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뛰는 대한민국 >> 끈 풀린 운동화로는 계속 뛸 수 없다
다시 뛰는 대한민국 >> 끈 풀린 운동화로는 계속 뛸 수 없다
일할 맛 나는 일터에서 경쟁력이 나온다. 청년이 창업하고 중견으로 성장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영웅담이 돼 돌아다녀야 나라가 발전한다. 노사가 말뿐인 상생이 아닌 진심 어린 동반자로 함께 걸어야 성장의 속도가 붙는다. 엔니지어 출신 CEO가 뉴스가 되지 않는 기업 환경에서 기술대국의 꿈은 이뤄진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만연한 일자리 부족은 청년을 각종 고시로 내몰았다. 창업해 실패를 맛보고 다시 도전해 성공하는 기업가 정신은 쇠퇴했다. 말로는 기술대국을 지향하면서 과학기술인을 홀대한다. 존경하는 선배 과학기술인의 초라한 모습을 본 후배들은 의사나 변호사가 되겠다면 이공계를 떠난다.
기업은 인재가 부족하고 대학은 제대로 인재를 기업에 공급하지 못하는 ‘미스 매칭’도 심각하다. 이를 해결하려면 산·학이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아직은 ‘왜 산학협력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그런 인식을 깰 성과도 미약하다. 선진국이 탄탄한 산학 클러스트를 기반으로 발전한 전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불안한 노사관계도 3만 달러 시대 도약을 위해 해결할 과제다. 지난해 노조 갈등은 예전에 비해 수그러들었지만 잠복한 시한폭탄처럼 보인다. 경영진과 노조는 불안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런 고착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3만 달러 시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끈 풀린 운동화를 신고 계속 뛸 수는 없다.
문규학 소프트뱅크코리아 대표
한국판 구글·페이스북 나와야
우리나라 경제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 중 하나는 ‘기업가 정신의 쇠퇴’다. 요즘 대학생은 입학하자마자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이들이 선호하는 것은 단연 대기업이나 각종 고시다. 젊은이의 꿈이 안정적 직업을 갖는 것이다. 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스펙’을 관리하는 데 소중한 학창시절 전부를 바친다.
그러나 스펙은 창의적 정신이나 도전적 정신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기성사회가 정한 틀에 그들의 생각이나 경험을 맞추어 나가는 것일 뿐이다. 젊은이가 사회에서 새로운 도전이나 창조를 통해 자신의 꿈을 펼치는 것보다 안정적 직업을 선호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사회 전반에 퍼진 기업가 정신의 쇠퇴를 느낄 수 있다.
대학생이 안정적 직장을 선호하는 것은 점차 심화하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때문이다. 우리 경제구조 자체가 기업가 정신을 격려하고 북돋우지 못하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반면 비록 노령화되고 쇠락해가는 자본주의 경제의 전형으로 비치고 있는 미국경제에서는 희망의 불씨를 발견할 수 있다. 기업가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리먼 사태 등 일련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미국은 더 이상 세계경제의 리더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이 현실이다. 지난 200년간 산업혁명을 완성하고 근대 경제의 뿌리를 내리게 해주었던 수많은 미국 거대 기업의 이름은 하나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선 여전히 새로운 스타 기업이 탄생하고, ‘왕년의 스타’가 부활하며, 첨단 디지털·모바일 기술 기반의 기업이 전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올라선다.
컴퓨터의 대명사로 전 세계를 장악했던 IBM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명성이 쇠퇴한 반면 인터넷 기업 구글과 아마존이 강자로 부상했다. 몰락을 걱정했던 애플은 기업가 정신의 재무장을 통해 모바일 기업으로 화려하게 부활해 다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절대강자로 주목 받는 페이스북처럼 눈에 띄는 신인이 잇따라 성장하고 있다.
이들의 성공에서 영감을 얻고 에너지를 받은 젊은 기업가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도전할 것이다. 이런 창의와 도전을 바탕에 둔 기업가 정신이야말로 미래 미국경제의 무형 자원이다.
