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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은 상대방 마음을 빼앗는 것

영업은 상대방 마음을 빼앗는 것

외국계 기업 CEO지만 영어를 못한다. 장인수 오비맥주 사장이 그다. 영업총괄 부사장으로 영입된 지 1년7개월 만에 그는 하이트의 15년 아성을 함락시켰다. 고졸 CEO 장인수가 쓴 샐러리맨 신화.



“서로 명함을 주고받았는데 명함에 핸드폰번호가 없다면 경우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핸드폰은 제가 거래처 사람들과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고요.”장인수(57) 오비맥주 사장은 “도매사 사장들이 불만을 제기하거나 우리 직원을 칭찬할 때 저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낸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있던 8월 21일에도 한 도매사 사장에게서 불만을 토로하는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고 했다. 경위를 확인해 보니 오비 직원의 일 처리가 매끄럽지 못했다. 그는 해당 직원을 질책하고 도매사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

그러느라 10분 이상 전화 통화를 했다. 이 통화 후에 상대방이 보내온 문자를 보여줬다.“사장님께서 직접 응대해 주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사장님께서 아픈 맘을 깨끗이 씻어주셨고 오비와의 인연을 다시 엮어주셨습니다. 저희들도 고객이 졸도할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넓으신 아량으로 안고 가셨으면 합니다. 오비와 항상공유하며 열심히 하겠습니다.”

핸드폰 통화 덕에 직원의 미숙했던 도매사 응대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기자가 받은 그의 명함엔 두 개의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직원을 칭찬하는 전화를 받았을 땐 그 내용을 칭찬 카드에 적어 격려하고 해당 지점장을 통해 당사자에게 상품권을 전달한다.그는 이런 작은 보상이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제법 효과가 있다고 귀띔했다. 기자가 대학에 다니던 1970년대 후반 오비맥주의 위세는 독보적이었다. 50여 년 맞수인 하이트의 전신 조선맥주와의 시장점유율은 1980년대 후반 7 대 3까지 벌어졌다. 1993년 조선맥주는 크라운이라는 브랜드를 버리고 100% 천연 암반수로 만들었다는 하이트를 출시했다. 하이트는 3년 만에 시장점유율 1위에 등극했고 조선맥주는 회사 이름까지 하이트맥주로 바꿨다. 오비는 지난해 8월 이판세를 15년 만에 재역전시킨다.

하이트주조·주정 대표로 있던 그가 오비의 영업총괄 부사장으로 부임한 지 1년 7개월 만이다.“당시 외국인들이 회사를 경영했는데 1등을 탈환하려고 하기보다 이익을 내는 데 골몰했습니다. 2등으로서 1등을 추격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1등에 쫓기는 형국이었

죠. 영업이라는 게 가슴으로 하는 건데 숫자만 중시하더라고요. 경쟁사도 마찬가지지만 단적으로 월말이면 출고 실적을 부풀리느라 맥주를 도매사 창고에 쌓아두는 밀어내기식 영업을 했습니다.”

그는 1등 탈환 전략을 세웠다. 오비의 대표 맥주인 카스는 그가 진로에서 일할 때 처음 선보인 진로 제품이었다 (훗날 이 카스를 만들던 진로쿠어스가 오비에 합병된다).비열처리맥주인 카스의 차별성은 신선한 맛이었다. 그래서 진로 지점장으로 있으면서 카스를 팔 때 그는 “카스는 야채 같은 신선 식품인데 야채를 삶아 드시겠습니까, 생으로 드시겠습니까”라며 고객을 설득했다.그런데 오비에 와서 보니 이 강점을 포기하고 명목상의 실적을 올리기 위한 밀어내기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카스의 유통기간이 3~6개월이나 됐다.

그는 전임 사장과 대주주에게 잘못된 영업관행을 바로잡고 적정 재고를 유지할테니 6개월의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6개월 후에도 시장 판도에 변화가 없으면 사표를 쓰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회사에서 영어를 쓰지 않고 회의도 하지 않겠다는 조건도 관철했다.“제가 영어를 못하기도 하지만 국내에서 주류 영업을 하는 데 영어가 왜 필요합니까. 영업사원들이 습관적으로 쓰는 영어 단

어가 도매사 사장과의 소통을 오히려 방해합니다. 또 매달 영업회의 한다고 발로 뛰어야 할 전국의 영업지점장들을 서울로 소집하는데 앞으로 제가 현장으로 달려가겠다고 했습니다.”

전임 사장과 대주주의 동의를 얻은 그는 월말 출고분을 줄이고 월초에 출고시킨 후 영업사원들의 판촉을 독려했다. 영업총괄 부사장으로 부임한 첫 해 그의 차주행거리는 7만㎞를 기록했다. 적정 재고전략은 주효했다. 밀어내기를 중단하자 처음엔 시장점유율이 떨어졌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 유통기간이 단축되면서 신선도가 높아지자 시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월말 재고를 절반으로 줄였지만 4개월 만에 영업 실적을 회복했다. 지난 8월 오비는 2010년 5월 이래 28개월째 영업 목표를 달성했다. 유통기간을 단축했을 뿐인데 소비자들은 “카스의 제조 레시피가 바뀌었느냐”고 물었다. 제품 선순환이 이루어지면서 현장 직원들도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는 지금 출고되는 카스의 유통기간은 대부분 1개월 미만이라고 말했다.

