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금융회사를 너무 믿지 마세요
[Trend] 금융회사를 너무 믿지 마세요
평생 모은 돈을 이자를 조금이라도 더 받겠다고 넣어뒀는데 이제 어떡하냐고 하소연하는 어르신, 딸의 결혼식 자금을 넣어두었다는 어머니, 만기가 하루 남았다며 안타까워하는 직장인…. 9월 18일 7개 저축은행의 영업정지 발표 후 수많은 울음과 탄식, 울분을 접했다. 저축은행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은 대개 서민이어서다. 특히 원리금 합계 5000만원까지 예금자보호가 되는 금액을 넘어 저축하거나 후순위채권에 투자한 사람은 고령자가 많았다.
이들의 사연을 들어 보면 안타까움이 적지 않지만 당사자가 아닌 경우에는 또다시 반복되는 하나의 사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불과 6개월 전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감독당국의 부실감사와 비리, 저축은행의 방만한 경영과 대주주와 직원의 부도덕성이 얽혀 나타난 사건의 재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금융회사의 잘못이나 문제로 금융소비자가 피해를 본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량 중소기업을 흑자도산으로 몰고 갔던 은행의 키코 사태, ELW 개인투자자에게 큰 손실을 끼친 증권사 ELW 스캘퍼 문제 등 금융회사에 속고, 배신 당하고 싸우면서 흘린 고객의 눈물이 적지 않다. 그런데 실상 피눈물 난다고 하는 이런 피해자의 사연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세간의 관심에서 서서히 사라진다. 그리고 결국 금융회사의 버티기는 성공하고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에게 남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가장 먼저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금융감독원 출신이 퇴직 후 금융회사에 취업하는 게 관행인 현실에서 소비자 보호 기능을 따로 독립시켜 소비자 보호 업무를 하는 독립적인 기관을 만들 필요가 있다. 금융 비리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문책도 필요하다.
물론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금융상품을 선택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또 다른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금융소비자의 입장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혹시라도 이 글이 저축은행 사태를 비롯한 금융사건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리는 걸로 오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믿었는데…”라는 말은 허망할 뿐가장 먼저 필요한 건 저축은행을 포함해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회사와 소속된 직원, 투자상담사, 보험설계사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금융기관이라는 말에 익숙하다. 이 단어는 금융회사가 공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금융회사는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이익을 추구하고, 이익을 많이 남겨 주주배당도 하고 직원의 급여도 줘야 한다. 그리고 그 회사에 소속된 직원들은 다양한 성과에 따라 평가 받는다. 회사의 이익이 많이 나오는 상품, 회사에 이익을 많이 안겨주는 직원은 상대적으로 고객의 이익과 상충되는 결정을 많이 하는 상품과 직원일 가능성이 크다.
금융회사의 부실이나 부도덕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의 피해자가 하는 말 중에 가장 많은 표현이 “믿었다”라는 것이다. 금융기관이라서 믿었고, 오랫동안 거래해 왔기 때문에 믿었다고 이야기한다. 이 믿음에는 그들이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고 이익을 가장 우선시하는 집단이라는 전제가 빠져 있다. 서로가 처한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신뢰가 아니라 ‘금융기관’과 그곳에 소속된 사람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다. 금융회사를 바라보는 이런 정서를 완전히 떨쳐버려야 한다.
소비자로서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상품을 구입하러 매장을 찾아갈 때와 금융회사를 찾아가는 모습은 다르다. 몇 만원짜리 물건을 살 때도, 만족도의 차이가 크지 않은 물건을 살 때도 상품명세서를 살펴보거나 사용 후기를 읽어보는 노력을 한다. 주변에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판매사원에게 직접 묻거나 인터넷을 이용해 여러 가지를 확인하곤 한다.
그런데 힘들여 벌었고, 사고 싶은 것 사지 않고 먹고 싶은 것 먹지 않고 모은 소중한 돈을 투자하면서 금융소비자들은 너무나 쉽게 결정하고 사인한다. 왜 은행만 가면, 증권사 창구에 앉기만 하면 그렇게 순한 양이 되는 것인지. 소비자로서 좀 더 당당해지자. 궁금한 게 있으면 묻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따지고, 확인해야 할 게 있으면 요청해야 한다.
금융 범죄를 중형으로 다스려야자필서명의 무서움에 대해서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펀드나 보험에 가입할 때, 투자설명서나 상품설명서에 ‘제공 받고 설명 들었음’이라는 글을 자필로 쓴 경험이 있을 것이다. 투자설명서나 상품설명서는 그 상품의 특징뿐만 아니라 가입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 적혀 있는 서류다. 그걸 꼼꼼하게 읽고 항목마다 제공 받았다거나 설명을 들었다는 걸 자필로 서류에 적게 되어 있다. 그런데 대부분 판매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형광펜으로 표시해 놓은 부분 체크하시고 작성해 주세요.” 그리고 순진한 고객들은 직원들이 시키는 대로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믿고’ 그대로 체크하고 서명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체크하고 서명함으로써 금융회사가 져야 할 책임이 고개에게로 이전되기 때문이다. 상품이 가진 특징이나 위험을 모두 인지하고 상품에 가입했다는 걸 서류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고객은 금융회사나 판매인을 대상으로 법적인 대항근거를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제공 받고 설명을 들었다는 내용을 자필로 쓰기 전에 그걸 다시 확인해야 한다. 이해되지 않는 내용은 묻고 설명을 요구해야 한다.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고 욕한다고 피해가 없어지지 않고, 나쁜 놈을 벌준다고 해서 피해가 줄어들지 않는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감독기관과 저축은행을 아무리 욕하고 그들이 처벌 받는다고 해도 일정 부분 피해는 불가피할 것이다. 특히 후순위채권 투자자의 손실은 매우 클 것이다.
이런 집단적인 사건 외에, 모 방송국의 ‘당신의 보험은 안녕하십니까?’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보험설계사의 보험사기, 보험사의 이해하기 힘든 보험금 지급 거절 등은 계속 반복되는 것이었다. 증권사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분쟁사례도 마찬가지다.
금융회사와 소속 직원을 막연하게 믿지 말자. 그리고 좀 더 당당한 금융소비자가 되자. 금융상품은 소비자가 쉽게 이해하기 어렵게 마련이다. 모르면 묻고 확인하자. 그리고 자필로 확인하고 서명하기 전에 충분히 읽고 확인하고 내가 한 그 서명이란 이제는 내가 그 결과를 다 책임지겠다는 말임을 분명히 인식하자. 그리고 이제는 선량한 금융소비자를 속이고 우롱한 금융사업자나 부도덕한 직원에게는 엄중한 법의 심판이 있기를 바란다. 미국 법원은 금융사기범 메이도프에게 150년형을, 분식회계를 저지른 엔론의 최고경영자에게는 24년형을 선고했다. 솜방망이 처벌로는 반복되는 금융사건을 근절하기 힘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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