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당장의 세수 감소 얼마나 감내할까
Issue - 당장의 세수 감소 얼마나 감내할까
‘전세난이 임계점에 다다랐다. 끓어서 증발하도록 할 것이냐 아니면 찬물을 부어 잠시 식힐 것이냐를 선택할 시점이다’. 정부가 8월 28일 발표한 전월세 안정 대책은 주택 임대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고려한 중장기 방안이다. 역대 정부의 전월세 대책은 주로 전세 세입자의 부담을 완화하는데 초첨을 맞췄다.
그러나 최근 들어 주택 점유 형태가 전세에서 월세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어 정책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실장은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갈수록 비중이 줄어드는 전세를 지원하려는 대책보다는 월세 전환으로의 혜택과 자가 보유 전환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세 지원 치중은 시대 착오적그러나 8·28 대책 역시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 시장의 불안 요인을 차단하기 위한 단기 요법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다. 건설형 공공임대주택과 매입·전세임대주택 조기 입주·공급, 전세자금 대출 자격 요건 및 금리 완화 등이다. 그나마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와 분양가 상한제 탄력 적용, 월세 소득공제 확대 추진 등은 예전 대책과 다른 점이다. 국토교통부의 한 관계자는 “전월세난 완화를 위한 중장기 대책으로 주택 바우처 도입과 공공임대주택 건설 확대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정부의 전월세 대책은 크게 공급 확대와 수요 분산, 주거비 부담 완화, 정보 제공으로 이뤄졌다. 8·28 대책 역시 이 같은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공급 확대 방안은 공공임대주택의 조기 공급과 민간임대사업 활성화가 핵심이다. 올해 입주할 공공임대주택의 입주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추진하는 매입·전세임대주택을 가을 이사철에 맞춰 조기에 공급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올해 매입·전세임대 공급 예정 물량은 3만6000가구로, 9월부터 집중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임대사업 활성화를 위해 임대사업 요건이 완화될 전망이다. 민간임대사업은 중산층과 서민의 주거난을 덜 수 있는 유력한 방안임에도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데 급급한 나머지 정책적 지원에 인색했다. 현재 민간 매입임대사업자에 대해 전용면적 60㎡ 이하의 주택을 5년 이상 임대할 경우 취득세가 면제되고, 재산세는 40㎡ 이하일 경우 50% 감면된다.
전세난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집을 구매할 여력이 있음에도 전세로 머무는 수요를 자가 보유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 4·1대책에서 생애최초주택구입자에 대해 취득세를 연말까지 면제해주면서 신규 분양시장에서 일정한 효과가 나타난 만큼 국민주택기금의 주택구입자금 대출 자격 요건과 금리를 추가 완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또 생애최초주택구입자만으로는 주택 거래 증가에 한계가 있는 만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나 분양가 상한제 탄력 운영 등 규제 완화 방안의 입법 처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9월 국회 통과를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거비 부담 완화 방안으로는 월세 소득공제 한도 확대가 유력하다. 현재 연간 총액 300만원, 월세액의 50%로 설정된 월세 세입자의 소득공제 한도를 올려주는 방안이다. 금융권의 월세 대출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은행들이 월세 대출을 방치하거나 아예 무시하면서 올 봄에 출시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월세대출을 이용한 세입자는 단 10명에 불과할 정도로 유명무실하다.
최근의 전세난은 전월세 가구의 특성이 다양해지고 있는데도 정부의 대책이 전세가구에 맞춰져 운용된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2000년대 이후 전세는 점차 감소하고 보증부 월세가 빠르게 늘었다. 이런 가운데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면 전월세난 해소는커녕 주택 임대차 시장을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전월세 상한제를 통해 가격을 정부가 직접 통제하면 집주인들이 임차료를 과도하게 올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1989년 임대차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릴 때도 미리 2년치 임대료를 올려 받으면서 전셋값이 폭등한 사례가 있다. 세입자의 계약 갱신청구권을 보장하고 5%의 임대료 인상 제한을 두면 집주인들이 4년간 임대료를 못 올릴 것을 감안해 미리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새누리당과 정부는 LH 등이 공급한 서민용 공공임대주택에만 전월세 상한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공임대주택 임대료가 인근 시세에 비해 크게 낮은데다, 입주민 반발을 의식해 임대료 인상을 이미 최소화한 상황이어서 실효성이 적다는 지적이다.
공공임대주택의 입주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은 ‘언 발에 오줌주기’가 될 공산이 크다. 아파트 공기를 감안하면 일러야 한두 달 단축이 가능하고 입주 시기가 빨라진다고 하더라도 수혜 대상이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공임대주택은 보증부 월세가 대부분이어서 전세 수요를 충족하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최근의 전세난이 극심한 부동산시장 침체에서 비롯된 만큼 주택 거래를 정상화해 자가 보유를 촉진하는 한편 월세 세입자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방향으로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소득공제 대상 주택 규모 요건 현실화해야자가 보유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생애최초주택구매자와 무주택자의 주택구매 유인책인 주택구입자금 대출 금리를 더 내리고 세제 감면 역시 한시적이 아닌 장기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취득세 영구 인하 방침도 빨리 확정해 시행할 필요가 있다. 주택저당차입금이자상환액의 소득공제대상과 기준을 확대하는 것도 거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무주택 근로자가 상환기간 15년 이상 저당 차입 때 500만원 한도에서 이자상환액이 소득공제 된다. 고정금리식과 비거치식은 1500만원이 한도다. 최근 세제 개편안에서 소득공제 대상 주택 규모 요건(국민주택규모)이 폐지됐지만 취득 때 기준시가(3억원 이하)는 그대로다.
김현아 실장은 “주택 구매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택가액이 3억~5억원”이라며 “소득공제 대상 주택가액을 상향 조정해 집을 살수 있는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월세 소득공제 확대도 효과를 거두려면 단순히 공제금액 한도만 늘리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월세 소득공제를 받는 세입자가 적은 건 집주인이 세원 노출을 꺼려 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소득공제 한도를 늘리되 한시적으로 집주인(임대인)에 대한 임대소득세를 과세하지 않는 당근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소득공제를 확대하고 한시적으로 임대소득세를 과세하지 않으면 세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결국 정부가 세수 확보와 전월세난 해소를 놓고 선택해야하는 상황”이라며 “세수가 다소 줄더라도 월세제도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월세제도가 정착되면 임대소득이라는 과세를 발굴할 수 있는 만큼 중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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