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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mpagne Flows While Syria Burns 전운 속에도 파티는 계속된다

Champagne Flows While Syria Burns 전운 속에도 파티는 계속된다

시리아에서 독재 타도 시위가 종파 갈등의 양상을 띤 폭력 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데도 다마스쿠스의 친정부 엘리트층들은 호화생활을 멈추지 않는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다마 로즈 호텔에서 풀장 파티가 막 시작됐다. 선탠 오일을 발라 번들거리는 근육질 몸들이 아델의 흥겨운 히트곡 ‘Someone Like You’에 맞춰 흐느적거렸다. 커다란 스피커 위에선 러시아무희가 젊고 아름다운 시리아 젊은이들 앞에서 섹시한 춤을 선보였다.

그들은 레바논산 수입 맥주를 소금과 레몬을 안주 삼아 홀짝거렸다. 하지만 그들 뒤로는 시커먼 연기기둥이 솟아올랐다. 차량폭탄과 폭발, 다가오는 전쟁의 조짐이었다.몸에 딱 붙는 수영복을 입은 한 여성은 장난으로 물총을 쏘아댔다. 그녀는 자신이 친정부민병대 ‘샤비하(유령 또는 폭력배라는 뜻)’ 소속이라고 농담했다. 여성과 어린이 다수를 포함해 100명 이상을 학살했다고 알려진 무장단체다. “반군이 우리를 죽이고 싶어한다”고 그 여성이 말했다.

“그들은 페이스북에서도 그렇게 선언했다”며 그녀는 즐거운 듯이 자신에게 물총을 쏘아댔다.갈수록 유혈이 낭자한 전투가 벌써 15개월 째 시리아를 휩쓴다. 반군과 바샤르 하페즈 알-아사드(46) 대통령의 잔혹한 정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으로 유엔에 따르면 최소한 1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독재 통치에 반대하는 시리아인들의 시위가 종파적 갈등 양상을 띤 폭력 분쟁으로 비화한 뒤 이제는 이웃 나라까지 번질 기세다.기자들에게 시리아는 취재하기 어렵고 위험한 곳이다. 지금까지 대다수의 특파원 보도는 홈즈와 훌라 같은 도시와 마을에서 독재자를 타도하려는 반군의 투쟁에 초점을 맞췄다.

다마스쿠스에서 친정부 엘리트들의 삶은 외부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다마스쿠스를 취재하면서 그곳의 엘리트 수십 명과 대화를 나눴다(그들은 여전히 아사드 정권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종합해 보면 그들에게서 받은 인상은 즐거운 오락(distraction)과 어쩌면 착각(delusion)에 의해 억눌러진 깊은 두려움(a deep sense of dread)이다.다마스쿠스는 오랫동안 아사드 지지자들의 근거지였다.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와 기독교인이 다수지만 수니파도 있다. 그들에게는 아사드가 ‘안정의 보증인(guarantor of stability)’이다. 그들 다수는 만약 반군이 승리하면 시리아가 사우디아 라비아나 예멘처럼 더 보수적인 종교 국가로 변질된다고 두려워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군이 반군을 진압할 능력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장 섬뜩한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전투가 계속되면서 내전(civil war)으로 확대되는 상황을 말한다.며칠 동안 나는 쿵쿵 울리는 흥겨운 음악을 들었고, 내가 머문 다마 로즈 호텔 풀장 파티에서 야광 빅토리아 시크릿 비키니를 입은 미인들을 봤다. 사실 불타는 로마를 내려다보며 수금을 튕기고 유흥을 즐긴 폭군 네로가 떠오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분명 시리아는 정신분열증의 나라가 됐다(Syria has become a schizophrenic place). 사람들이 현실감을 잊어버린 곳이었다(a place where people’s realities no longer connect).한쪽에는 아사드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는 반군이 있다(다마스쿠스에서는 그들이거의 보이지 않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포격과 총격, 러시아워에 차량 바닥에 테이프로 붙인 수제 폭탄의 잇따른 폭발로 다마 스쿠스는 두려움에 휩싸여 반군을 향한 그들의 분노가 더 격해졌다. 정부는 반군이 ‘외국 간섭주의자들(foreign interventionists)’의 지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두마와 바르제 같은 다마스쿠스 교외 지역에서는 매일 같이 충돌이 발생했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현재 약 3만5000명이 시리아 곳곳의 수용소에 갇혀 있다.



다른 한쪽에는 아사드 지지자들이 있다.그들은 건물들이 불타는 동안에도 풀장 파티를 포함해 일상 생활을 그대로 지속한다.마치 전쟁이 저 멀리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듯이 다마스쿠스의 메자 구역에서 샴페인을 들이키고 중심가 슈크리 알 콰틀리 거리의 호화 부티크에서 베르사체와 미소니 같은 명품을 쇼핑하거나 패션 사진 촬영을 구경한다.

