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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기업인 재창업 지원 제도] 지원 제도 있다지만 필요할 땐 무용지물

[실패 기업인 재창업 지원 제도] 지원 제도 있다지만 필요할 땐 무용지물

평균 2.8회. 지난해 미국 정부에서 발표한 성공한 기업가의 창업 횟수다. 성공을 거두기까지 보통 2번 넘게 실패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실패한 기업인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세컨드 찬스’ 제도를 만들어 활용한다. 한국에서는 여간해서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다. 재기에 성공하는 사례가 드물어 재창업 횟수를 보여줄 수 있는 뚜렷한 통계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사업 실패는 곧 평생 갚기 힘든 빚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패한 사업가’로 낙인 찍히면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 해도 돈을 빌리기도 어렵다. 첫 사업을 통해 얻은 경험과 네트워크는 거의 무용지물이다.

2009년 한 해 동안 폐업을 신고한 법인 사업자는 5만5115명이었다. 사업부진이나 경영 미숙 등이 대체적인 폐업 이유다. 이들 중 대다수가 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이들 창업 실패자들은 해마다 늘고 있는 실정이다. 폐업 자체도 문제지만 그들이 가진 능력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한번 사업에 실패한 기업인에게 다시 기회를 줘야 한다는 얘기는 하루 이틀 나온 게 아니다. 실패한 사업가의 노하우를 적극 흡수해 발전의 초석으로 삼고 있는 해외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올 3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포럼에서 “한 번 창업에 실패하면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새로운 새싹이 생겨나는 것 자체를 막고 있다”며 “이런 환경에서는 절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항상 성공의 요람으로 삼는 실리콘밸리에서도 100개의 기업 중 99개가 실패를 경험한다”며 “그 중 성공한 1개의 기업이 아니라 실패한 99개의 기업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력과 경험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3대 과제’ 연구보고서에서는 “창업에 실패한 사람들에게 취업과 재창업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은행경제연구소에서는 ‘재창업’을 아예 2012년 연구주제로 정했다. 기업은행경제연구소 신동화 연구위원은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 주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다가 재창업이 활발해지면 기업 경제 자체가 살아날 수 있겠다고 판단해 재창업을 내년도 연구주제로 정했다”고 말했다.

그간 국내에서는 실패한 사업자들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사업에 실패하면 수많은 빚을 지게 돼 재기가 쉽지 않다. 회사가 진 빚을 CEO에게 물리는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가 결정적이었다. 또 어렵게 빚을 다 갚는다고 해도 새로운 사업에 필요한 투자를 받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실패자’라는 꼬리표가 붙기 때문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한 정책이 없는 건 아니다. 창업 실패자의 신용회복과 새로운 투자자금 조달을 돕는 제도가 속속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지난해 3월부터 ‘재창업 자금지원 제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신규 사업 아이템의 사업성을 평가해 업체당 연간 최대 30억원까지 대출해 주는 제도다. 도덕성과 신뢰도를 평가해 신용회복을 돕기도 한다. 벤처기업협회는 2005년부터 ‘벤처기업 경영재기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997년 이후 1년 이상 기업을 경영한 후 폐업절차를 거친 전례가 있는 기업 대표에게 채무상환 기간 연장과 일부 채무의 감면 혜택을 주는 제도다. 벤처기업협회가 심사를 하고 기술보증기금에서 자금을 제공한다. 신용보증기금에는 ‘재도전 기업주 재기지원 보증제도’가 있다. 2001년 만들었던 ‘회생지원 보증제도’에 신규 보증을 늘리는 내용을 더해 지난해 11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폐업을 한 기업인에게 회생지원 보증과 신규 보증을 지원한다.



6년 넘은 지원제도 이용자 3건 뿐문제는 이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혜택을 받을 기업인에 대한 심사기준이 까다롭고 홍보가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5년부터 운영된 벤처기업협회의 ‘경영재기 지원제도’는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혜택을 받은 기업이 3곳에 불과하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한 번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또 자금을 집행한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너무 커 기술보증기금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신용보증기금에서 만든 ‘재도전 기업주 재기지원 보증제도’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직 혜택을 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신용보증기금의 양정일 차장은 “아직 홍보가 잘 되지 않아서 신청자가 많이 없는 것 같다”며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기 때문에 앞으로 혜택 받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제도가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재창업 자금지원 제도’다. 지난해 15개 기업에 15억200만원을 지원했고, 올해는 89개 기업에 122억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올 초 중소기업청이 목표로 정한 200억원 지원에는 크게 못 미친다.

