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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도 환영하는 ‘재벌규제’ 일변도

민주당도 환영하는 ‘재벌규제’ 일변도



대기업을 직접 겨냥한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법안 시리즈’ 논란이 가시질 않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실체가 모호한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한 ‘대기업 배싱(때리기)’이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누리당 한 중진 의원은 “당 일부 의원들이 내놓은 법안이 너무 좌쪽으로 흘렀다”고 말했다.여기서 말하는 ‘일부 의원들’은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하 실천모임) 소속 정치인들을 말한다. 올 6월 초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들이 모여 만든 정책 연구 모임이다. 새누리당 쇄신파를 중심으로30여 명이 모여 출범한 이 모임 인원은 현재는 50여 명으로 늘었다.

구성은 다양하다. 원내에서는 남경필, 김세연, 이종훈, 정두언, 나성린, 홍일표, 민현주 의원 등이 적극 참여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핵심 경제 브레인으로 꼽히는 안종범, 강석훈 의원도 모임 소속이지만 주도하기 보다는 견제를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모임 대표는 5선 남경필 의원이다. 원외에서는 이혜훈 최고위원이 뒤를 받치고 있다. 실천모임 소속 민현주 의원은 “겉으로 보면 매파(강경파)와 비둘기파(온건파) 등이 적절히 섞여 있지만, 모임을 주도하는 것은 경제민주화에 적극적인 매파”라고 말했다.

