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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 공포에 떠는 건설업계] 건설업계 줄도산 위기 확산

[부도 공포에 떠는 건설업계] 건설업계 줄도산 위기 확산

84년 역사의 한국 건설업 면허 1호 기업인 임광토건과 국내 30대 기업집단에 속하는 대림그룹의 계열사 고려개발. 일반 중견 건설회사와는 규모나 배경이 크게 다른 이 두 회사가 서울 명동 사채시장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건 서너 달 전이다. 소문을 확인이라도 하듯 신용평가회사들은 10월에 두 건설사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내렸다. 투자등급 하단(A3-)에 있던 임광토건의 단기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인 ‘B+’로, ‘A-’인 고려개발의 장기 신용등급을 ‘BBB+’로 강등했다. 고려개발은 신용등급이 추가로 강등될 수 있어 신용평가사가 주의 깊게 지켜보겠다는 의미의 ‘등급 하향 감시대상’에도 이름이 올랐다.

그로부터 한달 여만인 11월 중순과 말. 임광토건은 법정관리를, 고려개발은 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이에 따라 국내 100대 건설사 가운데 현재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을 받고 있는(신청 포함) 건설사는 모두 25곳으로 늘어났다. 건설업계 줄도산 위기감이 다시 확산하고 있다.



수도권 주택시장이 ‘늪’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을 신청한 건설사의 공통점은 수도권 주택시장에서 ‘KO펀치’를 맞았다는 것이다. 수도권은 주택시장 상황이 좋았던 2007년까지 건설사에게 ‘안전지대’로 꼽혔다. 분양 초기에 다소 미분양이 발생하더라도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모두 팔리는 게 그때까지의 패턴이었다. 2008년부터는 상황이 급반전했다. 가장 큰 원인은 공급이 증가한 것이다.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2008년 초까지 건설업체들이 한꺼번에 분양물량을 쏟아내 수도권 주택시장은 일시 공급 과다 충격에 시달렸다. 여기에다 2008년 발표된 정부의 보금자리주택정책은 직격탄이 됐다. 정부가 주변 기존 아파트 시세보다 분양가가 20~30%싼 보금자리주택을 2012년까지 수도권에만 60만 가구 짓겠다고 발표하자 수도권 주택수요자들의 주택매수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이다.

임광토건과 고려개발 역시 수도권에서 고배를 마셨다. 임광토건은 총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잔액의 56.5%를 차지하는 사업장 두 곳이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 있다. 고려개발은 총 PF 잔액의 79%를 차지하는 사업장이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성복에 있다. 이 회사는 최근 3600억 원 규모에 이르는 성복지구 아파트 사업장의 PF 대출 만기 연장을 앞두고 채권단에 금리 감면과 3년 만기 연장을 요청했지만 최종 합의에 실패했다. 워크아웃 신청 전날 모기업인 대림산업이 500억원을 수혈하는 등 긴급 지원에 나섰지만 자금난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용인 성복지구를 포함해 3곳의 사업장에서 총 4551억원 규모의 PF 보증 채무를 선 고려개발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주택경기 침체로 사업이 연기되고 금융회사들이 건설업체에 대한 대출을 억제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2009년부터 안양 사옥, 천안 콘도, 철구 사업소 등 보유자산을 매각하고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등의 자구노력을 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이들의 발목을 잡은 수도권 분양시장은 여전히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는 2만7101가구다. 문제는 전체 미분양의 3분의 2가 넘는 1만8328가구가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 미분양이라는 것이다.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2008년 전후 서둘러 분양에 나선 건설업체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이 기대되는 중대형을 집중적으로 분양하면서 중대형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발코니 확장 허용에 따른 실사용 면적 증가, 1~2인 가구 증가 등으로 중대형에 대한 수요는 이전에 비해 더 줄었다. 귀한 몸 대접을 받던 중대형이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합병 등 건설사 구조조정도 절실 주택시장 침체에 따른 입주지연도 문제다. 입주 직후 웃돈을 받고 되팔 생각으로 아파트를 분양 받은 투자 수요는 물론 실제 들어가 살려고 계약했던 실수요자까지 새 아파트에 제 때 입주하기 어렵다. 주택거래 위축으로 살던 집을 제대로 팔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입주 완료 소요기간이 2005년 5.5개월에서 2006~2007년 7.7개월, 2008년 8.6개월로 지연되고 있다. 2009년 이후에는 입주가 완료되지 않은 사업장이 많아 입주 완료기간이 산정되지 않을 정도다. 공사원가는 투입이 되는데 일정에 맞게 중도금과 잔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회사의 현금흐름은 나빠질 수 밖에 없다.

건설업체들은 공공공사나 해외공사 수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한다. 하지만 역시 전망이 밝지 만은 않다. 국내 건설업체 전체 수주 물량은 2008년 120조원에서 지난해 103조원으로 급감한 상황이다. 내년에는 공공부문 공사 발주가 7% 넘게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내년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22조원으로 책정됐다. 2009년과 2010년 25조원, 올해 24조원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그동안 4대강 사업 등 MB 정부의 관급발주가 건설사의 위축된 주택사업을 메워주는 역할을 해왔는데 이 특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내년부터 확대 시행할 예정인 최저가 낙찰제도 중소·중견 건설사엔 큰 부담이다. 최저가 낙찰자 대상 공사를 현행 300억원 이상에서 1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하면 중소 건설사의 줄도산이 불가피할 것으로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해외사업도 영원한 블루오션은 아니다. 국내 건설사의 해외공사는 중동지역의 산업설비와 인프라 구축수요가 주를 이룬다. 최근의 고유가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현대건설과 GS건설, 대림산업 등 국내 6개 메이저 건설사의 지난해 9월 기준 해외 플랜트 영업이익률은 7.1%로 양호한 수준이다. 2006년~2009년 6%에 비해서도 개선됐다. 그러나 최근 중국 등 저가공세를 펼치는 국가의 시장 진입으로 이익률이 떨어지고 있다. 2009년 80%대 초반까지 떨어졌던 원가율은 최근 90%대로 근접하고 있다.

단기간에 건설업계를 위기에서 구해낼 묘약은 없다. 다만 PF와 관련해서는 정부의 대책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많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지금 건설사들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한계 상황에 와있다”며 “일시 PF 부담이 큰 건설사에 대해서는 금융권을 통해 만기 연장을 해주는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건설사들의 부채비율이 높은 상황”이라며 “건설사 간 합병으로 덩치를 키우는 방식 등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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