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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流 비밀병기 ‘한국 화장품’] 미혼 여성의 깐깐한 사용후기, 국산 화장품 세계화 이끈다

[韓流 비밀병기 ‘한국 화장품’] 미혼 여성의 깐깐한 사용후기, 국산 화장품 세계화 이끈다

서울 명동의 한 화장품 매장에서 일본인 관광객 두 명이 국내 화장품을 살펴보고 있다.

일본의 모델 겸 배우 린카(梨花·38)는 일본의 패션 아이콘이다. 일본 3개 패션 잡지(Sweet·InRed· Spring)가 공동 선정하는 ‘일본 패션리더 어워드 2009’를 수상했고, 각종 패션지의 표지모델로도 자주 등장한다. 린카는 자신의 블로그에 평소 모습이 담긴 사진을 종종 올린다.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이 블로그를 찾는 여성이 많다.

이런 린카가 쓰는 화장품은 한국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다. 린카는 자신의 책 『Love myself(2009)』에서 “8년 동안 설화수를 애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설화수에 빠진 일본 톱모델린카만이 아니다.

해외 시장에서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기능과 색조가 독특한 데다 품질이 좋아서다. 그 덕분에 국내 화장품 업계는 활기를 띤다. 지난해 국내 화장품 수출액은 2006년보다 2.7배 늘어난 7억61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국내 화장품의 생산실적은 2006년 3조9803억원에서 2010년 6조146억원으로 증가했다. 국내 화장품 업체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에이블C&C는 세계 100대 화장품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데이터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시장 규모(2010년)는 46억 달러로 세계 12위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성장률은 미국(0.7%)·일본(2.0%)보다 훨씬 높은 4.5%를 기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화장품 구입량이 늘어나서다. 서울세관의 ‘면세점 판매현황 자료’를 보면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서울 면세점 7곳에서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8% 늘어난 1188억원어치의 국내 화장품이 팔렸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하나투어가 중국·일본 관광객 300명을 상대로 ‘쇼핑실태’를 조사한 결과, 중국·일본인 관광객의 86.9%, 75.3%는 국내 화장품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를 진행한 대한상의 이은철(유통산업정책실) 선임연구원은 “중국에서 한국 화장품이 고가의 제품으로 인식돼 있고 일본에서도 인지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 화장품이 왜 뜨는 걸까.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섬세한 성향을 가진 소비자가 국산 화장품의 세계화를 이끌고 있다”고 평했다. 섬세한 소비자가 많다 보니 화장품의 품질이 자연스럽게 개선됐고, 세계화의 발판이 마련됐다는 얘기다. 피에르 마르코 루자토 로레알그룹 액티브 코스메틱 아태지역 사장은 “한국 소비자는 무척 섬세하다”며 “아침과 저녁에 바르는 화장품을 구분해 사용할 정도”라고 말했다. 국내 A화장품 기업의 내부자료를 보면 실제로 한국 여성이 다른 나라 여성에 비해 여러 가지 화장품을 사용한다. 일례로 저녁에 바르는 화장품이 중국은 세 가지, 프랑스는 다섯 가지인데 한국 소비자는 평균 일곱 가지, 많게는 열한 가지까지 사용한다.

국내 소비자의 깐깐함도 한국 화장품의 성장을 이끈다. 특히 IT에 강한 20~30대 여성 소비자는 각종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를 통해 화장품의 결함을 지적하고 개선점을 제시하는 데 익숙하다. 한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화장품·향수’ 카테고리 카페 수는 올 9월 현재 4592곳에 달한다. 이 중 회원수가 10만 명에 육박하는 카페도 많다. 사용후기 등 하루 4000건의 글이 올라오는 카페까지 있다. 가입자 대부분은 20~30대 직장 여성이다. 해외 화장품 브랜드 관계자는 “한국의 젊은 여성은 인터넷을 통해 화장품의 품질에 대해 적극적으로 피드백한다”며 “이런 소비자를 상대하는 국내 화장품 업체로선 품질향상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영애 화장품 주세요”국내 화장품 업체만이 아니다. 국내 인터넷 뷰티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고 한국 소비자의 화장품 사용 패턴을 연구하는 해외 화장품 업체가 많다. 로레알코리아 김태현(홍보팀) 과장은 “국내 화장품 소비자는 색조·기능 등 품질에 관심이 많고 의견 개진을 적극적으로 하기 때문에 몇몇 글로벌 화장품 업체는 한국을 테스트베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로레알코리아는 1999년부터 한국에 R&D(연구개발) 테스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로레알 제품이 한국 소비자에게 어떤 평가를 받는지 연구해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로레알의 ‘랑콤 이드라젠 뉴로캄 젤 에센스’ ‘비쉬 애라 미네랄 BB크림’은 한국 소비자의 특성을 연구한 뒤 제품에 반영됐다.

