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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삼성·대우도 좌초할 수 있다

현대·삼성·대우도 좌초할 수 있다



국내 조선업계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세계 1위 기업인 현대중공업도 예외가 아니다. 현대중공업은 10월 22일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 퇴직 신청을 받는다고 밝혔다. 만 50세 이상 과장급 이상 관리직 2000여명이 대상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글로벌 장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수주 실적이 악화된 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며 “11월 8일까지 3주에 걸쳐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고 말했다.



“충격적인 소식이다”희망퇴직 신청자는 퇴직금 외에도 위로금으로 최소 24개월에서 최대 60개월치의 월급을 받는다. 만 60세 정년을 기준으로 정년까지 남은 기간이 더 길수록 더 많은 위로금을 받게 된다. 아울러 자녀 학자금이나 의료비 일부도 일시 지급된다. 다른 유수의 대기업과 비교해도 좋은 조건이어서 일각에선 “역시 현대중공업”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지만 이 회사의 분위기는 좋지 않다.

이번 희망퇴직 대상에서 생산·기술직은 제외됐다. 조선업계의 한관계자는 “숙련된 기술과 전문성이 중요한 생산·기술직 대신 관리직 인원을 감축함으로써 명분과 경영 효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것”이라면서도 “업계 부동의 1위로 재무구조가 탄탄한 현대중 공업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완전히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충격적”이라고 전했다. 현대중공업이 희망퇴직을 받는 것은 1972년 창사 이후 40년 만에 처음이다. 업황을 그만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대중공업은 한때 세계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했던 최강자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조선업계가 극심한 불황에 시달린 동안에도 해양설비와 중장비 등으로 버텼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7월에 노사가 2년 정년연장에 합의하면서 ‘돈독한 노사관계로 장기 불황을 극복한다’는 전략이었다. 당시 노사 임금단체협상에서 18년째 연속 무분규기록을 세웠지만 끝을 모르는 불황 앞에 결국은 희망퇴직 신청자를 받는 수순에 이르렀다. 업계 2위 삼성중공업과 3위 대우조선해양은 아직 인원 감축을 계획하지 않고 있다. 다른 중소형의 업체들은 사실상 계속되는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내 조선업계는 실적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업계를 대표하는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빅3’의 올해 상반기 수주액은 173억 달러로 수주 선박은 48척이었다. 작년 상반기에 352억 달러, 141척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실적이 반 토막 난 것이다. 빅3도 위기와 시련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이 가운데 현대중공업은 최근 상황이 가장 좋지 못하다. 현대중공업은 업계 1위라는 명성에 맞게 작년 상반기 156억6000만달러, 71척 수주로 빅3 중 실적이 가장 좋았다. 같은 기간 삼성중공업은 111억 달러(29척), 대우조선해양은 71억3000만 달러(30척)의 수주 규모였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올해 상반기 들어 49억3000만 달러(20척)로 빅3 중 꼴찌였다. 삼성중공업(65억 달러, 선박 11척과 해양설비 1기)과 대우조선해양(58억7000만 달러, 17척)에 각각 못 미쳤다. 빅3 모두 작년보다 저조했지만 현대중공업은 그중에서도 실적 부진이 두드러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이번에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로 한 것은 상반기 실적이 좋지 못했던 데서 비롯된 위기감과 무관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이 ‘위기감’은 세계적인 조선업계 장기 불황이 언제 끝날지 기약하기 어렵다는 데서도 비롯된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세계 조선 수주량은 101만 7795CGT(표준화물 환산 톤수)로 지난해 같은 기간 335만 6234CGT의 30%에 불과했다. 특히 올해는 2009년 이후로 상황이 가장 안 좋다. 9월까지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액은 189억 달러로 사상 최악의 수주 불황이라던 2009년 이후 3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2008년에 680억 달러의 수주액을 기록했던 국내 조선업체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4분의 1인 143억 달러의 수주액을 기록하는 데 머물렀다. 2010년에는 656억 달러, 2011년에는 482억 달러였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업체들의 수주잔량은 꾸준한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올해 9월까지 수주잔량은 3003만CGT로 작년 말보다 22% 감소한 수준이다.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잔량은 2008년 6830만 CGT, 2009년 5350만CGT, 2010년 4470만CGT, 2011년 3860만 CGT로 계속 줄고 있다. 수주잔량의 감소는 남은 일감이 그만큼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중공업의 울산조선소 수주잔량은 올해 9월 기준 476만1000CGT로 2008년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러다 보니 전문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비관론을 제시한다. 현재뿐아니라 미래도 당분간 전망이 어둡다는 것이다. 이상우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조선업계는 내년 이후에나 선박 수주 실적이 개선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며 “당분간은 시장 부진을 극복할 마땅한 대안이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가 마땅한 반격 지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유로존 재정위기 등으로 유럽의 경기 침체가 이어져서다. 빅3의 작년 수주액 중 유럽 선주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57.5%였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40%로 감소했다. 가장 큰 규모의 거래대상인 유럽 선주사들의 발주가 줄어든 상황에서 드라마틱한 반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조선업은 IT·전자 업종처럼 변화하는 트렌드에 따라 반전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자동차나 정유 업종처럼 내수에서 만회할 수도 없다. 세계 경기 불황에다 악재가 겹쳐 선박 수주가 줄면 고스란히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업종이다.

문제는 수주 감소뿐만이 아니다. 타격을 입은 세계 각국 선주사들이 국내 업체에 선박 건조 대금을 미지급하거나 아예 계약을 취소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대만의 선주사인 TMT가 발주한 VLCC(초대형원유운반선) 2척의 건조 대금을 받지 못해 TMT와 협의 중에 있다. TMT는 2007년에 이 선박들을 발주해 선수금 10%를 냈지만 최근 자금난이 심해지면서 나머지 대금 지급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해양은 또 9월에 미주 지역 선주사가 용선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1조2000억원 규모 드릴십 1척과 반잠수식 시추선 1척의 발주 계약을 각각 취소해 난감한 상황을 겪었다.



해양플랜트로 반전 노려이런 상황에서 국내 조선업계는 해양플랜트 등 미래형 고부가가치 전략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양플랜트는 바다 자원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장비나 시설을 만드는 사업 분야다. 기술 투자가 필요하지만 고부가가치를 기대할 수 있어 이를 통해 불황을 극복한다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불황이 계속될수록 고부가가치 시장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면서 “해양플랜트는 불황에도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유럽과 미국의 일부 업체만이 기술력을 보유해 블루오션으로 기대되는 심해저(Subsea) 해양플랜트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1월 일본계 호주 자원개발업체인 INPEX와 27억3000만달러 규모에 CPF(부유식 해양가스 처리설비) 수주를 성사하는 등 해양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도 창사 이후 처음으로 올해 6월 LNG-FPSO(부유식 원유저장 생산설비) 수주에 성공하는 등 고부가가치 시장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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