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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꿈꾸고 아들이 이루다

아버지가 꿈꾸고 아들이 이루다

정몽준 의원, 식량안보 선친 유지 이어 여의도 면적 75배 농장 건설 세계적 폭염·가뭄에 수요 증가까지 겹쳐 곡물가격이 해마다 치솟고 있다. 머지 않아 식량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식량자급률이 떨어지는 우리로선 식량자원 확보가 시급하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내 정치권에서도 러시아 연해주의 광활한 땅을 ‘농업경제특구’로 지정해 한국의 식량기지로 활용하는 논의가 재개됐다. 충남 서산농장을 개척하며 식량자급을 꿈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행동에 나섰다. 정몽준 의원은 부친의 뜻을 이었다. 전초기지는 현대중공업의 ‘현대 연해주 농장’이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75배에 이른다. 최근 월드뱅크 산하 국제금융공사(IFC)는 글로벌 식량기지 건설을 위해 현대중공업과 손 잡았다. 사모펀드인 보고펀드도 투자에 나설 참이다.



2월 5일 오전 7시 30분 극동러시아 농업도시 우수리스크의 기온은 영하 22℃를 기록했다. 자동차를 타고 ‘현대 연해주농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1시간 반 내내 차창 밖으로 끝없이 설원이 펼쳐졌다. 인적은커녕 야생 동물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방 어디를 보아도 지평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북으로 올라갈수록 기온은 점점 떨어져 우수리스크 북쪽 70㎞에 위치한 농장에 도착했을 때 온도계는 영하 26℃로 더 떨어져 있었다. 다행히 바람이 거세지 않아 체감온도는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된 M-60 도로는 일종의 외곽 고속화도로다. 우수리스크와 하바로브스크를 지나 모스크바까지 이어진다. 길은 순탄치 않다. 아직까지는 이곳이 러시아의 변방이라서다. 현대 연해주 농장은 M-60 도로 양 옆에 펼쳐져 있다.

윤병섭 현대자원개발 연해주사업본부 총괄법인장은 “겨울 내내 들판은 눈에 덮여 있지만 봄이 오면 콩과 옥수수가 자라 녹색 옷으로 갈아입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곳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로 교통을 비롯한 인프라가 그런대로 잘 갖춰져 곡물을 한국으로 반입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수출할 때 물류비를 절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콩·옥수수 2만t 수확 목표현대중공업 그룹이 식량자원 확보 전초기지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충남 서산농장을 개척하며 식량자급을 꿈꾼 고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의 유지를 잇는 것이다. 현대 연해주농장은 현대 하롤 농장(Hyundai Khorol Agro)과 현대 미하일로프카 농장(Hyundai Mika㏊ilovka Agro)을 현지법인 형태로 운영한다. 현대중공업이 소유하고 현대자원개발이 운영한다.

식량자원 확보의 첫발은 2009년 연해주 하롤스키 라이온 지역에서 뉴질랜드 소유주에게 농장 지분을 인수하면서다. 윤병섭 총괄법인장은 “하롤 농장 규모가 1만㏊인데 이는 1979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매립 면허를 받고 15년 넘게 간척해 준공한 서산농장과 같은 면적”이라고 말했다. 하롤 농장 부지를 확보하는 과정엔 에피소드가 있다.

이곳은 뉴질랜드 소유주가 10여 년간 운영했다. 현지의 다른 영농법인은 정부가 임대하는 데 비해 뉴질랜드 소유주가 보유한 땅이 70% 가량 되고 정부에서 임차한 용지는 30%에 불과했다. 현대중공업 측으로서는 독립적이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벌일 수 있는 최적지였다. 하지만 소유주는 대화조차 꺼렸다. 결국 삼고초려. 협상을 위해 뉴질랜드를 두 차례 방문한 김용진 현대자원개발 연해주사업부장은 당시 소유주에게 다음과 같이 설득했다.

“북쪽에 고향을 둔 우리 회사 창업자는 집에서 소 판 돈을 들고 나와 현대라는 글로벌 기업을 일궜다. 늘 마음의 짐을 지고 있던 그는 남북한 화합을 위해 소떼를 몰고 방북했다. 당시 가지고 간 소가 1001마리였다. 한마리는 원금이고 1000마리는 이자였다. 우리 회사는 그 꿈을 다시 연해주에서 만들고 싶다.”

그러자 뉴질랜드 소유주는 박장대소하며 “팔겠다”고 답했다. 김부장은 “러시아의 법제와 문화, 고용구조가 한국과 많이 달라 농장을 새로 만들려면 시행착오를 겪고 비용이 들겠지만 이 농장은 뉴질랜드인이 상당기간 운영했기 때문에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지화로 수확률·품질 높여현대중공업은 하롤 농장에 이어 2011년 미하일로프카 농장을 설립하고 제3농장 후보지까지 확보했다. 농장 총면적은 2만1834㏊로 서울 여의도 면적(290㏊)의 75배에 달한다. 농장을 가로지르는 도로만도 13㎞에 이른다. 농장은 겨울이 긴 특성을 감안해 5월에 옥수수와 콩 씨앗을 심어서 10~11월에 수확한다. 땅이 넓은 만큼 재배와 수확은 완전 기계화로 이뤄지고 곡물은 연해주 일대에 판매된다.

농장 규모야 2만㏊가 넘지만 농기계와 시설 부족, 토지 특성 탓에 전체 농지의 3분의 1만 경작하는 윤작 농법을 채택하고 있다. 지난해엔 하롤 농장 4600㏊에서 콩·옥수수·귀리 8700t, 미하일로프카 농장 940㏊에서 콩 1400t을 수확했다. 올해는 하롤 농장(4700㏊)과 미하일 로프카 농장(2100㏊)에서 각각 1만4500t, 6000t 등 2만500t의 곡물 수확이 목표다.

