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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전기요금 체계 바꾼다

10월에 전기요금 체계 바꾼다



윤상직(57)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8월 1일부터 경남 밀양에서 2박3일 휴가를 보냈다. 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및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그는 총 3차례 밀양을 찾았다. 그 바람에 일부 주민들에게서 “장관이 한국전력 대변인이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송전탑 건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90.5㎞ 중 밀양시 4개 면 29.8㎞를 남겨 두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

윤 장관은 “내년 준공 예정인 신고리 원전 3~4호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공급하려면 더 이상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와 만난 8월 12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3동 장관실 앞 복도는 소등을 해 컴컴했다. 전력대란 때문이었다. 접견실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마주앉았다. 그는 전력 수요를 관리하다 보니 오후 5~6시에 낮에 미뤄둔 조업을 하는 공장이 있어 이때 전력 피크가 한번 더 생긴다고 그는 말했다.

휴가는 따로 냅니까?

“잡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밀양 송전탑 문제로 여가·취미 다 반납했습니다.”

절전 규제를 위반한 20개 대기업의 명단을 공개했는데 성과가 있나요?

윤상직 장관은 스마트폰을 꺼내 전력수급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회사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경각심을 일깨우려 했습니다. 기업도 사회적 책임이 있지 않습니까? 전기로를 가동하는 철강업체들이 동참하지 않았다면 전력 수요를 맞추기 어려웠을 거예요.”

전력 수급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전기요금이 가격 기능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전기요금 인상보다 요금의 체계를 고쳐야 합니다. 전력 부하가 피크로 걸릴 때와 부하가 적게 걸릴 때 가격 차가 나도록 해야죠. 피크 시간대 부하를 평평하게 분산시키면 발전소와 송전 설비를 더 건설하지 않아도 됩니다. 따라서 부하의 분산을 유인하는 요금 체계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요금 체계가 바뀌면 전기요금이 오히려 절감되는 기업도 나올 거예요. 부하가 적게 걸릴 때 부여하는 일종의 인센티브 덕이죠. 실제로 한국기초소재라는 회사가 직원들의 협력 하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물론 피크 시간대에 전기를 많이 쓰는 업체는 돈을 더 내야죠.”

당장 시행을 못하는 이유가 뭔가요?

“지금 한창 준비 중인데 10월에 전력요금 체계를 개편할 겁니다. 앞으로 산업용뿐 아니라 일반용도 이렇게 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송전선로를 건설하는 데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이런 비용도 적절히 요금체계에 반영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사실 전력 수요가 많다고 발전소 짓고 송전선로 건설하는 식은 지속가능 하지도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수급 불안을 근본적으로 완화하기 위해 공급 중심에서 수요관리 중심으로, 또 경제성보다 사회적 수용성과 환경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력정책을 전환할 생각입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통신기술(ICT)을 도입하고 적절한 규제를 통해 시장을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규제를 만들어 시장을 창출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개별 업체로서는 싼 전기를 무한대로 공급 받는 게 최선입니다. 다른 원인도 있지만 그 결과 전력 부족 사태가 빚어졌고요. 시장의 실패라고도 할 수 있죠. 결국 수급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환경에서 시스템을 만들어 주면 부하가 적게 걸릴 때 전력을 저장해 피크로 부하가 걸릴 때 팔 수도 있겠죠. 시장이 만들어 지는 겁니다. 정부로서는 피크 부하를 줄일 수 있고요.”

원전 비리를 지켜보면서 개방과 경쟁을 규제한 결과 발생한 ‘정부의 실패’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원전이 전문 분야이다 보니 폐쇄적인 문화가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 바람에 진입장벽이 높아진 거죠. 일반적인 기술을 보유한 업체도 만들 수 있는 부품은 이 장벽을 낮추려고 합니다.”

원전의 비중을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해 볼 의향은 없습니까?

“2차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에서 원전에 대해 검토하고 있습니다. 적정한 수준의 원전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만 사회적 수용성을 고려해 관련 시민단체들의 의견도 수렴해 그 수준을 결정할 겁니다.”

통상 정책과 교섭을 다시 산업부가 맡으니 어떤 이점이 있나요?

“산업을 관장하는 부처이다 보니 업계로서는 정부에 이야기하기가 편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부로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바로 협상에 반영할 수 있고요. 애플 제품 수입금지 결정에 대해 오바마 미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한 후 산업부가 논평을 했는데 앞으로도 할 말이 있을 땐 하려고 합니다. 외교부 통상교섭본부 시절엔 교섭만 담당했지만 정책 수립부터 교섭, 국내 대책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고 있는 것도 달라진 모습이죠.”

손자회사가 외국 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런 규제 개혁은 산업부가 주도해야 하지 않나요?

“외국인의 합작투자를 허용하는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을 6월 임시국회 때 상정해 지금 산업통상자원위에 계류 중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산업계와 언론 모두 공감하는 거 같아요. 몇몇 의원들이 강력하게 반대하는데 경제 살리기의 일환이라고 지속적으로 설득해야죠.”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키우는 게 화두입니다. 중소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글로벌 전문기업을 지향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창조경제의 최종 성과 지표는 글로벌 전문기업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 내느냐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벤처 기업도 글로벌 기업으로 가는 첫 단추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벤처 기업 그 자체로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도 처음부터 해외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업체를 발굴해 지원하려고 합니다. 금융회사도 그런 업체를 키워야 돼요. 잘 크면 결국 고객이 되니 은행으로서도 일거양득이죠.”