우리는 어떤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향해 다시 힘찬 도전을 외치는 이때 어떤 동력이 도전 과제를 성취하게 해줄 것인지 판단하고 경제의 지향점으로 삼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다행히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였던 1961년에도, 1000달러였던 1970년에도, 1만 달러였던 1983년에도, 그리고 다시 2만 달러 시대인 지금도 기업가 정신은 늘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견인차였다.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고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결과를 일궈낸 뚝심이 없었다면 오늘의 경제성장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를 이어갈 정신은 ‘스펙’이 아니라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제대로 된 기업가 정신이다.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과학기술인 홀대 “부메랑 될 것”
미국, 일본, 스위스 등 선진국의 경제성장 원동력에는 한결같은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과학기술인(엔지니어) 우대’다.
미국이 오늘날 수퍼파워가 된 것도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과학기술인이 대거 유입됐기 때문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후 미국은 꾸준한 과학기술인 우대 정책을 통해 240여 명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의 경우도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피폐해진 경제를 살려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과학기술이 절대적 역할을 했다. 인구가 우리나라의 7분의 1에 불과한 스위스 또한 과학기술인을 우대하기로 유명하다. 이 나라는 세계 6대 노벨상 수상국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도 과학기술인을 홀대하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은 당시 혁신적 기술 성과인 세계 최초 철갑선 거북선과 압도적 화력을 지닌 화포 천자총통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다. 세종대왕이 장영실 같은 과학기술인을 등용해 측우기, 혼천의, 해시계, 물시계 등을 개발해 백성의 실생활에 도움을 준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정부는 올해 R&D(연구개발) 예산으로 국가 총예산의 4.8%를 배정하고 전년 대비 R&D 투자액을 8.6% 증액하는 등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과학기술인이 체감하는 사회적 인식과 대우는 좀처럼 나아지고 있지 않다. 주된 원인으로는 과학기술인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의 부족을 들 수 있다.
과학기술인은 역사적으로 선비, 농민, 공장(工匠), 상인 순의 사회적 신분에서 보듯이 홀대 받거나 천한 직종으로 인식됐다. 이러한 인식은 현재도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애써 키운 이공계 인재가 의료계, 법조계, 학계 등으로 이탈하는 등 과학기술 인력 수급 문제가 우려할 만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또한 매년 증가하는 국가와 기업의 R&D 투자에도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이공계 일자리 수는 제한적이다. 정부출연 연구소, 기업연구소, 이공계 대학 등 과학기술 분야 종사자는 ‘빨리빨리’의 사회적 풍조에 쫓겨 단기적 성과 도출에만 집중하고 있고 실패가 용인되지 않는 연구환경에 점점 지쳐간다. 또한 보수·처우 등은 사회 타 분야 종사자에 비해 열악한 게 사실이다. 그 결과 과학기술인은 구직·이직 등의 고충을, 산업현장에서는 인력 수급 부족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할 해답은 ‘과학기술인 우대’에서 찾아야 한다. 과학기술인 우대의 첫째 조건은 과학기술인을 사회적으로 우대하고 존경하는 문화 조성이다.
국민과 정부는 잘 키운 과학기술인 한 명의 혁신적 사고와 발명이 수많은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국가 성장동력원임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부족하고 국토도 좁은 나라에서는 국가 미래가 과학기술인의 어깨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울러 과학기술인의 창의적 사고를 통한 혁신 성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선의의 연구 실패’를 용인하고 인내심 있게 성과를 기다려주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은 물론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을 앞당길 수 있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정(政)·학(學)·산(産) 상호 소통이 핵심
1960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79달러였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세계 7위의 수출대국이자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주최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 전 세계가 놀라워하는 대한민국의 빠른 성장은 인재와 그런 인재를 길러낸 교육 때문에 가능했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하려면 경제·정치·사회 시스템 전반이 질적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교육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인재를 길러야 하는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야 한다.