검문소에 무장 경비가 지키고 납치의 위협이 있어도 일부는 여전히 밤에 시내로 놀러 나간다. 오페라를 구경하고,친구와 저녁식사를 하고, 고급 식당 르 자르댕에서 호화판 결혼 파티를 연다.패션 잡지 ‘갈라’에 실릴 사진 촬영을 앞두고 멋지게 차려 입은 TV 탤런트 디마는 “요즘 일이 더 많아졌다(I have more work than ever)”고 말했다. “물론 나도 레바논이나 미국에서 일하고 싶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곳에서 촬영이 많다.”

그녀는 웃으며 메이크업 아티스트(시리아 최고라고 그녀가 말했다)에게 몸을 맡겼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디마에게 자주색 아이섀도를 한겹 더 발라주고 길고 검은 머리를 뒤로 모아 틀어 올려주었다.

다마스쿠스의 멋진 귀공자와 젊은 귀부인들은 전쟁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친정부 민병대의 민간인 학살 보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지금까지 유혈 사태로 얼룩지지 않았고 얼룩지도록 두지도 않을 생각이다.

“요즘도 큰 파티에 갈 때면 머리를 한다(Look, I still get my hair done when I go to a big party)”고 한 여성이 말했다. “그런 파티가 한 주에 약 두 번 열린다. 매주 손톱 손질도 받는다(I still get a manicure every week). 아직은 내가 팔팔하게 살아 있다.

늘겁에 질려 살 수도 있지만 삶을 즐길 수도 있다(Either you choose to be afraid all the time or you choose to live).”4년 전 유네스코는 다마스쿠스를 아랍세계의 문화 수도(Arab world’s Cultural Capital)로 지정했다. 많은 사망자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그런 애칭을 고수하기로 작심한 듯하다. 다마스쿠스 오페라 하우스에서 교향악 단원들은 공연을 계속하는 것이 숭고한 의무(it is their noble duty to keep playing)라고 믿는다.

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데 무슨 음악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것이 임무라고 말한다(I say it is imperative to give people hope). 요즘 같은 시기엔 객석이 4분의 1만 차도 대단한 성공이다(Even to have the

house one quarter full in these times is a great achievement). 이곳에 오려면 사람들은 야간에 위험한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대다수는 안전하게 집에 있고 싶어 한다.” 한 여성 음악가도 동의했다. “우리가 타이태닉호 같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I don’t want to give the impression that we are like the Titanic). 거기서는 배가 가라앉는 동안에도 오케스트라 연주는 계속 됐다(the orchestra plays on while the ship sinks).” 그녀는 다마스쿠스에서 자신의 운명을 타이태닉호보다는 독일 나치의 기나긴 레닌그라드 포위동안 계속 음악을 연주한 러시아 음악가들에 견주었다.

“이런 시절에는 음악과 미술이 영혼을 풍요롭게 해준다(Music and art, in times like these, fuel the soul).”어느 날 밤 우아한 부티크 호텔 아트 하우스에서 열린 클래식 연주회에 갔다.

최신 유행 부티크 상점, 호화로운 식당, 외교관 공관이즐비한 메자 구역이었다. 옛 제분소 자리에 세워진 그 호텔은 바닥의 한 부분에 유리 패널 위로 물이 흘렀다. 미국의 해변 휴양지 햄튼이나 캘리포니아의 베벌리 힐스에서도 잘 어울릴 법한 시설이었다. 다만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모두가 일어나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1분간의 묵념을 하는 의례만 달랐다.



이어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오페라 단장인 마리아 아르나우트(34)와 피아니스트가 바흐, 글루크, 베토벤을 연주했다. 관객은 샌들과 치노 바지 차림을 한 자유분방한 남자들과 크리스티앙 루부탱이 디자인한 이브닝 드레스와 하이힐 차림을 한 멋진 여성들이었다. 프랑스 디자이너인 루부탱은 시리아에 여름 별장을 소유하며 그가 디자인한 구두는 시리아의 퍼스트레이디 아스마 알아사드가 즐겨 신는다. 어깨 끈 없는 붉은 실크 드레스와 하이힐 차림의 아르나우트는 기립 박수를 받았다.

연주가 끝난 뒤 모두가 호텔의 야외 식당으로 가서 샴페인을 마시는 동안 한쪽 곁에서 낮은 소리의 대화가 들렸다. 그날 다마스쿠스에서 있었던 포격과 전투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구역은 부유한 동네로 여러 민족과 정치 신념이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사는 곳으로 특히 긴장감이 높다. 최근 이곳 주민들도 폭발음과 기관총, 헬기 소리를 들었다.

