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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 부실 덫에 걸린 저축은행] 살아남은 곳은 괜찮나?

[Hot Issue 부실 덫에 걸린 저축은행] 살아남은 곳은 괜찮나?



설마 했던 일이 기어이 터졌다. 9월 18일 금융위원회는 7개 상호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조치를 내렸다. 자산 규모 업계 2위, 3위 업체가 포함돼 충격은 더 컸다. 6개 저축은행은 정부의 판단으로 영업정지를 겨우 면했다. 이로써 올 들어서만 16개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다. 금융당국은 “돌발변수가 없는 한 추가 영업정지는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뱅크런이 우려된다며 85개 저축은행의 전수조사 결과를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불확실성이 팽배한 가운데 정부는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나섰다. 과연 나머지 저축은행은 괜찮은 것일까? 저축은행을 믿고 돈을 맡겨도 되는 걸까? 저축은행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저축은행 사태를 정리하고 해결 과제를 짚어봤다.
서울에 사는 김자연(35)씨는 7월 토마토저축은행에 5200만원을 예금했다. 올해 초까지 중소형 저축은행에 예금했던 김씨는 상반기에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는 것을 보고 불안한 마음에 예금을 인출했다. 김씨는 ‘큰 곳은 안전하겠지’ 하는 생각에 규모가 큰 토마토저축은행(업계 2위)에 다시 돈을 넣었다. 하지만 예금한 지 두 달 만에 토마토저축은행은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문을 닫았다. 예금이 묶인 김씨는 “크면 안전할 줄 알았는데 믿을 만한 곳이 아무 곳도 없다”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9월 18일 금융위원회는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5% 미만이거나 부채가 자산보다 많아 경영상태가 부실한 토마토, 제일, 제일2, 프라임, 에이스, 대영, 파랑새상호저축은행 등 7개 저축은행에 대해 영업정지 조치를 내렸다. 두 달간 85개 저축은행을 전수조사한 결과다. 특히 자산 3조원이 넘는 업계 2위인 토마토상호저축은행과 업계 3위인 제일상호저축은행의 영업정지는 시장에서도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큰 곳이 안전하다’는 상식이 여지없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올 들어 영업정지된 16개 저축은행 가운데 지난해 말 자산 규모 1~5위인 대형 저축은행 중 1위 솔로몬상호저축은행을 제외하고 2~5위인 토마토·제일·부산·부산2저축은행이 모두 문을 닫았다.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제일2상호저축은행 정구행 행장은 9월 23일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던 중 본점 건물에서 투신자살해 충격을 안겨줬다.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의 재무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BIS비율을 보면 영업정지 기준이었던 ‘1% 미만’을 한참 밑도는 수준이었다. 업계 2위를 자랑했던 토마토저축은행의 BIS 비율은 -11.47%였다. 부채는 자산보다 4419억원 많았다. 제일저축은행도 BIS 비율 -8.81%, 자산을 초과하는 부채는 2070억원에 달했다. 에이스저축은행은 BIS 비율이 무려 -51.10%였다. BIS 비율이 -51%라는 것은 은행이 보유한 위험자산이 자기자본의 절반 이상 된다는 의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 건전성의 기준인 BIS 비율 8%를 지상 8층 건물에 비유한다면 이 경우는 지하 51층까지 내려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재무상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9월 19일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서울 명동 토마토2저축은행을 방문해 예금자들에게 안심하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말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에서 7개 저축은행의 BIS 비율은 모두 6~9%대였다. 당시 8.51%였던 에이스저축은행의 경우는 1년여 만에 60%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관행적으로 느슨하게 적용하던 부문들을 이번 집중 전수조사를 통해 엄격히 평가하면서 비율이 크게 하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이 고객에게 받은 예금은 11조5000억원이다. 정상 영업한 97개 저축은행 총 수신액(64조4000억원)의 18%에 달하고 앞서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 등 9개 저축은행의 총 수신액을 합한 규모와 비슷하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인 부산 해운대구 좌동 파랑새저축은행 본점 정문 앞에서 예금자가 안내문을 살펴보고 있다.
문제는 이들 저축은행이 금융위 발표를 앞두고서도 “우리는 아무 문제없다”며 돈을 빼려던 고객들에게 예금 인출을 만류했다는 점이다. 고객 피해가 더 커진 이유다. 실제로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있는 에이스저축은행 영업점에는 금융위 발표가 보도된 지 1시간 만에 고객 30여 명이 몰려들어 항의하기도 했다. 김인자(65)씨는 “지난주 금요일 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여부를 물었더니 우리는 대형 저축은행에 속하고 큰 문제가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런 행태는 업계 3위인 제일저축은행도 마찬가지였다. 제일저축은행도 예금을 해약하려고 하면 “규모가 작은 저축은행이 퇴출 대상이지 우리는 절대 아니다”며 해약을 만류해 왔다. 업계 2위 토마토저축은행은 영업정지 이틀 전인 9월 16일까지 ‘BIS 자기자본비율이 8%’라는 허위 광고를 해 고객을 속여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토마토저축은행과 거래했던 김범준(44)씨는 “불안한 마음에 두 달 전 적금 만기가 된 돈을 모두 찾아 시중은행에 맡겨놨다”며 “그동안 믿고 거래해 왔는데 고객을 속여왔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어느 저축은행과도 거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퇴출 문턱 6개 저축은행도 안심 못해저축은행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하다. 애초 금융당국이 부실 저축은행 후보로 올렸던 것은 13곳이었다. BIS 비율이 5%에 못 미치거나 부채가 자산을 초과한 곳이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이 중 7개만 영업정지 조치를 내렸다. 퇴출의 문턱에서 6개 저축은행은 겨우 살아남았지만 앞으로 외부 도움 없이 자구계획만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이들 저축은행 대부분은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가 발목을 잡고 있다.

