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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푸는 ‘몽’

몸 푸는 ‘몽’

… “대선 앞두고 화법도 달라졌다” 평가 받기도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기지개를 켰다. 여의도에선 내년 대선을 앞둔 준비운동으로 본다. 정 전 대표는 최근 미국 방문 중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특강에 앞서 사회자가 자신을 대선주자로 소개하자 “대통령이 돼서 다시 돌아오겠다”고 맞장구쳤다. 농담조였으나 ‘권력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정 전 대표는 지난해 6·2 지방선거 패배 후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암중모색해 왔다. 그런 그의 최근 행보가 두드러진다. 측근들은 “마지막 대선 도전을 위한 승부수를 띄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폭넓은 행보‘4월 7일엔 강원도, 14일엔 충청도….’

정 전 대표의 출장 일정이다. 지난 7일 강원도 춘천의 강원대를 찾아 특강했고 14일엔 충남대에서 대학생들 앞에 선다.

그처럼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에게 대학 특강은 유별난 일이 아니지만, 그가 찾는 지역에 눈길이 간다. 강원도는 오는 27일 도지사 보궐선거를 앞둔 곳이다.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와 최문순 민주당 후보가 격돌한다. 당내에선 “엄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일정”으로 해석했다.

충청도도 지역기반이 약한 정 전 대표가 공을 들여야 할 지역이다. 더구나 정 전 대표는 세종시 논란 때 정부의 수정안에 힘을 실어준 적이 있어 충청도민의 앙금이 남아있을 법하다.

그의 ‘싱크탱크’도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정 전 대표의 정책연구소인 ‘해밀을 찾는 소망(이하 해밀)’은 12일 국회에서 정책토론회를 연다. ‘공천개혁 및 국회 예산심의제도 개선’이 주제다. 해밀은 최근 서울과 지방의 대학을 두루 아울러 200명 규모의 자문교수단 구성을 마쳤다. 해밀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에서 110여 명, 지방에서는 80~90여 명이 참여했다”며 “본격적인 정책 마련과 자문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 전 대표는 3월 말 국회 한미의원외교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황진하·최구식·백성운·홍일표(이상 한나라당)·김효석·박영선(이상 민주당) 의원과 함께 열흘간 미국을 방문해 외교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방미 기간 내내 그는 화려한 외교 인맥을 뽐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폭스 TV 소유주인 루퍼트 머독,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정·재계 인사들과 두루 만났다.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박영선 민주당 의원조차 “그간 정 전 대표가 미국을 움직이는 파워 커넥션을 쌓으려고 많이 노력해왔구나 하고 느꼈다”며 “폭넓은 인맥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정 전 대표와 가까운 전여옥 의원은 “정 전 대표의 머릿속에는 늘 세계지도가 있다”며 “이 시대에 맞는 ‘그랜드 플랜’이 가능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정 전 대표의 폭넓은 대외행보는 정무적 의도와도 무관치 않다고 풀이된다. 한 측근은 “의원들이 ‘외국에 나가면 정 전 대표가 다시 보인다’는 평가를 많이 한다”며 “대한민국에 그만한 외교 인맥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해외 출장은 다른 의원들에게 본인의 경쟁력이면서 장점을 잘 드러낼 기회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내에서 이른바 ‘MJ계’로 꼽히는 의원은 전여옥·안효대·신영수 의원이다. 또 정 전 대표가 비서실장과 대변인으로 선임했던 정양석·조해진 의원과 처조카 사위인 홍정욱 의원도 가깝다고 알려졌다.