해외 농장의 성공은 현지화에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현지인의 노동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연해주 내 타 영농기업과 달리 철저하게 현지화에 힘을 쏟았다. 윤병섭 총괄법인장은 “로컬 영농회사들은 농사철에 맞추어 시즌제 계약을 하지만 우리는 연봉제로 계약한다”며 “고용과 급여체계가 안정적이고, 다양한 보상체계를 선보여 현지인들에겐 일하고픈 기업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확 당시 일화는 현대 연해주 농장 현지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본격적인 수확기를 앞두고 연해주 지역에 연일 비가 내려 11월이 다 지나도록 농기계 작업이 힘들었다. 자칫 눈이라도 내리면 수확을 포기할 지경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연해주 지역의 수확률은 상당히 저조해 극동 러시아의 곡물 가격도 상승했다. 하지만 현대 연해주농장은 95%의 수확률을 기록했다. 전 직원이 영하 15℃ 날씨에도 열흘 이상 새벽까지 일을 한 결과다. 마지막 날 새벽 3시에 수확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눈이 내렸다.

윤 총괄법인장은 “아직 사회주의 영향이 남아있는 러시아인에겐 야근 개념이 없는데 자발적으로 끝까지 밭을 지켜주었다”며 “이후 한국인 임원과 러시아인 직원들 사이에 ‘너희들’ 우‘ 리들’이라는 표현이 없어졌다. 대신 우‘ 리 농장’이라는 표현이 늘었다”고 말했다.

좋은 근무 조건과 자발적인 노동은 곡물의 품질을 높였다. 대두의 경우 지난해 평균 1㎏당 10.5루블에 팔았는데 올해 15루블 선에서 가격 협상이 이뤄졌다. 게다가 운송비도 구매자 부담으로 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생산된 곡물은 전량 연해주에서 소비된다. 연해주 일대 콩기름 회사를 비롯한 식품 제조업체가 주 거래선이다.

최원보 현대자원개발 연해주사업본부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국내 반입의 경우 블라디보스토크는 아직 곡물터미널 시설이 없어 유통비용이 많이 먹히고, 한국의 높은 관세(대두 480%)도 진입 장벽”이라며 “현재로서는 해외에 농장을 건설해 농산물을 수확해도 한국으로 보낼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연해주 농장이 위치한 우수리스크 북쪽 블로그단노에·보즈니셍카·루츠키·달자보스코에 등은 1970년대 조성된 농업 계획도시다. 그러나 옛 소련 붕괴와 함께 집단농장 등 농업 인프라가 파괴돼 폐허인 곳이 많다. 소득 낮은데 공산품이 부족해 물가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삶은 살아내는 것”이라는 게 이 곳 사람들이 즐겨쓰는 표현이다. 안드레이 구빈 현대 하롤아그로 법인 대표 겸 농장장은 2004년부터 이 농장에서 일했다. 그는 현재 하롤농장의 60여명 직원과 영농을 책임지고 있다.

“소련 붕괴 후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났고, 집단농장에 대한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재정적 궁핍을 겪게 됐다. 더구나 중국 농산물이 개방돼 가격 경쟁력에서도 뒤졌다. 우리 모두가 소규모 자영농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이 농장을 연 후 안정된 직장이 생겼고, 우리 땅에서 콩과 옥수수가 자라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

2007년부터 해외 식량기지 구축 프로젝트를 시작한 현대중공업이 연해주를 주목한 건 입지 조건 때문이다. 윤병섭 총괄법인장은 “비행기로 2시간40분 걸릴 정도로 한국과 가까운 데다 날로 팽창하는 극동경제와 자원개발의 중심지역이기에 연해주를 택했다”며 “영농 면적 확대, 농지 개량 등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나라 식량기지 건설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월드뱅크 등 펀딩으로 해외 진출 날개곡물은 에너지만큼이나 수급 불안이 지속되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지난해 기준 27% 수준에 불과하다. 식량안보에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실제 2007년과 2008년에는 콩과 밀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식량 위기를 한차례 겪었다. 2010년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세계적인 곡물 수출국들이 연말까지 해외 수출을 제한하면서 국제 곡물가격이 한차례 더 요동쳤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의 해외 농업투자는 많이 뒤처져 있다. 식량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낮은 데다 정부 지원 규모도 작다. 일본은 브라질 등에 자국 내 경지면적의 3배에 달하는 1200만 ㏊의 해외 농지를 확보했다. 중국 또한 아프리카·중남미 등의 농경지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양 사장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옥수수로 환산할 경우 1년에 2000만t 정도의 곡물을 수입한다. 우리가 50% 정도 자급하려면 해외 식량기지에서 1000만t은 생산해 들여와야 한다. 2모작을 하는 브라질에서 1000만t을 생산하려면 100만㏊가 필요하다. 충청남도보다 크고 경상남도 보다 작은 규모다. 이 토지를 매입하려면 5조~6조원이 든다. 가스나 석유개발에 드는 비용에 비하면 상당히 경쟁력 있는 가격이다. 일단 현대중공업 그룹이 시작했으니 선구자 역할을 할 것이다.”

최근 현대자원개발은 큰 후원자를 만났다. 월드뱅크 산하IFC(International Finance Corporation)가 현대자원개발과 손잡고 글로벌 식량기지 건설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양봉 사장은 미국 워싱턴DC IFC 본사에서 진용 차이 IFC 신임대표와 농업분야 공동 투자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현대자원개발은 투자대상 지역 선정과 현지 농장 운영 등을 담당하고, IFC는 이 사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맡는다.

양 사장은 “현대자원개발의 식량기지 건설과 영농 노하우에 IFC가 보유한 네트워크·정보가 합쳐지면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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