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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지의 외국계 펀드도 줄줄이 백기

굴지의 외국계 펀드도 줄줄이 백기



서울 강남의 한 대형학원 관계자는 8월 14일 “국내 사교육 시장은 더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2007년에 미국계 사모투자펀드인 칼라일그룹이 186억원을 투자한 특목고 입시학원인 토피아아카데미 관계자는 “언론에 어떤 대응도 하고 있지 않다“며 취재를 거절했다.

강남 사교육 시장이 흔들리면서 외국계 투자펀드로부터 거액을 투자 받은 대형 학원마저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운 형편이 됐다. 정부의 사교육 억제책, 경기 침체에 따른 사교육비 지출 감소 등이 배경이다. 특히 강남 사교육 시장의 미래에 투자한 외국계 펀드가 잇따라 철수하고 있다. 온라인 교육업계 1위에 이어 한때 코스닥시장의 시가총액 1위 자리까지 넘본 메가스터디의 주가는 8월 중순 현재 6만원대에 머물고 있다. 이 회사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14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2% 감소했다. 메가스터디의 2대 주주로 9.21%의 지분을 보유했던 코너스톤에퀴티파트너스는 3월에 지분 전체를 H&Q아시아퍼시픽코리아에 넘겼다. 코너스톤은 주당 12만원대에 메가스터디 지분을 사들였지만 11만원대에 팔았다. 5년이나 메가스터디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결국 손실만 보고 물러난 것이다.


코너스톤 5년만에 메가스터디 지분 손해 보고 팔아상장 폐지나 불발도 잇따랐다. 지난해 초 논술 전문 입시학원인 엘림에듀가 상장 폐지 절차를 밟았다. 골드먼삭스를 비롯한 굴지의 투자회사가 이 회사에 약 304억원을 투자했지만 사교육 시장 침체를 거스를 순 없었다. 엘림에듀는 골드먼삭스가 2007년 투자 당시 매출액 400억원에 당기순이익 62억원인 알짜 회사였지만 이후 2년 연속 손실을 기록했다. 칼라일그룹도 울상이긴 마찬가지다. 칼라일그룹은토피아아카데미를 코스닥시장에 상장시켜 고수익을 챙기려고 했지만 실적 부진으로 상장이 이뤄지지 않아 계획이 빗나갔다.

청산, 하이스트, 푸른학원을 비롯한 대형 학원의 지주회사인 타임교육홀딩스에 600억원을 투자한 티스톤도 비슷한 처지다. 2008년 아발론교육에 600억원을 투자한 AIG그룹도 체면을 구겼다. 국내 펀드도 쓴 맛을 봤다. 권성문 옛 KTB네트워크(현 KTB투자증권) 회장은 2005년 특목고 입시학원 사업을 하는 와이즈스톰에 100억원 이상을 투자했지만 이익을 기대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한 증권업체 교육 담당 애널리스트는 “수 년 간 (사교육 업체에) 투자한 돈은 날린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사교육 시장은 특별한기술이나 많은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교육 열풍이 한창이던 때는 진입 장벽이 낮으면서 고수익이 기대된다는 이유로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됐다. 그러나 결국 투자자들이 시장 흐름을 잘못 읽은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 같은 상황은 불과 4~5년 전 강남 대치동과 청담동 일대를 중심으로 대형 학원들이 승승장구하던 것과 대비된다. 사교육 업계가 2007년부터 외국계 대형 자본으로부터 잇단 투자를 받자 “공교육이 부실해 (사교육 시장이) 투자처로 부각된 것 아니냐”며 뭇매를 맞던 것과는 딴판이다. 2007년 10월 당시 국내 주요 업체별 외국인 지분비율은 메가스터디가 51.71%, 웅진씽크빅 34.43%, YBM시사닷컴 25.05%, 대교 24.57%에 이르렀다. 연간 시장 규모는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다.

KTB투자증권의 이혜린 애널리스트는 “그간 강남에서 꾸준히 커진 특목고 관련 사교육 시장마저 침체에 빠지면서 그나마 있던 탈출구도 사라져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고나 영재고 등의 특목고 입시를 겨냥한 전문학원이 한때 붐을 이루면서 강남 사교육 시장을 지

탱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 대치동과 청담동 학원가에선 “더 이상 강남 특수는 없다”는 비관론마저 나오는 분위기다. 불황에 정책도 우호적이지 않아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정부의 공교육 정상화 노력도 사교육 업계엔 독이 됐다. 삼성증권의 박송이 애널리스트는 “정부가 EBS 강의와 대입 수능시험의 연계를 강화하고 특목고 지필고사를 폐지하는 등 정책을 펼치면서 중·고등 부문 사교육 수요가 계속 줄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중·고등 문온라인 교육업계 1위인 메가스터디가 수능시험과 EBS 강의의 연계강화로 고전하고 있다. 메가스터디는 온라인 매출 비중이 전체의

60%가 넘는다. 또 수시 비중이 늘어난 반면 수능시험은 쉬워진 것도 중·고등 부문 사교육 시장 쇠퇴의 한 원인이다.


사교육 시장 고가에서 저가로 재편여기에 초등학교 방과후 학교가 활성화되면서 초등 부문 사교육 시장도 침체에 빠졌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한 해 초등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24만원선으로 전년 대비 1.6% 감소한 것으로 집계했다. 불황에 초등 부문 사교육을 시기상조로 여기고 공교육 참여에 집중하는 학부모와 가정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업계 관계자는 “논술 등에서 고가 사교육 시장이 명맥을 유지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불경기 영향까지 겹쳐 전체적인 사교육 시장이 저가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신증권의 이선경 애널리스트는 “EBS가 저가로 콘텐트를 공급한 데 이어 통신업체들도 스마트폰으로 싼값에 콘텐트를 공급하고 있다”며 “정부도 지금의 고강도 사교육 억제책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사교육 업계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그나마 상위권 업체들은 기존 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다”며 “무리한 사업다각화나 확장이 오히려 나쁠 수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중하위권 업체들은 자구책 마련 차원에서 학원간 통폐합을 단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상장 폐지 등 극단 상황으로 몰릴 만한 상장사는 당분간 없겠지만 수익성 강화를 위한 학원간 통폐합 조치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학습지를 비롯한 중저가의 교육 사업을 지향한 대교나 웅진씽크빅, 한솔교육은 강남 대형 학원들과 달리 곧 실적이

나아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저가 지향으로 시장 판도가 달라진 만큼 학원들도 이 점을 고려해 대안 찾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신업체가 더 저렴한 콘텐트를 무기로 내세우고 있어 중저가 지향의 업체들도 서울 강남의 한 학원에서 수험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큰 영향을 받을 것이란 분석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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