달라진 말투화법도 달라졌다. 대표 시절 당 회의를 주재할 때 그의 발언을 출입기자들은 “교과서 같다”고들 했다. “○○학 개론을 보면”으로 시작하는 원론적인 인용을 곧잘 했기 때문이다. 박학다식해 보이긴 하지만 핵심을 찾기가 힘들었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강렬한 메시지를 줘야 하는 ‘여의도 화법’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런 말투가 바뀌었다. 톤도 꽤 높아졌다. 박근혜 전 대표의 ‘동남권 신공항 재추진’ 의사와 관련해 “막연한 기대와 희망으로 미래의 경제성을 말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무책임한 태도”라며 “정치인에겐 국익 앞에 개인의 원칙, 소신을 접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비판해 주목을 받았다.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 참석해서는 당의 재·보선 공천을 두고 “국민을 위한 반듯한 후보를 뽑는 과정이었는지, 권력투쟁 과정이었는지 국민의 걱정이 많다”며 “한나라당은 고질적인 정체성의 위기에 빠졌다”고 지도부에 날을 세웠다. 전날 안상수 대표가 의원총회에서 “지도부가 (재·보선 공천 과정에서) 잘못한 점이 있으면 선거 이후 물어달라”며 발언 자제를 부탁했는데도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방미 중에 했던 “대통령이 돼서 다시 돌아오겠다”는 발언도 이전보다 꽤 노골적이다. 그간 정 전 대표는 대선 도전을 묻는 질문에 “(2012년) 대통령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있으면 (참여)하겠다” “(대선 도전을)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직설을 피해 왔다.

전여옥 의원은 “입당 초기에는 적응기를 거치느라, 또 대표직에 있을 때는 당의 얼굴이기 때문에 언행이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는 대선 후보이자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 자연스럽게 행보를 해나가기 시작하는 과정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산 넘어 산그러나 그가 꿈을 이루려면 넘어야 할 산도 많아 보인다. 특히 스킨십의 부족은 큰 단점 중 하나다. 얼마나 많은 의원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인 대선후보 경선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현재 당내에서 이른바 ‘MJ(정몽준 전 대표의 애칭)계’로 불리는 의원은 전여옥·신영수 의원과 그의 지역구 사무국장 출신인 안효대 의원 등이다. 대표 시절 비서실장과 대변인으로 함께 일했던 정양석·조해진 의원도 가깝게 지낸다고 알려졌다. 처조카 사위인 홍정욱 의원도 측근으로 꼽힌다.

당의 주류인 ‘친이계’나 의원 수가 60여 명 규모인 ‘친박계’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다. 더구나 유력한 경쟁자인 박근혜 전 대표는 성향을 막론하고 의원들과 두루 만난다.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면서 일부 친이나 중립 의원들의 ‘친박 쏠림’ 현상도 나타난다.

이런 이유로 주변에선 정 전 대표에게 “의원들과 적극적으로 만나라”는 조언을 많이 한다고 한다. 최근 방미에 동행했던 한 의원은 “정 전 대표가 이전보다 포용력이 많이 생기고 의원들도 세심하게 챙기려고 노력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를 두고 당내에선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란 평이 많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한 번을 만나도 열 번 만난 듯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 번을 만나도 처음 만난 듯한 사람이 있다”며 “정 전 대표는 쉽게 가까워지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의 강경일변도의 ‘통일·안보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중도표’ 잡기가 필수인 대선에서 자칫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복지’ 이슈를 선점해 ‘보수색 흐리기’에 나선 모습과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정 전 대표는 최근 국회 대정부질문과 존스홉킨스대 특강에서 잇따라 “우리는 지난 30년간 북핵에 아무 대안 없이 지내왔다”며 “미국의 핵우산만으로 북핵을 폐기할 수 없는 만큼 (미국) 전술핵무기의 재반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강경 발언을 했다.

한 초선 의원은 “통일·안보 이슈의 선점도 좋지만 ‘집토끼’에 구애하려고 ‘우향우’를 하는 듯해 안타깝다”며 “그간 쌓아온 ‘젊고 합리적인 이미지’에도 해가 될 잘못된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조7000억원에 달하는 그의 엄청난 재산도 걸림돌이다. 당에서는 “그가 대선 후보가 되면 고질적인 ‘재벌당’ 꼬리표가 또 붙게 된다”며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중진도 있다.

정 전 대표의 정책연구소 이름인 ‘해밀’은 ‘비가 온 뒤에 맑게 갠 하늘’이란 뜻을 지닌 순우리말이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단일화 합의를 깨고 역풍에 부닥쳤을 땐 그가 정치 재개를 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품는 이도 많았다. 다시 한번 대선에 도전장을 내민 그가 ‘해밀’을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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