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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왕의 결단⑳ 인조의 척화-준비 없이 전쟁 부추겨 치욕 맛봐

김준태의 왕의 결단⑳ 인조의 척화-준비 없이 전쟁 부추겨 치욕 맛봐

“나 한 사람의 죄로 인해 모든 백성들에게 화를 끼쳤다. 나라를 전란에서 구하고자 달려온 병사들을 전장의 원혼이 되게 하였고, 죄없는 백성을 다른 나라의 포로가 되게 하였으며, 아비가 자식을 보호하지 못하고 지아비가 지어미를 지켜주지 못하게 하여 가슴을 치고 하늘을 향해 통곡하게 만들었다…(중략)…지난날의 잘못을 되돌아보건대 후회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갑옷과 무기를 정비하고 단련하여 전란에 대비하고자 하였으나 각 고을이 이로인해 불안해했고, 미곡을 조절하여 군량으로 비축하려고 했지만 백성들이 이로 인해 크게 곤궁해졌다. 명예와 절개를 포상하여 사람들을 격려하고자 했으나 이로 인해 낭설들이 더욱 심해졌고, 요역과 부세를 정돈하여 사나운 풍속을 경계하려 했지만 오히려 포악한 관리들이 횡포를 부렸다.”(인조15.2.19).



병자호란이 끝난 직후 인조는 스스로를 책망하는 교서를 발표했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자신은 전란에 잘 대비하려고 했지만 운용이 제대로 되지 못해서 실패했다’는 식이다. 그러나 인조가 보인 행적은 그가 과연 ‘전란에 잘 대비하고자 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정묘호란 당시 후금과 조선은 형제의 맹약을 맺고 화친했다. 하지만 조선은 ‘부득이하게 화친을 맺었을 뿐 언젠가는 치욕을 갚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후금 또한 이러한 조선을 의심하며 견제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몇 차례 외교적 충돌이 발생했는데, 인조 14년이 되면서 사태가 급격히 악화된다. 후금의 칸 홍타시가 황제로 즉위하고 국호도 ‘후금’에서 ‘청’으로 바꾼다는 국서(외교서한)가 전해졌기 때문이다(인조14.2.16).

이 소식을 들은 조선의 조야(朝野)는 들끓었다. 후금과 화친하여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는 했지만, 명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고 후금은 오랑캐라 하여 배척하는 인식은 여전했다.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절대적인 신념이었는데 후금이 ‘감히’ 황제국을 칭해 명나라를 위협하니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홍문관에서는 ‘개돼지 같은 오랑캐에게 더 이상 머리를 숙일 수 없다. 준엄한 말로 저들을 꾸짖어 오랑캐들로 하여금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정신과 도리를 어지럽히지 못하게 해야 한다(인조14.2.21)’는 상소를 올렸으며, 후금 사신들의 목을 베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청나라 태종의 국서 거부사대부들의 강경한 입장에서 힘을 얻은 인조는 홍타시, 즉 청나라 태종이 보내온 국서를 거부한다. 홍타시의 황제 즉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 결정은 금명간 조선에 전쟁이 닥치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했다. 청나라로서는 국가적인 모욕을 당한 것일 뿐 아니라, 산해관을 넘어 명나라로 진격해 들어가려는 시점에서 화근거리를 등 뒤에 남겨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조도 이러한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곧바로 팔도에 특별 교지를 하달하면서 매우 강한 어조로 청나라를 비판하고, 항전을 위한 백성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당부했다(인조14.3.1). 인조의 이러한 척화 노선은 조선 사대부들의 중론을 따르는 것이었지만, 명나라의 은혜를 저버렸다는 죄목을 으뜸으로 내걸고 광해군을 폐위시켰던 인조로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후속 조치들이 뒤따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중앙에서 화약과 무기를 평안도 국경지역으로 보내기도 했지만 단 두 차례에 그쳤고, 수량도 작았다(인조14.3.4/3.10). 인조는 또 다시 “우리나라는 수천 리의 강토를 가지고 있는데 어찌 움츠리고만 있으면서 모욕을 받아야 하겠는가”(인조14.5.26)라고 했지만 말에 그쳤을 뿐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전쟁 대비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인조는 청나라에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귀국에 있다’는 격문을 보내 상황을 악화시켰고(14.6.17: 청나라에서 접수를 거부하자, 재차 사신을 파견했다), 신하들도 전쟁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는 않고 “군사들이 모두 (청나라와) 한번 싸워보기를 원한다고 합니다”는 식의 말만 거듭했다(인조14.8.2).

