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Korea] 한국은 아직 ‘1교시’
[Lifestyle Korea] 한국은 아직 ‘1교시’
강원도 양양의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교사로 일하는 신미자(49)씨는 2남 1녀를 모두 홈스쿨링으로 키웠다. 중국의 상하이중의약대학에서 중의학을 전공하는 맏딸 곽시언(23)씨는 졸업 후 유럽이나 북미로 건너가 의사가 되고 싶어한다. 둘째 진언(22)씨는 재즈밴드 ‘원 소울’에서 드럼을 친다. 그는 밴드를 통해 얻은 수입으로 2년 전 자립하여 동생 승언(17)군과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산다. 승언군은 힙합 크루 ‘바디 앤 소울’의 댄서다. 지난 2월에 열린 이천청소년댄스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그는 또래처럼 입시에 매달리지 않고 오로지 춤만 생각한다.
일찍이 남편과 이혼한 신씨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갔다. 신씨가 일과 가사, 그리고 자녀 교육을 혼자 힘으로 해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천차만별인 아이들의 개성에 맞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는 굳은 신념이었다. 신씨는 아이들이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일 때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 “공교육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 아이들의 교육을 학교에 전부 내맡기는 건 옳지 않다.”
한양대학교 사이버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영어홈스쿨링 과정을 강의하는 장진태 교수(영어학)는 “홈스쿨링은 공교육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가 스스로 학습을 계획하고 실천해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정한 교육이란 부모가 아이에게 맞는 교육과정을 설계해 주고 그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거나 기관을 섭외해 주는” 일이라고 했다. 그 기관에는 학교도 포함된다.
예컨대 미국 워싱턴주에는 홈스쿨링하는 아이들이 필요한 학교 수업을 선별적으로 듣도록 해주는 제도가 있다. 학교에 보내든 보내지 않든, 교육에서 부모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학교에 다니는 자녀의 교육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 인성교육부터 예체능교육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교육을 학교가 도맡아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예체능교육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입시준비라는 미명하에 허울만 남는다. 자녀의 교육을 직접 설계하고 싶어하는 부모들이 홈스쿨링을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처럼 획일화된 우리나라 공교육이다. 세 아이를 중학교 과정까지 홈스쿨링으로 교육시킨 김지혜(46)씨도 “부모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육을 우선해서 시킬 수 있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영어 교사였던 김씨는 자녀들에게 외국어를 중점적으로 교육시켰다. 미국 교재로 영어를 직접 가르쳤고 다른 과목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맏딸 이예림(21)씨가 홈스쿨링으로 중학교 과정을 마치자 영어를 사용하는 중국 대련의 풍엽국제학교로 보냈다. 그리고 1년 뒤 김씨도 둘째 찬희(19)양과 막내 신일(18)군을 데리고 대련으로 이사했다. 올해 예림씨는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국제학부에 입학했다. 국제학부의 전형은 수능 없이 내신과 영어성적, 자기소개서 등 서류와 영어면접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홈스쿨링을 한 이씨에게 불리하지 않았다. 찬희양과 막내 신일군은 현재 예림씨가 졸업한 풍엽국제학교를 다닌다.
신씨 세 자녀의 관심분야는 제각각이었다. 처음에는 자녀 모두에게 여러 가지 교육을 시켰다. 홈스쿨링하는 몇몇 부모 들과 힘을 합해 음악, 과학, 사회, 역사, 바이올린, 플룻, 중국어 등을 가르쳤다. 체육은 집 근처 체육관을 다니거나 국궁을 배우며 보완하도록 했다. 시간이 지나자 자녀들의 저마다 다른 관심과 재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언씨는 공부에, 진언씨와 승언군은 각각 음악과 춤에 흥미를 보였다고 신씨는 말했다. “시언이는 어렸을 때부터 플룻에 소질이 있었다. 전문적인 교육을 시켜 보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본인이 공부를 하고 싶어했다. 반면 다른 아이들은 공부에 흥미를 못 느꼈다.” 그래서 신씨는 시언씨가 원하는 공부를 계속하도록 중국으로 유학을 보냈고, 나머지 두 아이에게는 음악과 춤 활동이 가능한 동호회를 연결해 주었다.
공교육은 맞춤 교육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학교 교육과정을 소화하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반면 홈스쿨링에서는 “주도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진언씨는 말했다. 그는 틀에 박힌 교육 대신 다양한 경험을 충분히 쌓았고, 어려서부터 어머니 신씨를 비롯한 많은 선생님들과 진로를 상담했다. 그리고 그는 드럼을 선택했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는 점 또한 홈스쿨링만의 장점이다. 대구시에 있는 좋은가족교회의 담임목사 권창규(41)씨는 세 딸을 10년째 홈스쿨링으로 가르친다. 그는 매달 한 번씩 가족과 견학을 간다. 지난번에는 청와대, 국회의사당, 대법원 등을 방문하고 공직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삼일절에는 독립기념관을 방문했고, 5월이 되면 4주 동안 효도교육과 한국의 전통사상을 배울 계획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온 가족이 모여 ‘가족의 밤’을 보낸다. 밤 늦게까지 재미있는 이야기나 고민거리를 나누는 자리다.