국내 화장품의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97년 아모레퍼시픽이 선보인 브랜드 ‘아이오페’는 세계 최초로 레티놀(비타민A)을 안정화한 제품을 출시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또 진세노사이드(인삼 성분)가 함유된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올해엔 고함량의 세라마이드(피부보호 역할을 하는 콜레스테롤)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마크로 세라마이드 에멀전 안전화 기술’을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화장품 안전성·효능 테스트 전문가인 문성준 코스맥스 연구이사는 “국내 소비자는 화장품에 방부제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단번에 눈치챌 정도로 깐깐하다”며 “국내 화장품 제품의 안전성이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대한화장품협회 장준기 상무도 비슷한 설명을 했다. “품질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화장품은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요. 다른 국가의 소비자는 구매를 안 하지만 국내 소비자는 다르죠. 화장품의 단점을 전문가 수준으로 분석해 커뮤니티에 올려요. 국내 화장품 기업이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어요.”

국내 화장품의 세계화를 이끄는 원동력은 또 있다. 한류(韓流)다. ‘대장금’(이영애 주연), ‘풀하우스’(송혜교 주연) 등 한국 드라마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 주인공이 광고하는 화장품의 호감도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의 한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트엉 낌탐(36)은 “드라마 대장금에서 보니 이영애의 피부가 정말 깨끗하고 예뻐 보였다”며 “그래서 이영애가 광고하는 한국 화장품에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매장에서 한국산(産) 스킨·로션 세트 3개와 에센스 1개를 샀다.

국내 화장품이 독보적 인기를 누리는 나라는 베트남이다. 현재 베트남 화장품 시장점유율 1위는 LG생활건강이다. 점유율은 16%에 달한다. 처음부터 잘나갔던 건 아니다. 1996년 11월 베트남에 진출한 LG생활건강은 1년여 동안 월 매출 1000달러(약 100만원)를 넘기기 어려웠다. LG생활건강이 날개를 펴기 시작한 것은 한류 마케팅을 펴면서다. 1997년 10월 베트남 현지기업인 ‘보카리맥스’와 합작법인을 설립한 LG생활건강은 역대 모델이었던 김남주·한은정·김태희·이영애를 전면에 내세워 시장을 넓히기 시작했다. 특히 베트남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대장금의 주인공 이영애는 효녀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영애가 광고모델인 LG생활건강의 한방 화장품 ‘후’는 그야말로 대박을 치고 있다. LG생활건강 베트남법인 관계자는 “향후 고급 화장품을 선보여 베트남의 VIP 고객을 공략할 방침”이라며 “이를 통해 베트남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화장품 매장이 몰려 있는 서울 명동.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코스 중 하나다.

‘30초에 1개’꼴로 팔릴 정도로 전 세계 시장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의 라네즈 ‘워터 슬리핑팩_EX’도 마찬가지다. 바른 후 씻지 않고 잘 수 있는 수면팩인 워터 슬리핑팩_EX는 특히 홍콩에서 인기가 많다. 덥고 습한 날씨 탓에 에어컨을 쐬는 시간이 긴 홍콩 소비자에게 ‘피부관리가 쉽다’는 워터 슬리핑팩_EX의 컨셉트가 제대로 먹혔다. 하지만 이 제품도 한류가 없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라네즈의 모델은 중화(中華)권 최고 스타인 송혜교다. 송혜교가 출연한 드라마 ‘가을동화’ ‘풀하우스’는 중국에서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아모레퍼시픽의 마몽드 ‘토탈 솔루션 미네랄 모이스처 비비크림’도 중국시장에서 히트를 쳤는데, 한류 스타 ‘한지민 효과’가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마몽드의 모델 한지민이 출연한 ‘카인과 아벨’ ‘이산’은 중국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2005년 중국에 진출한 마몽드는 현재 백화점 매장 718곳과 화장품 전문점 2000여 곳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최근 3년 동안 연간 50%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라네즈와 마몽드의 지난해 중국 매출은 1359억원.



