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표 뿌리기 보다 신뢰로 연주자·관객 마음 얻었다
공짜표 뿌리기 보다 신뢰로 연주자·관객 마음 얻었다
“궂은 날씨에 오시느라 애쓰셨어요. 그런데 어쩌죠. 제인생에는 다른 성공한 분들처럼 드라마틱한 이야기나 반전이 없는데….”태풍 산바를 뚫고 찾아가 만난 공연기획사 빈체로의 이창주(58) 대표 첫마디다. 그는 늘 힘들게, 그리고 열심히 일했지만 본인의 삶이 반전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일을 할 때 항상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해 왔다는 것이다.“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공연장을 찾아올 관객 수요는 예측이 가능합니다. 그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뜻이죠.”
그는 언론을 통해 클래식과 관련 없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이슈’를 만드는 것을 예로 들었다. 이로 인해 공연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단순히 ‘그 사람’을 보기 위해 공연장으로 몰려올 수 있다. 하지만 이슈 몰이에 실패하면 손해를 볼 위험이 크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이 대표는 공연에서 의례적으로 있는 초대권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그는 “평소 관심이 없다가 초대권을 받아서 오는 관객은 공연 자체에 집중하지 않는 편”이라며 “다른 관객도 그걸 눈치챈다”고 말했다. “그런 관객이 많으면 대번에 우리 홈페이지에 ‘요즘 많이 힘드셨나 보네요, 공짜 표를 많이 뿌리셨나 봐요’ 같은 글이 올라옵니다. 공연장 환경을 관리하는 차원에서도 초대권을 자제할 생각입니다.”
빈체로는 1995년 이 대표가 설립한 클래식 전문 공연기획사다. 크레디아, 마스트미디어와 함께 클래식 공연기획사 빅3로 불린다.한 해 평균 14~15개의 공연을 기획·진행한다.이 대표는 어린 시절 첼로와 피아노를 배웠다. 아버지와 누나는 성악을 전공했고 의사인 형은 바이올린 실력이 수준급이다. 아내 역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클래식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클래식 공연 기획의 길로 들어섰다. 연주자가 아닌 공연 기획자가 된 이유에 대해 그는 “당시에는 남자가 음악을 전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재능도 없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게 ‘신뢰’라고 밝혔다.“팝 음악은 계약서를 통해 공연이 이뤄집니다. 세부적 사항은 계약서에 따르죠. 하지만 클래식은 그것보다 신뢰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에이전시가 걸어왔던 길,마인드 등을 검증한 뒤 믿음이 가는 곳과 일을 합니다.”의외로 세계 클래식 업계는 좁다. 자잘한 소식도 금세그 바닥에 소문이 난다. 어떤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금세 다른 오케스트라에서 “당신들 왜 그랬어?”라고 묻는다. 그렇게 되면 다음에 일을 할 때 힘들어진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서로 믿고 끈끈하게 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신뢰를 잃지 않으려고 각별히 노력했다. 아무리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도 빈체로 측에서 먼저 공연을 취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빈체로도 힘들었다. 유명 첼리스트인 미샤 마이스키의 공연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미샤 마이스키 쪽에서 “경기도 안 좋은데 공연 준비를 할 수 있겠냐”고 먼저 물었다. 후원 기업도 찾기 힘들고 티켓 판매도 어려울텐데 공연을 할 자금이 있겠냐는 것이다. 이 대표는 힘들지만 공연은 반드시 성사시키겠다고 답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미샤 마이스키 쪽에서 먼저 자신의 개런티 30%를 깎겠다고 했다. 공연은 성공했고 이 대표는 다음 번 미샤 마이스키 공연 때 좀 더 개런티를 주는 것으로 신세를 갚았다. 그러다 보니 빈체로를 반복해서 찾는 오케스트라나 음악가들이 많다. 이 대표는 “다시우리를 찾았을 때는 그들의 욕구나 성향을 파악하고 일을 하기 때문에 수월하다”고 밝혔다.
이 대표를 제외하고 빈체로의 직원은 8명이다. “직원 중에는 큰 음반사에 근무하다 온 친구도 있고 전문지 기자출신도 있어요.클래식 전공자도 있고요. 경제적으로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을 갈 수 있지만 클래식이 좋아서 모인겁니다. 이들에게 다른 일을 시키면 즐겁지 않을 겁니다.좋아하는 일을 함께 해야죠.”이 대표의 직원에 대한 배려는 각별하다. 이는 회식문화에서도 나타난다. 빈체로의 회식은 항상 점심 때 한다.일과시간 이후에는 각자 시간을 보내도록 하기 위해서다.이 대표는 회사 일이 개인적인 일과 구분되지 않고 연장되는 걸 싫어한다. 그는 “대부분 직장에서 동료들끼리 밤에 풀어야 할 게 있다면서 술을 마신다”며 “풀어야할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된다”고 밝혔다.
한국 클래식 관객 열정적그는 한국이 클래식 시장에서 매력적인 곳이라고 강조했다. “클래식 인구가 많진 않지만 젊은층이 많아 박수 소리가 다릅니다.많은 공연자들이 젊고 열정적인 환호에 매료됩니다.” 빈체로가 기획해 11월에 공연할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도 열정적 반응에 반해다시 한국을 찾았다.빈체로의 내년 공연 계획은 이미 짜여졌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뮌헨 필하모닉,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등의 공연을 준비 중이다. 이 대표는 벌써 2014, 2015년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주력은 오케스트라입니다. 오케스트라를 계속 하면서 클래식 장르를 넓힐 생각입니다. 오페라도 콘서트 오페라, 아리아만 모아서 하는 오페라 등 작은 것부터 시작해 점차 관객을 넓혀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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