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인터뷰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독점 인터뷰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박삼구 회장이 금호타이어 등을 맡고, 박찬구 회장 부자와 고(故) 박정구 회장의 아들인 박철완 부장이 금호석유화학을 공동 경영하고 있다. 무리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는 그룹 전체를 위기에 빠뜨렸다. 이에 따라 지난해 2월 채권단이 제시한 ‘분리 경영안’에 합의하면서 계열분리가 본격화됐다. 양 측은 이후 각 계열사 이사진을 교체하는 등 후속 조치를 취했다. 그동안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에 대한 박삼구 회장의 입장은 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 그룹 분리 반대와 경영권 유지에 대한 의지가 핵심이다. 반면 그룹 경영의 또 다른 축인 박찬구 회장의 생각은 그다지 노출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박 회장이 형제 간 갈등이 외부에 알려지는 걸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박찬구 회장은 평소 나서지 않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대기업 회장이면서도 언론에 노출된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박 회장과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형제 간 갈등이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어 조심스러운 반응이었다. “우리 독자는 당신과 당신의 기업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는 말로 수차례 설득한 후에야 그는 힘들게 인터뷰를 수락했다. 인터뷰는 두 번에 걸쳐 이뤄졌다. 먼저 8월 11일 서울 신문로 금호석유화학 본사에서 만났다. 17일엔 울산 고무공장에서 얘기를 나눴다. 박 회장은 자신이 살아온 과정, 아버지에 대한 소회, 최근의 형제 갈등, 분리경영 이후의 비전 등에 관해 소상히 밝혔다.
박찬구 회장은 1948년 광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76년 금호석유화학 구매부 과장으로 입사했다. 해외 원자재 수입 업무를 시작으로 회계부 등을 거치며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았다.
외모와 성격, 선친과 가장 닮아1996년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금호실업과 금호건설에 재직한 6년을 빼면 올해로 30년째 금호석유화학에서 일한 셈이다. 그는 ‘한 우물’을 판 전문 경영인으로,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수준 높은 전문가로 통한다. 오늘날 금호석유화학을 전 세계 합성고무 생산능력 넘버원 회사로 만든 주역으로서 금호석유화학에 대한 애정과 비전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동안 박찬구 회장은 형님들에 비해 별로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었다. 박 회장은 이를 ‘일종의 역할 분담’이라고 표현했다. 형님들이 대외활동에 주력했기 때문에 스스로 묵묵히 내부를 챙길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박찬구 회장은 선친인 박인천 창업회장과 외모나 성격이 가장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조곤조곤한 말투, 차분하고 나서지 않는 스타일이 그렇다. 오버하지 않고 좀처럼 격앙되지도 않는 성격이라는 평이다. 박 회장은 “고집 센 것도 아버지를 꼭 닮았다”며 “외모나 성격이 아버지와 가장 닮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항상 그런 부분에 대해 말씀하시곤 했다”며 웃었다. “아버지는 여러모로 당신을 닮은 나를 좋아하셨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검소한 생활습관도 선친과 비슷하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박 회장은 칫솔 하나도 허투루 버리는 일이 없을 정도다. “책장 모서리가 깨져 바꾸려 하자 ‘책장에 책을 꽂을 수 있으면 된다’며 만류하셨다”는 게 비서실 직원의 말이다. 이런 검소함은 자녀들에게도 이어져 아들인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해외영업팀 부장 또한 ‘재벌 회장 아들’이라는 티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회사 내 평가다.
4년 전 푸르덴셜증권 대표로 재직하던 당시 리더십 스터디그룹에서 박 회장을 만나 교류를 시작했다는 정진호 푸르덴셜사회공헌재단 이사장은 “잘 나서지 않는 스타일이라 활동성이 약할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는데 겪어 보니 외유내강형 CEO”라고 말했다.
그는 박 회장이 ‘말수는 적지만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통계학을 전공해 그런지 몇 천억 숫자도 끝자리까지 다 기억하더라’ ‘윤리경영, 가치경영을 추구한다’고 했다. 정 이사장은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돈을 버는 기업주는 사회의 소외된 이들과 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며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이 안정되면 사회에서 존경 받는 기업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버지 어깨 너머로 배웠다”는 박 회장의 바둑 실력은 1급 수준이다. 그는 “바둑에서 경영을 배우고 있다”며 “대마를 지키려고 매달리면 이것저것 다 죽는다. 대마를 지키지 못할 땐 포기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입장에선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포기해야 할 대마였던 셈이다.