이들 제도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기업은행경제연구소 신동화 연구위원은 “비슷한 제도가 늘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그 효과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년전 부도를 맞은 전직 기업인은 “지난 2년을 반 노숙 상태로 지냈다”며 “현 제도로는 나를 도울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이경희 소장은 “기존에 사업자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큰 차이점을 모르겠다”며 “보다 전문성을 강화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 개선해야재창업 지원제도 자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방만한 경영으로 벤처환경 자체를 흐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벤처기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신규 창업을 하는 사람들을 돕는 자금 지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실패를 경험했다는 이유로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원 자격 심사 기준이 까다로운 것도 이런 이유다. 자칫 지원한 기업의 생존율이 낮을 경우 ‘방만한 경영을 조장했다’는 비난에 시달릴 위험이 있다. 자연스럽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업도 줄어들고 있다. 고의부도를 내서 도덕성이 문제가 됐거나, 사업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기업에 지원을 하는 건 문제다. 하지만 지금처럼 까다로운 심사가 지속된다면 결국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기업만 계속 추가로 돕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작 도움이 절실한 상황을 외면한다는 것도 이들 제도가 가진 약점이다. 사업실패를 겪고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시기는 폐업을 선언한 직후다. 순간 빚더미에 앉고 가족 구성원간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오랜 기간 생활고와 외로움을 상대로 싸움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정작 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정책은 거의 없다. 창업 재기 지원제도 자체가 죽어가는 사람이 스스로 생존한 다음에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현 제도하에선 기업이 부도를 맞으면 과도한 책임이 대표에게 전가된다.

1997년 창업을 했다가 두 번의 부도를 겪은 후 2007년 재창업에 성공한 청진기 회사의 김모 대표는 “주변에 실패하는 분들을 보면 급격하게 재무상태가 안 좋아져 손 한번 못 써보고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며 “많은 분이 이혼을 하고 가족과 헤어지면서 결국 재기에 실패하더라”고 말했다.

재창업 지원정책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특히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에 대한 불만이 많다. 연대보증제도란 기업에서 대출을 할 경우 보증인을 두는 제도를 말한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대출로 사업을 시작한다. 이 경우 회사가 부도가 나면 고스란히 대표이사의 빚으로 남는다. 한국에서 실패한 기업인이 재기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이민화 카이스트 초빙교수는 오래 전부터 연대보증제도 폐지를 주장해왔다.

이 교수는 “현재 한국의 연대보증제도 아래에서는 10만 명이 창업할 경우 3년 후 5만 명의 신용불량자를 만든다”며 “연대보증제도를 통해 국가가 얻는 이익은 창업의지를 박탈해 생기는 손실의 100분의 1도 안된다”고 말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은 “기업이 망하면 그 회사의 빚 100%가 대표이사 개인의 빚이 되기 때문에 기업을 접어야 하는 시점에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 후에는 다음 기회라는 것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실패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많은 기업인에게 부도는 ‘부끄러운 일’이란 인식이 강하다. 최선을 다해서 경영했음에도 대외 환경 악화와 경험 부족 등으로 사업에 실패하는 경우는 흔하다. 문제는 이 경험을 살리고 공유하는 분위기 자체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이경호 부회장은 “기업인 간에 사업에 실패한 이야기는 잘 공유하지 않는다”며 “정말 친한 사이가 아니면 사업실패는 묻지도, 잘 말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재기에 성공한 사람들도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꺼린다. 본지 취재에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했고 간혹 인터뷰에 응하는 기업도 익명을 요구했다. 실패한 기업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직은 너그럽지 않아서다. 중소기업청의 자금 지원을 받아 재기에 성공한 제조업체 대표는 “내가 실패했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자금 지원을 받았던 회사라는 이미지가 남는 것도 싫다”고 말했다.

올 7월 서울시는 ‘창업실패 수기공모’ 행사를 진행했다. 창업에 실패한 원인을 분석해야 미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회 전체에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를 해도 경험은 남는다. 그게 또 다른 자산이다.



박성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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