며칠 후 나는 한 건축가와 함께 그녀의 우아한 이탈리아식 빌라 발코니에 서서 사람들이 휘발유를 사러 줄을 서는 모습을 지켜봤다(국제 제재로 부유층도 극심한 경제난의 타격을 받는다). 상공의 불길한 헬기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참고 살아야 할 소음이다(This is the music we live by). 앞으로 몇 년 동안 이 소음이 우리의 교향곡이 될 듯하다(I fear this will be our symphony for the next few years).”바샤르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은 수수께끼(enigma) 같은 인물이다. 공개석상에는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의 긴 얼굴은 도처에서 보인다(Rarely seen in public, his long face is ubiquitous). 거의 모든 정부 건물의 벽에 그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시내 고층 건물에 아사드의 대형 포스터가 내걸린다.

어려서 수줍음을 많이 탄 그는 부친 하페즈 대통령의 뒤를 이어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알려졌다. 대신 그는 다마스쿠스와 런던에서의학을 공부했다(안과 전공). 그러나 후계자로 지명됐던 바셀이 1994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자 바샤르에게 귀국 명령이 떨어졌다. 2000년 그는 아버지로부터 대통령직을 물려받고 영국계 시리아인 미녀로 영국에서 성장한 아스마 알 아크라스와 결혼했다. 아스마는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모델로 삼은 듯 자선사업과 절제된 화려함으로 국민의 사랑을 얻었다.

“아스마는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한 반체제 운동가가 내게 말했다. “국민은 그녀를 아주 좋아했다.” 다마스쿠스에서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시민봉기 초기에 아스마는 자녀와 함께 해외로 도피하려 했지만 정예 공화국수비대를 지휘하는 아사드의 동생 마헤르가 저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실을 알기는 어렵다(gauging the truth is hard). 사담 후세인이 통치하던 이라크나 무아마르 카다피 시절의 리비아에서처럼 아사드의 충실한 지지자들도 아사드에 관한 이야기라면 진심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보복과 고문의 두려움 때문이다.내가 만난 사람 대다수는 익명을 조건으로 입을 열었다. 비밀경찰 무카바라트가 호텔,식당, 카페를 배회한다. 그들은 전화를 도청하고 e-메일을 해킹하며, 정권에 동조하지 않을 만한 사람들을 가려낸다.

그들은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심한다.무더운 토요일 아침 나는 바르제로 차를 몰고 갔다. 다마스쿠스에서 시위와 체포, 총격이 빈번히 목격되는 구역이다. 대규모 육군 병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날 아침 나는 군인들이 정부군 병사 시신 50구를 밋밋한 나무관에 입관하는 장면을 봤다. 그 시신들은 자동차 폭탄, 폭발물, 총탄, 유탄에 의해 훼손되고 부러져 있었다.

그들은 시리아 국기로 관을 감싼 뒤 군악대 연주에 맞춰 연병장으로 운구했다. 연병장에는 가족들과 동료 군인들이 서 있었다. 대다수는눈물을 흘렸다. 아사드 군이 반군의 게릴라 전술로 심한 타격을 입는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병원장은 매주 정부군약 100명이 사망한다고 말했다. 병원 7층에는 피라스 자브르(30) 소령이 병상에 누워 있었다. 안타까워하는 약혼녀가 그의 곁에서 있었다. 그의 오른쪽 다리와 팔이 폭발로 잘려나간 상태였다.



지난 5월 말 알라위파인 자브르 소령은 홈즈에서 반군과 전투를 벌였다. 그는 레바논과 예멘인이 포함된 ‘외국 전사들’에게 매복당했다고 말했다. “팔과 다리를 잃은 뒤에야 내가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정부군이 나를 구하러 올 때까지 적에게 사격을 계속했다”고 자브르가 말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King Arthur and the Knights of the Round Table)’이라고 말했다. “이곳이 아서왕의 궁이 있는 카멜롯이다(This is Camelot). 아사드는 아서왕이고 나는 원탁의 기사다(Assad is King Arthur,and I am a knight).” 팔다리를 잃었지만 자브르는 환한 미소를 띠었다. 내가 만난 거의 모든 아사드 지지자들처럼 자브르도 아사드의 정당성을 끝까지 믿는다고 말했다.의족과 의수를 맞추고 나면 다시 나가 싸우겠다고 그는 덧붙였다. “내 사랑은 둘이다(Ihave two loves). 내 약혼녀와 시리아다(My fiancée and Syria).”

다마스쿠스의 엘리트들은 시리아 전역으로 번지는 폭탄과 혼돈이 ‘제3의 분자(third element)’에 의해 촉발됐다고 믿는다.시리아를 억압적이고 보수적인 국가로 바꿔 놓으려는 급진 살라피주의 신조를 가진 외국 전사들을 말한다(foreign fighters with radical Salafist beliefs who want to turn Syria into an oppressive and conservative state).

