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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지속가능경영 ②] 녹색기술 이익·환경 ‘두 토끼’ 잡아

[한국형 지속가능경영 ②] 녹색기술 이익·환경 ‘두 토끼’ 잡아

촉매로 나프타를 분해하는 ACO 기술을 세계 처음 적용한 SK에너지의 울산 공장.

SK그룹의 주축 계열사는 SK이노베이션(옛 SK에너지)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43조867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09년보다 8조원 넘게 늘어난 수치다. 그룹 전체 매출 증가액의 3분의 2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도 2009년보다 88%나 늘어난 1조7000억원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름 파는 회사라 국내에서만 돈을 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수출도 활발했다. 휘발유·등유·경유의 수출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덕에 전체 수출액도 26조원에 이르렀다.



분사로 성장 잠재력 극대화올해부터 이름을 SK에너지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바꾼 이 회사의 미래도 밝은 편이다. IBK투자증권의 박영훈 애널리스트는 “매출이 올해 46조1650억원, 내년 47조5370억원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영업이익도 마찬가지다. 올해 2조1740억원, 내년 2조297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다. 1962년에 출범해 내년이면 창립 50주년을 맞는 회사치곤 활기찬 성장세다.

성장세를 계속 이어가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올해는 회사를 사업부별로 과감하게 나눴다. 옛 SK에너지는 지주회사 격인 SK이노베이션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기존 석유·화학사업은 분사했다. 석유사업은 SK에너지가, 화학사업은 SK종합화학이 맡았다. 이보다 앞선 2007년 7월에는 옛 SK에너지가 SK㈜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어 2009년 10월에는 옛 SK에너지의 윤활유사업 부문을 SK루브리컨츠로 떼냈다. 현재 SK이노베이션 아래에 SK에너지,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가 편대를 이루고 있는 구도다.

분사의 배경은 어느 때보다 빠른 경영환경 변화에 제대로 재빨리 적응하기 위해서다. 사업별로 전문성을 살리고 유연성을 높여 경쟁력을 키우자는 포석이다.



국내 최고 수준의 이사회 중심 경영2004년 옛 SK에너지를 맡은 신헌철 부회장은 “삼성전자처럼 항공모함식으로 꾸릴 수도 있지만 여건이나 노하우가 다른 상황에서 제2의 신동이 되려면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

SK이노베이션이 벌이고 있는 사업은 석유, 화학, 윤활유, 석유개발, 미래 에너지 개발 등이다. 모두 에너지 사업이다. 하지만 사업별로 산업환경이 다르고 변화 속도 역시 다르다. 이에 맞는 빠른 의사결정, 변화에 잘 적응할 유연성, 분야별 전문성이 절실하다. 그래야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SK루브리컨츠로 분할한 첫 실험은 성공적이란 평가다. SK루브리컨츠는 분사 이후 윤활유·윤활기유 전문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드라이브를 걸었다. 윤활기유는 윤활유의 원료를 가리킨다. SK이노베이션이란 지붕 아래 있으면 아무래도 느슨해지기 쉽다.

다소 부진해도 SK에너지나 SK종합화학의 덕을 볼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홀로 서지 않으면 망하는 구조가 됐다.

이런 절박감과 다른 사업부의 눈치를 보지 않는 빠른 의사결정 등으로 회사가 확 달라졌다. 지난해 매출 2조55억원, 영업이익 2986억원이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올해 말 목표로 중국 현지에 윤활유 공장을, 스페인 렙솔사와 손을 잡고 현지에 윤활기유 공장을 짓고 있다. 옛 SK에너지 시절과 달리 SK루브리컨츠의 스케줄에 맞춰 발 빠르게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SK에너지 전체의 투자 일정을 감안해서 결정할 사안이다.

