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Film - 소설만큼 스릴 넘치고 재미있을까?

Film - 소설만큼 스릴 넘치고 재미있을까?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 톰 행크스・배두나 등 호화 배역들이 등장하지만 원작의 웅대함 살리지 못해


데이비드 미첼의 놀라운 2004년 작 소설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는 현대 소설의 대담한 줄타기 묘기로 꼽을 만하다(is one of the great high-wire acts of contemporary fiction). 별도의 여섯 개 스토리를 함께 풀어나가는 이 엄청나게 야심적인 소설책은 한번 손에 들면 그냥 내려놓지 못하고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된다(This wildly ambitious page-turner spins six separate tales).

1849년의 바다 위에서 출발해, 1936년 잉글랜드로 건너뛴 다음, 1973년 샌프란시스코로 넘어갔다가, 현재의 런던으로 달려온 뒤, 다시 2144년 디스토피아적인(암울한 미래) 뉴 서울로 날아간다(forward to a dystopian New Seoul).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구종말 이후 야만적인 미래의 하와이섬에 내려앉는다. 인형 속에서 더 작은 인형이 한없이 나오는 러시아 인형 같은 책이다(Russian doll of a book). 하지만 이 책은 500쪽의 중간 부분에서 다시 역주행한다.

각 스토리를 거쳐 19세기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끝맺는다(it rewinds and takes us back through each story until it ends at its starting point in the 19th century). 미첼은 현란한 기교와 대담한 구조로 스타일과 장르를 버무린다(Mixing styles and genres with flamboyant virtuosity and structural daring).

여기저기서 징발한 조각들로 인간의 환경에 대해 완전히 독창적인 비전을 엮어냈다. ‘백경’의 허먼 멜빌, ‘쇠퇴와 타락’의 에블린워, 공상과학 소설, 정치음모 스릴러에 이르기까지 온갖 소재를 차용했다. 요즘은 위험이 적은 만화책을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 영화가 대세다. 이 같은 통념에서 크게 벗어난 영화 프로젝트에 모험을 건 자본가들에게 경탄할 따름이다(you have to marvel at the financiers willing to roll the dice on a project this far outside the box).

이 소설의 영화화에 무려 1억 달러 이상의 예산이 들었다.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톰 티크 베어와 앤디·라나 워쇼스키 형제가 메가폰을 잡았다. 워쇼스키 형제, 그리고 티크베어가 각각 6편의 스토리 중 3편씩 감독을 맡은 이 영화는 홈런을 노린 대작이다(swings for fences).

기라성 같은 스타가 대거 출연하고(Star-studded) 상영시간이 3시간에 가까우며 선과 악, 자유와 속박, 그리고 강자와 약자 간의 영원한 싸움에 관한 거창한 철학적 고찰로 충만하다(loaded with grand philosophical ruminations). 그러나 미첼의 웅대한 구도를 그대로 살리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it struggles mightily to do justice to Mitchell’s grand scheme) 거의 완전히 실패했다.

티크베어와 워쇼스키 형제들이 쓴 시나리오는 다층적인 미첼 원작의 사건들을 충실히 베꼈다. 하지만 그의 고도의 기교를 나타낼 만한 영화적 기법을 찾아내지는 못했다(haven’t found a cinematic equivalent to his virtuoso style).

영화는 원작의 대담한 구조를 따라가는 대신 여섯 가닥의 스토리를 잘게 토막낸 뒤 여기저기 계속 정신 없이 오가며 어느 한 부분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have chopped the six stories into little pieces and continually leap back and forth from one to the other, never settling for long on any).

관객이 감정적으로 몰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It’s almost impossible for the viewer to get emotional traction). 단편영화 6편의 예고편을 동시에 보여주지만 장편영화로는 결코 넘어가지 못하는 격이다(never getting to the feature).

19세기 범선 위에서 병든 젊은 변호사(짐 스터지스)가 밀항하는 아프리카 노예를 도와준다(comes to the aid of a stowaway African slave). 그러더니 다음 순간 영화는 음모를 꾸미는 양성애 작곡가(벤 휘쇼)의 뒤를 추적한다. 그는 유명한 음악 천재(짐 브로드벤트)의 비서로 취직해 그의 영국 시골 저택으로 들어간다. 그 다음에는 70년대 정치 스릴러로 건너뛴다. 대담무쌍한 기자(할리 베리)가 목숨을 걸고 휴 그랜트가 이끄는 핵 발전소의 추한 비밀을 파헤친다.

코미디 같은 현재의 스토리에선 브로드벤트가 곤경에 처한 수상쩍은 문학 편집자로 다시 등장한다. 그는 양로원에서 사실상의 포로가 된다. 고전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2144년판 같은 네오 서울에선 복제인간(배두나)이 등장한다. 그녀의 주인들이 소비자 요구에 응하기 위해 그녀를 만들었다. 인간처럼 영혼을 얻게 된 그녀는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혁명가(스터지스)와 힘을 합친다.