“비 내리는 송추CC에서 그의 승부욕을 봤다”박 회장의 지인들은 그에 대해 “조용해 보이지만 승부사 기질이 있다”고 평가한다. 고등학교 동기로 40여 년 동안 박 회장을 곁에서 지켜봤다는 이동우 굿모닝신한증권 상무는 “박 회장은 조용하지만 추진력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고 밝혔다. 일단 결정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라는 것. 그는 “박 회장은 결정하기까지는 신중하지만 일단 결단하면 행동은 상당히 빠르다”며 “선친으로부터 기회를 얻었지만 금호석유화학이 성장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전문경영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진호 이사장은 “지난해 여름 경기도 송추CC에서 그의 승부욕을 봤다”고 전했다. 당시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모두 게스트하우스에서 비를 피하는데도 박 회장은 “처음에 약속한 대로 18홀 다 돕시다”라며 라운딩을 강행했다는 것. 당시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고 있어 더욱 강한 승부욕을 보이더라는 것이다. 나인 홀을 돌 무렵 캐디가 힘들어하자 박 회장은 그제야 ‘허허’ 웃으며 라운딩을 접었다. 정 이사장은 “비즈니스맨으로서 승부욕이 강하고 애초 하자는 것은 반드시 지키려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핸디는 84~86타 정도.
정 이사장은 “위기에 처한 모기업을 위해 계열사의 돈을 끌어들이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라며 “금호석유화학의 자산 담보에 대해 결연하게 거부한 것은 기업의 정직성, 도덕성 차원에서 용감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동우 상무 역시 “박 회장의 최근 경영활동을 보면 선한 인상 뒤에 확고한 신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일련의 과정 속에서 박 회장은 체중이 7㎏이나 줄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형님과 불화가 일고 게다가 이것이 경영권 분쟁으로까지 가면서 창피하고 억울하고 또 안타까웠다”는 그는 “지난해부터 사실상 분리경영을 하면서 오로지 금호석유화학 경영에만 전념하다 보니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최근 영업이익률 15% 내외라는 엄청난 성과를 보이고 있다. 회사 측은 “직원들이 흥에 겨워 일해야 회사 이윤도 극대화된다는 생각으로 직원 복지에 힘쓴 결과”라고 말했다. 현재 금호석유화학 직원은 1300명 정도. 금호석유화학은 1988년 이후 노사 협의가 원만해 20여 년 동안 무분규·무쟁의 사업장을 기록하고 있다. 박 회장은 공장에 올 때마다 노조위원장들과 허심탄회한 만남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력사 직원은 약 900명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올해 협력업체 직원들의 임금을 16% 높이도록 용역비를 조정했고, 협력업체 직원 자녀들에 대해 대학등록금을 연간 300만원까지 지원토록 했다. 같은 울타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수준의 대우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반성장, 상생경영은 울산화학단지 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설비증설에도 열심이다. 2009년 대규모 증설 이후 올해도 여수공장 증설 등 설비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 시설 선진화와 확장을 통해 라이벌 기업보다 경쟁력을 키우면서 시장지배력을 높이겠다는 포부다. 재계에서는 금호석유화학의 빠른 결정과 집행력을 높이 평가한다. 박 회장은 “연말이면 4000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게 된다”며 “금융권 차입금이 아닌 보유 자금으로 시설투자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친께서 지금 박 회장을 보시면 무슨 말씀을 하실 것 같으냐”는 물음에 그는 “아버지가 평소 강조하신 ‘정도(正道)경영’이 바로 이것”이라며 “잘했다. 금호석유화학을 살린 것은 잘한 일이라고 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M&A 후폭풍 보며 “금호석유화학을 지키자” 결심금호 일가를 둘러싼 잡음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부각됐다. 박 회장은 “당시 그룹은 이미 금호건설을 계열사로 가지고 있었고 또 건설경기가 호황도 아니었다. 내 판단으로는 대우건설이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며 “건설업종 자체가 경기를 타기 때문에 무리한 베팅은 그룹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박찬구 회장의 의견은 묵살됐다. 대한통운 인수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무리한 베팅은 결국 그룹을 위기로 몬 ‘치명적 독배’가 되었다. 대우건설 인수가격 6조4000억원 가운데 자기 자본은 2조9000억원 수준이었다. 나머지 3조5000억원을 차입으로 조달했다. 재무적투자자(FI)에게 3년 뒤인 2009년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1500원이 안 되면 차액을 보전해 주겠다는 풋백 옵션을 맺고 돈을 빌린 것이다. 당시 M&A시장이 평가했던 대우건설의 적정가치는 3조~4조원대였지만 두 배 가까운 베팅을 한 것이다.