화장품 산업 육성하는 정부·지자체두 브랜드의 성공에 힘입어 아모레퍼시픽의 한방 화장품 설화수는 올 3월 베이징(北京) 팍슨 백화점에 입점했다. 아모레퍼시픽 전진수 설화수 사업부장은 “설화수는 국내 단일 화장품 브랜드로선 최초로 연매출 5000억원을 기록했다”며 “국내 1위에 안주하지 않고 중국 등 글로벌 시장 확대에 최선을 다해 2015년 매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화장품 인기의 또 다른 원동력은 정부 지원이다. 정부는 화장품 R&D사업에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29억원을 지원했다. 보건복지부 신욱수(보건산업정책과) 사무관은 “그동안 화장품 산업에 대한 관심이 적어 시장 규모에 비해 지원이 부족했다”며 지원을 더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화장품 산업은 한·EU(유럽연합) FTA(자유무역협정)가 발효되기 전인 지난해 말 피해산업으로 분류됐다. 글로벌 시장을 거머쥔 유럽산(産) 화장품이 관세 없이 수입되면 국내 화장품이 위기를 맞는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화장품 R&D와 인프라 구축에 향후 5년 동안 7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6월 ‘화장품산업종합지원센터’도 만들었다. 민간 비영리법인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에서 위탁·운영하는 이 센터에서는 해외시장 조사, 수출입 관련 법률 조언, 각국 특허정보 제공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신욱수 사무관은 “국내 화장품 업체의 90%는 중소기업”이라며 “중소기업에 해외 진출에 적합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나서자 지방자치단체도 화장품 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제주도 송당리는 최근 아모레퍼시픽에 비자(비자나무씨)를 제공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전남 완도군은 조선대 해양생물연구교육센터와 공동으로 전복과 비파에서 추출한 기능성 물질을 이용해 해양 한방화장품 4종을 출시했다. 충북 오송에서는 2013년 화장품·뷰티 세계박람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국내 화장품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늘어나고 있지만 풀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무엇보다 원료 기술력 확보는 당면과제다. 원료 기술은 레티놀·허브 등 화장품의 원료인 효능물질을 발견·가공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 충칭 태평양백화점에서 한방화장품 ‘후’ 이벤트를 벌이는 모습.
대한화장품협회 장준기 상무는 “국내 화장품 업체는 핵심 원료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며 “독자 원료를 확보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 제품을 모방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진영 수석연구원도 “비슷한 기능의 저가 화장품으로 경쟁하는 것보다 핵심 원료를 바탕으로 특화된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오 기술력 화장품 개발에도 써야대안은 두 가지다. 첫째는 바이오 기업들이 화장품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다. 최진영 연구원은 “바이오 제품을 개발하다가 효과가 확실하지 않으면 (그 기술을 활용해) 화장품을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대표적 예가 줄기세포 배양액이다. 아토피 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키위 추출액’은 아토피 환자가 사용하는 화장품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한방을 활용하는 것도 대안 중 하나다. 최근 들어 글로벌 화장품 업체는 허브를 활용한 자연주의 화장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우리만의 원료는 한방이다. 효과는 이미 검증됐다. LG생활건강의 한방 화장품 ‘후’는 중국과 동남아 일대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아모레퍼시픽의 한방 화장품 설화수도 홍콩·중국·일본 등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전진수 아모레퍼시픽 설화수사업부장은 “지난해 미국 뉴욕의 버그도프굿맨에 설화수가 입점했고 홍콩 시장에서는 설화수 판매량이 연간 40% 성장하고 있다”며 “설화수는 국내를 대표하는 화장품 브랜드로 우뚝 설 것”이라고 자신했다.

마지막으로 국내 화장품의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것도 숙제다. 장준기 상무는 “화장품은 기능과 효능이 전부가 아니다”며 “핸드백에서 화장품을 꺼냈을 때 당당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대표는 9월 5일 경기도 용인의 아모레퍼시픽 인재개발연구원에서 열린 창립 66주년 기념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5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10위 규모의 화장품 회사로 성장하려면 제품마다 매년 5000억원 이상 팔리는 메가 브랜드가 필요합니다. 설화수를 연매출 6000억원 규모의 브랜드로 키워낸 만큼 충분히 가능합니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과 유럽·미국 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성공의 경험을 쌓아갑시다.”

정수정 이코노미스트 기자 palindro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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