지구종말 이후 스토리에선 톰 행크스가 문신을 한 염소지기로 등장한다. 석궁을 휘두르며 사냥감을 찾는 야만인들과 목숨을 걸고 싸운다(fighting for his life against marauding, crossbow-wielding savages). 그의 유일한 아군은 문명세계의 아름다운 생존자다. 다시 할리 베리가 그 역을 맡는다.

이들 등장인물들의 연결고리는 뭘까? 신비스런 혜성 모양의 모반은 그들이 서로의 환생일 가능성을 시사한다(A mysterious comet-shaped birthmark suggests that they might be reincarnations of each other). 이 영화에는 수전 서랜든, 휴고 위빙, 키스 데이비드, 데이비드 자시, 제임스 다시 등이 출연한다. 이들 모두 배역을 여러 개 맡는다. 정신산만하게 시선을 끄는 분장을 덕지덕지 바르고 여러 시대에 등장한다(popping up in different eras under mounds of distractingly obtrusive makeup).

톰 행크스는 노예무역선의 악의적인 의사, 현재의 사악한 런던내기 소설가, 그리고 (그밖에도 여럿이지만)음모 스릴러에서 할리 베리에게 비밀 메모를 전달하는 오렌지색 머리칼의 과학자로도 나온다. 이 배우들은 시대·인종, 심지어 성별까지 넘나든다. 휴고 위빙은 여장을 하고 양로원에서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무자비한 수간호사 스타일로 변신한다(Hugo Weaving takes a turn in drag as a thuggish Nurse Ratched–type in the old-age home).

영화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인류의 존속(human continuity)이라는 보편적인 테마를 뒷받침하려는 의도지만 서툰 스턴트 같은 느낌을 준다. 늙은 영국 작곡가의 독일계 유대인 아내 역을 맡은 배우가 정말 할리 베리란 말인가? 브로드벤트의 음모를 꾸미는 형제 역을 맡아 그 많은 라텍스를 몸에 두른 배우가 진정 휴 그랜트일 수 있단 말인가? 영화 테마가 자유와 억압 간의 영원한 싸움인가 아니면 할로윈 파티인가?

영화는 배우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어느 정도 진짜 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배우는 브로드벤트, 휘쇼, 배두나뿐이다. 1936년, 2144년, 현재의 장면이 그중 낫다. 가장 형편없는 장면은 먼 미래의 황량한 하와이다. 말귀를 거의 알아듣기 힘든 행크스와 베리가 그들이 만들어낸 엉터리 영어(pidgin English)를 구사하며 불리한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그 단순한 혼성어가 대성공이었다(was a triumph).

사람들은 영화제작자들이 미첼의 원작에서 실마리를 얻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섹션마다 다른 영화적 스타일을 적용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각적 디자인(production design)과 의상은 바뀌지만 영화 제작 자체는 여전히 기이하게 평범하고 진부하다(the filmmaking itself remains oddly mundane and conventional).

미첼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뭐가 그렇게 스릴 넘치고 독특한지 감을 잡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적어도 처음 한시간 동안은 엄청 헷갈리게 된다. 하지만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 진지하지만 실패한 각색을 피해 좋은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는 편이 현명하다(would be wise to preserve your fond memories and steer clear of this earnest but misbegotten adaptation).

영화는 감동적인 역작을 단조롭고 설교조의 뒤죽박죽 사상누각으로 전락시켰다(reduces a moving tour de force to a dull and homiletic house of frenetically shuffled cards).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등 패션 플랫폼 ‘비상경영’ 돌입...무신사 갑자기 왜

2美 CSIS "조선 재건 위해 韓 한화오션·HD현대重 맞손 제시"

3“과태료 내고 말지”…15회 이상 무인단속 상습 위반자, 16만명 넘었다

4지은 지 30년 넘었으면 재건축 더 쉬워진다

5"中에 AI 칩 팔지마"…엔비디아에 이어 인텔도 못 판다

6클릭 한번에 기부 완료…동물구조 돕는 ‘좋아요’ 캠페인

7제니가 콕 집은 '바나나킥'...미국서 도넛으로 변신, 그 모습은?

8TSMC “인텔과 협의 없다”…기술 공유설 선 그어

9제주항공 참사, 美 소송 초읽기...‘보잉·FAA’ 전방위 압박

실시간 뉴스

11등 패션 플랫폼 ‘비상경영’ 돌입...무신사 갑자기 왜

2美 CSIS "조선 재건 위해 韓 한화오션·HD현대重 맞손 제시"

3“과태료 내고 말지”…15회 이상 무인단속 상습 위반자, 16만명 넘었다

4지은 지 30년 넘었으면 재건축 더 쉬워진다

5"中에 AI 칩 팔지마"…엔비디아에 이어 인텔도 못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