“카스의 신선도를 유지한 결과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겁니다. 제품의 고유한 경쟁력을 살린 것뿐이죠. 발효식인 맥주는 공장에서 막 나왔을 때 가장 맛이 좋습니다.희석식 소주 같은 고도주와 다른 점이죠.더욱이 비열처리맥주는 신선도가 생명입니다. 이 평범한 진리를 판매 실적을 올리느라 그 동안 외면했던 거예요.”주류산업협회가 발표한 오비맥주의 올상반기 시장점유율은 수출물량을 포함해 54.7%에 이른다.

그는 자신이 순고 출신이라고 말한다. 전남 순천 출신이라 그렇게 말하면 다들 순천고등학교를 나온 줄 알지만 그는 대경상고를 졸업했다. 그가 말하는 순고란 순수한 고졸이란 뜻이다. 학력이 고졸이지만 가방 끈을 늘이려 야간대학이나 경영대학원 최고경영

자과정을 기웃거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학력을 재포장한다고 제 인생에 새삼 꽃이 피겠습니까. 이렇다 할 취미도 없이 일에 집중하느라 그런 데 다닐 만한 여유도 없었고요.”

그가 고졸에 그친 것은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장남인 그를 대학에 보내려 했던 아버지의 꿈이 무산됐다.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었지만 다니던 직장의 생산책임자 자리에 올랐고 노조 위원장도 지냈다. 대학에 못 간 불효를 그는 IMF 체제 당시 만회했다. 아버지 친구들의 잘나가는 아들들이 줄줄이 직장에서 명퇴를 당할 때 그는 오히려 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그때 기뻐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저에게는 멘토나 다름없는 분으로 그 시절에도 담배꽁초를 휴지에 싸서 버리셨죠.그런데 제가 부장 된 지 5개월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로부터 5개월 후 임원이 됐는데 그 모습은 못 보셨어요. 효도까지 할 기회는 놓친 셈이죠.”

공채로 입사한 진로 초년병 시절 그는 대졸 출신 동기들보다 진급이 4년 정도 늦었다. 하지만 별(이사)은 가장 먼저 달았다.거래처 사람과의 술자리에서는 주량이 고무줄이지만 그는 집에서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의 가족은 수영복도 스키복도 없다. 그가 번번이 휴가를 반납해 가족여행을 제대로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방식으로 보상을 해 주려 하지만 가족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그는 30여 년 주류 영업에만 몸담은 영업통이다. ‘영업의 달인’ 소리를 듣는 그의 영업비밀은 디테일에 강하다는 거다. 180cm가 넘는 거구에 운동에 능하지만 그는 통 큰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다. 거래처 사람과 식사를 할 때 그는 상대방의 젓가락이 상 위의 어느 음식을 향하는지 관찰한다. 젓갈을 즐겨 먹는 사람이라면 어느 젓갈을 좋아하는지 알아내 며칠 후 젓갈로 유명한 강경의 젓갈을 보내준다. 감동할 수밖에 없다.

그는 영업은 상대방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라고 강조한다.고객 생일에 축하 카드를 보낼 땐 반드시 손 글씨로 쓴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접근으로 자신을 차별화한 것이다. 해마다 세밑이면 연하장도 직접 써서 집으로 보낸다. 400장 가량의 연하장을 직접 쓰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린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까닭이다. 집으로 보내는 것은 가족이라도 읽게 하기 위해서다.지난 6월 사장에 내정된 후 그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기분이었다. 오비맥주는 과거 그가 대표로 있었던 하이트주조·주정보다 20배 이상 큰 회사다. 열흘 동안 잠을 못 이뤘다.

그의 사장 취임 소식이 전해지자 도매사 사장들이 보낸 화분이 쇄도했다.회사 창립기념일에 들어오는 화분이 몇 십개인데 무려 350개나 들어왔다. 지켜보는 분들이 많다는 생각에 그는 용기를 얻었다.사장에 취임한 그는 영업·관리직 사원 응모자격에서 4년제 대졸 이상이라는 학력제한을 폐지했다. 입사원서의 영어성적 기록 난도 없앴다. 여성 영업사원 채용도 늘리기로 했다.“영업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지방대 출신등 절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고졸·지방대 출신은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어 더 적극적입니다. 외국계 기업이라 요구한 영어 실력은 사실 주류 영업능력과 아무 관계가 없어요.”



대졸 이상 학력제한 폐지장 사장은 자칭 운짱(運將)이다. 덕장도, 지장도 아니고 운을 타고 난 운짱이다. 하지만 복도 노력 없이는 받을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태권도 공인 6단으로 태권도 사범자격증도 있다.“흰 띠일 때 검은 띠를 바라보면 빨간 띠,파란 띠가 눈에 안 들어옵니다. 흰 띠 주제에 검은 띠를 따겠다고 덤벼들었다가는 지쳐 나가떨어지게 마련이죠. 그래서 흰 띠일 땐 파란 띠 따는 꿈을 꿨고, 파란 띠 따고 나선 빨간 띠를 목표로 세웠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너무 큰 꿈을 꾸면 포기하기 쉽습니다. 스스로 노력해 이룰 수 있는 작은 꿈을 지속적으로 꿔야죠.”

고졸 학력으로 외국계 회사 CEO 자리에 오른 그의 인생 노하우는 무엇일까. “부족한 게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스펙을 잘 갖췄다면 아마 나태해졌을 거예요. 부족한 게 많았기에 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력해야 했죠. 거래처인 도매사 사장님들 덕에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물러날 때 직원들과 이 바닥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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