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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국내 제약사 - 해외 겨냥한 신약개발로 비상구 찾아

위기의 국내 제약사 - 해외 겨냥한 신약개발로 비상구 찾아

2000년대 들어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자 증가로 의약품 소비가 급증하면서 국내 제약사들의 실적은 고공비행을 거듭했다. 동아제약의 매출은 2000년 4179억원에서 2009년 8011억원으로 두 배로 늘었다. JW중외제약의 매출은 같은 기간에 2162억원에서 4551억원으로, 유한양행은 2205억원에서 6303억원으로 186%의 성장률을 보였다. 한미약품의 매출은 1491억원에서 6161억원으로 무려 313% 늘었다.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한 시점에 한미약품의 고혈압약 ‘아모디핀’, 유한양행의 고지혈증약 ‘아토르바’, 동아제약의 항혈전제 ‘플라비톨’ 등 연 매출 500억원에 육박하는 대형 복제약(제네릭)이 속속 등장하며 국내사의 성장세를 이끌었다. 이후 국내 제약사 실적 중 대부분이 복제약 영업에서 나왔다. 하지만 복제약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국내 제약사들 입장에선 양날의 칼이었다. 동일 성분에 많게는 100개 이상의 제품이 시장에 쏟아지면서 복제약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제약사들의 복제약 시장 경쟁은 전쟁에 가깝다. MSD의 고지혈증약 ‘조코20mg’은 현재 56개 품목의 복제약이 시장에 등장한 상태다. 당뇨병약 ‘아마릴2mg’의 복제약은 84개 품목이 등재됐다. 연 매출액이 200억원대에 불과한 얀센의 소염진통제 ‘울트라셋’의 복제약은 무려 141개 품목이 진입했다. 복제약은 진출 영역도 가리지 않는다. 국내사가 개발한 천연물신약 ‘스티렌’(동아제약), ‘조인스’(SK케미칼)는 아직 특허가 만료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각각 53개, 41개의 복제약이 식약청 허가를 받았다. 최근 비아그라 복제약 시장에 20여개사가 뛰어드는 것도 업계에서는 새삼 놀랄만한 소식이 아니다.



리베이트 규제 후 복제약 영업 악화제약사들이 저마다 똑같은 제품으로 영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금품이나 물품으로 의사와 약사를 사로잡는 불법 리베이트 경쟁이 이어졌다. 심지어 처방액의 5~6배를 현금으로 제공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2007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의 리베이트 감시가 본격화되면서 제약업계 화두는 ‘리베이트 근절’이었다. 정부는 의약품 리베이트만을 수사하는 리베이트 전담반까지 꾸렸다. 정부의 리베이트 감시 활동이 강화되면서 제약사들이 적극적인 영업활동을 펼치지 못하게 됐고, 이는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동아제약의 지난해 매출은 9073억원으로 2009년보다 13.3% 증가하는데 그쳤다. 유한양행은 2년 동안 매출이 불과 4.9% 늘었고, JW중외제약은 5.3% 줄었다. 한미약품은 이 기간에 창립 이후 최초로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들어 대형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만료로 복제약 시장의 진출 기회는 늘었다. 하지만 제약사들은 정부의 리베이트 감시로 대형 복제약 영업에 소극적인 상태다. 이런 가운데 기존에 팔고 있던 전문의약품의 매출도 정체를 보이면서 국내 제약업계 위기감이 깊어지고 있다.

신약이나 개량 신약 같은 경쟁력을 갖춘 신제품을 발굴하지 못한 국내 제약사들은 글로벌 제약사에 손을 내밀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의 제품을 대신 판매해주면서 외형이라도 확대하자는 취지다. 부동의 업계 1위 동아제약은 GSK와의 전략적 제휴로 B형간염약 ‘제픽스’ ‘헵세라’, 천식약 ‘세레타이드’ 등을 판매하고 있다. 바이엘과 손잡고 ‘아스피린’을 비롯한 일반약도 직접 유통 중이다. 전통적으로 다국적제약사의 수입약 의존도가 높은 대웅제약도 최근 화이자의 폐렴백신 ‘프리베나’를 비롯해 베링거인겔하임의 일반의약품 9개 품목, MSD의 고지혈증약 ‘바이토린’ 등 꾸준히 수입약을 판매 중이다.

