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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의 반항아

패션계의 반항아

여성의 미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를 뒤엎은 디자이너 뮤치아 프라다의 회고전이 뉴욕 Met에서 열린다



지난 3월 중순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이너 뮤치아 프라다는 2주일 전 2012 가을 여성복 패션쇼 시리즈를 끝내고 산악지방으로 휴가여행을 갔다가 막 돌아온 참이었다. 휴가 후 처음으로 회사에 출근한 그녀는 헐렁한(roomy) 회색 V넥 스웨터와 칼라에 보석 장식이 달린 흰 셔츠, 기하학적 무늬가 들어간 적갈색 홀태바지(slim-fitting trousers)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가끔 갈색머리 위에 우스꽝스러운 각도로 눌러쓴 베레모를 만지작거렸다.

프라다는 소박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를 맞았다. 흰색 벽의 그 방은 볼품없는 프라다 본사 건물(이탈리아 건축에 독창성이 유난히 부족했던 시기에 지어졌다)의 3층에 있었다. 기업(특히 패션업체)들이 사옥을 브랜드 이미지의 상징으로 여기는 최근의 경향을 고려할 때 프라다의 사옥은 미완성으로 보일 정도로(to the point of looking unfinished) 검소하다.

이 회사의 성공[지난해 홍콩에서 기업공개(IPO)를 통해 20억 달러 이상을 조달했다]을 짐작하게 하는 유일한 힌트는 미술가 카스텐 홀러가 제작한 3층짜리 금속 슬라이드다. 이 슬라이드는 프라다의 사무실 바닥에 있는 구멍으로부터 건물 밖의 땅바닥까지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패션의 이런저런 제약과 전통, 일반적인 기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프라다의 희망을 상징한다.

프라다는 올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 코스튬 인스티튜트에서 열리는 디자이너 회고전의 주인공으로 선택되는 영광을 안았다. 인습타파에 앞장섰던 위대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1973년 사망)와 함께다. ‘스키아파렐리와 프라다: 불가능한 대화(Schiaparelli and Prada: Impossible Conversations, 5월 10일~8월 19일)’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에 대한 프라다의 반응은 착잡했다. 두 사람의 성격과 감각이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 그 이유중 하나다. “한편으로는 아주 기쁘지만 다른 한편으론 겁이 난다”고 프라다는 말했다.

“다른 누군가의 해석으로 내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because it’s someone else’s interpretation). 하지만 기쁘

게 받아들이기로 했다.”스키아파렐리와 프라다의 공통점(the through line)은 한 세대의 여성들에게 여성의 미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를 뒤엎는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프라다의 경우엔 ‘보기 흉한 것(ugly)’이 멋진 것으로 받아들여 지도록 만든 일이 큰 업적이 될 듯하다.

1980년대 초 프라다는 낙하산용 검정 나일론을 명품의 상징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녀는 패션으로 신분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삼각형의 프라다 로고가 들어간 보잘것없는 배낭에 어마어마한 돈(stratosphericsums)을 쓰게 만들었다. 1988년 여성 기성복을 출시한 이후에는 여성들이 암갈색과 완두콩 그린색, 눈에 확 띄는 주황색, 그리고‘늪지의 물색’이라고 하면 딱 어울릴 브라운색을 선망의 눈빛(an admiring gaze)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또 벽지 무늬와 장식용 덮개 같은 레이스(doily lace), 모피로 만든 테디베어 장식을 세련된 유행의 첨단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작업복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의상을 입고 옛날 할머니들이 들고 다녔을 법한 프레임 핸드백과 리넨손수건을 든 모델들이 무대 위에서 활보하도록 했다.“고급 패션의 규칙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고 프라다는 말했다. “우리의 주 고객인 상류층과 관계가 멀었던 색상과 장소, 요소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또 아름답고 부유한 여인에 대한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었다. 아름답고 부유한 여인 자체에 반감을 갖고 있진 않다(I have nothing against a beautiful, rich woman). 다만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just the cliché of it)을 깨고 싶었다.”

프라다의 작품은 패션에 대한 그녀 자신의 모순적인 태도를 반영한다. 이런 양면성은 많은 여성(특히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프라다의 스타일에서는 사회적 제약에 대한 경멸(disdain for society’s restrictions)과 이상적인 미에 대한 거부감(a repudiation of idealized beauty)이 드러난다.

“이 두 가지는 내가 줄곧 추구해 온 주제였다”고 프라다는 말했다. “미를 정의, 아니 이해하는 것이 내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날 여성에게 미란 어떤 의미일까를 말이다.”의식적으로 규칙을 무시하는 태도 (knowing dismissal of the rules). 프라다의 작품이 세련됨과 멋짐의 극치로 인정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녀의 의상은 데 렉 램, 프로엔자 슐러 등 미국 브랜드에 영향을 줬다. 또 대중시장에서 수많은 모조품(knockoffs)을 탄생시켰고 우마 서먼, 주이데샤넬 등 스타들을 매혹시켰다.

