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의 장미살롱] 불고기와 와인, 궁합 잘 맞아
[이원복의 장미살롱] 불고기와 와인, 궁합 잘 맞아
“어제는 아침, 점심, 저녁을 전부 한식으로 먹었어요. 접시를 설거지하듯 싹싹 비웠죠. 김치는 일곱 가지 정도 맛봤는데 그중에서 오이지가 가장 맛있더군요.”
이원복 교수가 존 포먼 대표를 만난 곳은 서울 삼성동에 있는 매드포갈릭. 마늘을 소재로 다양한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내놓는 레스토랑이다. 포먼 대표는 “한국인은 마늘과 생강 등 향이 강한 음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매운(spicy) 향이 나면서도 맛이 부드러운 호주 와인이 적합할 것 같다”고 입을 열었다.
와인의 세계에서 신대륙으로 분류되는 호주는 와인 양조와 마케팅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나, 가장 큰 시장을 끼고 있는 미국 못지않다. 이 교수는 “150년 넘는 와인 양조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새로운 양조 방식에 도전하는 실험정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럽과 미국의 생산자는 와인 풍미를 더하기 위해 대부분 작고 비싼 오크통을 사용한다. 하지만 일부 호주 생산자는 대중적인 와인을 생산할 때 오크 조각이나 톱밥을 사용해 고급 와인 못지않은 풍미를 내는 창의력을 발휘한다. 대량생산으로 묽은 맛이 나는 와인엔 진공 농축기나 역삼투 장비를 사용해 와인의 수분을 제거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원복 와인’ 통해 한국시장 공략할 것호주 와인시장 자체도 체계적이다. 거대 와인 기업들이 와인산업을 수직적으로 통합하면서 포도밭 관리부터 생산, 유통, 마케팅 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정부는 철저한 규제를 통해 품질을 높이는 대신 수출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규모를 키워준다. 포먼 대표는 “호주 정부는 생산 방식에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지만 품종이나 블렌딩엔 아무런 제약이 없다”며 “생산자가 그만큼 독창적으로 와인을 제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수출에도 마찬가지다. 호주 와인 생산자는 세계 각국의 입맛에 맞는 와인 스타일을 제조해 수출하는 경우가 많다. 블루플라이어가 대표적 사례다. 이 와인은 아직 한국에 정식 수입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이미 서울에 사무소를 개설했고, 다양한 한국 음식에 맞는 와인 개발까지 마친 상태다. 이원복 교수가 직접 와인 제조에 참여한 ‘이원복 와인’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이 교수는 올 초 포먼 대표 초청을 받고 블루플라이어의 여러 와이너리를 둘러봤다. 이 교수는 “현지에서 맛본 블루플라이어 와인의 품질이 좋았다”며 “구체적으로 출시 계획을 세운 건 아니지만 레이블에 내 만화나 일러스트를 넣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와인을 통한 수익금은 이 교수가 설립한 재단에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포먼 대표는 “한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이 교수의 명성을 듣고 만난 후 좋은 일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적극 추진하게 됐다”며 “이 교수 와인을 통해 한국시장에서 매출을 올리기보다 인지도를 높이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식사를 마치고 이원복 교수의 집인 ‘장미살롱’으로 자리를 옮겼다. 잠실 장미아파트의 이 교수 집 거실에선 한강 다리들이 모두 보이는 전경이 일품. 포먼 대표는 “멜버른에 있는 내 레스토랑 전경 못지않다”며 즐거워했다.
포먼 대표는 호주에서 성공한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멜버른 중심가에 위치한, 남반구에서 가장 높은 빌딩 유레카의 88층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 ‘유레카88 스카이덱’를 비롯해 호주에서 36개의 레스토랑과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방한 목적은 한국의 여러 대학과 함께 한국 대학생들의 호주 취업 확대를 위한 협약을 맺기 위해서였다.