2008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한진·현대중공업·STX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4조1000억원에 인수한 대한통운 역시 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시장가치는 2조원 수준이었지만 또다시 재무적투자자들과 풋백옵션을 맺으며 자금을 조달했다. 자산 12조원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년간 총 10조원을 쏟아부으며 연거푸 대형 M&A를 성사시켰다. 하지만 인수기업 재매각과 모기업 워크아웃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대우건설 인수 당시 반대 의견을 표명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통운 인수는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다”는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이 그룹에 캐시카우 역할을 하다 보니 그룹에선 자꾸 인수합병에 대한 투자를 요구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주를 우선해야 한다. 주주들이 허락하겠는가? 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은 희생할 생각을 않고 금호석유화학만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금호석유화학에 입사해 줄곧 일해 온, 그리고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백화점식 경영이 아닌 한 종목에서라도 세계 1위에 올라야 한다’는 박찬구 회장의 경영철학에서 보자면 그룹의 공격적 확장은 위험해 보였다. 그는 “나는 사업을 확장하더라도 회사 내 자금 흐름과 재무 구조의 안전성을 확인한 후 신중히 결정한다. 빚을 가져다 사업을 넓히는 것은 무리가 온다. 현금 흐름, 자기자본비율은 기업을 경영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 등 방만한 그룹 경영에 대해 수차례 경고했다. 그리고 그룹에 유동성 위기가 닥치자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의 재매각만이 그룹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길이라고 누차 말했지만 그룹 측에선 경청하지 않았다. 결국 그룹 분할에 대한 시그널도 보냈다”는 박 회장은 “나로서는 내가 책임지고 경영하고 있는 금호석유화학을 보호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박찬구 회장은 2009년 6월 15일 실제 행동에 옮겼다. 6월 15일은 아버지 박인천 창업회장의 기일이었고, 이날 박 회장의 행보는 그룹 분리에 대한 그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박찬구 회장은 ‘분리경영’을 염두에 두고 이날부터 주식을 정리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양대 지주회사 중 하나인 금호산업 주식을 전량 매각하고 자신이 경영을 맡고 있는 금호석유화학 주식 매입에 나선 것. 당시 재계에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분할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2009년 7월 금호석유화학 이사회에서 박찬구 회장은 대표이사직에서 해임됐다. 박 회장은 이사회 직전까지도 해임 안건 상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이 정도까지 나를 몰아세울지는 몰랐다”는 게 그의 말이다. 2010년 1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해 워크아웃이 발표됐고,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석유화학은 자율협약 대상이 됐다. 사실상 박삼구, 박찬구 두 회장의 독자 경영이 시작된 셈이다.
주주와 직원들 마음고생 정도경영으로 갚을 것 ‘분리경영’에 대한 박찬구 회장의 신념은 확고하다. “경영철학이 다른데 어떻게 한 배를 탈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형님도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에서 기업을 잘 꾸려 좋은 기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나도 책임지고 있는 기업을 잘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삼구 회장은 채권단과의 MOU를 잘 이행해 아들인 박세창 전무와 함께 금호타이어 등을 다시 살려내고, 자신은 조카인 박철완 부장, 아들 박준경 부장과 함께 자율협약 상태인 금호석유화학을 정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는 “이것이 현재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정답”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을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제외시켜 달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청서를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정위가 불가 판정을 냈지만 행정법원에서 다시 심사를 받을 계획이다.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 간 지분 관계가 거의 해소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금호석유화학이 계열제외 신청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박찬구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 악화, 워크아웃으로 금호석유화학 역시 금융권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신규대출은 물론이고 대출 연장도 힘들며 적용 금리도 높다. 부실한 그룹 산하에 있다는 게 그 이유”라고 말했다.
박찬구 회장은 주주와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토로했다. 그는 “경영권 분쟁으로 모두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라며 “선친의 유지인 정도경영으로 주주와 직원들의 사기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금호 일가의 형제 경영권 승계 전통은 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이나 현대, 두산그룹 등에서 보듯 3세 경영 시대가 오면 그룹 분할로 들어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창업주와 그의 자녀들은 동업자 개념이 강해 경영권 분쟁이 크지 않지만 3세로 내려가면서 이런 정신은 희석된다. 1인자 자리를 여럿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그룹을 분할하는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정설이다.
박찬구 회장은 시험대에 서 있다. 본격적인 독립경영을 위해서는 정리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채권단과 맺은 자율협약을 졸업해야 한다. 해외 현지법인 출장 등 밀린 숙제도 많다. 박 회장은 “당당하게 시험을 통과해 졸업할 것”이라며 “금호석유화학을 세계적인 석유화학 전문기업으로 키워내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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