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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급등락에 토빈세 카드 만지작

환율 급등락에 토빈세 카드 만지작

정부 핫머니 규제 방안 고심 … 외환거래 위축 우려 목소리도



우리나라가 마침내 ‘토빈세’의 칼을 뽑을 참이다. 원화 가치가 해외 투기자본에 흔들리는 걸 막기 위해서다. 1월 3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해외자본 유출입 변동성 확대, 이대로 괜찮은가’ 세미나장.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단기 해외 투기자본을 규제하자는 토빈세가 지향하는 취지를 살려서 우리 실정에 맞게 수정한 다양한 외환거래 과세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법은 제도를 우선 도입한 뒤 시행유보 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핫머니 더 이상 묵과 못해토빈세란 ‘핫머니(국제 투기자본)’를 막기 위해 단기성 외환 거래에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Tobin)이 제안했다. 정부가 공청회를 열어 외환거래에 세금을 매길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정책방향은 세금이라는 칸막이를 세워 막기보다 거래를 활성화해 외환거래량을 늘리자는 쪽이었다. 외환시장의 ‘그릇’이 커지면 단기 투기성 자금이 들어오고 나가도 충격파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정부가 생각을 바꾼 데는 최근 외환시장의 움직임이 그만큼 다급하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최근 역외세력이 서울외환시장에서 대규모 달러 매수에 나서면서 원·달러 환율이 크게 흔들렸다. 1월 28일 20원 가까이 급락한 달러당 원화 가치는 이튿날에는 11원 급등했다.

환율이 급등락을 보일 때마다 금융회사와 수출제조업체들은 몸살을 앓았다. 정부 관계자는 “환율도 문제지만 더 큰 고민은 환율의 변동 속도”라며 “변동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면 실물경제 주체가 예측할 수 없어 피해 가능성이 크고, 외환을 이용하는 각종 파생상품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최 차관보의 토빈세 발언이 알려지자 원화 가치는 30분 사이 10원 가까이 떨어졌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벽을 쌓으면 외환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그대로 반영됐다.

토빈세 도입에 앞서 외환당국은 우선 단기대책을 실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른바 ‘거시건전성 3종 세트’로 불리는 기존 외환 규제다. 특히 선물환 포지션(은행이 수출업체로부터 달러 선물환을 매입할 수 있는 한도)은 곧바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투기적 수요가 주로 선물환 거래에서 나타나는 만큼 우선적으로 은행의 선물환 거래 여력을 축소시키겠다는 것이다.

현재 외국은행 지점은 직전 1개월 평균 선물환 포지션이 자기 자본의 150%, 국내 은행은 30%를 넘으면 안 된다. 이를 주(週)나 매 영업일 단위로 바꾸면 단기간에 포지션이 급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러고도 안 되면 외환건전성 부담금 제도를 강화한다. 외환건전성 부담금이란 국내 은행이 외화를 차입할 때 기간별로 0.02~0.2%의 부담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현재 법상으로는 0.5%를 부과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0.2%를 넘지 않고 있다. 이를 법대로 매겨서 금융회사가 달러를 마구 차입하는 걸 막는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기존’ 대응방안이었다. 외환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달러 수급을 조절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얘기다. 최 차관보는 1월 30일 “최근 양적 완화는 전례 없는 상황”이라며 “대응조치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개한 것이 외환거래세와 금융거래세였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채권거래세나 외환거래세는 해외에서도 도입하거나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우리만 튀는 조치가 아니다”며 “애초 외환규제에 반대하던 국제통화기금(IMF)도 단기성 투기자본을 막기 위해서라면 정부 개입을 인정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원래 의미의 토빈세는 외환시장 현물 거래 전체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외환시장 자체가 축소될 우려가 있는데다 선물환·옵션·선물 같은 다양한 외환·금리 파생상품을 통해 세금을 회피할 수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다. 또 규제를 해야 하는 투기적 해외자금과 그 이외 자금(FDI, 해외직접투자, 수출입 관련 자금 등)을 구별하기 곤란하다는 것도 문제다.

현재까지 ‘토빈세’ 형식의 규제를 도입한 나라는 브라질이 거의 유일하다. 브라질은 2009년 10월 외환거래세를 도입했다. 외국인들이 채권에 투자할 때 환전하는 단계에서 6%의 세금을 부과한다. 예컨대 5만 헤알(약 3500만원)을 브라질 국채에 투자하면 6%인 210만원를 뗀 470만 헤알(약 3290만원)어치만 채권을 살 수 있다.

이스라엘은 2011년 1월 외국인이 외환파생거래를 할 때 예치금을 부과하는 예치제를 도입했다. 외국인이 은행과 FX스와프와 외환선물거래를 할 때 10%의 예치금을 맡겨야 한다.



진보 진영 중심으로 토빈세 도입 환영유럽연합(EU)도 적극적이지만 아직 시행은 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는 2001년, 벨기에는 2004년 외환거래세를 도입하기로 입법했지만 다른 EU국가들이 시행하기 전까지는 시행을 유보하고 있다. EU재무장관 회의는 올해 1월 22일 EU 11개국에 대해 금융거래세 별도도입을 승인했다. 채권과 주식은 거래액의 0.1%, 파생상품은 0.01% 이상 받는 내용이었다.

EU집행위가 마련한 세부방안에 대해 11개국이 만장일치로 합의하면 유럽의회 승인을 받아 내년 1월 시행할 예정이다. EU 11개국은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벨기에·포르투갈·그리스 등 주요국이 포함돼 있다. EU는 외환거래세를 도입하면 연간 세수 규모가 300억~350억 유로(47조~5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EU안은 상품 발행장소를 기준으로 과세하도록 했다. 한국에 있는 법인이 EU 회원국 상품을 사면 EU의 외환거래세를 물린다는 말이다. 조세피난처로 금융회사가 도피해 투자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과세 대상에는 도입국의 주식, 주식예탁증서(DR), 채권, 기업어음(CP), 단기 금융시장의 상품, 구조화 상품, 장내 파생상품 등이 포함된다.

다만 이 조치는 독일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시행이 지연될 수 있다. 토빈세 도입에 대해 금융현장에서는 반대가 많아 보인다. 세금을 부과하면 거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성희 JP모건 지점장은 “채권거래세를 도입하면 채권거래가 위축돼 국채와 통안채의 조달금리가 상승해 채권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며 “외환거래세도 거래가 위축되면서 변동성이 커지고, 국내 기업의 외환거래 비용이 증가해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NH농협선물 이진우 리서치센터장도 “EU가 금융거래세를 어떤 방식·세율로 도입하든 시장 위축이 불가피하다”며 “규제 강화보다는 국내 기업의 환 리스크 헤지 풍토를 만들고 해외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말했다.

금융현장 특성상 세금 부과를 반대하더라도 정부는 투기자본에 대비해 ‘벽’을 높이 쌓는 게 당연하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토빈세는 진보 진영이 극력 환영한다. 문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여부다. 토빈세는 특정 투자자에 대한 과세이기 때문에 미국 측으로부터 투자자 소송(ISD)을 당할 수 있다. 진보정의당 측은 “토빈세로 환율을 안정시키려면 국제 공조가 절실하다”며 “이를 위해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차원에서 토빈세 도입을 공동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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