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그룹 주력사의 내일>> 독하게, 스마트하게 변하다
4대 그룹 주력사의 내일>> 독하게, 스마트하게 변하다
LG전자는 지난해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스마트폰 시대 도래에 대한 판단과 시장대응이 늦어 휴대전화 부문이 세 분기 연속으로 대규모 적자를 냈다. 회사 전체로도 3분기 1852억원, 4분기 2457억원의 적자를 봤다. 2조원이 훨씬 넘던 연간 영업이익은 2000억원에 미치지 못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 국면에서 급기야 임기 중 CEO 교체라는 초강수까지 동원해 지난해 10월 구본무 LG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이 구원투수로 전격 등판했다. 표류하던 LG전자호(號)의 새 선장이 되자마자 그는 ‘독한 LG’를 강조하면서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구 부회장은 예전 LG필립스LCD 부회장 등을 지내면서 경쟁사를 겨냥한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화법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랬던 그가 요즘은 언론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경영 행보도 뒤늦게 전해진다. 자신부터 독한 마음으로 재무장하겠다는 다짐이다.
LG전자는 수장이 바뀐 뒤 단기간에 회사 체질이 바뀌었다는 평가다. 스마트폰 충격으로 패닉 상태였던 사내 분위기도 살아났다. 실적도 1분기 턴어라운드에 성공해 1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릴 전망이다.
그럼에도 LG전자의 경영이 정상화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회사 안팎에서 제기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에서는 여전히 고전 중이다. 3D TV 시장 등에서는 격전 중이다. 신사업 분야에서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조직개편과 독려로 분위기 달라져구본준 부회장은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소비자가전쇼)에서 “예전 LG전자는 강하고 독하게 실행도 했는데 이 부분이 많이 무너졌다”며 ‘독한 LG’를 주문했다. 이어 사업본부 및 임직원들에게 현 상황 극복을 위해 강하고 독하게 실행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곤 ▶정확한 판매 계획에 기반한 예측가능 경영 ▶수익구조 개선 ▶개발 및 출시 일정 철저 준수 ▶품질 책임경영 ▶미래 준비 등 5대 중점관리 항목을 발표했다. 수시로 현장을 점검하면서 이를 꼼꼼히 챙기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사업부 중심의 완결형 체제, 철저한 미래준비, 경영혁신 가속화를 통한 사업 경쟁력 강화 등 세 가지 방향에 맞춰 예년보다 일찍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현장 중심의 빠르고 슬림한 조직, 강한 조직으로 꼭 필요한 일에 집중해 스마트하게 일하자는 구 부회장의 취지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구 부회장은 특히 ‘1등 LG’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품질을 꼽았다. 그는 취임사에서 경영 방침으로 ‘최고의 품질 확보’를 선언한 데 이어 신년사에서도 “제조업의 힘은 R&D(연구개발), 생산, 품질 같은 기본 경쟁력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고 강조했다. 기본을 등한히 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올해 사상 최대인 4조8000억원의 공격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2월 조직개편 때 사장급 경영혁신부문(남영우 사장)을 신설하고 협력회사가 생산성을 혁신하도록 지원하는 등 우수한 부품 품질 확보에도 나섰다. 지난해 스마트폰 대응이 늦어 부진에 빠져 있던 MC사업본부는 서울스퀘어빌딩에서 서울 가산동 MC연구소로 통합 이전했다. 휴대전화사업의 특성상 R&D의 중요성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고, 연구소장 출신의 박종석 본부장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전 조직을 통솔하려면 통합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국내외 사업장 돌며 현장경영이 사업본부는 곧이어 올해 1월 3일 첫 출근일부터 종전보다 1시간씩 앞당겨 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제를 전격 실시했다. LG전자 4개 사업본부 가운데 MC사업본부만 도입한 제도다. 이미 8-5제를 시행하는 평택 제조라인과 시간을 맞춰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독한 LG’의 분위기는 다른 사업본부로도 확산돼 에어컨사업본부 경영진과 사원들이 리사이클링센터를 방문해 불량 환입 및 폐기 사례를 통해 품질회의를 하면서 품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한국마케팅본부는 떠나는 고객을 매장 안이 아니라 문밖까지 따라가 인사하는 ‘고객 그림자 밟기’, 퇴근하고도 자사와 경쟁사 제품의 장단점을 철저히 파악하고 스터디하는 ‘거울회의’ 등을 실행했다. 최근 3D TV 방식을 두고 벌어진 삼성전자와의 치열한 홍보전은 LG전자의 달라진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 부회장은 취임하자마자 국내 전 사업장을 돌며 현장을 살핀 뒤 글로벌 경영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LG전자에 대해 지난해 하반기 이후 부쩍 커졌던 해외 생산·판매 법인과 거래처의 우려를 씻어내려는 목적에서다. 그는 지난해 12월 중국으로 건너가 톈진의 가전 생산라인 등을 살펴보고 베이징에서는 중국지역 대표를 만나면서 중국시장 공략을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첫 외국 출장지로 중국을 고른 것은 톈진·상하이 등에 12개 생산법인과 6개 판매법인을 두고 있고, 전체 매출의 4분의 1을 이 지역에서 올릴 정도로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구 부회장은 곧이어 일본 도쿄법인을 찾아 현지 상황을 체크했다. 일본은 중국과 함께 LG전자가 가장 공들이는 시장 중 하나다. 전형적 프리미엄 시장으로 삼성전자가 발을 뺀 일본 TV시장을 LED TV를 앞세워 재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도쿄 시나가와에 LG그룹 통합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조직을 확대한 바 있다.