유한양행은 최근 들어 수입약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2010년부터 UCB의 일반약 8개를 판매하고 있으며 베링거인겔하임이 개발한 고혈압복합제 ‘트윈스타’, 길리어드의 B형간염치료제 ‘비리어드’ 등 대형 품목을 도입했다. 그동안 다른 업체들에 비해 실적이 그나마 괜찮았던 종근당도 로슈의 ‘타미플루’ 등 수입약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백신과 같은 자체 개발 제품 비중이 큰 녹십자 역시 아스트라제네카의 고혈압약 ‘아타칸’을 공동으로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LG생명과학은 화이자의 복제약을 대신 생산해주고 있다.

제약업계가 어려워지고 있는 와중에 유례없는 대형 악재가 터졌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해 종전보다 약가 산정 기준을 대폭 낮춘 새 약가제도를 올해부터 도입했다. 4월부터는 기존 판매중인 제품에도 새 약가제도를 적용하면서 건강보험을 적용 받는 의약품의 약가가 평균 14% 인하됐다. 약가 인하에 영향을 받는 전문의약품은 전체 의약품 시장의 85%에 이른다. 산술적으로 제약업계 전체 매출의 10% 이상이 한 번에 줄어든 것이다. 제약사들의 영업이익이 매출의 10%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약가 인하만으로 영업이익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지난해 11월 제약사 임직원 1만여명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약가 인하 정책을 규탄하면서 “신약 개발이 위축되고 제약사 종사자 8만명 중 2만명이 실업자가 된다”고 성토한 것도 엄살은 아니었다. 약가 인하의 여파는 예상보다 컸다. 녹십자를 제외한 상위제약사들은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정체를 보였고 영업이익은 큰 폭 줄었다. 동아제약, 유한양행, 종근당 등은 매출이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고 대웅제약, 한미약품, JW중외제약, LG생명과학, 한독약품, 일동제약의 매출은 지난해보다 감소했다.

노인인구와 만성질환자 증가로 제약사들의 매출은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증가세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약사들의 매출이 집단으로 감소세를 기록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영업이익의 경우 상당수 업체들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추락했다. 한미약품의 영업이익은 10억원에 불과했고 LG생명과학과 일동제약은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약가 인하 후 제약사 영업익 급락제약사들은 통상 2~3개월 판매분을 도매나 소매 약국에 미리 공급한다. 제약사들이 4월 약가 인하 이전에 공급한 대부분 제품에 대해 반품을 받고 출하량을 조절하면서 현재 제약사 전반적으로 매출이 정체 상태다. 국내 제약사가 글로벌 제약사의 수입 신약 판매를 늘리면서 매출원가가 높아진 것도 수익성 악화를 부추기고 있다.

