행 부실이 있었다. 둘 다 과욕이 거품을 불렀고 부실로 이어졌다. 이젠 교훈을 얻을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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