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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경상수지 흑자행진] ‘불황형 흑자’ 그림자 드리운다

[불안한 경상수지 흑자행진] ‘불황형 흑자’ 그림자 드리운다

경상수지가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내년에는 수출 둔화, 소비 위축, 투자 부진 등으로 불황형 흑자가 우려되고 있다. 사진은 부산 감만부두 야경.

한국 사람들은 경상수지나 무역수지에 매우 민감하다. 무역의존도가 90%를 넘나들 만큼 해외 교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나라이니 무리도 아니다. 게다가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던 시기에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로 나라 전체가 위기에 빠진 기억도 아직 생생하다. 그래서 월별 경상수지는 언제나 경제면의 주요 뉴스가 된다. 불과 몇 달 전에는 월간 경상수지 흑자가 2억9000만 달러까지 줄어들어서 “적자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걱정을 하더니, 그 뒤 큰 폭의 흑자가 발생하자 ‘불황형 흑자’라는 말이 바로 나온다.



무역실적에서 수입 위축 부각 현재 상황을 불황형 흑자라고 부르는 건 엄밀하게 말하자면 잘못된 표현이다. 불황을 맞아 수출이 줄어들 때 수입이 더 크게 줄어서 오히려 흑자가 발생하는 걸 불황형 흑자라고 부른다.

올해 한국의 수출실적을 보면 오히려 예상외의 선전이나 호조라고 불러야 어울릴 것 같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재정위기로 몇 달째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수출은 10월 한 달 제외하고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계속 기록하고 있다. 12월 초가 되면 2011년 무역액 누계가 1조달러를 돌파할 게 거의 확실하다. 연간 수출 증가율은 20%선으로 예상된다. 여러 모로 ‘불황’이라 부르기는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황형 흑자라는 말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는 건 최근 무역실적을 놓고 볼 때 ‘수입 위축’이라는 면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팍팍한 국내경제 상황과 맞물리면서 10월에 발생한 42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놓고 불황형 흑자라고 평가하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수입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교역조건의 악화다. 2011년에는 수입단가가 폭등했다. 연초에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혼란으로 원유값이 급등하고, 이상기후에 따라 곡물값도 뛰어 올랐다. 기름 한 방울 안 나고, 많은 식료품과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비싼 돈을 주고 물건을 사오는 수밖에 없었다. 이 중 상당 부분은 수출단가에 반영돼 수출단가 역시 예년보다 많이 올랐지만 수입단가 상승폭에는 미치지 못했다. 싼 걸 팔아서 비싼 걸 사오게 된 것이다. 당연히 무역수지의 악화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올해 한국의 무역수지는 안정적인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11월까지 누계가 298억 달러다. 어찌된 일일까. 답은 ‘수입물량 위축’이다. 뛰어오르는 물가에 대응해 가계와 기업이 허리띠를 바짝 졸랐다. 그러다 보니 1분기부터 3분기까지 (가격 변동을 제외하고) 실질 기준으로 수출이 지난해보다 11.7% 증가하는 동안 수입은 8.3% 증가하는 데 그쳤다.

변덕스러운 원화 가치도 여기에 일조를 했다. 7월 하순 달러당 1050원이던 원화 가치는 10월 초순에는 1199원으로 떨어졌다. 요즘은 1150원 근처를 오가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등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의 혼란 때문이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여행 등 서비스 수입(輸入)이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3분기 실질 서비스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4%나 감소했다.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비스 수입이 감소세를 보인다는 건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교역조건 악화가 심하다는 얘기다.

수입 위축의 또다른 원인은 한국 수입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자본재 수입의 감소다. 자본재는 투자에 이용된다. 투자는 미래의 생산계획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드는 게 이치다. 그런데 내년 글로벌 경기는 올해보다 좋지 않을 전망이다. 2012년 경기에 대해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의 각종 연구소들이 앞다투어 어두운 수정전망을 내놓고 있는 형국이다.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면 한국의 수출도 둔화를 피할 수 없다. 수출전망이 흐려지면 투자가 줄어들고, 자본재 수입이 위축된다. 이런 면에서, 최근 자본재 수입의 감소세는 매우 우려스럽다. 내년 상반기 한국 경기가 좋지 못할 것이라는 선행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2000년대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소비 부진 또한 수입 위축의 원인이 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민간소비는 꾸준한 하락 추세다. 외환위기로 기업의 도산과 근로자의 실직이 이어지면서 소비심리가 얼어붙었다. 그 후 신용카드를 이용해 내수경기 부양을 시도했을 때 민간소비가 반짝 회복되는 듯했으나, 카드 버블이 터지면서 다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결국 외환위기 직전 60% 근처였던 민간소비/GDP 비율이 (실질 기준) 2011년에는 51.9%까지 떨어졌다. 900조원을 넘긴 가계부채, 불안정한 소득 흐름, 제조업 생산성 향상에 따른 고용창출력 약화 등을 고려할 때 이런 민간소비의 위축이 쉽사리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내년에는 어떻게 될까. 우선 수출 증가율은 올해보다 많이 낮아지겠지만 안정적인 증가세를 보일 전망이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건 신흥국 내수시장이다. 수출 위주에서 내수 중심 성장으로 전환하고 있는 중국을 필두로 많은 신흥국이 내수시장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재정위기에 빠진 선진국에 대한 수출만으로 먹고살기 힘들어진다는 걸 모두가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대두되고 있는 신흥국 중산층 공략에 한국 기업들이 성공한다면 우리 수출에는 여전히 활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최근 한국의 수출실적을 보면 이런 면에서 조심스럽게 낙관적인 전망을 해볼 수 있다.



내년에 수입은 다소 늘겠지만…수입도 다소 반등할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만성적인 소비 부진은 당장 해결되기 어렵고, 중장기적으로 소득을 안정적으로 증대시켜야 풀릴 문제다. 하지만 내년에는 원자재가격 상승률이 크게 하락하면서 교역조건이 개선되고, 원화 가치도 소폭이나마 상승 기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수입 위축 요인 중 단기적인 것들은 대부분 완화되거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서비스 수입(輸入)의 실질성장률은 플러스로 전환될 전망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최근 한국의 흑자행진을 ‘불황형’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현재 한국 경기를 불황이라 볼 수 없으며, 교역조건의 악화나 불안정한 환율 등 단기적인 요인들이 해결되면 수입도 반등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민간소비의 장기적 위축이나 내년 수출경기 둔화에 따른 투자부진 등 진짜 ‘불황’을 예고하는 요인들도 최근의 흑자행진에 분명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최근의 흑자는 한국경제의 경고등이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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