리베이트 규제, 약가 인하 등의 악재와 실적 부진에 따라 제약사들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 제약사의 매출 대비 판매관리비 비율은 2007년 40.8%에서 지난해 37.3%로 줄었다. 삼일제약 등 일부 업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상당수 업체들은 올해 채용 규모를 예년에 비해 큰 폭으로 줄이고 있다. 약가 인하 이후 수익성이 큰 폭으로 낮아지자 가동하지 않는 공장을 활용해 다른 업체의 의약품을 대신 생산하려는 기업들도 부쩍 증가하고 있다. 한국제약협회 조사 결과 녹십자, 유한양행, JW중외제약, 한독약품, 휴온스 등 35개사가 다른 제약사 제품의 수탁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쉬는 공장이라도 활용해 매출이라도 늘려 보겠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이어 수입약 팔고 수탁 제조도4월 약가 인하 효과가 본격적으로 반영된 2분기 이후 실적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상위제약사 개발본부장은 “한마디로 답이 안 보인다”며 “100년 제약업 사상 최악의 영업환경”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는 현 상황을 경쟁력 있는 업체만 살아남게 되는 계기로 보고 있다. 국내 의약품 시장 규모는 13조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완제의약품 공장을 인증 받은 업체는 247곳에 달한다. 2010년 기준 매출 1000억원 이상을 기록 중인 업체는 30개사에 불과하다. 30개사의 매출이 전체 의약품 매출의 86.1%을 점유한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제약업황이 나빠져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영업환경이 열악해지게 되면 신약 개발 능력을 갖춘 제약사들만이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상위제약사들은 없는 살림에도 신약 개발 비중을 높이고 있다. 1분기 기준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이 10%가 넘는 업체는 LG생명과학, 한올바이오파마, 안국약품,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진양제약, 대웅제약, 동아제약, 보령제약, 종근당 등 9개사에 달한다. 지난해 1분기에는 LG생명과학과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두 곳에 불과했다. 더디지만 신약 성과도 조금씩 나타날 조짐이다. 지금까지 국내 제약사가 허가 받은 신약은 18개 품목이지만 지속적으로 연 매출 100억원 이상을 기록 중인 제품은 동아제약의 발기부전치료제 ‘자이데나’ 뿐이다. 최근 보령제약의 고혈압치료제 ‘카나브’, 일양약품의 백혈병치료제 ‘슈펙트’ 등 글로벌 시장에서 가능성이 있는 제품들이 속속 개발됐다. 동아제약, 녹십자 등은 천연물신약을 내놓으며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미약품, 한올바이오파마, LG생명과학, 종근당, JW중외제약, 대웅제약 등은 두 가지 약물을 섞어 만든 개량신약 개발에 착수했다. 셀트리온, 메디포스트, LG생명과학, 녹십자 등은 바이오시밀러, 줄기세포치료제 등 바이오의약품으로 세계 시장을 두드릴 태세다.

해외 시장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업체도 늘고 있다. 지난해 완제의약품 수출 실적은 11억5365만 달러로 수입 규모 30억5828만 달러의 3분의 1 수준이다. 동아제약은 지난해 중국 상해의약집단과 발기부전치료 신약 ‘자이데나’ 수출 계약을 맺었다. 자이데나는 미국 FDA 승인을 받고 진행한 임상3상시험을 완료, 미국시장 진출 채비도 갖추고 있다. 또 동남아시아에 천연물신약 ‘모티리톤’을 공급할 계획이다.

한미약품은 미국 머크사와 두 가지 고혈압약을 섞어 만든 복합 개량신약 ‘아모잘탄’을 50개국에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수출 규모는 총 20억 달러로 이는 국내 제약사가 체결한 가장 큰 규모다. 녹십자는 혈우병치료제를 미국, 우크라이나 등에 수출할 예정이다. 보령제약은 자체개발 고혈압 신약 ‘카나브’를 멕시코에 수출하는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대원제약, 한국유나이티드제약, SK케미칼, 삼진제약, 대웅제약, 영진약품도 해외에 완제의약품 수출을 시도하고 있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부터 해외시장 진출을 꾀하는 행보도 늘고 있다. 애초에 임상시험을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진행하면서 신속하게 현지 허가를 획득하겠다는 목표다. 일양약품은 백혈병치료 신약 ‘라도티닙’의 임상3상시험을 인도·태국 등 아시아권 6개국에서 진행 중이다. SK케미칼은 항암제 개량신약 ‘SID530’의 유럽임상을 마무리한 상태다. 동아제약은 자체개발한 슈퍼항생제 ‘DA-7218’의 상품화를 위해 다국적제약사와 손을 잡았다. 특히 미국 트리어스 테라퓨틱스에서 최근 독일제약사 바이엘로 이 제품의 판권이 이동하면서 개발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JW중외제약은 새로운 표적항암제 ‘CWP231A’의 임상1상시험을 미국에서 진행한다. 녹십자도 미국에서 혈우병치료제의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복제약 위주의 영업에서 벗어나지 않는 현실에서 정부 규제 등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지만 3~5년 후에는 본격적인 신약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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