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SK종합화학으로 나눈 새 실험의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SK이노베이션은 지주회사 격이면서 자체 사업도 벌인다. 석유개발, 정보전자소재, 배터리 사업 등을 한다. SK에너지는 국내 1위 석유 사업자로 기존 석유 정제와 판매뿐만 아니라 석유 트레이딩에도 적극 나설 예정이다. SK종합화학은 팽창하는 중국 시장에 진입해 아시아 대표 화학회사로 성장한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 측에서는 이번 실험도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자신한다. 이미 2008년부터 독립 경영을 해왔다는 경험에서다. 사업부제에서 개별 법인으로 바꾸기 전에 CIC(사내독립기업제) 제도를 운영했다. 그런 체제를 유지하다가 SK루브리컨츠부터 분할한 것이다. 신헌철 부회장은 “시간을 두고 사실상 독립 경영을 해왔기 때문에 낯선 일은 아닐 것”이라고 설명했다.

옛 SK에너지가 세 회사로 나뉘었지만 IFRS(국제회계기준)로 따지면 하나의 회사나 마찬가지다. IFRS에서는 분사 회사의 실적을 모두 더해서 계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 실적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비교할 수 있다. 인간 중심의 경영 철학이나 사외이사 중심의 지배구조, 그리고 친환경 경영 방침 등도 마찬가지다. 옛 SK에너지 때나 SK이노베이션 때나 달라질 게 없다.

특히 이 가운데 지속가능 경영의 중요한 지표인 지배구조와 환경 경영은 옛 SK에너지 시절부터 남달랐다. 신헌철 부회장은 “2004년 시작한 이사회 중심 경영은 국내 최고라고 자부한다”고 자랑했다.

국내 굴지 대기업의 사외이사도 맡고 있는 신 부회장은 “한국 최고의 기업이라 장점이 많지만 이사회 중심 경영만큼은 SK에너지를 따라오기 어려울 듯하다”고까지 말했다. 사실 이사회 중심 경영은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 S&P나 무디스 등이 중요하게 보는 경영지표다.

신 부회장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사례를 들었다. 당시 포스코가 SK에너지와 손 잡고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주가도 요동쳤다. 최태원 회장도 인수전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SK에너지의 사외이사들은 생각이 달랐다. 사업 연관성이 적고 투자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다. 다급해진 포스코는 GS와 손을 잡았다. 그러나 GS도 며칠 지나지 않아 컨소시엄에서 탈퇴하는 바람에 포스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물거품이 됐다.



에너지 소비 줄이는 신기술 개발 사외이사가 주축인 이사회의 입김은 서울 종로구 SK 서린빌딩 매각 때도 만만치 않았다. 그룹에서는 빌딩을 팔아 재원을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사회가 반대했다. 회사 측은 이사회를 석 달 가까이 설득했다. 결국 타협점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 형식으로 매각했다.

사업 구조에 녹아 들어 있는 친환경 경영도 SK이노베이션의 자랑거리다. 석유·화학사업이 주축인 이 회사는 특성상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할 수밖에 없다. 탄소 배출권 제도 도입을 놓고 논란인 요즘 이 회사로선 이익을 늘리면서 환경도 지키는 두 마리 토끼몰이가 최선의 선택이다. SK이노베이션은 본업에 충실한 게 지름길이라고 여긴다. 생산 단계의 에너지를 줄이는 일, 다시 말하면 생산비를 줄이는 게 이익을 늘리면서 환경도 지키는 길이다.

SK이노베이션은 생산 현장에서 동일한 투입으로 많은 성과를 내는 ‘인풋 수펙스(Input Supex)’ 활동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해마다 새로운 에너지 절감 사업을 발굴하고 이를 정부에 등록해 지난 5년 사이 26만t의 탄소 배출권을 받았다. 온실가스 배출량 정보를 목록으로 만든 온실가스 인벤토리도 구축했다. 사내 배출권 거래제 역시 실시하고 있다.