심지어 ‘악마’(보그 미국판 편집장 애나 윈투어, 소설과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모델)도 프라다를 입었다.프라다의 친구이자 디자이너인 도나텔라베르사체는 이렇게 말했다. “뮤치아는 현재 활동 중인 디자이너 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로 꼽힌다. 그녀는 최신유행을 반영하고 미래지향적이면서도 누가 봐도 프라다 제품이라는 사실을 알아볼 만한(unmistakable)그녀만의 독창적인 미학을 창조해 냈다.

디자이너로서 가장 어렵고 복잡한 과제다.”프라다는 이브닝 드레스 차림에 슬리퍼를 신거나 남편의 T셔츠와 작업복 같은 바지를 입고 밍크 코트를 걸치기도 한다. 하지만 보석은 늘 진품을 착용한다. 디너파티에서 천진난만한 소녀처럼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62세로 강한 개성을 지닌 그녀는 유난히 젊어보이거나 소녀 같은 분위기를 풍기진 않는다. 그녀의 행동은 정치적이지만 옷차림은 나이와 지위에 어울리지 않을 때가 많다.

“뮤치아는 친구들 앞에서는 뛰어난 유머감각을 발휘한다. 웃는 걸 아주 좋아한다.”보그지 이탈리아판 편집장 프랑카 소자니의 말이다. “그녀가 언제나 심각하고 오로지 일만 할 거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그녀의 남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는 현재 프라다의 CEO이며 이들 부부에겐 장성한 두 아들이 있다. 직원들은 그녀를 ‘미세스 프라다’라고 부른다. 존경심이 느껴지지만 독립적이고 반항적인 작품을 만드는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구식 존칭(oldfashioned courtesy)이다.

그러나 프라다는모순으로 똘똘 뭉친 여자다. 밀라노의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대학에서 정치학과 연극을 공부했다. 20대 땐 이브 생 로랑의 의상을 입고 무산계층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위에 나섰다. 가업을 승계해야 할 상황이 닥치자(When she was called into the family business) 내키지 않았다. 1913년 그녀의 할아버지 마리오 프라다가 설립한 그 회사는 이탈리아 귀족들에게 여행가방과 가죽제품을 팔았다. 고급 쇼핑몰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에 자리잡았던 매장은 부르주아를 상대하는 상점답게 유리와 금도금 장식으로 화려함을 뽐냈다.

“난 그게 끔찍하게 싫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1960년대에 여권운동을 하던 사람으로서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패션업계종사는 당시 내게 최악의 선택이었다. 정말 불편한 자리였다. ... 그후로도 오랫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최근에 와서야 그런 생각에서 벗어났다.”



“똑똑한 이들 중에 패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Irealized that so many clever people respect fashion so much). ... 또 이 일을 통해 어떤 분야와도 소통할 수 있다(Through my job I have an open door to any kind of field). 패션은 건축, 미술, 영화 등 다양한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내가 이 일을 잘하기 때문에 (because I’m good in my job) 사람들이 날 존경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대다수 디자이너가 어린 시절 종이인형을 그리고 만들던 일, 고교 시절 무도회(prom)에 입고 갈 드레스를 만들던 일 등의 추억을 지니고 있다. 일부 디자이너(특히 남성 디자이너)는 여성들이 옷에 갖는 애착(woman’s emotional connection to clothes)을 이해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프라다는 다르다.그녀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제2차 세계대전 이후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함께 파리 오트 쿠튀르의 황금시대를 이끈 디자이너)의 전통을 이어받은 기술자(technician)가 아니다. 마네킹에 옷감을 걸쳐놓고 그 질감을 반영해 디자인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1990년대에 프라다에서 일하다 지금은 아스페시(이탈리아 스포츠웨어 브랜드)로 자리를 옮긴 디자이너 로렌스 스틸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어떤 면으로 보나 전통적인 디자이너가 아니다. 가위나 연필을 사용하지 않고 말로 디자인한다.

패션학교에 다니거나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옷감의 질감을 생각하는 등 기술적인 측면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녀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말로 표현한다.”스틸은 프라다가 작업실에서 “동굴에 사는 공주(a princess who lives in a cave)”와 비슷한 말을 했던 걸 기억한다. 부유하고 화려하고 고결하면서 동시에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뭔가를 암시하는 말이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그려진다”고 스틸은 말했다. “갑자기 소설이나 영화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일주일도 안 돼 그녀는 뭔가 다른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런 아이디어들이 모두 컬렉션에 반영된다.”요즘 프라다는 골동품과 르네상스 시대회화에 매료됐다. 훌륭한 미술품이 가득한 로마의 보르게제 공원을 자주 찾고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정신적인 아름다움의 관계를 깊이 생각한다. 그녀는 아름다움이 일종의 도덕적 책무(moral imperative)이며,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인간의 조건(human condition)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의 관심사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모든 컬렉션이 프라다의 본질을 지킨다. 그녀는 신체적인 면에서나 지적인 면에서 자기자신을 위해 디자인한다. 그녀는 가는 다리와 풍만한 상체를 지녔는데 서양 여성들 사이에 흔히 볼 수 있는 몸매다. 몸에 딱 달라붙는 드레스(a clingy gown)를 입었을 때 보기 좋은 체형은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실루엣이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프라다의 디자인은 때때로 그녀의 내면 세계와 지나치게 밀착돼 신체적인 측면을 무시하기도 한다.

