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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건 지키고 풀 건 풀자

지킬 건 지키고 풀 건 풀자

개발·투자유치 둘러싸고 도청·도민·정부 불협화음 … 교통·레저·쇼핑 인프라 확충 노력도



중국이 제주도의 매력에 푹 빠졌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하루 수천 명 중국인이 제주를 방문한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10만명 미만이던 중국인 관광객은 2009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2009년 제주를 방문한 중국인은 25만8000명. 그동안 제주 관광을 주도한 일본인 관광객(18만3000명) 수를 앞질렀다.

지난해에는 108만명의 중국 관광객이 제주를 찾았다. 올해 중국 관광객 수는 220만명이 넘을 전망이다. 중국 자본도 제주에 몰린다. 콘도·빌라·리조트 회원권을 구입하려는 중국인의 문의가 줄을 잇는다. 굵직한 리조트·호텔 개발 사업에 참여하려는 중국 부동산 기업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제주도가 중국인 사이에 인기가 높은 건 우선 지리적으로 가까워서다. 5~6년 전부터 중국인의 해외 관광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면세품 구매 목적의 해외 여행이 붐이다. 제주도는 중국인이 가장 간편하게 해외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관광지다. 중국 베이징을 비롯한 동부 도시에서 한두 시간이면 제주도에 올 수 있다.

홍콩이나 마카오보다 가깝다. 카지노와 골프를 즐기기에도 좋다. 특히 마카오는 중국인의 출입을 1년에 4회로 제한한다. 한번 출입하면 일주일 밖에 머물 수 없다. 제주도는 출입 제한이 없다. 비자 없이도 방문할 수 있다.



무비자·무제한 출입으로 중국인 관광객 100만 돌파깨끗한 이미지와 이국적인 분위기도 중국인을 매료시키는 강점이다. 제주도에서 만난 중국인 이주(28)씨는 “물·공기가 맑고 도로 주변에 쓰레기가 없어 청결한 분위기가 너무 좋다”며 “바닷물의 색이나 나무 등 경치가 독특해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관광을 사흘 하고 제주에서 이틀 머물 계획인데, 오히려 제주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중국에서 제주도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투자 문의도 잇따른다. 중국 여행사들은 100실 이내 규모의 작은 호텔을 사들여 자국 여행객 숙소로 활용한다. 대형 레저타운이나 리조트에 투자한 중국 부동산 기업도 여럿이다. 현재 중국인이 투자한 1000억원 이상 규모의 프로젝트만 7개다. 지식경제부 주도로 2010년 2월부터 시행한 ‘부동산영주권 제도’는 개인 투자자 사이에 인기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외국인 관광·투자 유치를 장려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제주도가 지정한 부동산에 5억원 이상을 투자해 5년 이상 보유하면 영주권을 준다.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부동산을 취득해도 1년에 일정한 체류 날수를 채워야 영주권을 받는다. 제주도는 다르다. 체류 일수와 관계 없이 영주권을 준다. 이 제도를 통해 제주도는 지난해까지 총 2254억원의 분양 실적을 올렸다.

해외 투자와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는 건 제주 경제에 분명 플러스 요인이다. 특히 일본 관광객 수가 줄어드는 시점에서 중국 관광객이 늘었다. 하지만 2월 20일 제주도청에서 만난 담당 공무원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최근 제주 시민들과 환경단체,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어서다. 제주에는 ‘향후 5년 안에 제주 도민의 절반이 중국인이 될 것’ ‘중국의 부동산 투기 세력이 제주를 망쳐 놓는다’와 같은 악성 루머가 급속히 퍼졌다.

임병종 제주국제자유도시본부 투자유치과 주무관은 “리조트와 콘도 분양 때 중국인이 몰린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도민 사이에 이상한 루머가 돈다”며 “10년 후에는 중국인이 제주를 장악해 중국인 도지사가 나올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제주도 입장에서도 시민단체나 주민의 불안에 황급히 대응한다. 연일 보도자료를 배포해 ‘현재 중국인이 보유한 제주도 내 토지는 전체 면적의 0.1%에 불과하다’ ‘부동산영주권 제도로 실제 유치한 중국인은 145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렸다. 앞으로 중국인 투자를 받을 때는 신용평가를 포함한 사전 심사를 강화한다는 취지의 ‘외국인 투자유치 활성화 계획’도 내놨다.