이러한 인조와 신하들의 태도를 비판한 것이 최명길이다. 그는 “공격과 방어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외교를 통해 전란을 막으려 하지도 않으니, 전쟁이 벌어져 백성들이 도륙 당하면 그책임은 대체 누가 질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먼저 사신을 보내 저들의 정황을 살피고 후일을 도모하며 전쟁을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되, 끝내 여의치 않으면 그 때는 전력을 다해 싸우는 것이 그저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인조14.9.5).

그는 ‘머지 않아 추워져 강물이 얼게 되면 청나라의 군대가 쉽게 강을 건너 진군할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는데, 이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결사항전을 주장하던 인조의 태도가 수그러들었다. 인조는 “지키고 방어할 준비를 하려고 해도 형세가 이와 같고(청에 비해 힘이 너무 약하고), 교섭을 통해 전쟁을 막아보고자하면 사대부들이 모두 불가하다고 말한다. 적은 오고야 말 것인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인조14.11.12)라고 말한다.

청나라의 전쟁 준비 움직임이 포착되는 등 전쟁이 당장의 현실로 다가오자 그제야 걱정이 된 것이다.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우왕좌왕할 뿐 그 어떤 대비도 하지 않는 것을 두고 최명길은 “어제는 병사를 징집하자고 하고, 오늘은 저들에게 사신을 보내자고 하며, 내일은 또 국서를 보내서는 안 된다고 주청하니, 겁을 먹고 혼란에 빠져 있음이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라며 꼬집는다.

또한 최명길은 “의주성을 방비하는 것이 지금 제일 중요한 일이기는 하나 병사와 군량을 준비한 후에야 이 일에 대해 의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병사도 없고 군량도 없는데 대체 무엇을 한단말입니까”(인조14.11.15)라며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았으면서 일전 불사를 주장하는 이들을 논박했다(표면적으로는 다른 신하들에 대한 비판이었으나, 기실 인조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최명길의 동분서주에도 조선 조정은 끝내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고, 마침내 12월 청나라의 대병력이 조선으로 쳐들어왔다.

인조는 남한산성에 들어가 수성전을 벌였는데 “화친의 길이 끊어졌으니 싸움만이 있을 뿐이다. 싸워 이기면 상하가 함께 살고 지면 함께 죽을 것이니, 오직 죽음을 각오함 속에서 살아가기를 구하고, 위험에 몸을 내던짐으로써 평안하기를 구하여야 할 것이다”(인조14.12.18)라고 의지를 불태웠지만 청나라에게 설욕하겠다는 그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듬해 1월 30일,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게 된다.



나라와 백성 위기에 빠트려명나라는 몰락하는 제국이고 청나라는 신흥 강대국인데 이러한 국제정세를 도외시 한 채 명분에만 집착하느라 청나라와 무모하게 맞섰다는 비판은 하고 싶지 않다.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킨다는 것은 지금의 관점에서야 실리라고는 없는 공허한 이상처럼 느껴지겠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였을 테니까 말이다.

다만 올바른 명분과 대의를 지킨다면서도 구체적 실천과 행동이 뒤따르지 못한 점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특히나 철저한 대비는커녕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전쟁을 초래해 나라와 백성들을 위험에 빠트린 점은 인조가 범한 최대의 과오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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