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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 DNA’ 확산 R&D 생태계 조성해야

‘챔피언 DNA’ 확산 R&D 생태계 조성해야

신기술 포착, 해외 틈새 공략으로 기반 다져 고객사 애태울 전문화도 필요
경기도 용인의 홍진HJC 연구소 풍동 실험실에서 한 연구원이 헬멧 주위로 흘러가는 바람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



동양기전은 유압실린더 분야 세계 2위 기업이다. 1978년 창업 이후 굴착기·크레인·지게차 등 건설장비에 들어가는 유압실린더와 자동차 부품으로 쓰이는 직류모터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 인천과 충남 아산, 전북 익산, 전남 창원 등지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으며 2011년 매출은 5954억원이다. 수출과 내수 비중은 55 대 45 정도. 유압기기사업부 관계자는 “특히 유압실린더 분야는 수출 비중이 65%”라며 “2011년 2911억원의 매출을 올려 국내 1위, 세계 2위에 올랐다”고 말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동양기전도 여느 회사처럼 고전했다. 주요 납품기업이던 대우중공업과 두산중공업 등이 위기에 처하면서 내수시장이 크게 위축된 탓이었다. 이후 회사는 수출 주도형으로 체질개선에 나섰다. 유압실린더 시장 선도업체인 일본 가야바의 틈새를 뚫기로 했다. 가야바의 소품종 대량생산에 맞서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을 선택했다. 다양한 고객의 요구에 맞춘 것이다.

그 결과 1999년 미국 지니에 유압실린더 600억원어치를 팔며 첫 수출에 성공했다. 외환위기 이후 2011년까지 매출은 5배 가량으로 늘었고, 매출액 100억원 넘는 ‘빅 바이어’만도 열 곳이 넘는다. 회사 관계자는 “글로벌 건설장비 메이커 톱 10 중 유압기를 자체 생산하지 않는 회사는 거의 우리 제품을 쓰고 있다”며 “경기도 광명의 연구센터에서 고객사의 다양한 요구에 맞춘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양기전은 대표적인 ‘히든 챔피언’이다. 지난해 7월엔 엠케이전자·시몬느·화승알앤에이·국도화학·모뉴엘·이라이콤 등 6개사와 함께 한국수출입은행이 선정한 ‘한국형 히든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형 히든 챔피언이란 ‘수출 3억 달러 이상이고 세계 시장 5위 이내’이거나 ‘매출 1조원 이상이고 수출 비중이 50% 이상’인 글로벌 중견기업을 말한다.



기술 변화 읽고 R&D에 투자이 기업들은 평균 42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평균 매출과 수출액이 각각 5530억원, 4341억원에 이르는 곳이다. 우수한 기술력과 함께 지속가능 한 시장지배력을 갖추고 있다. 2011년 이 기업들의 평균 매출 성장률은 14.9%. 유가증권시장 기업 평균치인 11.7%와 코스닥시장 기업 평균치인 7%보다 훨씬 높았다. 또한 평균 영업이익률도 6.6%로, 유가증권시장 기업 평균치 5.9%와 코스닥시장 기업 평균치 5.4%를 상회했다.

히든 챔피언의 면면을 보면 공통된 DNA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연구개발(R&D) 투자와 해외시장 개척, 대기업 틈새 공략이다. 지난해 여름 히든 챔피언 연구를 위해 독일을 다녀온 조병선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원천 기술 보유를 통한 최고의 경쟁력, 현지화를 통한 해외시장 공략, 대기업에는 없는 전문화된 제품이 히든 챔피언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장기적 전망을 중시해 단기적인 투자가치보다 지속성에 무게를 두고 경영을 한다. 한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 노력이 그것”이라고 덧붙였다.

IT소재 전문 기업인 솔브레인은 IT 시장에서 급변하는 기술 변화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연구개발한 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통했다. 특히 특수 제품에 대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높아 반도체 식각액은 90%, 디스플레이·2차전지용 전해액은 50%에 달한다. 최근엔 BOE, 불산, TFT-LCD제조용 구리식각액 등이 지식경제부 선정 ‘세계일류상품’에 오르기도 했다. 그 결과 2004년부터 2011년까지 매출 성장률이 연평균 28%에 달한다.

솔브레인 관계자는 “회사 내부에 연구소 외에도 사업기획팀 등의 별도 조직이 갖춰져 전체적으로 고객사 정보 입수에 나서는 한편 산업에 대한 트렌드 분석을 계속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엔 세계 최초로 전해이온수세정시스템을 양산화해 100억원 매출을 올렸다.

선박평형수처리장치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47%)인 파나시아도 원천기술 확보를 통해 조선기자재 산업에서 경쟁력을 키운 기업이다. 선박은 물건을 싣고 내릴 때 평형을 맞추기 위해 탱크에 물을 채우거나 비운다. 이를 선박평형수라고 하는데, 선적과 하적 당시 각 지역의 물이 섞이면서 해양생태계 교란과 파괴가 올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 바로 선박평형수처리장치다. 최근 친환경 성장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파나시아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자본금 부족과 인재 부족 등 중소기업의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블루오션에 뛰어들었다”며 “2차 오염과 선체의 부식 염려가 없고 침전물 생성이 억제되는 친환경 제품을 개발한 것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현재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선박평형수처리장치에 대한 국제법 지정을 추진하고 있어 사업에 더 큰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틈새 분야로 해외시장 공략한국 중소기업 매출구조는 내수 85%, 수출 15%로 내수시장 의존적이다. 60% 이상을 수출하며 높은 수익을 내는 독일의 히든 챔피언과는 큰 격차다. 독일의 히든 챔피언 중 75%는 처음부터 수출을 시작했고 34%는 창립과 동시에 해외지사를 만들었다.