이 회사는 특히 촉매로 나프타를 분해하는 ACO 기술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개발해 SK에너지의 울산 공장에 적용했다. 이 기술은 나프타를 고온에서 열분해하는 방식과 달리 촉매 분해법으로 생산해 에너지 소비를 20%가량 줄일 수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동시에 생산 원가도 떨어뜨릴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플라스틱을 만드는 ‘그린 폴’ 기술 개발도 한창이다. 그린 폴은 연소할 때 유해가스가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 신소재다. 40%가량이 이산화탄소여서 원료비를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탄소 배출권을 확보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한걸음 더 나아가 녹색 에너지 기업으로도 발돋움하고 있다. 중대형 배터리, 청정 석탄 에너지, 바이오 연료, 고효율 신공정 개발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리튬이온배터리 분야에서 이미 성과를 냈다. 2009년 말 다임러그룹 산하 미쓰비시후소사의 하이브리드 상용차 배터리 공급업체로 뽑혔다. 지난해에는 현대자동차의 국내 첫 순수 고속 전기차인 ‘블루온’의 배터리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현재 충남 서산에 7만 평을 확보해 대규모 양산 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남승률 기자 namoh@joongang.co.kr



■ 애널리스트가 보는 SK에너지

분사 전략의 성공 여부에 관심
SK에너지의 2010년 4분기 매출액은 12조1960억원, 영업이익 4432억원으로 시장 전망치에 부합했다. 하지만 세전 이익은 2669억원으로 2009년 같은 기간보다 다소 부진했다. 분사 관련 비용 856억원, 제품 헤지 관련 비용 981억원, 석유화학 시설의 정기 보수 등 일회성 요인 탓이 컸다.

2011년 1분기 영업이익은 5368억원으로 전분기보다 크게 나아질 전망이다. 1월 가솔린의 국제 가격은 배럴당 105.9달러, 디젤 107.1달러로 지난해 4분기보다 모두 오른 상태다. 특히 국내 정유사의 생산 비중이 큰 등·경유의 1월 평균 가격대도 지난해 4분기보다 올랐다. 요즘 화두인 국내 정유제품 가격 인하 가능성 등 정책 리스크는 단기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국제 가격에 연동되는 내수 가격 결정 구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꾸준한 성장세를 보인 SK에너지가 지속가능 경영 기업으로 현재 직면한 과제는 핵심 사업 분사다. 사업역량을 강화시키려는 전략에서 펼친 사업부 분사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관심거리다. 지금까진 순조롭다. 2007년 7월 SK㈜에서 분리한 이 회사는 2009년 10월 윤활유 사업을 SK루브리컨츠로 분할했다. 이어 2011년 1월 1일자로 사업회사인 SK에너지를 중간 지주회사 격인 SK이노베이션과 정유 부문을 담당하는 SK에너지, 화학 부문의 SK종합화학으로 다시 분할했다.

SK에너지에서 떨어져 나온 사업 자회사들은 독자 생존에 필요한 성장 로드맵을 그려가고 있다. 분사 이후 독자 생존을 위한 적절한 투자와 R&D(연구개발) 덕에 SK루브리컨츠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28개국에 윤활유와 윤활유 원료인 윤활기유를 수출하는 이 회사는 석유 메이저 기업 가운데 하나인 렙솔과 손을 잡고 2013년까지 스페인에 윤활기유 공장도 짓는다. 정유 부문을 담당하는 SK에너지의 과제는 인천공장 처리 문제다. 재매각, 합작, 부지 활용 등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매각이 순조로울 경우 브라질 광구 매각 때처럼 SK에너지의 성장 모멘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석유화학을 담당하는 SK종합화학은 방향족(BTX) 계열 제품 가운데 일부 품목에 대한 증설 추진 등으로 수익성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중간 지주회사 격인 SK이노베이션은 신사업·연구개발·E&P(자원개발) 분야를 맡는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평가되는 2차전지 소재 리튬이온전지 분리막 사업도 추진한다. 특히 지난해 말 브라질 광구를 2조7000억원에 팔았는데, 사업 자회사의 투자재원 마련에 큰 보탬이 됐다는 평가다. 여기에 보유 중인 원유와 천연가스 탐사광구 23개의 가치가 재부각될 수도 있다.

안상희 대신증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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