홈스쿨링에 돈은 많이 들지 않을까? 신씨는 “등록금에 책값, 애들 교통비, 사교육비 등을 포함하면 홈스쿨링이나 공교육이나 비용에서는 큰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첫 아이가 초등학교를 마쳤을 때 둘째는 6학년이었고 셋째는 3학년이었다. 그때 애들 모두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나는 방과후 교사를 했다. 학교에 나가면서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가 직접 가르쳤다. 처음 3년간엔 이렇게 혼자서 했다. 그러나 그 다음엔 다른 홈스쿨링 부모 두 집과 함께 했기 때문에 생계와 교육을 어렵지 않게 병행해 나갈 수 있었다.”
홈스쿨링은 1990년대 후반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홈스쿨링 가정을 쉽게 찾아 보기는 어렵다. 홈스쿨링 통계도 거의 없다. 대안교육 전문 출판사 민들레의 현병호 대표는 “홈스쿨링 부모들은 보통 강한 신념과 개성이 있어 조직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출판사 창립 초기인 1990년대 후반에 수십 가정을 모아 홈스쿨링 모임을 만들었지만 부모마다 뜻이 달라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그 뒤에도 몇 차례 모임을 만들어 보려 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2006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 수를 바탕으로 추산한 홈스쿨링 가정 수는 약 1000가구였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 최현석 사무관은 “정확한 숫자가 아니다. 이후로 홈스쿨링 통계를 잡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실 국내에서 홈스쿨링은 대단히 제한적이다. 홈스쿨링을 보는 사회적 시선이 따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학교를 두고 집에서 교육을 시키는지 이해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김지혜씨는 “처음 시작했을 때 주위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부모뿐만이 아니다. 김씨는 “주변의 시선에 민감할 나이였던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홈스쿨링은 고사하고 대안학교를 바라보는 시선도 편하지 않다. 일례로 대전시 교육청은 지난해 초부터 대안학교 설립을 추진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전시 교육청은 처음 계획했던 상대동과 성북동의 대안학교 설립계획이 주민들의 반대로 잇따라 무산되자 용문동으로 계획을 바꿨다. 그런데 이번에는 용문동 주민들이 반대시위를 벌인다. “비정상적인 아이들이 다니는 대안학교 건립은 절대 안 된다”는 주장이다.
홈스쿨링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우선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을 염려한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자녀를 둔 정정미(42)씨는 “아이가 부모하고만 지내다 보면 사회에 나가서 잘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홈스쿨러들은 홈스쿨링과 사회성의 상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시언씨는 오히려 “홈스쿨링은 또래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어 사회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어머니 신씨의 지인들로부터 플룻, 국궁, 프랑스어 등을 배우면서 그들과 친분을 쌓았다. “현재 학교에서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어머니 나이대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다.” 권 목사 역시 “학교에서 형성되는 사회성은 또래집단 사이에서 뿐”이라며 “성숙한 사회성을 키우는 데는 어른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엔 홈스쿨링의 법적인 절차나 정부의 지원은 없다. 2009년 민주당 김춘진 국회의원의 발의로 홈스쿨링과 미인가 대안학교 법안을 논의하는 공청회만 한 차례 열렸을 뿐이다. 장진태 교수는 “특성화 교육이 논의되기 시작한지 10년도 더 됐지만 아직 정부에서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며 정부가 하루 빨리 홈스쿨링도 양성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사무관은”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아직 구체적인 정책 검토가 없었다는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홈스쿨링은 편법으로면 가능하다. 초·중등교육법 제13조에 따르면 특정 연령에 달한 아동을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취학시켜야 한다. 이런 의무취학을 면제 받으려면 학교측에 홈스쿨링 사실을 알려야 한다. 학교측과 협의 후 3개월간 학교에 출석하지 않으면 정원 외 관리대상으로 분류되고, 이때부터 검정고시 자격을 부여 받게 된다. 그러나 정원 외 관리대상은 본래 홈스쿨링 때문에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따라서 학교측이 협조하지 않으면 홈스쿨링을 하는 학부모는 의무교육법 위반의 범법자가 된다.
10만 가정 이상이 홈스쿨링을 한다고 알려진 영국은 의무교육을 ‘학교출석 또는 그 외의 방법(either by regular attendance at school or otherwise)’으도 가능하도록 규정해 다양한 방법의 교육을 장려한다. 따라서 홈스쿨링을 하면서도 학생들은 대안학교 수업이나 공립학교의 수업도 선택적으로 들을 수 있다. 교육의 자율성과 아이들의 학습권, 부모의 교육권이 모두 존중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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