포먼 대표가 와인 사업에 뛰어든 것은 2009년. 블루플라이어 지분을 사들이며 본격적인 와인 비즈니스에 나섰다. 포먼 대표는 “지난 20년 동안 레스토랑과 여행업에 종사하면서 와인이 필수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와인은 무엇보다 나에게 행복감을 준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 교수는 “호주 전역에 있는 블루플라이어 포도밭을 둘러보기 위해 현지에서 비행기를 열 번이나 탔다”며 “와인뿐만 아니라 레스토랑과 여행업 규모도 상당한 회사”라고 말했다.
블루플라이어는 아시아에선 중국시장에 일찌감치 진출해 리버스 골드라는 브랜드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시장에 거는 기대도 크다. 현재 블루플라이어의 아시아·태평양 지사장을 맡고 있는 스테판 일리지의 경우 브리즈번 경찰 출신. 현직에 있을 때 한국인을 담당했던 ‘한국통’이다. 태권도 3단에 한식을 즐겨 먹는다. 한국 이름 이수호로 자녀들에게 민수, 진수, 현수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줄 만큼 한국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포먼 대표는 “스테판과 함께 한국시장 진출을 오랫동안 준비했다”며 “조만간 이 교수 와인과 함께 본격적으로 개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원복 교수와의 일문일답.
이원복 호주 와인의 차별화 요소는 무엇인가?
포 먼 풍부한 토양과 깨끗한 환경을 꼽을 수 있다. 남부에 위치한 와인 생산지 바로사 밸리는 유럽과 달리 필록세라 같은 포도병균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만큼 순수하다.
이원복 그 정도는 다른 나라 와인 생산자도 많이 하는 이야기다.
포 먼 한 가지 더 꼽는다면 생산자의 실험정신이다. 이탈리아·프랑스·독일 등 유럽 각지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모이면서 다양한 문화가 혼합됐고, 그것은 전통과 새로운 것을 포용하는 정신으로 이어졌다. 이런 것들이 와인에 잘 녹아 있다. 특히 와인을 제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시는 데도 문화의 차이가 배어 있다. 예컨대 한국인은 와인 잔을 흔들 때 시계 반대방향으로 흔들 때가 많다. 반면 호주인은 대부분 시계 방향으로 흔든다. 한국이 좌측통행, 호주가 우측통행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원복 블루플라이어(Blue Flyer)는 어떤 의미인가?
포 먼 캥거루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큰 레드 캥커루의 암컷을 의미한다. 원래 이탈리아 출신 가족 소유였던 양조장을 2009년 인수해 블루플라이어라는 와인을 새롭게 론칭했다. 중국, 한국 등 아시아 시장에 관심이 높다. 한국의 경우 좀 더 시장을 조사한 후 본격적으로 뛰어들 계획이다.
이원복 레스토랑과 여행업에서 성공을 거둔 비결은 무엇인가?
포 먼 실수를 통해 비즈니스를 배웠다. 비즈니스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와인 사업의 경우 최고의 파트너를 만났다.
이원복 와인 사업에 뛰어든 계기가 있었나?
포 먼 호주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할 때 와인은 필수다. 호주인은 단순히 와인을 마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음식과 와인의 궁합을 중시한다. 샤르도네와 포테이토칩의 궁합을 맞춰 볼 정도다. 파티에 초대 받을 때도 자신의 와인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이원복 한식의 경우 와인과 궁합이 잘 맞는 편인가?
포 먼 개인적으로 한식을 정말 좋아한다. 한국에 진출하기 위해 호주의 유명한 요리사들과 와인 전문가들을 불러 한식에 맞는 와인까지 개발했다. 한국 음식 중에선 갈비와 불고기가 와인과 정말 잘 맞는다. 특히 돼지 불고기의 경우 약간 스파이시한 향이 강한 우리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과 궁합이 뛰어나다. 이보다 더 잘 맞는 마리아주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원복 와인의 매력은 무엇인가?
포 먼 와인은 여행과 같다. 좋은 와인은 맛볼 때마다 다르다. 처음 맡은 향과 두 번째 향이 다르고, 처음 마신 맛과 두 번째 맛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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