올해 1월 초 CES에서 처음 언론에 나서 ‘독한 LG’를 강조하기 직전에는 TV를 생산하는 멕시코 레이노사 법인에 들러 생산시설 및 현황을 점검
했다. 2월에는 인도와 사우디아라비아, 두바이 등 서남아시아와 중동지역을 돌았다. 해외 거래처를 챙기고 파트너십을 강화하면서 LG전자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는 데 주력하는 한편 현지 영업, 마케팅 및 시장을 직접 체크하고 적기 공급을 주문했다.
3월에는 중국 난징을 방문해 제품 마케팅 및 유통망과의 협력을 주문했다. 3개월 만에 두 번 중국을 찾아 이 지역을 최대 전략시장으로 공략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전체 TV 판매대수는 4405만 대로 북미(4395만 대)를 따돌리고 세계 최대 규모로 올라섰다.
구 부회장은 최근에는 중남미 지역을 찾았다. LG전자는 브라질 마나우스에서 TV·DVD·오디오·전자레인지·에어컨, 타우바테에서 모니터·휴대전화·노트북·세탁기를 각각 생산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기본과 현장을 중시하는 구 부회장의 경영철학으로 미뤄볼 때 당분간 세계 생산, 영업, 마케팅 법인 방문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 부회장은 라스베이거스 CES에서 “항공모함은 돛단배처럼 방향을 바꾸기 쉽지 않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본다”며 LG전자의 부활이 쉽지 않은 과제임을 에둘러 표현했다.
회복 조짐은 보인다. 그가 LG전자를 맡은 뒤 반년 만에 실적 회복이 가시화하고 있다는 게 증권가와 업계의 분석이다. 올 1분기 LG전자가 흑자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교보증권 박성민 연구원은 이 회사의 1분기 영업이익을 1446억원으로 예상하는 등 대부분 증권사가 1000억원 이상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10만원대의 LG전자 주가를 14만~15만원대로 올려 잡는 애널리스트도 많다.
서서히 방향 트는 항공모함넘어야 할 산도 많다. 이 회사는 올해 경영목표로 매출 59조원을 제시하고, 사상 최대 규모인 4조8000억원(R&D 2조5000억원, 시설 2조3000억원)을 투자해 미래사업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기존 사업에서도 차별화된 제품을 통해 주도권을 되찾을 계획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포석이다.
목표 달성이 그렇게 호락호락할지는 미지수다. 먼저 지난해 LG전자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던 휴대전화 사업의 흑자전환 시기에 관심이 모아진다. 증권가에서는 1분기 스마트폰 판매량 증가로 대당 판매가격이 올라가면서 적자폭은 빠르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LG전자가 휴대전화 사업에서 턴어라운드하려면 애플의 아이폰, 삼성의 갤럭시 같은 빅히트 스마트폰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현재 10% 이내에 머물러 있는 스마트폰의 매출 비중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LG전자는 ‘옵티머스 2X’ 등을 비밀 병기로 경쟁사와 맞서겠다는 전략이다.
물량은 늘어나지만 수익성이 떨어지는 TV 부문도 고민거리다. 올해 TV시장에서는 LED TV 비중이 증가하고 3D·스마트 TV 등 프리미엄 시장 선점을 위한 업체 간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의 3D TV 기술방식을 둘러싼 싸움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와중에서 차별화된 기술을 적용한 프리미엄 제품을 먼저 출시하고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 등이 과제다.
LG전자는 더 많은, 보다 나은 콘텐트와 서비스를 쉽고, 재미있게 이용할 수 있는 차별화된 사용자 환경을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디지털 칩셋, 소프트웨어 분야의 핵심역량을 강화함으로써 독자적인 스마트TV 플랫폼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가전 부문은 연간 5% 이상의 견조한 영업이익률을 올리고 있지만 새로운 시장과 미래사업 발굴이라는 당면 과제를 안고 있다. 가전사업본부는 원화 절상, 원재료 가격 상승 등 불안 요소에도 제품 경쟁력을 앞세워 올해 두 자릿수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14년 매출 200억 달러 달성’을 통해 글로벌 1위 가전업체로 자리매김한다는 장기 목표도 수립했다. 이를 위해 냉장고, 세탁기 등 기존 사업의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고 리니어 컴프레서, 수처리 등 미래사업의 기반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에어컨사업본부도 1월 에어컨 신제품 발표회를 하면서 올해 내수시장 에어컨 100만 대 판매, 2013년 100억 달러 매출 등을 목표로 제시했다.
멀티V, 인버터 등 전략제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LED 조명, 태양전지 등 신사업을 본궤도에 안착시키는 것도 LG전자의 숙제다. 특히 구본무 LG 회장이 전기차 배터리, 태양전지, 태블릿 PC용 LCD를 그룹의 3대 신사업으로 정해 직접 현장을 돌며 개발 현황 등을 챙기고 있다. LG전자는 이 가운데 태양전지 분야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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