중견기업에 대한 규제 개혁은 어떻게 돼 가나요?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습니까?

“가업 상속에 따르는 상속세 문제가 가장 큽니다. 중견기업으로 크는 데는 10~20년이 걸립니다. 이렇게 키우고 나서 가업 상속을 해 세금을 내고 나면 더 이상 사업을 지속할 수가 없습니다. 작년에 매출액 2000억원까지 가업 상속 때 증여세를 감면해 주도록 했는데 올해는 상한선을 3000억원으로 확대하려고 합니다. 과거엔 편법 상속이라고 해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는데 지금은 공감대가 형성된 듯합니다. 국회 쪽에서도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중견기업에 대한 규정도 통일이 안 돼 있는데요?

“그건 통일하기 어려울 겁니다. 중소기업처럼 범위를 정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단적으로 업종마다 중견기업의 규모가 다릅니다.”

경제민주화 정책과 입법이 대기업의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요?

“박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경제민주화 입법은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이제 투자 활성화에 주력할 시점이죠. 이를 위해 정부와 업계의 소통 채널인 무역투자진흥회의를 만들었고 산업부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역대 산업부 명칭 중 지금의 산업통상자원부가 가장 명실상부한 것 같습니다.

“가장 이름이 좋죠.”

신성장 동력 육성은 어떻게 할 겁니까?

“신성장 동력을 정부가 사전에 지정하고 드라이브를 거는 것에 저는 회의적입니다. 정책적으로 드라이브를 거는건 자칫 정부의 실패를 가져올 수 있어요. 정부의 역할은 생태계를 만들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거기서 불편함 없이 비즈니스를 하도록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차관 시절에 해양 플랜트 분야가 태동해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야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에서 지원을 했습니다. 그 후 해양 플랜트가 우리 조선업의 주력 부문이 됐죠.”

부산의 한국신발피혁연구소와 대구의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이 손잡고 실크 소재의 신발을 개발 중이다. 대구에서 자라 부산고를 나온 윤 장관이 차관 시절 다리를 놓았다.

“부산에 갔더니 패션화·기능화를 내놓으면서 신발 산업이 회생 기미를 보이더라고요. 기능화는 소재가 중요합니다. 소재를 개발하느라 애를 먹기에 대구의 섬유업체가 개발한 소재 중에 물성 면에서 신발에 쓸 만한 게 있을 거라고 했죠. 대구에 가서는 소재 하나 잘 만들면 신발에 적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박이 날 수도 있다고 부추겼죠. 그동안엔 두 업계가 거의 교류를 하지 않았습니다.”

MB노믹스 특히 자원 외교의 실효성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요?

“자원 외교는 필요합니다. 다만 자주 개발이라는 생각에 얽매여 양적 성장을 추구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 바람에 신중하기보다 리스크가 큰 투자를 일부 했습니다. 석유공사·가스공사 등 우리 에너지 공기업들의 역량을 과대평가한 점도 성찰이 필요합니다.”

윤 장관은 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에서 개성공단법을 다뤘다. 학위 취득 후엔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에 파견을 나갔다.

개성공단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 뭔가요?

“중국이든 미국·유럽연합(EU) 등 다른 나라든 제3국이 투자토록 해 국제화로 가야 합니다. 다자적인 관계로 가야 공단의 가동·운영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제거됩니다.”

얼마 전 서울신문이 전문가들을 상대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를 포함해 경제 장관 8명의 점수를 매기게 했다. 윤 장관은 신제윤 금융위원장 다음으로 1위 표를 많이 받아 현오석 부총리,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과 공동 2위를 했다. 그는 이 조사에서 경제 장관 8명 중 유일하게 꼴찌인 8위표를 한 표도 받지 않았다.

윤 장관은 역대 각료 가운서도 스펙이 화려한 엘리트 관료다. 행정고시 출신이지만 해외파 법학 박사에 뉴욕주변호사와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있다. 서울대 무역학과 학사에 정책학과 법학 두 개의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5권의 저서도 냈다.

공직에 전념하면서 어떻게 이런 스펙을 쌓았나요?

“일을 열심히 안 했다면 차관도 못했을 거예요. 저는 행시 합격 패스 후 과장이 되기까지 18년 걸렸습니다. 아마 대한민국 행시 출신 중 가장 오래 걸렸을 겁니다. 그 후 과장 3년 하고 청와대 행정관으로 1년 고생했는데 산업자원부(산업부의 전신) 전기위원회 사무국장으로 발령을 내는 겁니다.

그래서 연수를 신청했죠. 이런 식의 좌절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이렇게 한직 발령·파견 등으로 힘들 때마다 좌절감에 빠지지 않고 공부 하거나 책을 썼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좌절했을지도 몰라요. 제가 공부에 취미가 있습니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똑부형 상사’ 아닙니까? 피곤한 스타일?

“그럴 수도 있습니다. 100점짜리 상사가 있나요? 다만 저는 일을 시킬 때 두 번 일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업무 지식을 충실히 쌓으면 솔루션이 쉽게 나오죠. 직업 관료로서 30여 년 쌓은 지식과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야 할 책임감 같은 것도 느끼고요. 장관으로서가 아니라 선배로서. 그게 우리 부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고요.”

평소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는 그는 근육질 몸매를 지녔다고 한다. 요즘은 짬이 안 나 양재천 변을 걷고 뛰는 게 고작이라는 그가 툭 한 마디 던졌다. “그래도 허리는 32인치를 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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