“난 이론적으로 옷을 만든다(I do clothes in theory)”고 그녀는 말했다. “모델들에게 미리 옷을 입혀보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난 사람들이 그 옷을 입었을 때 보기 좋은지 아닌지에 관심이 없다. 나 자신이 입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이런 태도는 사람들이 그녀의 패션쇼에 나온 옷을 입었을 때 종종 깜짝 놀라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톡톡한 짜임새의 (richly textured) 스웨터를 입었을 때 몸이 따끔거리기도(scratchy)하고, 맵시있는 스커트는 뻣뻣해서 주체하기 힘들(stiff and unyielding) 때도 있다.(대량생산에 들어갈때는 촉감이 더 나은 직물을 이용한다.)

“보기 흉한 것”을 만드는 게 그녀의 목표는 아니다. 그것은 패션을 미술이나 영화 등 다른 예술 분야와 똑같이 취급하는 디자인 철학이 낳은 결과다. 회화 작품이 꼭 기쁨과 즐거움을 이끌어 낼 필요는 없다(A painting doesn’t have to elicit joy). 또 매혹적인 영화가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도 있다(A captivating movie can alsobe disturbing). “사람들이 패션을 아름다움이나 섹시함, 또는 매력적인 것과 혼동하는듯하다”고 프라다는 말했다. “패션 그 자체를 즐기는 게 아니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섹시한 옷차림은 자신이 좋아서 선택했을 땐 정말 환상적이다(I always say sexy dressing is fantastic if it’s a choice). ... 또 스스로 나체로 외출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돈 많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다면 혐오스럽다(But if you do it because you want to get a rich husband, no, I hate it).”

프라다는 자신이 여성들의 변신을 돕는 패션 요정(fairy godmother)보다는 신디 셔먼(사진가) 같은 예술가와 공통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프라다도 셔먼처럼 여성들이 외면적으로 자신에게 부여하는 수많은 정체성과 그 가면 뒤에 숨은 복잡한 성격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한다.

프라다는 모델을 선택할 때 몸매보다는 얼굴을 본다. 꼭 인종적 다양성을 고집하진 않지만 개성과 독특한 매력(personality and eccentricity)을 중시한다. 그녀는 사샤 피보바로바처럼 예쁘진 않지만 매력적인(jolielaide)모델들을 기용한다. 또 유명한 미인들을 화장기 없는 얼굴로, 또는 아름다운 머릿결을 숨긴 채 무대에 세우기도 한다.

프라다의 말을 들어보자. “베르사체의 패션쇼 무대를 본 기자들은 ‘잔니 베르사체는 가장 아름다운 모델들을 쓴다’고 말했다. 하지만 똑같은 모델들이 내 패션쇼 무대에 섰을 때 언론에선 그들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내 옷들은 (다른 디자이너의 작품에 비해) 덜 화려하다.”

프라다의 작품 경향은 아방가르드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콤 데 가르송의 레이가와쿠보 [셔츠에 진동(arm holes)이 없을 정도로 파괴적인 패션을 추구한다]처럼 상궤를 벗어난(outré) 디자이너의 작품과는 다르다.보수적인 분위기의 스커트, 전통적인 스웨터, 남자 옷같은(mannish) 셔츠, 투박한 하이힐 등 프라다의 대표적인 작품을 꼽다보면 전형적인 여성 의원의 옷차림이 떠오른다.

전통적으로 남자들의 영역이라고 간주되던 분야에 뛰어든 여성들은 자신의 여성성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뿐 아니라 자신의 패션 감각이 형편없다는 열등감에 빠지기 쉽다. 프라다는 이런 여성들에게 적합하지 않을 듯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자신감을 심어주며 성공을 거뒀다.

프라다의 2012 가을 컬렉션을 예로 들어 보자. 인조보석(baubles)을 달아 반짝거리는 바지와 허리선을 높여 벨트를 여민 재킷.자홍색과 오렌지색이 충돌을 일으키는 튜닉과 바지. 현기증 나는 기하학적 무늬. 권위를 나타내는 날카로운 실루엣. 여성들이 좋아하는 화려한 장식. 반항적인 색상과 패턴.모순적이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며 여성적인 스타일(contradictory, confident, womanly).

이것이 바로 프라다다(It’s pure Prada).디자이너로 30여 년을 살아온 프라다는 마침내 패션업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인정하게 됐다. 성공한 디자이너 겸 사업가로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트렌드를 논한다. 하지만 “어떤 옷을 입으면 좋을까(What should Iwear)?”라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는 입을 게 다문다. 그녀는 모든 여성이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By her estimation,every woman already kn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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