내가 다마스쿠스에 머무는 동안 한 차례의 차량폭탄이 터졌다. 그러자 정권 지지자들의 피해망상증이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의 유일한 우방은 러시아다(Our only friend isRussia)!”라고 옷을 잘 차려 입은 한 남자가 폭파현장에서 외쳤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차는 전소됐지만 다친 사람은 없었다.

“외국인들이 우리 나라를 폭파시킨다(These are foreigners that are exploding our country). 시리아는 시리아 사람들의 나라다(Syria is for Syrians)!”최근 의원으로 선출된 초보 정치인 마리아 사데도 잔혹행위의 배후가 아사드나 그의 측근들이 아니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중 하나다. 정부군이 훌라에서 민간인을 학살하고 홈즈에서 바바 아므르 구역을 파괴했다는 증거가 많지만 그녀는 전부 날조라고 판단한다.

“우리 대통령이 자기 국민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Do you think our president could put down his own people)?”라고 그녀는 물었다. “외국인들의 소행이다.그들이 우리 문화를 바꾸려 한다.”복원 전문 건축가로 프랑스와 시리아에서 교육 받은 사데는 다마스쿠스의 옛 프랑스구역에 있는 스타 스퀘어에 산다. 1920년대의 우아한 건물로 그녀가 보수 작업에 참여했다.

세련된 아파트의 옥상 테라스에 앉아있는 그녀는 라이프스타일 잡지의 모델 같았다. 키가 크고 금발이며 자신 만만한 엘리트층 여피였다. 필리핀인 하녀가 차를 대접했고, 두 자녀 펠라와 롤란드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내가 정권 교체(regime change)에 관해 묻자 그녀는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Now is not the time).”어느 날 저녁 메자 구역의 빌라에 사는 부유한 가족과 저녁식사를 했다. 테라스가 여러 개이며 정원에는 정교한 관목들이 즐비했다. 식사 도중 열일곱 살짜리 아들 아메드가 그의 친아사드 견해를 확고히 밝혔다.

“튀니지에서, 리비아에서 일어난 일을 보라. 이집트가 어떻게 됐는지 보라.” 핑크색 라코스테 셔츠, 빛 바랜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의 아메드는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군 복무 후 그는 미국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할 계획이다. 어머니, 할머니, 고모, 사촌처럼 그는 교육을 잘 받았고 여러 개의 언어를 구사하며 여권도 두 개나 소지한다.

그는 아사드가 하는 모든 일이 옳다고 믿지는 않지만 정부를 100% 지지한다. 사데처럼 그도 정권 교체를 할 시점이 아직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외국이 변화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외국 중 일부는 민주주의 국가도 아닐지 모른다며 “반군에게 무기를 대는 사우디아라비아에게서 왜 우리가 민주주의를 배워야 하나(Why should we take democracy lessons from Saudi Arabia,who arms the opposition)?”라고 반문했다.“사우디는 여성의 운전도 금하는 나라다(They don’t even let women drive).”



다마스쿠스 거리에는 휘발유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인플레이션이 갈수록 심해진다. 일부 수입품의 가격은 거의 60% 나 올랐다.역사적인 구도시의 넓은 시장은 한때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지금은 쓸쓸하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탈리스만 호텔은 손님이 없어 텅 비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분수대의 물 흐르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조용했다.

그런데도 다마스쿠스 시민의 일부 계층은 폭력 사태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아름답고 넓은 저택에서 살며 크리스털 샹들리에 아래서 성대한 만찬을 주최하고 온화한 여름 저녁에는 재스민 향기가 가득한 야외 테라스에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눈다.

돌이킬 수 없이 변한 자신들의 세계를 인정하기에는 너무 완고하거나 너무 두렵기 때문이리라(too stubborn or too afraid to see their world has irrevocably changed).

“지금도 매일 조깅을 하고 수영을 즐긴다”고 와엘이 말했다. 부유한 사업가인 그는 시리아 사태가 내전이나 종파 분쟁이 아니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는 시아파지만 처의 가족들은 수니파다. 그의 친구들 중에는 기독교인, 아르메니아인, 알라위파가 있다고 그가 말했다. “이건 전쟁이 아니다(This is not a war). 우리 정권은 건재하다(Our regime is strong). 국민의 70%가 아사드를 전적으로 지지한다(Seventy percent fully support Assad).” 그의 아내 나디아는 히잡을 쓰고 자주 오페라를 관람한다.

그녀는 반군이 시민들에게 가게 문을 닫고 시위에 참여하라고 위협한다고 말했다. “거부하면 그들이 가게에 불을 지른다. 그게 내가 정부를 지지하는 이유다.”그들에게 반군이 두려운지 물었다. “전혀!”라고 와엘이 말했다. “지난주 우리집 발코니에 20명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모두느긋하게 물담배를 즐기며 놀았다. 총성이 들렸지만 아주 먼 곳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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