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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ury]명품 브랜드 M&A 나선 한국 기업
한국의 아르노(LVMH 회장)를 꿈꾼다

[luxury]명품 브랜드 M&A 나선 한국 기업
한국의 아르노(LVMH 회장)를 꿈꾼다

지난 1월 13일 오후. 현대홈쇼핑과 한섬의 주가가 껑충 뛰어올랐다. 한섬의 주가는 상한가 가까이 치솟으며 신고가를 경신했다. 그 동안 지지부진하게 끌어오던 매각이 성사됐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한섬의 새 주인은 현대백화점 자회사인 현대홈쇼핑으로 결정됐다.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 한 주인공은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40). 현대백화점그룹 정몽근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그는 2008년 취임 후 처음으로 인수합병에 나서 ‘알짜 물건’을 품에 안는데 성공했다. 정 회장은 이번 인수합병 성사를 위해 올 초 한섬 정재봉 사장을 만나 직접 담판을 지었다. 한섬의 지분 34.6%를 4200억원에 인수하며 경영권을 확보했다.

한섬은 연 5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패션 업체다. 정재봉 사장은 한섬을 탄탄하게 운영해왔으나 마땅한 후계자가 없어 자신과 가족이 보유한 한섬 지분을 매물로 내놨다. 그간 SK네트웍스, 이랜드 등 많은 대기업이 입질을 했지만 모두 무산됐다. 매물로 나온 지 오래 되면서 업계에서는 “탐나는 회사지만 너무 비싸게 내놔 협상이 만만치 않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패션계 뜨거운 감자를 삼킨 인물이 그간 좀처럼 나서지 않아 ‘조용한 CEO’로 알려졌던 정지선 회장이라는 점에서 업계는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인다. 그가 직접 움직인 이유는 뭘까. 그는 새해 ‘비전 2020’을 발표하면서 사세 확장을 선언했고 신성장 동력으로 M&A를 꼽았다. 정 회장의 새해 벽두 행보는 한섬 인수로 탄력을 받았다. 이번 일로 공격 경영에 가속도를 높일 전망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은 해외 명품 브랜드를 아예 인수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제일모직은 지난해 말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콜롬보(COLOMBO Via Della Spiga)의 지분 100%를 인수하며 글로벌 럭셔리 사업을 본격화했다. 1937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어거스트 콜롬보가 만든 최고급 명품 피혁 브랜드인 콜롬보는 악어가죽 핸드백 으로 유명하며 국내에서는 ‘사모님 백’으로 통한다.

해외 브랜드 사냥에 적극 나선 이서현 부사장은 원래 세 개의 브랜드를 놓고 인수를 저울질해왔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브랜드 지안프랑코 페레와 명품 패딩 브랜드 몽클레어, 그리고 콜롬보가 유력 후보였다. 소문이 퍼지자 유수의 국내외 패션그룹들이 콜롬보 인수에 뛰어들었고 M&A를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했다.

이 부사장은 콜롬보의 소유주인 모레티 가문과 직접 접촉해 경쟁자들을 제치고 인수를 성사시켰다. 삼성은 세계가 인정하는 초일류 기업이다. 그러나 패션 부문에서는 그리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그래서 이 부사장의 글로벌 명품 브랜드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강했다고 한다. 그녀는 콜롬보를 루이비통이나 에르메스처럼 한국이 보유한 최고의 글로벌 명품 브랜드로 키운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제일모직은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다. 브랜드 리뉴얼을 위해 밀라노 본사 매장을 개조해 올 봄에 재 오픈 할 계획이다. 최근엔 에르메스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몰려 있는 신흥 명품 거리인 서울 도산공원 앞 3층짜리 단독 건물을 콜롬보 매장 겸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해 67억 원에 매입했다.



유럽 경제 위기로 매물 쏟아질 듯 김진면 제일모직 전무는 “신흥 부유층이 빠르게 늘어나는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다는 전략적 판단 아래 최고급 명품 브랜드 콜롬보를 인수했다”며 “글로벌 패션 사업을 위해서는 헤리티지가 있는 명품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콜롬보를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제일모직은 콜롬보를 글로벌 명품 시장 진입의 교두보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2001년 구찌 그룹에 인수된 후 글로벌 브랜드로 재탄생한 보테가 베네타, 싱가포르 호텔·패션 그룹인 클럽21이 인수한 멀버리 등을 벤치마킹 할 예정이다. 제일모직 글로벌 사업의 첨병이 될 콜롬보의 경우 가죽 제품 외에 선글라스, 구두, 의류 등으로 라인을 확대해 상품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 세계 명품 수요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 및 홍콩 시장 진입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매장 100개, 매출 3000억 원 규모의 글로벌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패션 업계의 강자인 이랜드 그룹도 노련한 솜씨로 다양한 해외 패션 브랜드를 식구로 만들고 있다. 중국 패션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랜드는 유럽 경제 침체에 따라 매물로 나온 브랜드를 여럿 낚아챘다. 1995년부터 브랜드 사냥을 시작해 지금까지 총 6개의 유럽 브랜드를 사들였다. 2010년 이탈리아 스포츠 브랜드 벨페, 스코틀랜드 패션 브랜드 피터스콧과 제화 브랜드 라리오를 인수했다. 지난 7월에는 이탈리아 고급 브랜드 만다리나덕을 700억 원에 사들여 세계 패션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인도 3위 의류업체인 무드라 라이프 스타일을 500억 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이랜드는 무드라 라이프 스타일의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인 무라릴랄 아가왈 회장 등 오너 일가가 보유한 이 회사 지분 54.4%를 사들였다. 이랜드 관계자는 “인도 인구가 11억 명에 이르고 소득 수준도 높아지면서 브랜드 의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며 “저렴한 인건비와 뛰어난 직물 품질 덕분에 차세대 패션 생산기지로 좋은 조건을 갖췄다”고 인수 배경을 설명했다.