업계 1위인 솔로몬상호저축은행만 봐도 알 수 있다. 솔로몬저축은행은 2010년 회계연도(2010년 7월~2011년 6월)에 1265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2009년 회계연도 1092억원보다 적자폭이 더 커졌다. 자산건전성을 보여주는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2009년 회계연도 8.2%에서 2010년 회계연도에는 14.1%로 늘었다. 대출로 나간 100원 중 14원은 회수가 어렵다는 의미다. 솔로몬저축은행 관계자는 “부동산경기 침체로 자산건전성이 악화되면서 충당금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솔로몬저축은행이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캠코 매각 PF채권 잔액은 6990억원이다. 이 중 손실예상액은 2600억원이며 앞으로 더 쌓아야 할 충당금이 1800억원에 달한다. 반면 BIS 비율은 9.1%에서 9.2%로 소폭 상승했다. BIS 비율은 추가 자본금을 늘릴 경우 높아진다. 솔로몬저축은행은 9월 14일 10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또한 계속되는 적자에 유동성 어려움을 겪자 서울 대치동에 있는 본점 사옥과 역삼동 사옥을 매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솔로몬금융그룹 임석 회장은 “사옥 매각은 작년부터 진행해 왔던 것으로 공교롭게도 저축은행 영업정지 발표와 맞물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업계 상위권을 모두 퇴출시키기에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을 것이고 유상증자와 자산매각 등 구체적인 자구책을 내놨기 때문에 기회를 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지켜봐야겠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솔로몬투자증권을 내다 팔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임석 회장은 “지난 2년간 적자를 기록했지만 BIS 비율도 8~9%를 유지하고 있다”며 “PF대출을 줄이고 가계대출을 늘려나가는 등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고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는 만큼 올해부터는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자신했다. 솔로몬금융그룹 신길우 부회장 역시 “회사를 살리기 위한 자구노력을 했고 충분히 경영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솔로몬저축은행은 계열사인 경기저축은행을 3월 시장에 팔려고 내놓은 상태다. 현재 부산, 호남 등 3개 계열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 중 경기저축은행만이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저축은행은 9월 8일 경기저축은행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에 대해 솔로몬저축은행 한 관계자는 “28일까지 협상기간을 정하고 이틀에 한 번꼴로 가격을 논의하고 있다”며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업계 1위가 이 정도다.



추가 구조조정 가능성다른 은행 사정도 마찬가지다. 토마토·제일저축은행의 영업정지로 업계 순위 4위까지 올라선 한국저축은행은 2010년 회계연도에 영업손실 839억원, 1252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전년 2억8000여만원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한 것이다. 계열사인 진흥저축은행도 921억원의 손실을 냈다. 서울저축은행은 2009년 회계연도 1106억원 적자에 이어 2010년 회계연도에도 1142억원으로 적자폭을 키우면서 자본금의 93.6%가 잠식됐다.

서울저축은행은 최대주주인 웅진캐피탈을 대상으로 90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할 계획이다. 신민저축은행은 부채가 자산보다 35억여원 많아 자본 잠식상태에 빠졌다. 푸른저축은행은 7개 상장 저축은행 중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했다. 25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해 전년도의 89억원에 비해 이익을 늘렸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이번 조치로 올해 초부터 추진해온 저축은행에 대한 일련의 구조조정은 일단락됐다”고 말했다. 또한 나머지 저축은행들은 확실히 살리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특히 BIS 자기자본비율이 5~10%로 ‘정상과 부실’의 경계선에 서 있는 저축은행에 대해 “BIS 자기자본비율이 10%를 넘길 때까지 충분한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10월까지 저축은행의 신청을 받아 상환우선주나 후순위채를 사주는 방식으로 자본 확충을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런 희망사항이 현실화하려면 살아남은 저축은행들이 우량 금융회사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금융당국은 그 가능성을 높게 본다. 올해 초까지 105개에 이르렀던 저축은행 가운데 15%가량이 문을 닫았다. 더욱이 자산 규모 중대형 부실 저축은행이 대거 축출되면서 심각한 부실이 터질 가능성은 보다 낮아졌다.

하지만 이번이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마지막이라고 보기에는 성급하다는 분석이 많다. 부동산PF 부실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데다 금융당국의 구조조정 작업이 엄격한 잣대로 이뤄졌다면 영업정지 대상 저축은행이 지금보다 더 많았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트레이드증권 하학수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둔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저축은행들이 위기를 감내할 수 있는 여력은 약화될 수 있다”면서 “앞으로 추가 구조조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도 “당초 영업정지 대상이었다가 자구계획 심사에서 구제된 다섯 곳이 여전히 뇌관으로 남아 있다”며 “뱅크런을 우려해 금융위가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9월 말 재무제표를 공시할 경우 끝까지 비밀이 지켜질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김성희 이코노미스트 기자 bob28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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