강동원 제주도 국외권유치 담당 사무관은 “중국을 활용해 더 많은 경제 효과를 창출해야 하는 시점에서 엉뚱한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며 “도민들이 중국인을 꺼린다는 소문이 중국에 퍼지면 제주를 찾는 중국 관광객의 발길이 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책 혼선, 민관 불협화음 줄여야제주도가 여론과 씨름하는 사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주도 개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제주도에서 외자 투자를 받아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총 12개다. 국내 기업의 투자 지역까지 합하면 총 27개의 ‘투자진흥지구’가 지정돼 있다. 이 중에는 채 진행되기도 전부터 삐걱거리는 사업이 많다. 전반적인 내용도 일관성 없이 중구난방이다. 사업 중간에 도지사가 교체되면서 생긴 문제도 있다.

과거 김태환 도지사 시절에는 제주도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다양한 개발 계획 허가를 내줬다. 일각에서 ‘제주도가 난개발 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2010년 부임한 우근민 도지사는 ‘제주 중산간도로(한라산 중턱을 두르고 있는 도로) 내부 지역의 개발을 제한하겠다’는 취지의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김태환 도지사가 추진한 사업의 일부가 진행 중이어서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투자자들은 “동일한 조건에서 누구에겐 개발이 허용되고 누구는 제한 받아야 하느냐”면서 불만을 쏟아냈다. 제주도는 바다 경관이나 섬 전체의 스카이 라인을 위해 고도 제한을 두는 지역이 많다.

그런데 곳곳에 예외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게 말레이시아 외자 유치를 받아 진행하는 ‘예래휴양형 주거단지’ 사업이다. 제주도는 2009년 이 단지 내 건축물의 고도를 240m(약 50층)까지 짓도록 승인했다. 이 사업은 3월에 착공한다. 두고두고 잡음이 생길 여지가 있다.

비윤리적인 부동산 업자 탓에 피해도 발생했다. 제주도는 국가가 지정한 관광도시다. 그래서 곳곳에 개발 제한 지역이 많다. 최근 화두인 영주권 제도 역시 도가 지정한 지역 내의 부동산을 매입해야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일부 부동산 업자가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고 ‘부동산을 사면 무조건 영주권을 획득할 수 있다’ ‘이 지역은 1~2년 안에 개발 제한이 풀리는 지역’이라며 속여 땅을 파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기 저기서 문제가 터질 것”이라며 “2000년대 초반 서울·부산 등 내국인 투자를 유치하면서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지금은 그 대상이 중국인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런 불협화음 탓에 해외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 현재 제주도에는 5조6133억원 규모의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이다. 현재까지 제주도에 실제로 유입된 외국 자본은 3292억원에 불과하다. 이 중 중국 자본은 1296억원이다. 지금처럼 마찰이 계속 발생하면 5조원 외자 유치 계획은 계획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

도에서는 현재 1억원을 들여 ‘제주도 관광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난개발을 방지하고 환경을 보전하면서 지속가능 한 개발을 위해서다. 좀 더 효율적인 외자 투자 유치 로드맵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 계획마저도 상위 계획인 ‘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과 상충하는 부분이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현재 중국 기업의 국내 투자 법률자문업무를 맡은 법무법인 새빛의 배우성 고문은 “제주도가 중국 자본의 혜택을 30~40년 이상 보려면 지킬 건 지키고 과감하게 풀 건 푸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켜야 할 건 일관성이다. 환경 보전을 위해서 건물의 고도 제한이나 중산간도로 내부 지역 개발 제한 제도를 일관성 있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건전한 투자 환경이 조성되고 장기적으로도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 대신 중국인이 제주도에서 좀 더 많은 경제 효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배 고문은 “제주도와 정부의 긴밀한 협조 아래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는 시점이다”고 말했다. “제주로 들어오는 교통편이 턱 없이 부족하다. 지금 추세라면 항공편을 24시간 운영해야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 배로 이동이 원활하도록 항만 개발도 고려할 만하다. 중국인의 상당수가 면세 쇼핑을 즐기는데 그 숫자도 턱 없이 부족하고 면적도 좁다. 정부에서는 도시의 외부 관광객이 전년 대비 30만 명 이상이 늘 경우에 한해서면 면세점 1개를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데, 제주도에는 제도를 좀 더 완화해야 한다.”



공편 24시간 운영, 면세점 확충 시급제주도의 인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현재 추세만 잘 유지해도 1년에 중국인 관광객 300만 시대가 꿈은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장기적인 비전과 안목이 필요하다. 우근민 도지사는 지난해 4월 중앙일보 주체로 열린 ‘한중일 30인 회의’에서 “동북아 중심지에 위치한 제주가 한·중·일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며 “3국 무역의 중요한 거점이 될 잠재력이 크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구호로만 끝나서는 곤란하다. 무역 거점이 되려면 컨벤션 센터나 항만·쇼핑·레저 인프라를 충분히 갖춰야 한다. 우 도지사의 말처럼 제주도는 잠재력이 큰 도시다. 그걸 끌어낼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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