실천모임은 그동안 경제민주화 1~4호 법안을 발의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보다 강도가 센 재벌개혁 법안”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실천모임의 정체성을 둘러싼 새누리당 내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실천모임 발의 법안은) 당론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얘기할 수 있다”며 “막 나가는 것은 제지할 것”이라고 말했다.실천모임은 9월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남경필 의원은 “경제민주화법안의 실천과 당론 채택을 위해 추석 연휴 전에 정책 의총을 개최할 것”을 요구했다. 남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논의를 하다 보면 실천모임의 안이 당론으로 채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론 불가’를 고수하는 당 지도부를 겨냥한 말이었다. 그는“경제민주화 방안은 (재벌의) 소유를 건드리지 않고 운영의 반칙을 건드리는 것이므로 당이 반대할 이유가 있겠느냐”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대선공식기구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 실천모임 소속 의원들을 참여시키겠다는 의지도 밝혔다.실천모임은 그동안 기업인의 경제범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1호)을 비롯해,대기업 집단의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하고 정부가 기업의 계열분리를 강제할 수 있는 법안(2호), 신규 순환출자 금지 및 의결권 100% 제한하는 법안(3호) 등을 잇따라 발의했다. 1~3호 법안을 놓고도 논란은 뜨거웠다. 심지어 박근혜 후보의 경제 참모 역할을 하고 있는 현역의원들은 대부분 이 법안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강석훈 의원은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당의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는 아니다”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금산분리 법안 “대기업 지배구조 변화 불가피”이 모임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사건도 있었다. 8월 27일 민주통합당‘경제민주화 추진의원모임’은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 공조를 제안했다. 민주당 김현미 의원은 이날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발의한 법안을 환영하며 실천을 위해 입법화 과정을 함께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앞서 남경필 의원은 “당 의원총회를 거쳐 당론으로 확정되면 확실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국회 토론에 부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야당과 함께 추진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실천모임이 9월 10일 발의한 경제민주화 4호 법안도 논쟁거리다.이이제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새누리당 의원 22명이 서명한 이 법안은 횡령·배임 등 경제범죄를 저지른 금융회사 대주주의 자격을 박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이렇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횡령·배임)의 죄를 범해 형사 처벌을 받으면 금융회사 대주주 자격을 박탈한다. 대주주가 건전한 경영을 할 수 있는지 주기적으로 심사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한다. 범죄를 저지른 대주주가 주식처분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금융회사를 계열사로 둔 대기업 총수가 횡령·배임으로 얻은 재산상 이득이 5억원을 넘을 경우 금융계열사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또한 증권·보험·카드사 등 제2금융권은 1~2년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이제 의원은 “자본가 스스로 절제와 자율이 이뤄지기를 기대하기 힘든 만큼 국회가 법률로써 강제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미 처벌을 받았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기업인에 대해서는 법안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불소급 원칙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8월 16일 횡령·배임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된 김승연 회장이나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물론 재계는 이 법안에 반대 입장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준이 불명확한 배임죄를 폭넓게 적용할 경우 경영 판단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가 금융계열사 지분 매각을 강제하는 것 역시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는 시장경제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이 법안은 앞서 민주당 김기식 의원이 대표 발의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유사하다. 여야가 따로 낸 법안이 비슷하기 때문에 법안이 합쳐져 국회를 통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이제 의원은 “큰 틀에서 보면 민주당 법안과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향후) 연합 과정을 통해 합의해나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천모임이 곧 발의할 예정인 경제민주화 5호 법안은 더 큰 분란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강화 방안을 담은 법안이다. 실천모임은 원래 금산분리 법안을 4호 법안으로 내놓을 예정이었지만, 당내 반대 기류에 부딪혀 보류했었다.하지만 9월 10일 박근혜 후보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후 기조가 바뀌었다. 이날 박 후보는 “(금산분리 관련) 지금 정부가 완화했지만 이를 신중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박 후보가 실천모임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다음 날 실천모임은 비공개 전체 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실천모임 소속 한 의원은 “이 자리에서 법안 발의가 확정됐다”고 말했다. 발의는 17일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5호 법안에 담길 주요 내용은 이렇다. ‘재벌의 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을 대폭 제한한다. 금융회사의 비금융계열사 의결권을 현행 15%에서 5%로 제한한다. 보험계열사가 비금융 계열사에 출자한 지분에 대한 자본적정성 평가를 강화한다.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를 도입한다. 종전의 상호출자 구조를 없애도록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둔다.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 한도를 현행9%에서 4%로 낮춘다.’ 특정 기업을 겨냥한 발언도 나왔다.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은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고, 중간지주회사 형태로 전환시켜 양쪽 지주회사의 상호출자를 원칙적으로 차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금산분리 법안이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흔들 목적이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박 후보 라디오 연설 후 금산분리 규제 강화 속도 붙어재계는 즉각 반발했다. 전경련은 9월 13일 금산분리 규제 강화를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바람에 침묵해 왔던 행보를 깬 것이다. 그만큼 다급하다는 얘기다. 재계는 이번 금산분리 법안을 박근혜 후보가 상당 부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보고 있다. 박 후보가 여러 차례 금산분리 규제 강화 입장을 밝혀 왔기 때문에 조만간 발표될 대선공약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남경필 의원은 “(금산분리 강화가) 당론이 된다면 이는 대선 후보의 공약이 되기에 당론화를 최우선 목표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박근혜 후보도 경제민주화를 하려면 가장 합리적인 우리 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5호 법안에 재계가 크게 반발하는 것은 예상을 넘은 ‘초강도 규제’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세 가지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행사를 더 제한하고, 중간금융지주회사를 도입하며, 금융계열사의 자기자본을 계산할 때 비금융 계열사 주식 보유분을 뺀다는 것이다. 중간지주회사는 지주회사 밑에 있는 또 다른 지주회사를 말한다. 이 법안에 따라 대기업이 중간금융지주회사를 두면, 계열사 간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해야 하기 때문에 금융 계열사와 일반계열사 간에 연결 고리가 끊긴다. 또한 비금융 계열사 주식 보유분을 빼고 자기자본을 계산하면 대기업은 자기자본을 더 쌓아야 하고,이런 부담으로 계열사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전경련 관계자가 “이 법안 내용 그대로 도입되면 대기업의 지배구조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전경련은 “새누리당이 금산분리 규제 강화의 논거로 제시하는 대기업의 사금고화는 이미 기존 규제 방지장치가 충분히 마련돼 기우에 불과하다”며 새누리당 입법안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전경련은“금융사 보유 계열사 주식에 의결권을 제한하는 나라는 없다”며 “의결권을 제한하면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실천모임 의견대로 5%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면 경영권 유지를 위해 다른 계열사가 그 초과분을 인수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6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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