교육시스템 혁신의 열쇠는 ‘산학협력’이다. 기업이 미래 수요에 부합하는 기술과 인재를 양성하려면 산학협력으로 교육과 연구의 불균형을 줄여야 한다. 다시 말해 산(産)과 학(學)이 상호 협력해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핵심 연구인력을 양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정부는 지금까지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해왔다. 이명박 정부 들어 도입한 마이스터고는 산업맞춤형 교육과정 운영을 통해 ‘명품 직업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고 여러 기업과 채용협약을 체결했다. 기업도 마이스터고 정책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 얼마 전 대한상공회의소의 설문조사 결과 제조업체 330곳 중 51%가 “마이스터고 출신 학생을 우대해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교과부는 향후 산학협력을 통해 지역대학·전문대학을 혁신하는 데 정책적 중점을 맞출 계획이다. 또 대학의 산학협력 활동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산학협력 활동을 열심히 하는 교수가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것이다. 대학과 기업이 공간적으로 융합하는 ‘산업단지 캠퍼스’ 등 새로운 산학협력 모델도 지속적으로 발굴할 방침이다.
성과는 기대해도 괜찮을 듯하다.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인재 발굴을 위해 매년 들렀던 것으로 유명한 캐나다 워털루대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대학은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유수 기업의 인재 창고 역할을 하고 있고 워털루를 ‘기업 하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산학협력은 교육의 질과 연구역량을 강화한다. 산학협력을 통해 대학과 기업 간 기술이전이 활발해져 경제적 수익과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산업체와 대학이 함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기술·경영·인문학 등 다양한 학과나 분야의 칸막이가 낮아져 융합형 인재 양성도 촉진될 전망이다.
산학협력은 정부의 힘만으론 이뤄내기 어렵다. 산학협력이 성과를 내려면 산학의 상호 신뢰가 중요하다. 대학과 기업 그리고 정부가 지속적 소통을 통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협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게 3만 달러 시대를 여는 해법이 될 것이다.
전운배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
‘안정’ 넘어 ‘경제 동력’으로
우리나라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노사관계 부문 평가가 낮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100여 명의 CEO를 대상으로 한 국가의 노사관계를 평가한다는 지표 자체의 한계는 있지만 노사가 대립적이라는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부정적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는 가운데서도 우리 노사관계는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12·4 노사정 합의’를 통해 13년간 유예됐던 복수노조·전임자 제도 개선이 이뤄진 점은 노사관계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눈높이를 맞추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수치상으로 봐도 지난해 노사분규가 많이 감소했고 근로손실일수는 1998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파장이 큰 대형 노사분규 역시 현격히 감소했다. 완성차 4개 회사가 24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 없이 임단협을 타결한 것도 노사관계가 안정적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진국 수준의 노사관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분규 없이 잘 지냈다’ 정도로 그쳐서는 안 된다. 4000억 달러가 넘는 수출과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있음에도 ‘일자리 부족’이 국가적 과제로 대두하면서 노사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는 노동시장 문제는 법·제도 개선만으로는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현장에서 노사의 사회적 책임 실천이 강조되는 이유다.
2조 2교대를 3조 2교대로 전환하고 근로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일자리를 더 만든다든지, 협력업체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원청회사와 협력업체 모두 경쟁력을 높이는 사례는 노사가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노사가 함께 불우이웃을 돕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노사가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지 않고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확산한다면 ‘성과→일자리→보상’의 선순환을 통해 좋은 일터를 많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물가상승이 우려되는 시기에는 노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임금인상이 과도하면 인건비 상승이 다시 물가상승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기업, 공공기관이 과도한 임금인상을 자제함으로써 중소기업·하청 근로자를 배려하는 것도 동반성장을 실천하는 사회적 책임의 일환이다. 그동안 노사관계는 노사 당사자만의 문제로 인식돼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일하는 국민’과 ‘일하고 싶은 국민’의 진정한 복지를 위해 좋은 일터를 더 많이 만들어 나가는 중심에 건강한 노사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데 이견은 없다. 최근 복수노조 허용을 앞두고 노조법 재개정 등을 주장하면서 노동계에서 투쟁을 선언하고, 최저임금 등 임금인상을 두고 노사 간 이견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에도 우리 노사는 이를 헤쳐나갈 충분한 역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었던 경제가 비교적 빠르게 위기를 극복하고, 우려와 달리 새로운 근로시간 면제제도도 사업장에서 순조롭게 정착되고 있는 것은 노사관계 당사자의 역량이 그만큼 커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노사가 힘과 지혜를 모아 ‘노사협력=경제 원동력’이라는 긍정적 인식이 뿌리내리기를 기대해 본다.
정리=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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