이랜드는 무드라의 생산 시설을 활용해 인도 내수 시장은 물론 다른 나라에도 판매할 계획이다. 특히 오는 2020년까지 중국 매출을 10조원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인도와 베트남 시장 매출도 각각 1조원을 넘긴다는 중장기 비전을 세워놓고 있다. 중국을 꼭지점으로 베트남과 인도를 잇는 패션 트라이앵글을 구축해 2020년 세계 10위의 글로벌 패션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앞으로도 M&A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게 박성수 회장의 생각이다.

두 회사가 전략적으로 조인트 벤처를 만들어 해외 브랜드를 인수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5월 휠라코리아와 미래에셋PEF는 컨소시엄을 통해 미국 포춘브랜즈사로부터 자회사인 아큐시네트 지분 100%를 인수했다. 아큐시네트는 타이틀리스트(골프공 세계 1위), 풋조이(골프 신발 및 장갑 세계 1위) 등을 보유한 세계적인 골프용품 업체다. 휠라코리아 윤윤수 회장은 “아시아 시장에 대한 휠라의 축적된 노하우와 방대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마련하겠다”며 “아큐시네트 인수로 휠라코리아가 세계적인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휠라코리아는 계속해서 매물 찾기에 나서고 있다. 좋은 브랜드를 인수해 글로벌 명품 스포츠 브랜드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지난 2000년 후반부터 시작된 국내 패션 업계 M&A가 올해 봇물을 이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G패션 관계자는 “국내 패션 업체들은 글로벌 패션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브랜드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특히 올해는 유럽과 미국 경기 악화로 매물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돼 굵직한 M&A를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장품 업계의 대표주자인 아모레퍼시픽은 프랑스 명품 향수 브랜드를 인수해 유럽 진출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아모레퍼시픽 해외지주회사인 AGO(AMOREPACIFIC Global Operations Ltd.)는 지난 8월 미국계 사모 펀드인 스타우즈캐피탈과 프랑스 명품 향수 브랜드 아닉 구딸의 지분 100%를 인수하는데 합의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번 인수를 통해 럭셔리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다양해진 제품군으로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및 글로벌 시장 확대에 나설 예정이다. 아닉 구딸은 아시아인의 취향에 맞는 명품 향수로, 아모레퍼시픽은 아시아 향수 사업 장악의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기대한다.

국내 패션 기업들이 해외 패션 브랜드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유럽의 경제위기다. 재정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이탈리아 등 유럽 지역 패션 브랜드가 홍콩증권시장을 통해 매물로 나오고 있다. 이를 M&A 전문 회사들이 국내 패션 업체들과 연결시키고 있다. 골드만삭스, 맥쿼리, 삼일회계법인 등 여러 펌이 중매쟁이로 나서 브랜드 인수 합병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경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국내 경제 환경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글로벌 유명 브랜드의 국내 직접 진출과 저성장 시대에 돌입한 국내 패션 시장 환경의 변화다. 중국·인도·동남아 등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얼굴’도 필요했을 것이다. 브랜드 로열티가 높은 글로벌 브랜드를 인수할 경우 신규 브랜드 론칭보다 매출 효과가 크다. 또한 글로벌 패션 업체로 단번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인수 후 대부분 기업들 성공셋째는 MCM과 루이까또즈, 휠라 등의 성공 사례에서 힘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휠라코리아의 휠라 본사 인수, 성주D&D의 MCM, 태진인터내셔날 루이까또즈의 성공적인 안착이 국내 패션 기업들이 해외 브랜드 인수에 적극 나서는 배경이 되고 있다. 휠라와 성주는 국내 패션 시장 성공을 디딤돌로 해외 시장 포션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07년 글로벌 사업권을 인수한 휠라 그룹은 유럽, 미국 등 현지화 전략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2005년 독일 브랜드 MCM을 인수한 성주D&D는 전 세계 35개국에 이르는 글로벌 마켓을 개척하며 뉴 럭셔리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 MCM의 2010년 총 매출은 2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구찌(1942억원)와 샤넬(1881억원)을 뛰어넘는 것이다.

루이까또즈 역시 2010년 16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프라다(897억원)와 에르메스(792억원)를 제쳤다. 루이까또즈는 2006년 인수 당시 500억 원이던 매출을 인수 이후 꾸준히 끌어올렸다. 2011년 매출은 전년 대비 52% 성장한 2000억원을 달성했다. 인수 당시에 비해 네배 신장한 기록이다. 인수한 브랜드가 좋은 성적을 냄에 따라 우리 기업들의 해외 패션 브랜드 인수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명품 브랜드에 대한 수요가 많았던 일본 기업들은 지금 제 앞가림 하기도 바쁘다. 중국은 돈은 많지만 경영 능력이 뒤떨어진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한국의 아르노(명품 브랜드 M&A로 럭셔리 왕국을 건설한 LVMH 회장)’가 나올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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