한국콜마는 제조업자 생산개발(ODM) 방식 화장품 시장의 개척자로 통한다. 한방 화장품 세계 1위인 이 회사는 업계 최초로 주문자 상표부착생산(OEM) 방식과 함께 ODM 개념도 도입했다. ODM은 주문자가 ‘이런 기능이 있는 제품을 넣어달라’고 주문하면 제조업체가 스스로 기술을 개발해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 한국콜마는 아모레퍼시픽·존슨앤드존슨 등 국내외 200여개 화장품 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생산방식을 바꾸어 시장을 확대한 것이다.

헤르만 지몬 교수가 저서 『히든 챔피언』에서 한국의 히든 챔피언으로 꼽은 홍진HJC도 헬맷 분야 세계 1위 업체다. 가벼운 플라스틱 성분으로 목의 피로감을 최소화하면서도 강한 충격에 대한 내성까지 확보하는 기술이 먹혔다. 최근엔 해외 유명 모터사이클 대회를 통한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최근 국제모터사이클연맹(FIM)이 운영하는 MotoGP 클래스 월드챔피언 호르헤 로렌조와 공식후원 조인식을 했다. 모터사이클의 ‘F1(포뮬러-원)’이라고 불리는 MotoGP 클래스는 매년 13개국을 돌며 월드투어 방식으로 연간 18회 이상 열리는 세계 최대의 모터사이클 레이스 대회다. 홍진HJC의 헬맷이 널리 홍보되는 셈이다.

기존 대기업 계열사들이 신경 쓰지 않았던 틈새시장을 공략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짭짤한 실적을 거두고 있는 히든 챔피언도 있다. 네오플램은 항균도마로 2011년에 130억원 수출을 달성했다. 세계 시장점유율 23.6%로 1위. 세계적으로 신뢰성을 인정받은 항균 물질인 마이크로밴을 첨가해 안전하고 위생적인 도마를 개발해 냈다.

오케이에프는 알로에 음료의 효시인 ‘알로에베라음료’로 시장점유율 82%를 기록했다. 피부미용이나 약용으로 인식되던 알로에 베라를 처음으로 음료 상태로 개발해 150개국에 유통망을 확보한 덕분이다. 이밖에 유리창만 전문적으로 청소하는 지능형유리창청소로봇을 만드는 일심글로발, 집안에서 전문기술이나 비용·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손톱을 스탬핑 방식으로 가꿀 수 있는 제품인 스탬핑 네일아트킷을 만드는 코나드 등도 틈새시장을 잘 파고든 사례다.



민관 공동연구로 개발 성공률 높여야현재 히든 챔피언 선정과 지원은 정부와 금융권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수출입은행이 2009년부터 251개 기업에 7조9000억원의 금융지원을 통해 히든 챔피언을 육성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도 코스닥 시장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우량기업을 선정해 육성하겠다며 히든 챔피언 제도를 2009년 도입했다.

IBK기업은행에서는 ‘IBK수출강소기업 프로그램’을, 국민은행은 ‘KB HIDDEN STAR’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식경제부도 ‘월드클래스 300’ 프로젝트와 ‘세계일류상품’ 선정 사업을 진행 중이다. 중소기업청은 2011년부터 ‘글로벌 강소기업 육성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수출입은행마저도 성과가 신통치 않다는 지적이다. 2019년까지 히든 챔피언 선정 목표를 애초 300개에서 100개로 줄였지만 사업 시행 3년 만에 7개 업체를 선정했을 뿐이다. 일부 지원책에 대해서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거래소의 경우 투자설명회·IR 개최 지원, 채용지원, 연부과금 면제, 벤처기업소속부로의 편입 등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쓸 만한 혜택은 없다는 것이다. “간판 말고는 코스닥 상장유지비용인 연부과금 몇 십 만원 면제 수준”이라는 불만이다.

중소기업 스스로 전문성을 갖추어야 히든 챔피언에 오를 수 있다는 조언도 있다. 유필화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장은 “한국에서 히든 챔피언이 많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업계에서 토요다 없어지더라도 현대자동차·닛산·포드가 있어 시장의 공급이 흔들리지 않지만 독일의 금속가공 기업 트럼프가 없어지면 관련 업계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큰 고객이 매달릴 정도로 전문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야 한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103개 제조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55개사(53.4%)가 히든 챔피언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로 ‘R&D에 의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꼽았다. 조병선 교수는 “개별 기업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R&D 예산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견기업들이 독자적으로 연구 개발 하다 보면 성공률이 떨어지므로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연구·개발할 수 있는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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